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새벽5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거리에 나섰다.
칠칠맞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우울했다.
간만에 튜브를 탔고, 도클랜드 차창에 내리는 가을빗물이 잘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마냥 돌덩이처럼 심각했다.
아아, VISA!
바로 오늘이 운명을 가르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내 꼬라지가 이렇게 칙칙하게 될지
이렇게 환하게 될지를 결정하는 날인 것이다.
까나리와프 스테이숀의 저 글자가 CAN 으로 보일 만큼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려고 애썼다.
그러나 워털루에 도착하자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날씨가 춥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영국생활이 나쁘진 않았다. 절망도 많았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 잘 될거야, 라고 천 번쯤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차에 올라 맞은편 빈자리를 바라보며 내 존재감이 투명해지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무언가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는 듯 비어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돌이켜보기 싫은 인생을 살아왔다. 생양아치 개판 뱀쇼 지랄발광 다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영국에서 어떻게든 나를 개조해보려 하는데 신이 기회를 주시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나는 운명의 지시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운명을 너무 거스르며 살아왔다는 게 후회스러웠다.
생각하는 와중에 드뎌 크로이든에 도착했다. 비오는 날씨에 사람들이 줄을 뱀처럼 길게 서서 비를 맞고 있었다.
넌덜머리가 났지만 나는 줄의 뒤편에 섰다.
내가 여기 있겠다는데 VISA따위가 필요하다니, 개떡같았지만 오늘 한 번만 봐주기로 하고 줄 섰다.
이 빌어먹을 입구까지 가는데만 달달 떨먼서 1시간 기다렸고, 추워서 얼어죽을 것 같은데 저 입구 안으로 들어가자 W자 형태로 된 줄이 지금까지의 두배로 길게 있었다.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아 포기하고 가려고 했지만 다들 잘 버티고 있어서 나도 간신히 잘 버텼다. 군중심리란 아름답다. 모두가 비자를 받으려고 추운 날씨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라는 동병상련의 위안.
저 안으로 들어가자 사진은 더 이상 찍을 수 없었다.
사진 찍다 걸리면 바로 쫒아낸다, 는 경고문에 처음으로 쫄아봤다. 처지가 처지이니만큼.
그리고 7시간을 기다린 끝에 결국 내 차례가 왔다.
말이 7시간이지, 아침 7시 30분 부터 줄을 서서 11시에 입장, 2시 40분에 인터뷰 좌석에 앉은 것이다.
기다리는 내내 심심해서 저시키 한테는 안걸렸으면 좋겠다, 라고 찍어놓은 심사관이 있었는데(인상 더러운 아랍계 남자였다.)
나는 하필 그 시키 한테 걸렸다.
그 시키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어두웠었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었다.
젠장, 아니나 다를까 나도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나야만 했다.
나는 관광비자에서 학생비자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스쿨레터와 애플리케이션 폼은 있었으나 잔고를 증명할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현금을 들고갔었다.
여차하면 현금을 보여줄 생각이었고 머릿속에 암기해간 여러 문장들을 풍선처럼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너 왜 뱅크 스테이트먼트가 없어?" 라고 물었다.
나는 준비해둔 풍선 하나를 터뜨렸다.
"관광비자라서 안열어 주더라. 대신 현금을 800파운드가지고 있는데. 어때? 볼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저 혼자 막 뭔가를 적고 컴퓨터에 입력하더니 도장을 쾅 찍어버렸다.
"네가 학생비자를 원한다면 뱅크를 열어갖고 다시 와."
"아니 그럼 돈을 또 내야하잖아?"
"미안하지만 그래야겠지."
그리고 그는 냉정히 끝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바로 입에서 욕이 나왔다. 개시키 소키키 말시키...닝기리 쭈꾸미...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와 비 내리는 거리에 다시 내려서자 절망과 좌절이 눈 앞을 가렸다.
뱅크! 빌어먹을 절대로 안 열어주던 뱅크.
이가 아파서 치과진료를 위해 한국에 가야하는데 체류 비자로 어떻게 갔다 온담,
게다가 일자리에서 체류비자라고 짤리는 것 아냐? 라고
오만가지 상상을 다하며
이대로 꺾이는 건가? 영국을 떠나야만 하는 건가? 라고 풀이 죽어버렸다.
그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냐? 는 안부였다.
나는 약간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잘 안됐다, 고 말하고 끊었다. 눈물이 날까봐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인생에서 첫사랑과 헤어진 것 다음으로 쓸쓸한 기분이었다.
쓸쓸히 런던으로 돌아오며 나는 왜 이렇게 평생 되는 일이 없는거야! 라고 슬슬 화가나기 시작했다.
아무 아랍계나 걸리면 작살을 내겠다고 주먹을 꽉쥐고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죽어있었다.
대책이 서질 않았다. 욕만 콧물처럼 자꾸 나왔다.
그 때 하우스홀드가 와서 내게 비자 건을 물었다. 나는 쓸쓸히 체류비자를 받아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비자를 보여줬다.
그 때, 그가 말했다.
"엇, 형, 이건 제꺼랑 똑같은 건데요?"
그는 한 달전에 홈오피스에서 학생비자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확인해 보니 글자가 똑같았다. 한 자도 안 틀렸다.
뜨아아아아. 그 시키가 분명히 학생비자 아니라고 했는데!
어쨌거나 내 기간은 2004년 11월 까지로 적혀있었고 학생비자인 녀석의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렇게 생겼다.
아싸! 분명 그 시키가 잘못찍은 것이다.
홈 오피스에선 서류가 하나라도 누락되면 비자를 주지 않는다는 건 전설적 사실인데 이건 분명히 잘못 찍은거다.
아무리 확인해 봐도 이건 학생비자였다.
(트라이 V싸이트에 나와있는 학생 비자와 문장이 똑같았다.)
나만의 고질적인 징크스 때문에 사흘동안 빤스도 안 갈아입고 면도도 안하고 여자옷을 안에 입고 갔는데 역시나!
나는 그 순간 지옥에서 바로 천국으로 튀어올랐다.
우하하하하하하하하!!!!!!! ^_______^
너무 기뻐서 똥이 마려울 지경이었다.
나는 지금 너무 기쁘다.
계속 일도 할 수 있고, 한국도 갔다올 수 있게 되었다.
학생비자 받아놓고 모르고 우는 바보, 스토리는 말로만 빈번하게 들었지 내가 그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그 심사관이 개떡같이 안된다구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잘못 찍은거다.
아아, 우리 모두에게 이런 행운이 꽉꽉 가득차길!
이 기분은 모두에게 반 씩 나눠주고 싶을 정도다...(이건 너무 하루끼식 표현이당...-_-)
어쨌든 영사회원 모두모두 ^_________________^ 굿 럭 에브리바디.
!!
님의 글과 사진 정말 감동적으로 잘 보았어요. 정말 고민하는 만큼 대가가 이루어지는것 같아요. 그 아랍계 이민국 직원이 넘 냉정하지만은 않군요. 관광비자랑 하갱비자랑 혼동할 사람들이 아니거든요.그냥 조금 겁을 준 듯하네요. 길에서 아랍남자 보면 껴앉고 입맞추셔야겠네요.호호.축하해요~
하하하 넘 재미있네여..저도 오늘 홈오피스에 갔다왔거든여. 작년에 새벽5시에갔다가 고생한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12시에 출발했져..빌딩 안까지 들어가는데 1시간 걸려서 좋다하고있는데 심사하러가는 순간 황당해서 쓰러졌습니다.제 대기 번호는 500번, 현재 대기번호는 367......5시간만에 비자받고 왔습니다..
첫댓글 진짜 잘됐어요.어제 글 읽으면서도 불안불안 했는데 오늘 글 읽는 중간에 어째스까...했는데 결국 받으셨다는...암튼 축축!!축하드려요.
너무 축하드려요!!!잘됬어요 그리고 응까는 잘 하셨고요?넘 축하드려요!!!
너무너무 축하해요!!! ^----^ 글읽으면서 비자못받았다는 대목서는 어찌나 안됬고 슬프던지... 눈문찔끔할뻔했는데.... 받으셨군요!!! 정말 드라마같아요! 아뭏튼 이제 한고비 넘기셨으니 남은동안의 영국생활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버티세요! 그럼 화이팅입니다요!!!
님의 글과 사진 정말 감동적으로 잘 보았어요. 정말 고민하는 만큼 대가가 이루어지는것 같아요. 그 아랍계 이민국 직원이 넘 냉정하지만은 않군요. 관광비자랑 하갱비자랑 혼동할 사람들이 아니거든요.그냥 조금 겁을 준 듯하네요. 길에서 아랍남자 보면 껴앉고 입맞추셔야겠네요.호호.축하해요~
행운의 소년인가? 소녀인가? 하이튼 축하해요. 저도 내년봄에 학생비자로 바꿔야되건만...걱정됩니당.
지난번 글에는 매번 운이 없으셨다더니 이번에 그동안 못받은 운 한번에 대박으루 받으셨네요.. 앞으로도 계속 대박 터지시길 ^^
와~~ 정말 축하해요..근데 글 정말 넘 웃겨서 계속 웃었어요..미안~(-_-)/ 머릿속에서 침대에 얼굴을 묻고 죽어있다가 다시 기사회생하는 장면이 막 떠오르네요. 어찌나 생동감 있게 적는지..ㅋㅋ
하하하 넘 재미있네여..저도 오늘 홈오피스에 갔다왔거든여. 작년에 새벽5시에갔다가 고생한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12시에 출발했져..빌딩 안까지 들어가는데 1시간 걸려서 좋다하고있는데 심사하러가는 순간 황당해서 쓰러졌습니다.제 대기 번호는 500번, 현재 대기번호는 367......5시간만에 비자받고 왔습니다..
심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입국 법을 바꾼 관리자 등등 얼마나 얄미워 보이던지....
Wow! Congratulations!!! I was thinking of your ID, when I got on the bus no.15 last night. ^^ Good luck with everything in your London life.
how nice it is! well done!
잉...중간에 울뻔했어여 ㅋ 15번진짜안와님아 진짜루 추카드려여~ 앞으론 좋은일만 생길라나봐여~ 저두 이달에 학생비자 내러가야하는데 에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