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 임도를 따라
한 해 절반이 지나고 칠월 첫날을 맞았다. 세찬 바람을 동반한 장맛비가 내렸던 엊그제와 달리 구름은 끼었지만 선선한 날씨였다. 주중 수요일 일과를 마치고 산책 차림으로 나섰다. 딱히 어디로 갈 만한 곳이 없기에 와실에서부터 걸어 연사 마을 안길을 지나 연사고개로 향했다. 연사고개 못 미쳐 유계로 가는 임도로 들었다. 여러 차례 다닌 인적이 없는 임도를 걸어볼 요량이다.
연사는 마을 규모가 꽤 커나 골목에서 현지 주민을 만나기는 무척 어렵다. 원룸이 들어선 연행마을과 연중마을은 조선소 근로자들이 머물러 아침 출근길 그들을 볼 수 있지만 퇴근은 어느 때 하는지 알 수 없다. 연행과 연중에 이어진 연사마을은 농업에 종사하는 원주민들이 사는 듯했다. 마을 앞에는 꽤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다. 밭은 적고 대부분 논으로 벼농사 일모작 지대였다.
마을회관에서 영산 신씨 문중 재실 공영사를 지나 임도로 올랐다. 고개를 넘어 오비마을로 가는 길이다. 며칠 전 비가 주룩주룩 내린 해질 무렵 우산을 받쳐 쓰고 연사고개 너머 오비로 간 적 있다. 오비마을로는 일부 구간 비포장이긴 해도 드물지만 넘나드는 차량을 볼 수 있다. 길섶의 무성한 풀은 당국에서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고갯마루 체육시설이 있어도 이용자가 없었다.
이번엔 고개를 넘지 않고 유계로 가는 임도로 들었다. 해가 짧은 겨울은 퇴근 후 나서기가 무리였다. 유계까지 걸으면 두 시간 가량 걸려 도중에 날이 어두워 캄캄해졌다. 봄부터 여름과 가을엔 길고 긴 임도를 따라 걸어도 되었다. 도중에 농가나 논밭을 지나지 않고 산중 내륙을 통과한다. 산모롱이를 돌아 고개를 내려서면 서상마을을 지나고 폐교가 된 유계초등학교 터가 나왔다.
석름봉에서 앵산으로 뻗어간 산등선으로 개설된 임도다. 의령 옥씨 별사위공파 선산을 지나 깊숙한 골짜기로 들어 산허리 예각으로 꺾었다. 연초 면사무소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긴 했으나 산행객이 드물게 다녀 여름철엔 묵혀진 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으로는 풀이 무성해 진드기가 붙을까 봐 내려설 수 없었다. 지난해 내가 거제 산행에서 두 번이 진드기가 붙어와 놀란 적 있다.
낚시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 퇴근 후 소일거리는 산책이나 산행 밖에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장승포나 장목으로 나가면 바다를 접했다만 와실 주변을 맴돌면 산간 내륙이나 마찬가지다. 창원 근교 산행 중 임도를 걸으면 철 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들을 볼 수 있었으나 거제에서는 그런 재미가 적었다. 거제 섬의 토양은 황토나 점토질이 아닌 마사와 자갈이 섞인 사력(沙礫)토가 많았다.
면사무소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니 우 전방 멀리감치 대금산 꼭뒤가 보였다. 거기도 연초면 관내에서 산중 오지에 해당했다. 연초삼거리에서 덕치를 넘는 다공리 일부가 보였다. 아까 연사마을에서 시작해 걸은 지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차량이나 사람은 아무도 지나치지 않았다. 문득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절해고도 유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벅뚜벅 앞만 보고 걸었다.
산허리 임도를 따라가니 하청면과 경계를 이룬 곳 체육시설은 마을과 상당히 떨어진 곳이라 이용자는 드물지 싶었다. 산모롱이를 돌아 유계로 가는 길로 내려섰다. 광청사로 가는 갈림길에서 오른편 대성사로 내려섰다. 산중 외딴 농장에 인적은 없고 풀어 키우던 견공이 달려 나와 짖어대다 나를 따라 와 돌멩이를 집어던져 되돌아가라고 뿌리쳤다. 미륵종단 대성사는 늘 고즈넉했다.
앵산 산자락이 흘러내린 서상마을은 경작지 논을 사이에 두고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었다. 작은 저수지를 지나 서편으로 가니 수령이 오랜 노거수 곁에 세워진 열녀문이 눈길을 끌었다. 가던 길 멈추고 비문을 살피니 김해 허씨 따님이 신안 주씨 집안으로 시집 와 남편을 병간하다 단지 수혈도 효험을 못보고 숨을 거두자 장례 후 식음을 전폐하고 이레 만에 생을 마쳤다고 했다. 20.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