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께.. 점심시간인데 전화를 받다보니 12시 10분. 같이 점심먹으러 갈
사람들이 있나 하고 살펴보니 벌써 다 나가버렸다.
혼자서 어디 가서 뭘 먹을까? 고민 고민...
머릿 속에선 ‘대성식품에 가서 혼자 라면을 주문할까? 에이..아가씨들
많은데 혼자 끼어 먹기 뭐하다. 포기하자’ 하면서 발길은 상공회의소를
거쳐 전주모자점을 지나친다.
과거 유명했던 중화요리집 아관원 건물은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해
비어있고, 정들집 건물은 이름도 없는 중화요리집으로 변신했다.
아직도 음식점을 정하지 못하고 전동성당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햇볕은
따갑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어딜 갈까?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게 있다. 몇 년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점심을
먹었던 곳이 생각난다. 전동 간이터미날 맞은편의 동양회관이다.
당시 아버님과 같은 연배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불낙전골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14-5가지의 반찬과 전골..특히 돼지족발이 올라왔기에
어르신들의 술 안주감이 되었던 것..그런데 특이한 것은 30-50대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60-70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만
자리를 메우고 있었던 것..
전동성당을 지나쳐 동양회관으로 들어섰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왼쪽 식당은 큰 모임이 있었는지 음식먹고 난 빈자리가 많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여기도 반절정도 식사를 마친 분들의 빈자리가 보인다.
모두가 3-4명 혹은 7-8명씩 팀을 구성해서 음식을 드시는데 혼자 자리에
앉아 주문하려니 쑥스럽기도 하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살펴보고서 백반을
주문했다. 기억나는 메뉴판의 주요 내용은 전골류(불낙전골, 버섯전골,
곱창전골), 탕류(우족탕, 추어탕, 육개장) 등이 6-7,000원선 그리고 백반...
손님이 음식을 드시고 난 식탁을 정리하고 계시던 사장님은 주문을 받자마자
주방에 냄비 하나 준비하라 지시하고 큰 쟁반에 이것 저것 음식을 담아낸다.
큰 쟁반에 담겨져 내 온 반찬을 보니 첫 번째 12-3센티 정도의 크기인 조기
조림 아니 부세인지도 모르겠다. 몇가지 양념과 함께 갓 볶아낸 호박볶음,
물엿을 첨가한 감자맛탕, 꽈리고추가 아닌 풋고추를 재료로 한 고추찜은
알싸한 매운 맛이 감돈다. 담은 지 며칠 안된 김치 그리고 어렸을 적 깊은
샘에 담궜다 꺼내어 먹었던 시큰한 맛을 내던 열무김치, 냉장고에서 내놓은지
오래된 밍밍한 물김치, 마요네즈로 버무린 양배추, 그리고 깻잎뿐만 아니라
깻잎줄기까지 한꺼번에 볶아서 내놓은 고소한 깻잎볶음..모두 10가지다.
종류별로 맛을 보고 있는 사이 옆 테이블에선 냄비에 담겨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펄펄 끓고 있다. 날이 더우니 옆테이블에서 끓여 넘겨주려는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이윽고 밥 한공기와 냄비가 내 테이블에 놓여졌다. 궁금증을 가지고 냄비뚜껑을
열어보니 홍어탕이다. 언뜻보니 2명 정도가 먹어도 될만큼의 양이다. 홍어탕은
물렁뼈를 포함한 큼직한 홍어 두 덩어리, 그리고 팽이버섯, 양파, 당근, 대파,
무, 미나리 등이 주요 재료이고 거기에 다대기 한수저 정도 넣은 모양이다. 먼저
국물 맛을 보니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난다. 전날 늦은 시간에 친구와 술을
마신 탓에 몸 속에서도 해장을 원했던지 자꾸만 숟가락이 간다. 5,000원 수준의
백반에 홍어탕이라니 국산인지 외국산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홍어탕을 맛있게 잘 드셔서 어머님이 어쩌다 한번씩 끓여주셨던
그 맛이 생각나서인지 다른 반찬보다도 홍어탕에만 숟가락이 간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보름 이상 삭힌 홍어를 이용해서 코가 펑 뚫릴 정도의 강한
맛을 즐기지만, 동양회관은 덜 삭힌 홍어로 탕을 끓여 내왔음에도 맛만큼은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에어콘이 가동되고 있어도 팔팔 끓인 홍어탕을 먹다보니 또 다시 땀이 흐른다.
옆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수군거리며 하시는 말씀이
들려온다. ‘어이구..젊은 사람이 혼자서도 맛있게 잘먹네..어째 혼자왔을까?’
혼자 오고싶어서 왔을까..어찌 하다보니 혼자 온 것이지..
다먹고 계산하는 와중에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요즘 하두 야채값이 비싸서
나물 2-3가지가 덜 나가서 미안해요..우리집 나물이 맛있는데.." 혼자 와서 먹고가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음식을 챙겨주는 사람은 평소 나가던 반찬이 안나가니
미안한 모양이다. 기분좋은 점심 식사를 해서인지 따가운 햇볕도 정겹다.
깔끔하고 절제된 서비스를 원하는 분들에겐 별로인 음식점. 그렇지만 고향의
할머님이 챙겨주시는 듯한 맛을 즐기고 싶은 분이나 나이드신 어르신들의 걸쭉한
농담과 노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분들은 한번쯤 가봐도 좋을 듯~
첫댓글 ^^* 이미 돌아가셧지만 집에 할머니가 계셨을땐 항상 밥상에 올라오는 할머니표 반찬들이 있었는데......이곳에가면 그런 느낌을 받을수가 있을듯 하내요.
너무나도 맛깔나게 글을 엮어서인지 제가 그 자리에 앉아서 식사하는 듯 한 착각에 빠지네여
정감가는 글에 감사 드립니다.....
이곳음식은 어른들의 추억을 기억하도록한다는...... 입맛이라 그런지 쫌 그랬었다는...
예전의 기억으로 제가
저도 울 장인어른 때문에 여기가봤는데 상당히 만족하고 왔는데~~
ㅇ ㅏ.. 사진이 없어도 마치 현장에서 모든걸 보고있는듯합니다^^ 다음엔~ 혼자드시지말고 전화주세요^^
글이 너무 좋아요. 사진이 없음에도 너무너무 잘 읽었답니다^^
사진이 필요없는 글이군요,,,
멋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 형님, 다음엔 함께해요.^^
님의 멋진 글 솜씨에 전주에 가면 첫번째로 가봐야 할 맛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레님이 말씀하신 아관원이 혹 평화동 1,000짜리 자장면집을 말씀하신 건가요?
아관원이 문을 닫았다고 하니궁금해 지네요.
옛날옛적 전동에 있었던 아관원을 말하는 거죠..평화동 아관원은 지금도 영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