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라고 아래 본문 처음의 부분에서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그 자신의 탐욕과 야욕 및 그와 결합된 그 아내 이세벨 왕비의 사악과 잔혹을 힘입어 끝내 나봇의 포도밭을 강탈했을 뿐 아니라 죽게 까지 했던 죄악 등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엘리야 선지자에 의해 그 자신은 물론 그 아내, 그 가문 전체에 있어서 가장 비참하고 참혹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에 있어 우선은 그렇게까지 악한 아합 왕이라도 아래 본문 중의 27~29절에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라고 증거된 말씀을 참조할 때 이미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인 것임을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실상 그렇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여전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깨어져 있는 것이고 아예 단절되어 있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말씀을 잃어버린 상태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자인 경우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앞에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반응할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며 금식할 정도로까지 자복할 수는 없는 것이며, 더군다나 그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을 어느 정도라도 입게 되는 은혜와 응답 자체가 불가능인 것으로 그 아합 왕은 다른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인 것임을 방증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안타깝고도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자라고 하더라고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늘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인해 미지근해지고 잠자며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고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 되는 일들이 적지 않고 사실은 생각보다는 많은 현실 속에서 그러한 아합 왕 또한 결코 다르지 않았다는 것인데 실상은 단지 그 정도 차원인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물론 그의 아버지 오므리 왕이나 그의 아내 이세벨 등과 같은 여러 요인과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 누구보다 심각하게 우상 숭배를 자행했고 그 아내가 선지자들을 멸하는 것을 방관 내지 동조했으며 수시로 하나님을 거역했고 심지어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과 같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악을 범하는 등과 같은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죄악들에 빠지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악들 하나하나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단 하나라도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것임은 물론 그에 합당한 징계 및 징벌을 행하시고 예비하시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좀 더 정확하게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에 따라, 더 나아가 그 후세에까지의, 심지어는 오늘날의 우리들에 이르기까지의 교훈과 영향과 열매 등까지도 감안하시어, 한편으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온 지경,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 더 나아가 믿음의 후세들을 생각하시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와 같은 아합 왕을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온갖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들 등은 막으시는 것일 뿐 아니라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는 것이고, 때로는 여러 이유와 상황들에 따라 생각 이상으로 곤고하게 하시고 비참하게도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까지 악했고 그 정도로까지 있을 수 없는 죄악들을 범했으며, 또한 그로 인해 합당한 징계와 징벌들에 처하게 된 것이고, 사실상 일백 번 심판 당하고 죽임 당해도 마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래 본문의 27절에서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라고 증거된 대로 상대적으로 심히 짧은 시간에 너무나 부족해 보이는 자복이 있었음에도 28~29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라고 증거된 대로 결코 작을 수 없는 긍휼과 응답이 임하게 되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에 있어서의 이유와 근거는 실제로 그 아합 왕의 죄악들이 작았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인간적으로 그 정도까지의 긍휼이 가능할 수 있었다거나, 또한 그의 자복함이 멋있고 대단했다거나 등의 차원일 수는 없는 것이고, 사실상 한참이나 못 미치는 정도인 것이며, 오히려 따지고 보면 그와 아예 반대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나 실상은 오직 한 가지인 것으로..
진정 구주 예수님의 목숨값 구원이 시공을 넘어 그 정도로,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이 생각 이상으로,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것이기 때문인 것이고, 게다가 그를 위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특히 은혜와 긍휼, 응답과 열매 등을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다 생생하게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무엇보다 참으로 그에 있어서의 이치와 원리는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이신칭의의 구원 역사의 차원 뿐 아니라 우리에 있어서의 회개 기도 한 번,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합 같은 자가 어찌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일 수 있는가, 또한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어떻게 그렇게 악한 일들을 그렇게나 많이 행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심히 의아해 하거나 불만 아닌 불만일 수도 있을 것이나..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도 이렇게나 많고 엄청난 구약과 신약 성경 속에서의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들 앞에서, 꼭 몸으로 범하는 죄악들이 아니더라도 눈으로, 마음으로 범하게 되는 죄들이 많을 수 있고, 심지어는 요한일서 3장에서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까지 강조하고 있는 것까지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사실은 조금만 따지고 봐도 날마다 얼마나 많고 사악한 죄들을 범하고 있는지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정도인 것이며, 진정 머리털보다도 더 많을 수 있는 죄악들인 것인데도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 다른 그 누구보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부터도 이미 구원에 참예케 된 자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임은 물론 그와 같은 죄악들로 인해 구원이 돌이켜 지지도 않는 것이고, 심지어는 오늘날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야 말로 크고 작은 죄악들 속에서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말도 안 되는 긍휼과 사함들, 나음과 역전들을 다 셀 수도 없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21:20~29)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28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