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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섬기고 도반을 존중하는 사람은 결코 퇴보하지 않는다.
지혜는 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가르침을 듣고(문), 깊이 생각하며(사), 그것을 삶에서 실천할 때(수) 비로소 안목이 열리는 것이다."
ㅡ사리불 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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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은 원인으로부터 생겨나나니,
여래께서는 그 원인을 말씀하셨네.
또한 그 법들의 소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으니,
대시문(대성자)께서는 이와 같이 가르치셨네."
ㅡ사리불 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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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 존자 ④
기자명
입력 2008.03.19 12:03
인욕으로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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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 존자의 어머니 이름은 ‘사리’였다. 사리뿟따는 ‘사리의 아들’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이다. 존자의 이름을 사리불(舍利弗)이라고 한 것은 음으로 번역한 것이다. 반면에 반야심경에서 사리자(舍利子)라고 호칭하는 것은 ‘뿟따’를 아들 자(子)로 직역한 것이다.
사리불 존자의 어머니는 슬하에 4남3녀를 두었는데 모두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장남이 되어서 동생들을 모두 출가하게 만든 존자에 대하여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부처님을 모시고 죽림정사인 웰루와나에 머물고 있던 존자가 많은 수행자들과 함께 탁발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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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날라까 마을에서 탁발을 시작한 존자는 어머니가 계신 집 앞에 서게 되었다. 아들을 발견한 존자의 어머니는 다른 수행자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고루 음식을 주면서 대접을 하였다. 그러나 수행승들이 공양을 마치자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아들을 심하게 꾸짖었다.
“남이 주는 밥찌꺼기나 먹는 자, 시큼한 쌀죽도 버리지 않고 먹는 자, 이상스런 사람들과 함께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국자 뒤나 할고 다니는 자여! 너는 이 같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팔십만 냥이나 되는 거대한 재산을 버렸단 말이냐? 너는 우리 집안을 아주 망쳐 버린 자다. 어서 이 음식이나 먹어라!”
어머니 꾸중에도 화 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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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욕망 제거한 사람” 증명
사리불 존자는 어머니의 질책에 대하여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묵묵히 공양을 마치고, 음식을 받아들고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이 때 존자를 시봉한 시자는 라훌라였다.
존자가 받아온 음식을 라훌라가 부처님께 올렸다. 공양을 받으신 부처님은 라훌라로부터 탁발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사리불 존자가 어머니에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공양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존자가 성내지 않고, 수행에 근실하고, 계행에 덕이 높고, 교만하지 않고,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증명하셨다. 또한 수행자들에게 “악한 욕망을 모두 제거한 사람은 화를 내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라고 강조하셨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사리불 존자를 따르는 많은 수행자 무리들이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존자를 비롯하여 함께 수행하는 제자들에 대하여 지혜가 수승한 수행자들이며, 부처님 제자들의 표준과 척도라고 칭찬하셨다.
존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종종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것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마치 우담바라 꽃이 피는 것을 보기 어려운 것과 같다. 또한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도 어렵고, 믿음을 성취하기도 어려우며, 출가하여 법을 수행하기도 어렵고, 집착을 모두 끊고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기도 어렵다”라고 설법했다.
사리불 존자는 세상에서 부처님의 법을 펴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제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 존자도 “상수제자는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다. 그때 목련존자가 열반에 들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리불 존자도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는 쭌다(Cunda)라는 사미가 시봉하였다. 여행의 종착지는 100세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날라까(Na-laka)였다.
김응철 / 논설위원ㆍ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11호/ 3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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