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선후보 부동산 공약 분석… 다른 듯 닮은 정책에 누가 돼도 전국 재건축 ‘열풍’
지난 11일 진행된 ‘송파 더 플래티넘’ 29가구 일반분양에는 7만5382건의 청약이 접수됐다. 14가구 공급이 이뤄진 전용면적 65㎡에는 3만3421건의 청약이 몰렸다. 15가구를 대상으로 한 전용면적 72㎡에는 4만1961건이 접수됐다. 평균 경쟁률은 2599 대 1이다.
송파 더 플래티넘의 치열한 청약 경쟁은 무주택 서민과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서울 송파구 오금동 67-7에 들어서는 이 단지는 기존 ‘오금아남 아파트’가 리모델링돼 새롭게 탄생하는 단지다. 부동산 업계는 이 단지가 청약홈에서 청약이 이뤄지지 않아 중복청약도 가능했던 만큼 청약자 수는 전체 청약 건수의 절반인 3만7000여 명으로 보고 있다.
계약금은 분양가의 10%로 책정됐다. 1억원 중반대의 계약금은 무주택 주민이나 실수요자가 당장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 금액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계약금을 1억4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5조원이 넘는 금액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투기 수요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 서민이나 실수요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주택 서민과 실수요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면서 주요 대선후보들도 부동산 공약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서울 노후 아파트 방문 등을 통해 ‘부동산 민심’ 다독이기에 주력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급등한 아파트 가격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공통적으로 공을 들이는 분야로는 ‘재건축’이 꼽힌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재건축 관련 규제는 큰 폭으로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은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 1차 정밀안전진단, 2차 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 순으로 진행된다. 현 정부는 2018년 3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과 절차를 강화하면서 적정성 검토에서 구조 안전성 평가 비중을 기존 20%에서 50%로 상향 조정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구조 안전성 평가 비중이 높아지면서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2018년 3월 이후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목화를 제외하면 적정성 검토 절차를 통과한 단지는 서초구 방배삼호, 마포구 성산시영, 양천구 목동6단지, 도봉구 도봉삼환 4곳에 그친다. 같은 기간 적정성 검토 단계에서 탈락한 단지는 10곳에 달한다. 지난해 서울 노원구 태릉우성이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하면서 활기를 띠던 노원구 일대 아파트 단지들의 재건축 행렬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정치권,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완화의 핵심은 현행 구조 안전성 비중 50%를 25~30%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렇게 될 경우 재건축 추진 단지의 적정성 검토 통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의 3기 신도시 정책만으로는 서울 도심권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만큼 주택 공급 활성화에 나선 후보라면 재건축 물꼬를 틀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건축 완화가 현실화될 경우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울 노원구, 양천구 등 노후 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과 입주한 지 30년가량 된 1기 신도시 지역이 혜택을 볼 것으로 보고 있다. 노원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태릉우성이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한 이후 대부분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눈치 보기’에 들어갔는데 주요 대선후보들이 재건축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재건축에 시동을 거는 단지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석 달 사이 노원구와 도봉구에서 10개 단지가 예비안전진단 문턱을 통과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로 ‘표심 잡기’ 나서
두 후보는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며 표심 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500%까지 용적률 상향이 가능한 ‘4종 주거지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현행법대로라면 1·2종 전용주거지역, 1·2·3종 일반주거지역, 준주거지역 등으로 분류되는데 용적률을 500%까지 대폭 늘리는 4종 주거지역을 추가한다는 방침이다. 이 후보는 정부·지자체·주민 간 신속 개발에 협의가 될 경우, 인허가 통합심의를 적용해 사업기간을 단축하겠다는 ‘신속협의제’ 도입도 강조했다. “재개발·재건축의 본래 기능을 살려 도심 내 주택공급을 확대하고 국민의 주거상향을 지원하겠다”며 공급 확대 공약을 강조하고 있다.
윤 후보는 ‘역세권 용적률 500%’를 내세웠다. 지난 16일 서울지역 공약 발표에서 윤 후보는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해 50만 가구를 신규 공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윤 후보는 “용도지역 변경과 용적률 상향 등 쌍끌이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하겠다”며 “수도권 전체로 하면 130만 호를 공급할 수 있고, 서울은 50만 호 정도가 신규 공급이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도 및 고속도로 지하화로 확보한 유휴택지를 주거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하고, 용적률을 상향해 40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역세권 용적률을 현행 300%에서 500%로 상향 조정해 ‘서울 역세권 첫 집’ 10만 가구를 새롭게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추가되는 용적률의 50%는 기부채납을 받는 형식이다.
분당·일산·평촌 등 1기 신도시도 용적률 완화에 따른 혜택을 볼 전망이다. 윤 후보는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용적률을 상향 조정해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용적률 상향에 따른 도시 인프라 추가 확보와 자족도시 기능을 위한 공간구조변화, 개발비용 부담 등을 고려하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주거지역 일부를 종상향해 준주거지역이나 상업·업무지역으로 용도 변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건축을 통한 공급 대책의 변수로는 이 후보가 언급한 ‘분양가상한제 확대’가 꼽힌다. 이 후보는 최근 ‘무한책임 부동산 공약’을 통해 “분양가상한제를 민간에도 도입하고, 분양 원가 공개를 통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분양가상한제는 분양가를 강제하는 제도로 택지비·건축비·시공업체들의 적정 이윤 등을 반영해 분양가를 결정한다. 2005년 공공택지 도입 이후 2007년 9월 민간택지로 확대됐으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2015년 4월 민간택지가 ‘조건부 실시’로 변경되면서 사문화됐다.
현 정부는 2020년 7월 말부터 분양가상한제를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의 민간택지에도 적용하고 있다. 투기과열지구가 아닌 지역에도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한다는 것이 이 후보 구상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와 분양가상한제 확대 실시가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뿐만 아니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담당하는 고분양가 심사제도 등으로 인해 사업성을 담보할 수 없는 조합들이 재건축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분양가 규제가 더욱 강화될 경우 안전진단이 완화된다고 해서 재건축이 활성화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安도 250만 호 공급·정비사업 점진 완화
실제로 ‘단군 이후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꼽히는 서울 강동구의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좀처럼 분양가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부산 재개발 최대어’로 꼽힌 래미안 포레스티지(부산 동래구 온천동 온천4구역 재개발) 역시 분양가 확정을 놓고 난항을 겪으면서 예정보다 늦춰진 일정으로 일반분양에 나섰다.
핵심 지지층의 반발 가능성도 이 후보에게는 부담이다. 이 후보는 “국민 여러분께 부동산으로, 주택 문제로 고통받게 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지지층의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용적률, 층수 규제 완화를 통한 재건축·재개발이 필요하다는 게 제 입장”이라며 지지층의 비판을 의식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규제 완화만으로는 재건축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만큼 실제로 현실화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역대 정부가 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을 원활히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며 “특히 재건축은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서 규제 완화가 반드시 재건축 조합의 높은 참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적극적인 공급 대책을 강조하는 이 후보와 윤 후보가 공약을 통해 내세운 목표는 250만 호로 동일하다. 다만 공급 확대 기조 속에서 이 후보는 공공 주도의 공급을 강조하는 반면 윤 후보는 민간 주도 공급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후보는 250만 호 가운데 최소 100만 호를 ‘기본주택’으로 배정한다는 방침이다. 기본주택은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원가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역세권 등에서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주택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원가 수준의 주택은 수익성을 중시하는 민간 주도로는 어려운 만큼 공공 주도 임대주택이 기본 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이 후보는 “집값을 안정시키고 서민이 고통받지 않게 하려면 공급 물량 확대와 투기·공포 수요 억제가 필요하다”며 “고품질 공공주택인 기본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혀왔다.
대규모 택지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정치권과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울 용산공원, 김포공항, 성남서울공항, 수원비행장 등을 후보지로 보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인선과 지하철 1호선, 고속도로 등의 지하화를 통해 지상 부지를 공급하고, 성남·김포공항을 검토해보자는 단계”라고 밝혔다. 여기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를 통해서라도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공급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윤 후보는 민간 재개발·재건축 관련 규제를 대폭 풀어 도심 주요 지역의 주택 공급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윤 후보는 현 정부가 ‘다주택자는 투기꾼’ ‘강남 집값과의 싸움’ 등 부동산 문제를 정치화시켰다고 비판하며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윤 후보는 250만 호는 공공 주도로 50만 호, 민간 주도로 200만 호 공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꺼내든 방식은 ‘원가주택’과 ‘역세권 첫 집’이다.
원가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원가로 주택을 분양한 뒤 5년 이상 거주하면 국가에 매각해 시세 차익의 70% 이상을 보장받도록 한 주택이다. 매년 6만 호씩 30만 호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역세권 첫 집은 무주택 가구를 위해 역세권에 공공분양주택을 공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후보와 윤 후보의 부동산 정책 ‘싱크로율’이 유난히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세금 이슈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다.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를 도입하고 보유세 실효세율을 현행 0.17%에서 1%까지 높여 투기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윤 후보는 종합부동산세를 ‘세금 폭탄’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이를 재산세에 통합함으로써 보유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주택 구입·매각에서 비롯되는 세금을 완화해준다는 점에서는 두 후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후보는 실수요자 중심의 취득세 감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윤 후보 역시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의 취득세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1년 유예’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 조절’ 등 현 정부가 역점을 둔 정책 기조와 다른 공약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윤 후보 역시 양도세 중과 2년 유예 및 주택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한다는 공약으로 유권자 표심 잡기에 나섰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역시 5년간 25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재개발·재건축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허용해 공급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안 후보는 250만 호 공급분 가운데 토지임대부 기반의 안심주택으로 100만 호를 공급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건물과 땅 모두 분양하는 기존 분양주택과 달리 토지는 시행사가 입주자에게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안 후보는 이를 생애 최초 구입자, 장기 무주택자, 신혼부부 등 청년 및 서민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분양가상한제를 공공에 우선 적용하고, 민간택지의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등에 단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고분양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매일경제, 정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