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포 포구에서
장마전선이 소강상태라 하늘이 갠 칠월 첫째 목요일이다. 주중 퇴근 시각이 다가오면 두 가지를 생각해두어야 한다. 첫 번째는 날이 저물기 전 어디로 산책을 다녀오느냐 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저녁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해가 길어진 여름이라 퇴근 후 두어 시간 산책이 가능하다. 산행은 나서려니 등산로 풀이 무성해 진드기가 붙어올까 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와실서부터 걸어 근처를 맴돌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갯가로도 나갈 수 있다. 산책 코스가 한정되어도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면 된다. 일전에 장맛비 속에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고도 산책을 감행하기도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떠나면 호수 같은 진동만이나 탁 트인 대한해협 바다를 볼 수 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하청과 장목 일대는 물론 장승포와 구조라까지 다녀온다.
저녁 끼니는 전기밥솥에 전원을 넣어 1인분 밥을 지어 아침에 먹다 남긴 찌개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야간 학습을 하고 가는 학생들에 수익자 부담으로 저녁 식사를 제공하는데 교사들도 함께 들 수 있으나 올해 들어 저녁은 먹지 않고 있다. 식단이 닭고기를 비롯한 성장기 학생 중심이라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다. 학교에서 저녁을 먹게 되면 산책을 나설 시간이 쫒기기도 했다.
목요일 일과를 마치고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나왔다. 연사 정류소로 나가 고현을 출발해 능포로 가는 11번 버스를 탔다. 송정고개를 넘어 옥포와 아주를 돌아 두모고개를 넘었다. 장승포에서 북단으로 나간 능포가 종점이다. 종점에서 내려 능포 포구로 나갔다. 동편은 낚시공원이 조성 중이고 서편은 수변공원이다. 수변공원으로 가니 거가대교와 가덕도가 아스라이 드러났다.
외포 해안선이 가까웠고 건너편은 조각공원에서 산등선 끝 양지암 등대가 뾰족하게 서 있었다. 옥포만으로 돌아가는 산모롱이에서 능포 봉수대로 가는 비탈길로 올랐다. 지난해 가을 옥수동에서 느태고개로 올라 능포 봉수대를 거쳐 포구로 내려선 적 있다. 이번엔 능포 포구에서 봉수대를 거쳐 느태고개로 갈 참이다. 능포 봉수대는 옥수동 사는 사람들이 더러 찾는 산책 코스였다.
거제로 와 갯가 산책에서 봉수대를 더러 만났다. 해안으로 습격해 오는 왜구들을 살피기 좋은 봉긋한 봉우리에 봉수대가 위치했다. 형태는 선사시대 움집터 모양과 성곽처럼 성을 쌓은 봉수대로 나뉘었다. 지세포로 나가면 와현 봉수대와 지세 포봉수대가 있다. 옥포 옥녀봉 정상에도 봉수대가 있었다. 덕포 강망산 봉수대에도 올랐다. 능포 봉수대는 강망산으로 이어지는 봉수대였다.
산등선을 따라 올라 돌무더기를 타원형으로 둘러친 봉수대를 살펴봤다. 주변은 수목과 수풀이 우거져 전망이 트이진 않았다. 봉수대가 제 기능을 했을 당시 해안으로 다가오는 왜구의 병선이 잘 조망된 곳이지 싶었다. 와현 봉수대가 지세포와 옥녀봉을 거쳐 능포에 연결되었을 것이다. 능포 봉수대는 건너편 덕포의 강망산 봉수대로 이어졌을 테다. 거제가 국토 변방임을 새삼 실감했다.
봉수대 곁 전망대에 올랐더니 양지암 등대로 뻗친 산등선 너머 대한해협이 드러났다. 옅은 운무가 낀 바다엔 크고 작은 배들이 여러 척 떠 있었다. 큰 배는 신항만으로 드나드는 컨테이너나 에너지 운반선이었다. 작은 배는 해상에서 고기잡이하는 어선들이지 싶다. 대한해협 연근해는 여름이면 멸치와 장어를 잡는 배들이 선단을 이룬다고 들었다. 그 배들의 모항이 장승포와 외포다.
전망대에서 느태고개로 가니 아주의 대우조선 도크가 드러났다. 포구 전체가 조선소였다. 지역민들은 불황의 늪인 조선 산업이 예전처럼 좋아질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옥수동 재래시장으로 내려서니 골목은 썰렁했다. 몇 차례 찾았던 ‘옥수동집밥’에 들리니 바깥주인은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추어탕을 시켜 맑은 술을 한 병 시켜 들다가 모자라 한 병 더 비웠다. 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