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이어서 DC-Chicago 구간 야간열차 Capitol Limited 승차기입니다.
미국의 대륙횡단노선은 대부분 시카고를 중심으로 끊어져 있습니다. 동북부<->서부해안 노선은 거의 전부가 시카고에서 Layover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발권상 한 여정으로 취급됩니다. 한번에 발권할 수도 있고, 체크인하는 짐도 최종 목적지까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시카고에 특별히 볼일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시카고에 오전 도착해 당일 오후에 다음 열차를 타게 되죠.
제가 탄 Capitol Limited의 경우 오후 4시 5분에 Washington Union Station에서 출발, Pittsburgh와 Cleveland를 거쳐 Chicago Union Station에 아침 8시 45분에 도착하는 스케쥴입니다.
대륙 횡단 노선의 경우 선로의 대부분이 Amtrak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지연은 일상에 가깝다는 말은 익히 들었습니다.
http://www.amtrak.com/capitol-limited-train&mode=perf&overrideDefaultTemplate=OTPPageHorizontalRouteOverview
실제로 위 사이트에서 최근 지연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정시율이 50%도 안됩니다-_-
선구 소유주체별 지연률이 따로 있는 것에서 Amtrak의 깊은 빡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다행히 제가 탄 열차는 출발 도착 모두 제시간이었습니다.
NEC 구간에서 열차를 타면서 이미 '참 크다..'라는 느낌이었는데, 낮에 제대로 보니 정말 큽니다. 특히 높이는 여태 타본 열차 중에 가장 높네요. 하긴 2층침대가 놓인 방을 2층으로 쌓아서 다닐 정도니..
제가 예약한 좌석은 2층(upper deck)의 Roomette입니다. 좌석 두개가 마주보고 있는 사이즈에, 그 옆으로 정말 30cm 정도 공간이 있고 바로 문입니다. 잘 때는 저 의자를 눕혀서 침대를 하나 만들고, 위에서 침대를 하나 더 내려서 두 명이 잘 수 있습니다. 다만 문 닫으면 정말 딱 누울 공간과 일어나서 문 열고 나갈 공간만 있습니다. 저는 취향에 맞았지만, 폐소공포가 있는 분이라면 자다 뛰쳐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즈더군요.
2인실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사이즈가 사이즈다보니 다른 Roomette 이용객들도 1인 여행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예약할 때 보니 가격차이도 그렇게 크게 나진 않더군요. 유럽의 Couchette처럼 방을 share한다는 개념은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뭐.. 미국이니까요-_-
Sleeper Car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방 종류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가 묵는 칸도 맨 끝부분에 배치된 4인실 외엔 전부 Roomette였습니다. 좁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공조 스위치나 콘센트, 승무원 호출벨 같은건 의자 옆에 붙어있습니다. 침대칸은 기본적으로 풀서비스 공간이기 때문에, 승무원을 불러서 무엇이든 부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tip이 필요합니다만..
미국에서 기차여행은 꽤 호불호가 갈리는 여행방법이지만, 이용객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밥이 괜찮다"입니다. Sleeper Car는 기본적으로 식사가 포함인데, 가장 큰 특징은 "prepaid"가 아닌 "complimentery meal"이라는 점입니다.
즉, 내가 예약한 구간에 따라 특정 식사가 특정 횟수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그 구간 이동 시간 동안 밥 때가 되면 식당차에 가서 아무 메뉴나 '공짜로' 먹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차가 연착이 되어 다음 밥때까지 일정이 늘어지면 그냥 한끼가 추가될 수도 있고, 반대로 열차 지연으로 탑승이 늦어져서 밥때가 지났으면 보통 그 끼는 그냥 스킵입니다.
침대칸 승객들은 식사시간이 되기 좀 전에 스탭이 돌아다니면서 예약을 받습니다.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하면 식당칸 테이블에 좌석을 할당해주는데, 4인 테이블에 무조건 합석을 시키는지라 보통 모르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됩니다. 이게 기차여행의 추억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낯 가리는 사람들은 싫어하기도 합니다. (정 합석이 싫으면 위에 말한것처럼 팁 좀 두둑이 주고 방으로 가져다 먹을 수도 있습니다.)
메뉴판의 모든 메뉴에는 실제 판매 가격이 붙어있고, 좌석칸 손님들은 같은 메뉴를 그 돈을 내고 사먹을 수 있습니다. 식당칸이 기본적으로 좌석칸과 침대칸 사이에 있기 때문에, 스탭들은 승객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는지를 보고 charge를 해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체크하더군요.
음식은 레스토랑처럼 제대로 조리한 음식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육상교통의 최대 강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기본적으로 침대칸 승객은 식사와 음료, 커피, 디저트 모두 무료입니다. (알콜은 유료)
다만 음식에 가격표가 붙어있는데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먹은 음식이 총 얼마인지는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 tip이요.
사실 Amtrak의 서빙 직원들한테 tip을 주는 것이 맞느냐는 매우 의견이 분분합니다. 인터넷에서는 기본적으로 Amtrak이 공기업이고 직원들 처우도 괜찮은 편이기 때문에 일반 레스토랑의 waitress들처럼 팁을 줄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더군요. ('걔넨 팁 안줘도 됨. 노조 있으니까'-_- 같은 불평도 꽤 나 많더군요. 역시 노동유연성의 천국 미국..)
하지만 정작 타보니 애초에 침대칸으로 대륙횡단을 하는 승객 대부분의 목적이 느긋한 여행/관광이다보니 받은 서비스에 대해서 tip을 주는 걸 거의 당연시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식사 때 동석한 아주머니께 보통 팁 주냐고 물어보니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준다'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확실히 tip을 안 준다고 일반 restaurant처럼 뒤쫓아 나온다거나(...)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제 경험상으로도 팁을 챙겨줬을때 이후 서비스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었던지라, 기본적으로 하루 이상 묵는 게 일반적인 침대칸 특성상 보통 주는 것 같더군요. 물론 기본적인 서비스는 티켓 가격에 포함되었다고 보는게 상식적이므로 일반 식당이나 호텔처럼 많이 줄 필요는 없고, 팁을 안 준다고 해서 해야 할 서비스(bed-making등)를 안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차량 후방 계단 옆엔 커피와 주스, 물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냥 필요하면 가져가서 마시면 됩니다.
4시에 D.C.를 떠난 열차는 자정이 거의 될 무렵에야 Pittsburgh에 도착합니다. 자동차로 4시간 걸리는 거리를 7시간 반에 주파하는 위엄을 보여주는데, GPS 트래킹을 해보니 선형이 정말 충격과 공포더군요.
도착하기 전 새벽에 샤워를 했습니다. 샤워실은 이 차량은 lower deck에 딱 한칸 있는데, 이용객이 거의 없어서 기다린 적은 없었네요. 용품과 타올도 모두 구비되어 있어서 갈아입을 옷만 들고가면 됩니다.
꽤 일찍 도착하는 일정이라 아침을 줄까 애매했는데, 전날 저녁에 테이블 예약을 받았습니다. 아침과 점심/저녁은 메뉴가 다릅니다.
그렇게 정시에 도착한 Chicago Union Station은 정말 엄청나게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가 마침 워싱턴, 필라델피아, 샬럿, 시카고 등 미국 중-동부 모든 주요 도시들 비행기가 줄줄이 취소돼고 난리가 났던 snowstorm 대란때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결국 다음 구간 여정에서 엄청 지연을 먹게 되는데.. 그 얘기는 다음 글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