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올 댓 뮤지컬]
영 웅
창작극으로 부활한 영웅 안중근 장군
귓가에 맴도는 선율과 가사 뭉클.
영상활용 마법같은 공간 연출 탄성, 역동적 안무, 보는 재미도 쏠쏠
국내 양대 시상식서 상 휩쓸어, 하얼빈 공연 중국 관객들 환호

창작 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 법정에 선 안중근(정성화 분) 장군이 부르는 넘버 ‘누가 죄인인가’는 공연을 관람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곡이다.

고뇌에 찬 안중근(정성화 분) 장군.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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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뮤지컬 ‘영웅’이 언론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중국 하얼빈에서 공연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인 의거가 있었던 바로 그 현장에서, 100여 년 세월을 지나 그를 소재로 한 역사 뮤지컬이 막을 올렸다.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 창작 뮤지컬의 또 다른 개가여서 반가운 사건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향반(鄕班) 지주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근대 신문물을 수용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유년 시절부터 개화된 사고를 지니고 자랐다. 본격적으로 독립전쟁에 참여하기 전에는 교육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한 전력도 있다.
1909년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1살이었다. 안타깝게도 의사의 무덤은 아직 발견조차 하지 못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생의 시신을 일제는 연골을 제거해 무릎을 꿇린 채 관에 담아, 후세 사람들이 찾아볼 수 없게 훼손하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버렸다는 후문만 무성하다.
우경화를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로 폄하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세월은 흐르고 선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나라의 주권도 되찾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프고 안타깝다.
뮤지컬 ‘영웅’이 지니고 있는 첫 번째 미덕은 우선 음악에서 찾을 수 있다. 몇 번만 반복해 듣다 보면 어느 새 입가에 맴도는 선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결심하는 1막 후반부의 음악들은 그야말로 중독성이 강하다. 심지어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도 노래 자체만으로 울컥해질 만한 감동을 담아낸다. 뿔나팔 소리 같은 연주음이나 규칙적인 템포의 박자감은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 스타일의 영화음악을 연상하게 하는데,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 흥미롭다. 무대를 통해 직접 목격하고 감상하다보면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내면 깊숙이 체험할 수 있다.
음악적 완성도가 듣는 재미와 감동을 준다면, 비주얼적인 완성도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해주는 이 뮤지컬의 두 번째 미덕이다. 야마카시를 활용한 역동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 철골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전개되는 입체적이고 에너제틱한 극 전개는 꽤나 흥미진진하다. 영상을 적절히 활용한 공간 창출 역시 꽤 독특하다. 덕분에 이들이 형상화해내는 장면들, 예를 들어 일본 순사와 숨바꼭질을 벌이는 독립투사들의 추격 장면 등은 그럴싸한 ‘보는’ 재미를 담아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특히 백미를 이루는 기차 세트의 활용은 잔상이 오래 남는다. 영상에서 달리던 기차가 삽시간에 세트로 변환되는 무대의 마법은 탄성마저 자아낸다. 무대에 실물 크기의 기차가 실제 등장하는 것은 글로벌한 수준의 무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뮤지컬에서 영상을 활용하는 일은 요즘 자주 목격하게 되는 최신 트렌드의 하나라 할 수 있지만, ‘영웅’ 정도의 수준과 완성미를 갖춘 경우는 솔직히 드물다. 국내 스태프들의 노하우와 창의력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역사적 자료를 작품의 형식적 재미라는 틀 안에 다시 조명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발사한 총탄의 수가 그렇다. 모두 7발을 발사했는데 이 중 4발은 이토를, 나머지 3발은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여 이토를 혼동해 잘못 저격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만큼 선생의 의거는 철저히 계산되고 정확히 준비된 것이었다. 감상적이거나 일시적인 폭거가 아닌 민족의 울분이 응집된 역사적인 일대 사건이었던 셈이다.
훗날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는 이토의 죽음을 두고 인간적인 미안함은 있으나 이는 엄연히 전쟁 상황에서 독립군 참모중장이라는 본인의 임무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뮤지컬에서도 7발의 총성이 극의 도입부나 역사적인 의거 장면에 그대로 등장하는데, 전후 사정을 알고 무대를 바라보면 더욱 감동이 느껴지는 이 뮤지컬의 명장면 중 하나다.
뮤지컬 ‘영웅’은 창작 뮤지컬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쓴 이색적인 경력을 지니고 있다.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2010년)에선 최우수창작뮤지컬상·연출상·남우주연상·음악상을 포함해 6개 부문의 트로피를 석권했으며, 같은 해 하반기에 열렸던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도 최우수작품상·연출상·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 6개 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특히 같은 배우가 우리나라 양대 뮤지컬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은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안중근 의사 역으로 열연을 보였던 정성화가 그 주인공이다. 결국 이때의 수상 결과는 개그맨 출신이었던 그가 뮤지컬 배우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올해 앙코르 무대에서도 강태을과 함께 정성화가 더블 캐스트로 등장하고 있다.
의거 후 일제 재판정에서 인류의 공영과 대의를 위해 큰 가르침을 설파했던 안중근 의사의 뜻은 아직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어 일견 죄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지난겨울, 하얼빈 현지 공연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을 대비하며 ‘누가 죄인인가?’를 노래하자 객석의 중국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역인 중국에서조차 선생의 위대한 희생은 높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나마 뮤지컬로 위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요즘 세대에겐 교육적인 목적에서라도 꼭 보여주고 싶은 창작 뮤지컬이다.
‘영웅’ 감상 Tips
1. ‘장부가’
뮤지컬에 등장하는 ‘장부가’는 실제 안중근 의사가 쓴 시를 뮤지컬에 맞게 풀어서 만든 노래다. 선율도 그렇거니와 가사를 곱씹어 감상하다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적이다.
2. 다큐멘터리 기법 활용
이토 히로부미 제거라는 의거를 다짐하며 사진을 찍거나 맹세를 나누는 극중 장면들은 모두 실제했던 이야기들이다. 독립군들의 끝모를 조국애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3. 가능하면 가운데 자리에서!
뮤지컬 ‘영웅’은 시각적인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특히 세트와 영상의 조화가 수준급이다. 너무 가까운 자리보다 약간 거리가 있는 가운데 쪽이 ‘제대로’ 된 명당이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명상음악] 아침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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