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의 저녁은 들녘의 그것보다 한식경은 빨리 찿아 오고
냉기는 사뭇 관솔가지에 불이 옮겨가듯 순식간에 들어찬다.
장터 국밥집에서 한 사발 기울였던 탁배기 한잔에 숨이 차서
허위허위 가파른 돌서덕을 지나며 장씨는 마음이 바빠오고
그래도 한 손에 꼭 틀어쥔 장보따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살길을 찿아 찿아든 골짜기에 움집을 짓고
어렵사리 화전을 일구어 터를 잡은지도 어언 십여년,
골라내도 골라내도 매년 일어나는 자갈무덤이 담이되고
그나마 이제는 감자네 고구마 정도는 어렵잖게 소출이 생기니
처음 배부른 아내를 앞장세워 오르던 적막강산은 아니었다.
적적하여 장터마당에서 거둬들인 강아지 녀석이 제법 짖어대고
연년생으로 커오는 아이셋의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넘쳐나니
장씨부부로서는 더 이상의 바램도 고달픔도 잊을만 하다 하였다
오늘은 재밑의 소읍에 5일장이 서던날,
며칠을 졸라대던 아들녀석의 성화에 지는척 병아리 몇마리를
구해서 심심풀이로나마 화초삼아 닭농사 새로 지어보려는 참이다
모두 열마리의 노오랗고 가무잡잡한 녀석들이었다.
한 배에 나왔다고는 했지만 어중간히 크기는 비슷해도
삼분의 일 정도는 다른 병아리에 비해서는 월등히 늠름하고
모이싸움에도 도드라진것이 아무래도 수평아리 들인가 보았다
.
요놈들 중에서도 제법 돌똘 하면서도 에미닭 따르듯 유난스레
종종거리며 사람을 따르는 흡사 꿩병아리처럼 생긴놈이 있었다.
중닭의 털갈이를 마치고 제법 성계의 티가 보여가던 어느날엔가
수탉무리 사이에서 서열싸움을 벌였나 보았다.
몇몇놈의 벼슬들이 혈흔이 보이고 어떤놈은 정수리털이 벗겨지는
제법 심각한 전투를 벌인 모양 이었다.
아무래도 그 꿩병아리 닮은 가무잡잡한놈이 우세인듯 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이 깜닭이 세력방어에 나서는듯 하더니
닭 치고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광역을 설치고 다니는 거였다
이놈이 집식구들은 아는척도 않으면서 거드름을 피워대면서
정작 낯선 사람이라도 삽작문안에 들어 설라치면 난리를 치면서,
숫제 집에서 키우는 개는 가만히 있어도 개 역할 이상을하는 것이다
결국 한 번은 사단이 나고 말았다.
엿장수가 기웃 거리다가 인적이 없으니 슬슬 몇가지 챙기는데,
느닷없이 등뒤에서 독수리의 습격을 받듯이 깜닭놈의 기습을 받아
등짝이 패인것은 물론이고,안면에 칼자욱 비슷하게 거의 반죽음을
만들어 결국 지서의 순경까지 불러 오는 서건을 만들고 만것이다.
괘씸하니 잡을수나 있나.
요놈은 대장이리고 초가집 꼭대기에 머물러 계시고
달렸다 하면 적토마에,날면 독수리 뺨치는 비상이니
고스란히 엿장수에게 약값턱으로 감자 한가마니는 물어줘야 했다
이 골치 아픈 깜닭놈이 유난히 따르는 사람이 있으니 둘째였다
어느날엔가 밭에서 일찍 돌아온 장씨는 이 골치아픈 깜닭의
그 무시무시한 전투력의 내막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둘째아이의 솜씨로 보아 한두번은 아닐터,깜닭에게 고추장을
퍼 먹이고 있었고 그놈 역시 태연스레 그 별식을 받아먹고 있었다
이유인즉,이 깜닭이 중병아리적에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실습용으로
병아리를 몇마리 가져오라 하여 그 생김새며 종류를 알아보는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마침 차출된 놈이 이 깜닭 이었고,
낯선것들끼리 모아 놓으니 자연히 신경전이 벌어져 닭쌈이 붙었는데
이 깜닭이 제놈보다 큰 다른집 닭에게 직사하게 터진걸 보고는
둘째아이 분기탱천 하여 집으로 오자마자 어디서 들은 풍월로
고추장을 물에 개어 다짜고짜 주둥이에 들어 붓기를 한 종지쯤,
그만 닭이 시들 거리며 축 처지는 것이었고 겁이난 둘째는 얼른,
뒤켠의 짚단사이에 쑤셔넣어 하룻저녁을 불안에 떨었다는 것이다
헌데,이 깜닭이 새벽까지도 기척이 없어서 죽은지 알았더니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쌩쌩하게 돌아 다니며 모이를 찿더라는것.
다시 몇번의 고추장 단련후에 둘째아이는 다시 일전의 그 닭을
찿아가 회심의 복수전을 벌였는 바,
아주 통쾌하게 그 장닭을 반죽음 시켰다는
참 기막힌 사연을 듣고난 장씨,웃어야지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원래 쌈닭은 씨종을 달리 하면서 개량종 장닭보다는 작지만
토종닭 고유의 색깔에 좀 더 검은기를 띠고 부리는 매를 닮아굽고
발톱 역시 갈고리같은 오른쪽 발톱이 움켜쥐고 긁어내기에 좋도록
아주 몸구조부터 다부지게 다르며,꼬리깃이 날렵한 제비와같고
눈은 짙은 호박색이며 벼슬은 흑갈색에 가깝도록 독이 올라있다
이 놈은 장닭무리의 대장이지만 번식에는 큰 관심이 없고,
먹이를 쫓듯이 그저 싸움거리 될만한 시빗거리에 관심을 두면서
막상 싸움에 들어가면 사람이 말리지 않는한 상대를 죽여야 물러선다
사람싸움에 '대갈빡이 터지도록'이라는 표현이 이놈의 덕이기도하다
장씨,우연히 시골장터에서 사들인 병아리중에 투계의 씨가 따라와서
아니라도 쌈닭인데,게다가 고추장까지 장복시켜 아예 맹수를 만드니
웬만한 이웃사촌은 닭이 무서워 내왕을 꺼려하는데다,
사람 성격따라 가금도 그 모양이라는 핀잔에 아주 기가 질려버려
아주 그럴듯한 해결책을 모색하여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땅꾼에게 까치독사 한 마리를 구해다가 몇군데 상처를 내어
넉넉한 항아리에 넣고는 모기장 찢어다 그 입구를 막아 두었다.
어렵게 깜닭을 꼬셔서 붙잡아서는 발목에 끈을 묶어 광에 가두고
열흘쯤 지난뒤의 까치독사 항아리를 뒤집어서 구더기를 먹이고
좁쌀이며 모이서껀에다 약재 두어가지를 버무려 계속 먹이기만 했다
그렇게 보름여가 지나 제법 윤기가 흐를 즈음 때맞춰,
이웃에게 별러둔 뱀장어 암놈이 당도한 것이다.무려 구렁이 크기의.
이날 저녁,점지된 용과봉은 시커먼 무쇠솥 신방에서 사투를 벌이는데
산채로 들어간 두 생물이 치고받으며 익어가는 그 처절함에,
눌러둔 바윗돌도 들썩이며 난리가 나더니 결국 뚜껑은 금이 가고만것
뽀오얗게 진기가 흐르는 국물을 잘 걸러서 온 식구가 들이킨 후에,
어린것들은 이른단잠에 이튿날 아침까지 혼절하고
두 부부 역시 반나절은 혼몽한 상태로 단잠을 이루었다고는 하던데.
이튿날 장씨는 둘째에게 하루종일 시달리고 시달렸고
어쨌거나 나오는 알중에서 몇개 골라 병아리 만들기로 하였는 바,
속심은 다른데 있음을 아이야 알리 없는 것이었다.
첫댓글 고향마당 님의 시에 나오는 민초들이 고은 선생님의 만인보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네요. 늘 감탄하며 또 감사하며 읽습니다.
덤불님..감히 고은 선생님께 비유를...저는 사(邪)스럽습니다...객주의 화학조미료를 배합하는...세상에 힘을 주시는 작가님들의 글이 밋밋한 맛이어도, 그분들의 올곧은 정(瀞)이 담겨 있어 사람에게 힘을 주시지요..
맑은 기를 담아 나누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매번 매번 두터운 체증에 막히듯 되지를 않습니다..병든 마음이 담긴글은 보는이를 상하게 한다는건 알지만,,그 열을 다스리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아마도 죽을때까지도 모를지 모릅니다....문득 답답함에 말이 많았습니다...^^*
어릴적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그 진한 감동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던 그시절이 떠오릅니다. 아니 님의 글로 인하여 잊어버린 그 시절을 찾아서 되돌아 간답니다. 마음이 짠 했던 그시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