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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조기교육의 열풍이 마치 넓은 들판의 불길 같다. 어학 해외연수와 유학으로 출국하는 학생 수가 해마다 큰 수치로 늘고 있다. 시야를 해외로 넓히는 것, 특히 배움의 길에 있는 학생들이 외국어를 일찍부터 익히면서 외국 문화를 소화하는 것은 ‘말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의 현대적 버전이며, 국가 장래에 무형자산의 큰 보고가 될 것이다.
이제 영어교육의 여러 과제 중 영문이름 표기 문제 하나를 놓고 같이 살펴보았으면 한다.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우리 운동선수들의 이름을 외국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다. <Chabum>(차범근, 오래 전 이지만), <Se-Ri Pak>(박세리), <Chan Ho Park>(박찬호), <Ahn Hyun-soo(안현수), <Hee-Won Han>(한희원), <J.S. Park> (박지성)…….
자녀들이 미국, 캐나다에 공부하러 가면 우선 자기 이름으로 전화를 신청한다. 그리고 그 이름이 전화번호부에 등재된다. 김영혜, 김영희, 김영호, 김영화란 학생이 전화 신청을 하면 전화번호부에 그들 이름이 다 똑같이 <Kim, Young H.>가 된다.
이렇듯 우리의 영문이름 표기는 전혀 통일성이 없이 다 제각각이다. 성이 앞에도 오고 뒤에 오기도 하고, 하나인 이름이 둘이 되기도 하고, 약자로만 되기도 하고, 또 이름에 쉼표가 필요 없이 들어가기도 하고, 발음이 달라지기도 하고…….
원칙이 없다. 그러면, 누가 원칙을 세워줄 것인가? 국립국어원인가? 문화관광부인가? 외교통상부인가? 대법원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곳이 아직은 없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이웃 중국이나 일본은 이름 영문 표기에 우리처럼 혼란을 겪고 있지 않다. 이름 영문 표기의 중요 사항은 (1) 성과 이름이 뒤바뀌지 않고, (2) 이름이 줄어들거나 두 개로 갈라지지도 않으며 (3) 음가를 원음에 가깝게 (4) 외국인이 발음하는 데 혼동하지 않도록 표기하는 것이라 하겠다.
첫째, 이름 영문 표기에서 성 뒤에 이름을 쓰는 경우 성 뒤에 반드시 쉼표<,>를 써야 성과 이름이 뒤바뀌지 않는다. 외교통상부에서 여권을 발급할 때 <HONG GIL DONG>하는 식으로 쉼표 없이 표기하는데, 이를 일상에서 그대로 쓰면 안된다. 영문이름을 쓰는 것은 영어 문화권과 접촉함을 의미한다. 그러러면 그 문화권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 영어권에선 성을 앞에 쓰는 경우 성 뒤에 <,>를 쓴다. <HONG, GIL DONG>식으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DONG>를 성으로 착각하게 된다. 명함에 영문이름을 쉼표 없이 표기하는 우리의 직장인들이 많은데, 이것은 우리 방식이지 영문이름 표기방식이 아니다. 쉼표 없이 쓰려면 <GIL DONG HONG>하는 식으로 성을 맨 뒤에 놓아야 한다.
외신들이 <Ahn Hyun-soo><Hwang Woo-Suk>처럼 성을 앞세우고도 쉼표를 안 쓰는 경우는 워낙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출신국에서 부르던 방식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그것도 언론에서만 그렇다. 명성이 높아도 박찬호<Chan Ho Park>나 박세리<Se-Ri Pak>처럼 하루 아침에 혜성처럼 떠오른 이름이 아니고 단계를 밟아 유명해진 경우는 영어권 방식대로 이름을 먼저 쓴다.
둘째, 이름은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써야 한다. <HONG, GIL DONG>으로 띄어 쓰
면 영어권에서는 GIL은 이름(first name 또는 given name)이요 DONG은 우리 문화에는 없는 middle name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D.>라고 약자(맨 앞 글자 initial)로 처리해서 <HONG, GIL D.>라고 표기한다. 우리는 글자 하나하나에 같은 비중을 두어 쓰는 중국의 영향과, 또 항렬에 대한 의식으로 이름 두 글자를 <GIL DONG>이란 식으로 띄어서 쓰기 쉬운데, 이것이 영어권에선 두 개의 이름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미국 유학을 하는 많은 학생들(이민자들은 물론)이 갑자기 이름이 잘려져서 앞 글자만 불리우고 또, 있지도 않은 middle name이라는 것이 생기는 이유는 이름을 <GILDONG>으로 쓰지 않고 <GIL DONG>로 써낸 때문이다. 여권 발급 신청 때 이렇게 이름을 붙여서 적어내면 그대로 된다. 여권 이름이 띄어져 있는 경우엔 정정을 받으면 좋겠다. 정정 받을 기회가 없으면, 외국 나가서 이름을 표기할 때 붙여서 쓰며 그리 적용되도록 주장하는 것이 좋겠다.
이름을 붙여 쓰면 영문자에선 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 <정인 JUNGIN><영애 YOUNGAE>처럼 이응<NG> 받침 뒤에 모음 초성이 오면 영어권에선 <정진><영재>로 부르기 쉽다. 이 경우 짧은 줄표<hyphen ->를 써서 <JUNG-IN><YOUNG-AE>로 띄어 쓰면 제 발음을 유지할 수 있다.
자음이 이어지며 소리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복남><빛나>처럼 발음이 바뀌어 <봉남><빈나>로 들리는 자음접변의 경우다. 글자 위주로 <BOKNAM><BITNA>로 표기하면 영여권에선 <보크남><비트나>처럼 부를 것이다. 발음 중심으로 <BONGNAM><BINNA>로 표기해야 제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한글 로마자 표기법은 이러한 음운변화를 이름에는 반영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이렇듯 발음은 고려치 않고 문자 위주로 한 이름 표기법은 많은 사람들의 해외 생활에 적지 않은 불편을 가져다준다.
모음 둘이 이어지는 <미애><희언>의 경우 우리는 음절을 구분하지만 <MIAE><HUIEON>으로 표기하면 모음이 세 개 이상 이어져서 외국인들은 우리가 원하는 발음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도 역시 <MI-AE><HUI-EON>으로 짧은 줄표를 쓰면 된다.
문화관광부에서 내놓은 한글 로마자 표기법 중 이름 두 글자를 <->로 즉 <송 나리 Song Na-ri>식으로 표기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은 발음에 혼동이 없는 경우 사족일 뿐이다.
셋째, 성은 보편화된 표기가 있는 경우 그대로 따르도록 한다. 예를 들면 이(李) 씨이면 <LEE>로 박 씨이면 <PARK>로 표기한다. 간혹 <YI><PAK><BAK> 등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차후에 가족이나 친척이 똑같은 표기를 하지 않으면 회복하기 힘든 어려운 곤란을 겪게 된다. <YI>의 경우 일제가 조선을 폄하하려고 이씨 왕조(Yi Dynasty)라고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 <Se-Ri Pak>의 경우 <세 리 팩>이라고 원래의 발음에서 많이 벗어난 소리로 현지에선 부른다.
넷째, 영문이름이 정해지면 모든 경우에 통일되도록 한다. 여권과 학교의 성적 증명서, 졸업 증명서 또 국제 운전 면허증 등을 다 같은 표기로 해야 하겠다.
여권의 영문 이름이 한 번 오르면 고치기 힘들고, 또 고친 후에도 적지 않은 불편이 따를 우려가 있으니 처음부터 신중이 요구된다 하겠다. 한글 로마자 표기법은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읽기 쉬우라고 만들어놓은 것이지 영어권만을 대상으로 정해놓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면 영어권에서는 불편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 등이 영어의 세계적 보편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는 시대 상황 하에서 이름의 영문표기에 영어 문화권의 관습을 적용함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있겠다.
펌- http://blog.naver.com/weourusall/70005838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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