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jajusibo.com/61548
지난 1월 21일 국제관계 전문가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황을 분석한 글을 올렸다. 아래에 이 교수가 분석한 글의 전문을 소개한다. 일부 표기와 표현은 알아보기 쉽게 수정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로지예 전선이 모습을 드러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겨눈 동계공세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선 자포로지예, 즉 우크라 남부 전선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높이 평가하는 ‘반러적인’ 퇴역 미장교 알렉스 버쉬닌이 예상했고, 다소 친러·중립적인 미 군사평론가이자 블로거 빅서지(Big Serge)와 문오브앨라배마(Moon of Alabama)도 마찬가지 견해였다.
현재 우크라 동부 요충지인 바흐무트(아르테모프스크) 전선에 있는, 러시아를 지원하는 민간군사기업 바그너PMC의 진출 목표는 바흐무트의 ‘작전상 포위(operational encirclement)’다. 러시아 군사 교리상 완전포위는 적에게 ‘죽든가 항복하든가 death or surrender’를, 작전상 포위는 ‘항복하든가 (포격하에) 도망가는가(surrender or leave)’를 강요하는 것이다.
위 지도에서 보듯 세 방면에서 에워싸서 열린 통로는 거리상 남북 각각 3킬로미터대이다. 논자마다 주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크라는 바흐무트와 이 축선(중심이 되는 선)에 27개~34개 여단의 8만~95,000명을 배치했다. 우크라 총사령관이 말한 우크라 현 전투병력의 절반에 가깝다. 그리고 도네츠크 북부 도시 크라마토르스크에 있는 우크라 병력까지 합하면 많게는 70%라고 말한다.
이 바흐무트 전투에서 우크라군은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치명적으로 소모했다. 이제 우크라는 작년 9월 부족한 병력으로 인해 러군이 이지움을 비롯해 하르코프를 내주고 퇴각했던 그 반대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러군은 작년에 보급로가 불안해지자 헤르손, 즉 드네프르강 서안을 내주면서 작전상 퇴각을 했다.
우크라군은 그동안 하르코프에서의 ‘전술적’ 승리를 전략적 자산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또 헤르손시를 회복하면서 ‘역사적 승리’를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 헤르손은 아무런 전략적 가치도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군은 하르코프와 헤르손 양쪽 모두에서 막대한 병력 및 물자의 손실을 치러야 했다. 여기에 더해 바흐무트 전투에 끌려 들어와, 즉 러군의 ‘소모전’에 유인당해 또다시 병력과 물자를 ‘그라인딩’(잘게 부순다는 뜻)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자포로지예 전선에서 우크라 병력이 처한 상황은 지난 9월 하르코프에서 러군이 그랬던 바로 그 반대다. 우크라 병력은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선에 고작 3개 여단이 있다. 그것도 1개 기계화여단 절반은 망가진 상태고 나머지는 향토사단 수준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포병도 갖추질 못했다.
반면 러군은 러연방 제58 야전군이다. 중무장한 러 최정예 정규군이다. 정확한 병력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장급이 지휘하는 2개 군단을 합한 규모다. 우크라가 친나치 성향 아조프부대를 비롯해 돈바스 일부 병력을 이동 배치했다고 하는 말도 있지만 아직은 지켜봐야겠다.
전투 개시 1일 차부터 러군의 돌파가 일어나고 있다.
북진 중인 러시아 부대의 목표 지점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는 파블로그라드로 예상된다. 아마 한때 인구가 70만 명이었던 대도시 자포로지예는 그냥 지나칠 것 같다.
위는 빅서지 블로그에서 가져온 그림1에 등장하는 별표이다. 파블로그라드는 출발지에서 약 80킬로미터 동북방에 위치한다.
러군이 인구가 약 10만 명인 파블로그라드를 공략함으로써 돈바스로 가는 우크라군 보급로가 차단된다. 이 작전은 지금 바흐무트가 함락되고 그다음 돈바스 최후 방어선인 슬로비안스크-크라마토르스크를 겨냥한 것이다. 보급로를 차단하고 또 바로 이 우크라군 최후 방어선의 후방을 공격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러군은 바흐무트를 함락하고 북진하는 러시아와 함께하는 용병집단 바그너 부대 등과 남북방향 동시 공격을 통해 우크라군 병력 70~80%를 괴멸시키거나 무장해제시키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크라군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긴급히 지원군을 편성 북상하는 러군을 자포로지예 전선에서 저지해야 한다. 그런데 병력은 어디에서 동원할까? 동쪽의 하르코프전선에서? 그러면 하르코프를 내줘야 한다. 북쪽의 키예프에서? 그러면 수도가 빈다.
어떤 용도일 진 몰라도 상당한 러 병력 (10만 명 이상)이 이미 벨라루스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면 우크라를 지원해온 서방에선 지금 옷만 갈아입고 투입된 폴란드군이 참전하면 된다. 하지만 서방보다 더 많은 수의 러군이 벨라루스에 와 있지 않은가.
그러면 미군이나 영국군이 직접 참전하면 되겠지만 가능할까. 곧바로 세계 3차대전을 의미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몇 달 내 동원 가능한 미영 연합군을 다 합해도 글쎄 5~6만이 될까 싶다. 새해 벽두부터 ‘국제 탱크모으기’ 운동한다고 서방의 온 동네가 야단법석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이번 러군의 동계공세는 여기가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다음은? 우크라의 군사적 무장해제는 그렇다 치고, 우크라의 탈나치화(denazification)는 언제 하냐는 말이다. 1997년을 경계로 나토군을 롤백(과거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시키는 것은 언제 하냐는 말이다.
지금으로선 모르겠다. 혹 올봄이 지나 여름이 될 때 즈음 모든 것이 위 그림대로 되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에 돌입하면 그나마 다행이고, 미국이 전쟁을 더 하겠다고 하면 그땐 또 다른 전쟁 국면이 열릴 거고 그렇다. 그때도 해는 뜰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