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교장이 사 주는 점심을 먹고 현식 등과 얼른 헤어진다.
하늘이 맑다.
제석산이나 두방산에서 지리산 봉우리는 보았으니 한라산이라도 멀리서 볼 수 있을까?
적대봉은 멀고 유주산으로 가 보자.
고흥기맥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우마장산에서 지등고개의 구간은 빠졌으니 거기도 보충하자.
도화중학교 후문 쪽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옷을 차안에서 옹색하게 갈아입는다.
음성 안내판이 서 있는 등로 입구에 서니 딱 2시다.
여산송씨 묘지를 지나 오르는 작은 숲길은 여전히 길다.
한구비를 오르면 평지가 나타나 숨을 골라주기를 몇번 40여분 지나 음성 앞 삼거리에 닿는다.
음성 석축주변은 나무를 잘라내어 성의 흔적이 또렷하다.
도화초 근무할 때가 벌써 15년을 지나간다.
아침에 어둑한 길을 따라 올라섰던 바위에 다시 서 본다.
바람이 세차 바위 아래로 내려가 사진을 찍으며 초코파이를 먹는다.
술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수첩을 꺼내 한자찾기를 고민하다가 고소를 짓다가 일어난다.
많이 놀았다.
삼거리에서 도화초쪽으로 내려가다가 리본을 보고 안 가본 길로 들어선다.
흔적은 희미하고 썩은 나무들과 맹감가시들이 가로막기도 한다.
나무를 잡고 오르막을 오르니 안태골산(201.4m)이라는 반바지님의 비닐코팅지가 붙어 있다. 반갑다.
내려가는 길은 희미하여 놓치기도 하고 미끌리기도 한다.
지등고개의 밭으로 내려서는 고약한 잡풀을 건너 고인돌을 본다.
묘지인지 산길인지 그쪽에 길이 있는 거 같기도 한다.
사진을 직고 산줄기 안내 리본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냥 사동마을 가는 아스팔트를 올라 다녀본 길로 간다.
유주산 3.7km 안내판은 벤 소나무 사이에 누워있다.
등산로는 베어진 나무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다.
누운 나무 기둥을 따라 어렵게 넘어가다가 묘지로 나와 건너편을 보니 새로 심은
두릅밭이다.
두릅밭 가를 따라 오른다. 발은 자꾸 미끌린다.
지나온 산줄기가 깨끗한 얼굴로 가깝다. 풍남 녹동쪽의 바다도 깨끗하고 천관산의 덩치도 장중하다.
많이 기울어진 해가 사스레피 나무를 옆으로 비춰 밝은 기운을 준다.
능선 오름길을 따라 남해바다가 훤하게 열리는 돌아가는 능선에 서니 벌써 5시다.
해가 많이 길어졌으나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염치 불구하고 경동에게 전화를 할까?
석양이 비치는 거금도와 지죽도를 내려다보며 능선 걷는 맛이 좋은데 마음은 바빠진다.
네모 반듯한 봉수대는 금방이다.
봉수대 위에 하얀 달이 떠 있다.
바람이 차 대 위에서 금방 내려온다. 한라산은 보이지 않는다. 초도 거문도는 희미하고 완도 청산도도 짐작만 한다.
동쪽 능선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만 구암마을로 내려가는 남쪽 가파른 길을 잡는다.
가파른 하산길은 잡풀을 베어 길이 또렷하다.
편백숲을 만나 길없이 헤맨다.
나무 사이에 큰 바위가 누워있고 밭두둑인지 성의 흔적인지 돌무더기가 길게 늘어선 곳도 만난다.
바위 사이를 헤매다가 마을을 보고 내려가 풀에 덮힌 임도로 내려선다.
마을이 가까운 쪽으로 걸어가니 예전에 돌을 잘라낸 석산의 터다.
다시 되돌아 임도를 따라가다 작은 고개를 올라 마을을 보고 내려간다.
경동에게 전화를 하니 금방 오겠다 한다.
길없이 급하게 헤매다가 스러져가는 집으로 내려서니 마음이 놓인다.
회관 공토로 경동이의 차가 들어서더니 전화가 온다.
서둘러 마을 안길을 달려가니 바로 회관에 닿는다.
나와 장어탕을 먹겠다고 이정미까지 나왔는데, 난 극구 사양하고 도화중학교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장어탕에 소주를 못 참을 것이고 그럼 음주운전을 하거나 도화에서 잠을 잘 것인데
어제 화가 난 바보에게 더 큰 죄를 짓는 일이다.
경동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집으로 부지런히 온다.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