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가니니 : 악마의 바이올리스트' 中 에서)
위 영상 속 연주자는 '데이비드 가렛'으로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곡을 실제로 연주했다.
파가니니는 아버지에 의해서 7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스승을 붙여주면 6개월 만에 스승의 실력을 넘었다.
8세 때 이미 소나타를 작곡할 정도였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으로 모든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물건이나 동물의 소리도 표현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활 대신 나뭇가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하고
악보를 거꾸로 연주하기도 했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Eb장조 독주부분은
연주가 가능할지 의문일 정도로 난도가 매우 높다.
파가니니의 연주를 본 로시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쳤다.
하지만, 파가니니도 인간이었는지
사실, 바이올린의 조율을 한 음 높게 잡아
D장조로 연주했다는 것이 그의 사후에 밝혀졌다.
(물론, D장조의 난도도 극악이다.)
파가니니는 노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노름으로 돈을 잃으면
바이올린을 갖고 길거리에서 연주하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또다시 노름을 했다.
어느날 방탕한 생활로 전재산을 잃은 파가니니가
악기점을 지나가다가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발견한다.
파가니니는 악기점에 들어가 주인에게
바이올린을 한 번만 연주하게 해달라고 한다.
악기점 주인은 거지꼴의 파가니니를 보고 거절하지만
파가니니는 주인에게 간곡하게 사정하여 겨우 허락을 받는다.
파가니니의 연주가 시작되고
그의 화려한 기교에 매료된 악기상 주인은 파가니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파가니니처럼 연주하는 군요."
사람들은 그의 괴랄한 연주를 보며
악마가 씌였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의 연주를 보고나면
누구든지 그의 연주에 빠져들게 되었다.
극악의 기교를 자랑하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악보.
손가락 다섯개로 연주해야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4개)
콩나물 대가리는 6개가 붙어있다.
이처럼 파가니니가 기상천외한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건
파가니니의 손가락이 일반인에 비해 굉장히 길고 가늘었으며,
피부조직이 늘어지고 관절이 연해지는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파가니니는 명기 '과르네리'를 굉장히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그의 사후에 아무도 그의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못하도록 했고
때문에, 그 바이올린은 누구의 손도 닿지 못한 채
제노바 시청에 외로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파가니니는 자신의 재능을 굉장히 아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의 기교를 따라할까봐 두려워
제자를 거의 두지 않았고
(알려진 바로는 1명)
그 제자도 파가니니의 비법을 비밀에 붙여
현재 파가니니의 연주법을 따라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게다가 연주회때도 공연 당일 단원들에게 악보를 주었고
리허설때도 자신의 독주 부분은 빼고 연습했다.
훈훈한 일화도 있다.
파가니니가 병에 걸려 고생할 때
옆에서 간호하던 하녀가 있었다.
어느날,
하녀가 돈이 없어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알고
파가니니는 나막신으로 바이올린을 만들어
특별한 연주회를 열었다.
그 연주회에서 번 수익금을
하녀에게 주어서 하녀는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훈훈한 일화.
런던에서 길을 걷던 파가니니가
거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던 악사를 만난다.
악사의 연주에도 행인들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이를 보고 있던 파가니니가
그의 바이올린을 빌려서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기막힌 솜씨에 순식간에 관객이 모여들었고
악사는 돈을 벌 수 있었다.
파가니니가
'한 줄' 연주를 했다는 일화는 매우 많다.
1. 연주회 도중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다.
파가니니는 당황하지 않고 3줄로 연주 했고,
다음 줄이 끊어져서 2줄로 연주하다가,
또 한 줄이 끊어져서 결국 한 줄로 모든 음역대의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
2. 파가니니가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자의 궁중악사가 되는데
어느날 파가니니가 바이올린 2줄만 남겨놓고 연주하는 걸 보고는
엘리자가 한 줄로도 연주할 수 있냐고 묻는다.
파가니니는 한 줄을 뜯어버리고 마지막 남은 현만으로 연주를 마친다.
3. 파가니니가 옥중생활을 할 때 유일한 즐거움은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옥의 습기로 바이올린 줄이 하나 둘 끊어졌다.
파가니니는 간수에게 바이올린 줄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간수는 이를 거절했다.
며칠 후에, 감옥 안에 완벽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흘러 간수가 감옥을 들여다보니
파가니니가 G현을 이용하여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파가니니가 영향을 준 음악가들은 매우 많다.
당시 유럽 전역으로 파가니니의 인기가 높아
연주회 티켓값은 다른 연주회의 3배가 넘었다.
파가니니가 비엔나 공연을 하러 왔을때
슈베르트는 이를 보려고 책을 팔았다.
브람스, 슈만 뿐만 아니라
음대생이라면 치를 떠는
리스트, 쇼팽, 라흐마니노프도 파가니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파가니니 광팬은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이다.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공연을 본 후, 너무 감명받아
자신은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많은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위 영상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피아니스트 키신이 연주하는 것이다.
원곡은 파가니니의 곡인데 리스트가 피아노 악보로 옮겨적었다.
사람들은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면 열광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록스타'정도의 인기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는
그의 연주를 들을때마다 혼절하곤 했다.
파가니니는 특히 여성팬들이 많았는데,
한 인기 여가수가 파가니니와 결혼하고 싶어 애를 태우자
이를 알게 된 파가니니는 펄쩍 뛰며 말했다.
"절대 안 돼! 결혼이라니! 바이올린 연주를 공짜로 듣겠다고? 얌채 같으니라고!"
그의 말년은 매우 불행했다.
노름을 좋아하던 그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카지노사업을 시작하지만
실패하여 빈털터리가 된다.
게다가
젊은 시절 걸린 매독이 그의 혹독한 스케줄에 더 악화되었고
후두 결핵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눈을 감았다.
그는 사후에 고향에 묻히길 원했지만
고향 사람들은 악마가 씌인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그의 시신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다
3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고향에서 안식할 수 있었다.
다비드 루이스 닮은 분이 연주하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으로 마무리.
첫댓글 진짜 악마의 재능이라고 하면 파가니니가 갑..
나중에 다시보는 클래식 이야기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