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빙계(寒氷戒)
1. 동정유상(動靜有常) 움직임과 움직이지 아니함에도 떳떳한 법칙이 있다.
하늘의 道는 둥글어서 움직이며, 땅의 道는 반듯하여 움직이지 아니한다. 양(陽)은 생기면서부터 움직이며, 음(陰)은 생기면서부터 움직이지 아니한다. 그런즉, 고요함은 곧 활동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땅을 기본으로 삼으며, 양(陽)은 음(陰)을 기본으로 삼는다. 천하의 모든 물건이 기본이 없이 생기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것이니, 하늘의 바람, 비, 우뢰, 번개가 변화하며 움직이지마는 만물이 땅에 의존하니 이것은 고요함에 기본을 두는 것이다. 사람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변화하며 움직이지마는 하나의 이치가 몸에 갖추어 있어, 고요함을 바탕으로 한다. 곧 하늘, 땅, 사람이 그 움직임과 움직이지 아니함에 떳떳한 법칙이 있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그릇을 몸에 간직하였다가 때를 기다려 쓴다."하였으니, 그릇을 간직한다 함은 도(道)의 본체니 곧 조용함이요,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도(道)의 작용이니 곧 활동함이다. 조용하지 아니하면 그릇이 몸체를 이루지 못하여 활동할 때에 쓸 것이 없다. 조용한 가운데서 그릇을 이루어 놓았다가 때를 기다려 활동한다면 무엇인들 되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조용함 속에 주장을 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2. 정심솔성(正心率性) 마음을 바르게 하고 타고난 본성을 따르라.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사사로운 욕심이 들어와서 해치고, 타고난 본성에 좇아 따르지 않으면 나쁜 생각이 함부로 침범한다. 엄하고 꿋꿋히 성찰하여 사사로움을 물리치고 악을 다스리기를 적소(赤하늘기운소)로 뱀을 베며 황간(黃間)으로 범을 쏘듯 하여야 한다. 그런 뒤에는 내가 이겨 내지 못할 염려가 없을 것이다. 사욕과 나쁜 생각이 생긴 뒤에 이를 퇴치하는 것은 미리 방지하는 것의 요긴함만 못하다. 마땅히 두 번 생각함으로써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세 번 반성하여 타고난 본성을 따르게 할 것이다. 인심(人心)은 위태로우며 도심(道心)은 은미한 것이니, 바로 잡아서 수양해야만 위태로운 것이 편안해지고 은미한 것이 나타난다. 습관에서 생기는 성격은 참을성 없이 급하며, 타고난 천성은 바른 것이니, 본성에 좇아 따라 습관을 이끌어준다면, 조급한 것이 바르게 되고 바르게 하면 밝아지리라 3. 정관위좌(正冠危坐) 갓을 바로 쓰고 무릎 꿇고 앉아, 자세를 바르게 하라.
마음속에 이치가 곧으면 밖에 몸이 반드시 단정하여 지나니 거처를 공손히 하면 평안 할 때에 반드시 위태 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눈길을 존엄하게 하는 것이나 앉기를 시(尸)와 같이 하라는 것은 모두 공경함을 이른 것이다. 어찌 감히 방자하고 태만하리요, 갓을 바로 쓰지 않은 것을 보고 버리고 가는 이도 있고, 다리를 뻗고 앉은 것을 보고 감정을 품은 이도 있었으니, 위의(威儀)를 잃는 것은 학문하는 데에 큰 병통이니 공경히 하고 공경히 하라. 4. 심척선불(深斥仙佛) 선과 불을 깊이 배척하라.
신선(神仙)이란 방사(方士)들의 허탄(虛誕)한 말인데 진시황(秦始皇)이 약(藥)을 캔다는 데에 속임을 당하였으며, 부처(佛)란 것은 적멸(寂滅)의 도(道)인데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불경(佛經)을 수입해 들어왔으므로 후세에 비방을 듣는다. 이로부터 그 뒤에 간간이 거기에 빠져서 돌아오지 못하니 좌도(左道)가 사람을 미혹시킴이 심하도다. 우리 동방이 신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사찰이 더할 수 없이 번성하고, 최고운(崔孤雲) 같은 높은 선비로도 신선과 부처에게 의탁하였으니 어찌 해괴하지 아니한가. 나는 매양 안회헌(安晦軒=安裕)의 《향(香)과 촛불로 곳곳마다 다 부처에게 기도하고 퉁소(簫)와 피리(管)로 집집마다 다투어 굿을 하는데, 오직 두어 간 공자(孔子)의 사랑에는 봄풀이 뜰에 가들하고 적막하게 사람이 없구나.》한 시를 욀 때마다 세 번 되풀이하여 외며 탄식하지 아니하지 못하였다. 학자는 항상 사도(邪道)를 배척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도(道)에 향하여 바른 데에 점점 물들 것이다. 5. 통절구습(痛絶舊習) 옛 버릇을 철저히 끊어 버려라.
지금의 벼슬하는 자들은 대개 출세에 조급하여, 의리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구멍을 뚫고 담을 넘어(鑽穴相窺) 서로 엿보아 첩들과 같은 행동을 즐기고 있다. 벼슬을 얻으려고 걱정하며 놓칠까 걱정하여 못 할 짓이 없나니, 이것이 어찌 도에 뜻을 둔 자가 할 짓이랴. 어려서 배워 장성해서 실천하려던 뜻은 허탕으로 돌아가고, 버릇이 타고난 본성처럼 되어 일생을 마치도록 깨닫지 못하니 딱한 일이다. 이 버릇을 철저히 없애야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점점 도(道)의 맛있는 경지(蔗境)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6. 질욕징분(窒慾懲忿) 욕심을 막고 분한 마음을 참어라.
사람의 욕심은 음식과 남녀 관계보다 더한 것이 없다. 예(禮)를 가지고 억제하지 아니하면 누가 탐(貪)하고 음란한 짓을 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분노는 벼슬과 재물을 다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의(義)로써 재단하지 아니하면 누가 간악하고 낭패(狼狽)되는 데에 이르지 아니하랴. 그러므로 성인이 예의로 이를 제약하여 가르치며 지도한다. 공부하는 사람이 언제나『무죄한 사람 하나를 죽이고 천하를 얻을 수 있어도 그것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분함과 욕심이 스스로 없어지고 도리가 절로 밝아지리라. 7. 지명돈인(知命敦人) 하늘의 뜻을 알고 어짐에 힘쓰도록 하라.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명을 아는 고로 걱정하지 아니한다.』하였고, 또 말씀하시기를, 인(仁)에 돈독한 고로 능히 사람을 사랑한다.』하였다.…(이하 원본의 글이 유실되어 문장이 끊어짐) 8. 안빈수분(安貧守分) 가난함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도록 하라.
하늘이 뭇 백성을 내고 각각 나누어 준 직분을 갖게 하였으니, 감히 어기고 넘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부자가 되기를 원하나 부자가 되기는 어렵고 가난하기가 쉬운 것은 분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은 천기(天機)가 높지 못하여 가난함을 싫어하고 부자 되기를 구하여 분수 밖의 일을 지나치게 행한다. 비록 용한 꾀를 교묘히 행하고 마침내 법망에 걸림을 면하지 못하여, 심하면 몸을 망치고 자손이 끊어지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가히 두려워하지 아니하랴. 공자(孔子)는 말씀하시기를,《부귀를 만일 구하여 얻을 수 있다면, 비록 말(馬)채찍을 잡는 천한 일이라고 내가 하겠다마는, 해서 되는 것이 아닌 바에는 내가 좋아하는 바 도덕(道德)을 따르리라.》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선비가 도(道)에 뜻을 두면서 좋지 못한 옷을 입으며 좋지 못한 음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더불어 말할 것도 없느니라.》하였으니, 구한다고 반드시 얻지 못할 바에야 도리어 나물밥에 굵은 베 옷으로 지내는 나의 생활을 만족히 여기면서 도(道)를 즐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아름답도다. 어진 선비는 주로 그의 처지(處地)를 생각하라.》하였으니, 궁(窮)하여서는 홀로 그 자신을 착하게 하고, 출세(出世)하여서도 천하(天下) 사람에게 모두 착하게 하라. 9. 거사종검(去奢從儉) 사치를 버리고 검소하게 지내라.
공자(孔子)는 말씀하시기를,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하게 하라.》하셨으니, 어찌 예절만이 그러하리요. 지금 풍속이 옛날과 달라서 사치와 하려함을 다투어 숭상하여, 정원을 넓고 크게 하고 바단옷을 입고 진수성찬을 먹는 것을 호걸스러운 풍치로 생각하므로, 선비들의 풍습도 거기에 따라 빠져들어 가서 도(道)를 아는 자가 적으니 애달픈 일이다. 사치라는 것은 하늘이 만든 물자를 함부로 없애는 도둑이다. 옛날로부터 사치를 숭상하여 그 끝가지 사치스런 생활을 보존한 자는 없었다. 검소하고 절약하는 것은 사람과 물자를 유지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검소함을 숭상하면서 검소하기 때문에 잘못되는 일은 듣지 못하였다. 도(道)에 배반하는 자로서 검소하는 자는 적고, 도를 지향하는 자로서 사치를 버리는 자는 많다. 10. 일신공부(日新工夫) 날마다 새로워지는 공부를 하라.
오늘에 당연한 이치대로 행하고 내일에 당연한 이치대로 행하여 일상생활이 당연한 이치대로 하지 않음이 없으면, 날이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되어 곧 인(仁)을 쌓고 의(義)를 쌓아서 그의 극치에 이르게 되는 것이, 강물을 터놓음과 같아서 쫙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음과 같게 될 것이다. 공자(孔子)는 말씀하시기를,《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 이것이 성(盛)한 덕(德)이다.》하였다. 이것을 두고 이름이다. 벌써 내일까지 기다려 보자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옳지 않다. 11. 독서궁리(讀書窮理)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도록 하라.
글을 읽는 법은 많이 보기를 탐내고 널리 읽기를 힘써서는 안 된다. 넓기만 하고 요령이 적은 것보다는. 간추려서 요령을 얻도록 하는 것이 옳다. 무릎을 끓고 단정히 앉아 공경히 책을 대하여 익숙히 읽고 뜻을 음미하면 그 이치가 스스로 나타날 것이고, 이치가 나타나면 곧 육미(肉味)가 입맛에 좋은 것과 같을 것이니, 단단히 씹어서 소화시킨 뒤에 곧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만일 성인(聖人)의 글이 아닌 것을 읽는다면, 비록 하루에 만자(萬字)를 왼다 할지라도 우리의 무리가 아니다. 12. 불망언(不妄言)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공자는 말씀하시기를《방안에서 말을 하여도 그 말이 착하면 천리 밖에서 이에 호응하는데, 하물며 그 가까운 데서야. 방안에서 말을 하여도 그 말이 착하지 아니하면 천리 밖에서 이에 반대하는데, 하물며 그 가까운 데서야. 말은 몸에서 나와서 백성에게 퍼지고, 행실은 가까운 데서 출발하여 먼데에 나타나는 것이니, 말과 행실은 군자(君子)의 추기(樞機)인 것이다. 추기의 출발은 영화롭고 욕되는 기본이다. 말과 행실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것이니 삼가지 아니하면 되겠는가.》하였고, 또 말씀하시기를,《난(亂)이 생기는 것은 언어(言語)가 그 매개가 되는 것이다. 임금이 기밀을 지키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기밀을 지키지 못하면 몸을 잃고, 기사(機事)에 기밀을 지키지 못하면 해(害가) 생기는 것이니, 이러므로 군자는 삼가고 비밀히 하여 함부로 내지 않는다. 말과 행실이 이렇게 엄하고 어려운 것이다. 지금 많은 선비들은 그 기개를 높이 올리며 의논이 바람 일 듯하여 꺼리는 바가 없으니, 그들에게 환란(患難)이 닥칠까 염려된다. 그러나 집집마다 다니면서 타이를 수는 없다. 그대는 조심할지어다. 말을 삼가는 방법은 정성스러움과 공경함에 있다. 그러므로,《정성스러움과 공경함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하였다. 13. 주일불이(主一不二)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두 갈래로 하지 말라.
주부자(朱夫子)가 [경재잠·敬齋箴]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기를, "그 의관(衣冠)을 바르게 하고 눈길을 존엄히 하라. 마음을 안정하고 있으면서 상제(上帝)를 대한 듯 하라. 발(足)의 모양은 반드시 무거우며 손(手)의 모양은 반드시 공손 하라. 땅을 가려서 밟아 개미굴에도 걸음을 꺾어서 돌아라, 문(門)에 나설 때에 큰손(賓)을 보는 듯 하고, 일을 대하면 제사지내는 것 같이 하라.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혹시라도 감히 경솔히 하지 말라. 입(口)으로 지키기를 병마개 닫듯 하고, 뜻을 방비하기를 성(城)과 같이 하라. 삼가고 삼가서 혹시라도 감히 경솔히 말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지 아니하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하지 말라. 일을 대할 때에는 <마음을>거기에 두고 다른 데로 가지 않아야 된다. 두 갈래로 하여 둘이 되게 하지 말고, 세 갈래로 하여 셋이 되지 않아야 한다. 오직 마음이 한가지로 하여 일만 가지 변화를 주장해야 한다. 이러한 방면에 힘을 쓰는 것을 '공경함을 가지는 것'이라 한다.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다를 것이 없고 겉과 속 또한 서로 바르게 하라. 잠깐만 틈이 생기면 사욕(私慾)이 만가지로 일어나서, 불이 아니면서 뜨거우며, 얼음(氷)이 아니면서 차다. 털끝(豪釐)만큼만 틀림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자리가 바뀐다. 삼강(三綱)이 이미 없어지고 구법(九法)이 또한 무너지리라. 아. 소자(小子)여, 생각하며 공경하라. 묵경(墨卿)이 경계함을 맡아서 감히 영대(靈臺)에 고한다."하였다. 어떤 이가 묻기를,《두 갈래로 하여 둘이 되게 하지 말고, 세 갈래로 하여 셋이 되지 말아야 한다 하며, 동에서 서로 하지 말고, 남에서 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가.》하였다. 나는 답하기를, "모두 하나의 경(敬)을 형용한 말이다. 경이란 하나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것인데, 처음에 한가지의 일이 있는데 또 한가지를 보탠다면, 이것은 곧 두 갈래로 하여 두 가지가 되는 것이요, 세 가지가 되는 것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지 말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하지 말라는 말은, 다만 일심으로 동쪽으로 가다가 또 서쪽으로 가려 한다든지, 또는 북쪽으로 가려 한다는 것은 모두 하나에 집중함이 아니다. 이것은 마음이 이리저리 달리지 않을 것을 설명한 것이니, 이것은 곧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공부가 극치에 달해야 되는 것이다. 앉는 옆의 벽에다 써 붙여 두고 아침 저녁으로 보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아 힘쓰고 힘써서 쉬지 아니하면, 능히 천하의 도리를 모두 연구하여 알아서 전일하게 되는 데에 이를 것이다." 하였다.
14. 극념근근(克念克勤) 잘 생각하고 부지런히 하라.
생각하지 아니하면 잊어버리고,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폐지된다. 그러므로…(이하 원본의 글이 유실되어 문장이 없어짐) 15. 지언(知言) 말을 알라.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사람을 알아보는 이는 철(哲)이니, 제(帝)도 그것을 어렵게 여겼다."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을 알려면 반드시 그 말을 살펴야 한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다. 공자(孔子)는 말씀하시기를, "장차 배반하려는 자는 그 말이 부끄럽고, 마음에 의심을 가진 자는 그 말이 지엽(枝葉)이 많고, 길(吉)한 사람의 말은 적으며,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고, 착한 이를 무함하는 사람은 그 말이 들떠 있으며, 그 지킴을 잃은 자는 그 말이 비굴하다."하였고, 맹자(孟子)는 말씀하시기를, "편파된 말에는 그가 속이는 것임을 알고, 음(淫)한 말에는 그의 빠진 데가 있음을 안다."하였으니, 이 말들을 자세히 깊이 유의하면, 곧 말을 알아듣는 방법은 정말 사람을 아는 거울이다. 배반한다 함은 반역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저버리며 신의를 버림이 모두 그런 것이니, 말이 신의에 배반되고 진실함과 어긋나므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요, 길(吉)한 자는 안정하므로 말이 적고, 조급한 자는 동요하므로 말이 많다. 의심을 가진 자는 자신이 없으므로 발이 지엽이 많고, 모함하는 자는 남을 망치므로 말이 들떠 있고, 지킴을 잃은 자는 스스로 패하였기 때문에 비굴하다. 맹자의 말씀도 역시 이 여섯 가지로써 미루어 알아 낸 것이다. 대저 사람의 정상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仁)한 자는 침묵하고, 용맹스런 자는 떠들고, 말을 잘 하는 자는 믿음성이 적고, 순하기만 한 자는 결단이 적고, 꾀 있는 자는 음험함이 많고, 글 잘 하는 자는 중심이 적다. 이러한 이치로 미루어보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다.
16. 지기(知幾) 일의 징조를 알라.
공자(孔子)는 말씀하시기를, "일의 징조를 아는 이는 신(神)이로다. 징조는 움직임의 미세한 것이요, 길(吉)하고 흉(凶)한 것이 먼저 보이는 것이다. 군자는 징조를 보고는 일어서서 그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지 아니한다."하였고,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돌 보다 굳고 단단하고, 징조를 보거든 그 날이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바르고 길하다."하였으며, "굳기가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해를 마치랴. 단정코 알 수 있을 것이다. 군자는 미세함을 알고 드러남을 알며, 부드러울 줄을 알고, 강(剛)할 줄을 아는 것이다. 일만 사람의 신망을 가진 자로다."하였다. 그러나 위태로운 징조를 알고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어야 할 곳이 있으면 죽음을 보기를 집에 들어가듯 하여 구차스레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웃사람에게 교제하는 자는 반드시 공손하되 아첨이 되는 징조를 알아서 조심하고, 아랫 사람에게 사귀는 자는 반드시 화평하고 간소하게 하되 위신 없고 실없게 될 징조를 알아서 조심하여, 일에 대해 징조를 알고 사건에 따라 징조를 알아서, 일마다 사건마다 다 그 징조가 있으니 각기 그 도리대로 진퇴하여 미세한 것, 드러난 것, 부드러운 것, 강한 것을 막론하고 이를 모두 안다면, 어찌 뭇 사람의 큰 신망을 얻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17. 신종여시(愼終如始) 마지막을 시작할 때처럼 조심하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처음 시작은 없는 사람이 없으나 마지막이 있는 이는 적다."하였으며, 주역(周易)에 "처음을 추구하여 마지막 있기를 구하라."하였으며.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처음을 잘 하는 이도 마지막을 잘하지 못한다."하였으니, 진실로 마지막을 시작할 때처럼 조심한다면 어찌 성현(聖賢)의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하랴. 18. 지경존성(持敬存誠)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성실함을 지켜라.
'공경한다', '정성스럽다' 하는 것은 모두 이 마음의 오묘한 것을 밝히는 바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효제충신(孝悌忠信)이 정성스럽지 않음이 없나니, 정성스러움과 공경함은 곧 수신(修身)하고, 제가(齊家)하고,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천하를 태평하게(平天下) 하는 요긴한 도리이다. 자사(子思)는 말하기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至誠)이라야 능히 천하의 큰 일을 경륜(經綸)한다."하였으니, 정성스러움과 공경함의 작용이 지극하고 큰 것이다. 천지의 조화를 통할 수 있고 귀신의 덕을 감동시킬 수 있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서 잃어버리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믿어지고 행하지 않아도 이르러지는 것이니,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이 지경에 이르리요. 삼강(三綱), 오륜(五倫), 육예(六藝), 팔정(八政)이 그 도구(道具)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요긴한 것이다. 그 요긴한 것이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천하를 평하게 하는 요긴한 도리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고, 나라를 다스리는 요긴한 도리는 제가(齊家)함에 있고, 제가하는 요긴한 도리는 몸을 닦는 데에 있고, 몸을 닦는 요긴한 도리는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긴한 도리는 뜻을 정성스럽게 함에 있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요긴한 도리는 치지격물(致知格物)함에 있다. 송(宋)나라의 옛 학자는 그 뜻을 부연하고 해설하여 황제에게 아뢰기를, "제가(齊家)하는 요긴한 도리가 네 가지이니, 배필을 소중히 여길 것, 궁내의 처리를 엄하게 할 것, 나라의 근본(태자)을 정할 것, 척속(戚屬)을 교양할 것이요, 몸을 닦는 요긴한 도리는 두 가지가 있으니, 말과 행실을 삼갈 것, 위의(威儀)를 바르게 할 것이요,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긴한 도리는 두 가지가 있으니, 공경함과 두려워함을 숭상할 것이며, 안일함과 욕심을 경계할 것이요, 치지격물(致知格物)의 요긴한 도리는 네 가지가 있으니, 도술(道術)을 밝힐 것, 인재(人才)를 분별할 것, 정치의 대체를 살필 것(審治體), 인정(人情)을 알아 살필 것입니다."하였으니, 이 여덟 가지 요긴한 도리는 곧 성인(聖人)과 성인들의 서로 전하는 심법(心法)이므로, 마땅히 거처(居處)하는 좌석 옆에 서 두고 소학(小學)의 가언(嘉言), 선행(善行)을 참고하여 밤으로 외며 낮으로 보아서 간단(間斷)할 때가 없이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욕의 한 근원을 끊으면 만 배나 군사를 쓴다(絶利一源用師萬倍)'는 효과를 얻을 것이다. 참조문헌 : 1. 國譯 景賢錄 全(寒喧堂先生記念事業會 刊) | 景賢附錄上 遺書 寒氷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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