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 점심시간에는 우리 구청 재난안전관리과 직원 5명과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어요.
점심(點心)은 원래 말 그대로는 “마음에 점을 찍는 거”라겠는데,
우리가 “낮에 먹는 끼니”를 의미한다는 걸 모르는 분은 아무도 안 계실 거여요.
원래는 “불교 선종(禪宗)에서 배고플 때에 조금 먹는 음식[Buddhist monk's snack]”을
의미한 다는데, 쉽게 말하자면 불가의 “스님들 간식거리가 점심”이라죠.
민간에서는 무당이 삼신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비는 일을 “점심”이라 했구요.
요즘은 무당보기가 쉽지 않은데...
제가 고향 동두천 동광극장 옆 골목에서 셋방살이했던 초등학교 5학년때
저희 옆집이 무당집이었어요.
그래서 거의 매일 굿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죠.
그때 저희는 가톨릭교리 배우느라 열심이던 예비자였기에, 별 관심 없었지만요.
다만, 동네를 시끄럽게 하는 무당집을 싫어하는 동네분위기라 그 집에 딸이 둘 있었는데,
친한 친구 하나 없이 자기들끼리 외톨이로 지내는 게 제가 보기에도 안쓰러웠죠.
그렇지만, 저는 “요즘말로 코드가 안 맞는” 그들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며 포용하는 가톨릭정신으로 무당네와도 편견 없이 대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집보단 저희와 부담 없이 지냈죠.
사실, 저희 집이 신앙을 갖기 훨씬 전에는 그때 분들이 대부분 그러셨듯이, 집에서 굿판을 벌이기도 했었거든요.
제가 몸이 약해 하도 골골하며 많이 아파서 부모님 속을 무지 태웠었는데...
지금은 뱃살이 적당히(?) 나왔고, 그런대로 열심히 활동하며 잘 살고 있으니...
지금은 천상교회(天上敎會)에서 이승의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이십니다.
저희는 지상교회(地上敎會)에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드리구요.
우리나라 전통무속이 우리 믿음의 대상이 아니지만, 어느 면으로는 존중해 줘야 할 거여요.
그 무렵 서강대 총장님이셨던 프랑스출신 어느 신부(神父)님도 종교와 믿음의 차이를 떠나,
한국 전통무속 신앙 표현의 하나인 “전통굿”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멋지다고 말씀 하셨었죠.
저도 제가 미신이나 그런 샤머니즘 예식을 신봉하는 건(件) 아니지만,
조상들로부터 면연히 이어져온 굿거리 같은 민속신앙은 우리 대한민국의 소중한 무형자산(문화재)으로 잘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그때 제 옆집에 살았던 무당의 둘째딸이 예뻤고 자주는 아니라도 나지막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저와 이런저런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뭐하며 살고 있을지?
혹시, 어머님처럼 무당 같은 무녀(巫女), 무속인(巫俗人)이 되어있는 건 아닐까요...?
어디서든 40대 중반으로 잘 살고 있길 바래야죠.
그때 그녀는 자기 엄마가 무당이라는 걸 창피해 했었어요.
저도 어린나이에 단지 그녀보다 몇 살 더 먹었다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어머님이 자식을 위해 애쓰시는 거니, 효행을 다 해 드려야 한다했는데...
정작 저는 부모님 생전에 잘 해 드리지 못했으니... (ㅠㅠㅠ)
그래서,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겠죠.
아고, 점심이야기가 어느새 샛길로...? (헤헤헤, 죄송합니당~!)
사실 같은 구청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도 보통은 자기근무부서 직원들과 같이 밥을 먹지,
다른 실과직원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것도 저 혼자에 타부서 직원이 5명이니...
재난안전관리과 직원들이 그전에 저와 같이 근무했었거나 잘 아는 직원들이기에
제가 새해 인사 겸 신고하는 거였는데,
이해타산적인 관계를 떠나, 동료애로 생각하면서 함께 밥 먹는 것은 좋은 일이죠.
사람은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면서 밥을 같이 먹어야 정이 더 돈독해 지는 거라 거든요.
같은 집에서는 안살아도, 자주는 못해도 가끔 점심식사나 저녁에 술자리라도 같이 하면
좋아요. (하하하)
제가 갑부(甲富)라 그러는 건 아니지만, 점심시간에 저까지 6명이서 반주로 쐬주 한병을
곁들인 어제 지불한 음식값이 2만7천원이면 소박한 거였죠?
메뉴는 “한정식”이었는데요.
전에 순대집 이야기도 했었지만, 어제 타 과 직원들과 함께한 식당도 넉넉한 인심의 아주머니가 맛잇는 음식을 만들어 자기 자식에게 주는 듯 잘해주시는 데다, 음식값도 아주 저렴하게 해 주셔요.
그래서 우리 구청직원들은 점심시간은 물론, 저녁에 술 한잔 꺾으려고도 자주 가지요.
대형 간판에 으리으리한 시설을 갖춘 곳이 아니고, 허름한 식당이지만,
그곳에 가면 인간적인 냄새를 느낄 수 있거든요.
울 님들도 대전에 오실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제가 함 모시고 가죠.
까짓것 제가 큰 부담 안 되는 음식값은 한잔 술과 같이 쏠테니까요.
제가 부자는 아니라도, 배고픈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야... 협조해야죠. 안 그래요? (하하하)
어제 아침에는 대전지방에 안개가 많이 끼었었어요.
어디선가는 교통사고로 18살 또래인 젊은 목숨이 둘이나 한꺼번에 숨졌다던데...
고르지 못한 날씨에 안개마저 잔뜩 껴있는 날에는 특히 안전운전과 교통사고에 신경 쓰셔야해요.
교통사고도 물론이지만, 요즘 추위가 심하다 보니, 평소에 지병을 갖고 계신 어르신들은
지내기가 더 힘드실 거여요.
특별히 심한 질환이 아니더라도 연세를 많이 드시면 대부분 노환(老患)으로 고생하신다죠.
가장 간단한 병이라는 감기나 독감에서부터 폐렴이나 암과 같이 중한 병 까지...
여러 가지 병환으로 힘들어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인데,
아직은 한창 때라는 저희 40대 중년들도 20~30년 후에는 그런 노인 세대를 맞게 될 테니
남의 일 같지 않아요.
특히, 세계에서 40대 사망률이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니, 더 그렇죠.
아무튼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제 짝지부터 희귀성난치병이라는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고, 저 역시 오르락내리락 하긴
하지만, 고혈압으로 매일 약을 먹고 있는 형편이니...
겨울철 추울 때에는 혈관 벽이 수축하기 때문에 평소 고혈압이 있다는 분들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 하고,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해도
이승에서 굴러다니는 게 저승보다 낫다니까
최소한 평균수명 이상으로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해야죠.
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주위의 가까운 직원이나 아는 분들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의 부음소식을 종종 접하다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새삼 살아있는 동안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자고 결심하게 됩니다.
제게는 처가에서 농사짓고 계시는 장인장모님이 제 부모님과 마찬가지인데,
건강하게 여생을 재밌게 살아가셨으면 하지요.
요즘은 전통적으로 어려워했던, “고부간의 갈등”은 옛말처럼 되어간다죠.
사실, 지금은 딸을 시집보낸다고 하기보다, 사위를 얻어 들인다고 한데요.
그래서, 딸 결혼식장에서 신부(新婦)본인은 물론, 부모님들도 희희낙락(喜喜樂樂)하시는
경우가 많은 가 봐요.
예전엔 신부(新婦)와 부모님들이 결혼식장에서 슬퍼 우는 일이 대부분이 었는 데...
얼마 전에 “캥거루족 이야기”에서도 했었지만, 요즘은 이혼률이 워낙에 높아졌다 해서,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 놓고도 부모님들이 걱정 많이 한다죠.
며칠 전엔 지난 년말에 결혼한 어느 탤런트 신혼부부가 결혼생활 12일 만에 이혼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가정폭력도 문제지만, 안타까워요.
아무래도 20~30년 이상 다른 가정에서 살던 청춘남녀가 함께 살면서
생활전선에 나서고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힘든 일이 없을 수 없어요.
이해하고 알콩달콩 잘 살아주길 바라지만, 사람 마음은 행동과 달라질 때가 많지요.
그저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가끔은 져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데...
저는 그저 21년 동안 짝지 아녜스에게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ㅠㅠㅠ)
’86년 3월에 충북 청주시 “사직동 성당”에서 혼인성사로 결혼한 저희니까,
머지않아 결혼21주년이 되겠죠.
신혼초의 사정이 너무 어려워 남들이 다하는 신혼여행조차 못 갔던 우리였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 부러워 할 정도로 괜찮게 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이만하면, 3.5평 단칸 월셋방에서 시작해서 자수성가(自手成家) 한 셈이죠?
오늘은 1월4일입니다.
부모님과 선배님들 세대 어르신들은 한국동란 중의 1.4.후퇴를 잊지 못하실 거여요.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공세에 따라 정부가 수도 서울에서 철수한 사건이 1.4.후퇴죠.
제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황해도 장연에서 6.25.때 피난해 오셨기에,
저는 어려서부터 전쟁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었어요.
제 고향이 기지촌소리를 지금도 듣는 동두천이기에 미군부대 아저씨들과 군인들 모습을 많이 보았었죠.
이제는 그런 6.25.동란과 같은 엄청난 민족적 비극은 절대 없어야 해요.
오늘 하루는 무엇보다 1.4.후퇴 당시 고생했던 우리 조부모님ㆍ부모님과 인생 선배님들을 생각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부모님과 선배님 세대에 힘든 고통을 이겨내신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거니까요.
오늘도 뜻 깊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꾸벅~!!!)
첫댓글 만주 봉천에 피난열차 얘기 생각나네요 .전쟁은 비참해요 !고통속에 발전을 이룩한 한국인이 자랑스러워요 !
잠시 생각에 머물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