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경물(敬物)
현재 온 세상이 사람들이 보는 달력의 기원은 예수님 탄생이다. 인류 역사는 예수님 탄생 전과 후로 나뉜다. 석가모니와 공자는 예수님보다 수백 년 전에 태어났는데 인류 역사를 바꾸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치하게 예수님이 다른 인류의 성인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 탄생으로 하늘나라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하늘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됐다는 뜻이다.
요즘 뉴스는 온통 그 남자와 그 여자 얘기고, 몇 년 전에 추위에 떨면서 도심 한복판으로 나가야 했던 기억을 소환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입에서 나올랑말랑한다.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려고 그러는 거라고 위로하며 희망을 가진다. 좋은 나라, 자랑스러운 나라, 뽐내며 내 여권을 보여주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나라의 모델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하늘나라, 하느님 나라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두가 온전하고 행복한 거처럼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살면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그런 좋은 나라, 우리 공동체에 속하면 좋은 그런 좋은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하늘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 땅으로 내려왔고, 그 나라는 예수님 안에 있다. 그래서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이들은 하늘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런 나라가 언제나 되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21).”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과 친한 사람들, 하느님의 계명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너를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오늘 첫째 독서 필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스는 그리스도인 필레몬이란 사람의 노예였다. 그가 주인에게서 도망쳤는데 바오로 사도를 만나 세례를 받았고 옥중에 있는 사도 옥바라지를 했던 거 같다. 사도는 그런 그를 다시 그의 소유주인 필레몬에게 보내면서 자기 심장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잘 봐달라고, 그가 끼친 손해를 자기가 갚겠노라고, 그리고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자기를 맞이하는 거처럼 받아달라고 했다. 바오로와 필레몬 사이 관계 안에 노예 오네시모스가 들어왔다. 오늘날 노예 제도는 없어도 이런 어색하고 껄끄럽고 도전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다. 조선 시대 순교자들은 양반과 상민이 친구가 된 현실이 자신에겐 천국이니 지금 죽어도 좋다고 했다. 하늘나라에 양반 상민이 어디 있겠으며 사제 평신도, 사장과 직원, 내국인과 외국인이 어디 있겠나. 그곳에는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있다. 이제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때다. 사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공산 혁명처럼 현존하는 사회적 관계를 다 무시할 수는 없어도 사람이면 누구나, 피조물이면 생명이 있든 없든 존중하고 보호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경물(敬物), 즉 모든 사물을 공경함이라고 했다. 바오로 사도가 구원을 위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던(1코린 9,22)” 것처럼 내가 만나는 모든 피조물을 그렇게 대한다.
예수님, 주님의 영토는 저의 마음입니다. 주님 땅이고 주님 것이니 주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의 작은 입에서 제가 해야할 말은 예 또는 아니오 뿐이라는 걸 되새깁니다. 예 할 것에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에 아니오 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