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의 밤
김명희
사람들마다 잊지 못하는 밤이 있겠지! 연인과 혹은 친구와 보낸 즐거운 밤 혹은 고뇌하던 청춘의 밤, 두려움 가득한 외로운 밤. 내게도 그런 밤의 기억이 있다.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그리고 책임이라는 말이 주는 외로움을 생각했던 밤. 벌써 오래된 낯선 곳에서의 기억이다.
그날 뭄바이행 비행기가 중간 기착지 델리에 급유를 위해 잠시 내려않았다. 남편을 따라 두어 달 생활했던 곳이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걱정과 두려움이 '델리' 라는 익숙해진 지명을 듣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남편의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함께 여행을 했다. 아그라며 자이푸르며 어디를 가나 남편이 함께였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가면서 마지막 일정이 다른 남편을 기다리며 그냥 델리에 있기가 아쉬웠다.
나는 아이들과 바라나시에 남는 것을 택했다. 아이들과 바라나시에 이틀을 더 머물고 뭄바이를 거쳐 아우랑가바드에서 남편을 다시 만나는 일정이었다. 남편이 연수 중인 인도에 일본을 경유하며 건너온 용기라면, 바나시에서 뭄바이를 거쳐 아우랑가바드까지 가는 며칠간의 여정은 가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바라나시에서 남편이 떠나면서 시작된 걱정과 불안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자꾸 불안해졌다. 그사이 바라나시에서부터 늦어지던 비행기는 뭄바이에 도착할 예정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아직 델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냥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래?' 하며 손짓을 하는 공항의 불빛을 뒤로하며 다시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도착 예정 시간보다 서너 시간을 넘겨서야 도착한 뭄바이 공항은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택시를 타니 힌디어가 안 되는 나와 영어가 안되는 인도인 운전사는 할 말이 없었다. 젊은 운전사는 싱긋 웃으며 한번 돌아보고는 종이에 적힌 대로 콜라바 거리로 말없이 운전을 했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고 피곤해서인지 시트에 늘어졌다. 생각해 보니 바라나시에서 출발 전 한인 카페를 찾았을 때 먹은 점심 이후로 아이들이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다. 인디아 항공에서 제공하는 차파티와 달로 구성된 기내식은 향이 너무 강해 먹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음료만 마시고 저녁을 거른 상태였다. 너무 어두워서 가로등이 늘어 서 있는 도로 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뿌연 어둠 속에서 마른 바람이 느껴졌다. 혼자 애들과 여행하기에 인도는 무섭다고 만류하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 떠올랐다. 함부로 사람들과 친해지지 말고 위험한 시간 위험한 장소는 무조전 피하라고 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늦은 시간의 잘 웃는 젊은 택시기사도 괜스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혹 어느 어두운 거리에 나를 내려놓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한밤의 드라이브가 주는 무섬증은 목적지인 콜라바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콜라바 거리에는 불이 환했다.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이름답게 수많은 상점들의 불빛이 흔들렸고 차량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틈 사이로 하나둘 불을 끄며 정리하는 가게들이 환한 거리에 어둠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니 다행히 예약한 호텔이 바로 보였다.
이제 들어가 푹 쉬고 나면 내일의 일은 모두 해결될 것 같았다. 호텔 로비에서 체격 좋은 아저씨가 웃음을 지으며 맞아주었다. 예약한 이름을 말하자 그의 말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의 어눌한 영어와 나의 어눌한 영어로 대화하려니 잘 들리지도 않는데 방이 없다는 말이 귀에 콕 박혔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혼자 해결을 못 하고 켈리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힌디어가 되는 이에게 또 부탁을 해 이야기했다. 호텔에서는 시간이 늦도록 따로 연락이 없어 방을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다고 했다. 다른 호텔을 소개 해 준다니 그를 따라가라는 남편의 말이었다.
들어올 때 사람 좋아 보이던 아저씨가 그렇게 무섭고 의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그에게도 보였는지 계속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안심하라며 따라오라 하고. 별 뾰족한 수가 없는 나는 애들과 짐을 들고 다시 그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벌써 새벽 1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거리는 어둠에 잠기고 있었고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조금 떨어진 건물의 작은 호텔로 들어서는데 서너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일어서며 우리를 맞았다. 우리를 데려다준 사람도 가버리고 무서웠지만 거리로 나갈 수도 없었다. 아이들은 서서 반쯤 자고 있었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다시 밖에 나가는 것은 더 위험한 행동 같았다.
게스트하우스 안주인이 아이들에게 비상용이라며 챙겨 준 도시락을 겨우 꺼냈다. 줄만 당기면 열이 확 나며 음식을 뜨겁게 해주는 놀라운 기능의 군용도시락도 피곤하고 배고픈 두 아이에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듯했다. 식사후 공용 샤워실에서 아이들을 씻길 생각으로 문을 나서는데 남자의 벗은 몸이 눈에 확 들어왔다. 놀라 고개를 드니 허리에 천 한 조각만 두른 남자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도 씻으러 가는 중인 듯했다. 웃는 얼굴조차 무섭고 불안함이 가시지 않아 돌아 들어와 버렸다. 미안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마음에 다시 나갈 수도 없었다.
인도인들은 친절하다. 지나다 길을 물으면 열댓 명이 둘러싸고 웃으며 길을 알려주었다. 어디를 봐도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여행자로 인도의 거리를 걷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여행을 하겠다고 한 후로 무서운 곳이다. 조심해라 하는 말을 너무 들어서인지 계속 조심스러웠다. 혼자라는 불안 때문인지 웃는 얼굴을 보면서도 꼼짝도 못 하고 자꾸만 위축이 되었다.
그날 밤. 아이들은 정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꿈도 꾸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잠든 아이들을 보니 내가 아이들을 힘들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외로웠다. 온전히 이 아이들을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혼자라는 것을 무섭게 각인시키는 듯했다. 밤을 지낼 일과 내일 해야 할 일들이 모두 걱정이었다. 호텔 방문을 몇 번 이나 확인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두꺼운 안내서를 옆에 두고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불침번을 섰다.
낯선 곳의 공기가 몸에 닿을 때마다 불안감도 커겼다. 깜박 졸음에 고개를 숙이면 얼른 깨라며 무거운 공기가 내 팔을 흔들었다. 내일이면 호텔 문제와 차량 문제를 다 해결할 수가 있을지 걱정하면서 안내서를 펼쳐 읽고 또 읽었다. 옆에서 함께 읽어주고 찾아줄 사람은 너무 멀리 있었다. 창밖으로 날이 조금씩 밝아 왔다.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눈가가 뜨거워졌다.무서움은 지금 닥친 것에 있지 않다.
그 순간은 이겨낼 수 있다. 그날 밤이 그렇게 무서웠던 이유는 내일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없어서였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무서웠던 밤. 그래서 뭄바이는 늘 밤의 기억으로 떠오른다.
김명희 jinijuyada@naver com - 바쁘다. 하지만 어느 한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런 부잡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