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챙겨먹고 걸어나간다.
마륜 들판을 걸으며 마서 덕촌 마동을 찍어본다.
비닐하우스에 가리고 나의 조망점이 낮아 건질만한 건 없다.
마륜천을 건너 재동서원 앞을 지나며 또 찍어둔다.
축내와 원등을 산줄기 아래 안긴 모습을 잘 찍고 싶은데 역시 안된다.
동강잔디집 잘 가꿔진 잔디와 과수원을 지나 숲속으로 접어드니 길이 잘 안 보인다.
리본도 안 보인다.
태양광밭 철망을 걷는 사이 산길을 벗어나 농로를 걷고 있다.
산줄기를 보고 길을 짐작하는데 앞쪽에 재실이 나타나 가 보니 창원박씨 쌍효비가 고색창연하다.
재실은 다행이 문이 열려있다.
세경문과 모성재는 염재 송태회의 글씨다.
신도비는 후손 박주희가 썼다. 대동풍아에서 본 박주희는 1923년생으로 호가 강정이다.
가드릿재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니 그리 멀지 않다.
산에서 내려온 길을 보고 아스팔트 길을 건넌다.
가끔 밤길을 운전하곤 했던 곳이다.
마삭줄과 아이비?가 덮은 관리되지 않은 밤나무와 편백이 꼿꼿한 완만한 숲길을 올라간다.
금곡마을 뒷쪽인 듯한데 시누대가 우거진 길은 누군가 예초기로 길을 관리했다.
온동마을을 오른쪽으로 보며, 밭능선을 진행하니 왼쪽으로 덕암마을과 유둔리가 보인다.
두방산줄기 끝에 첨산이 뾰족하다.
밭가운데 능선에 정자를 낀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동강중 부근 큰길에서 해질녁 찍어보고 싶었던 나무다.
올라가 소주 한모금 마시고 싶지만 바람이 차다.
마을에서 한 할머니가 운동하시는지 서서히 걸어올라와 그냥 내려간다.
포장도로 건너 작은 저수지 둑을 걷는데 아무래도 산줄기를 벗어난 듯하다.
정혜식품인가를 지나 산길을 찾아 작은 고개를 넘는다. 양쪽으로 산이
버티고 서 있는데 길이 안 보인다. 치고 올라갈 자신이 없다.
밭에서 일하고 계신 할머니는 묻는 말과는 다른 답을 하고 일 도와주는 아들자랑을 하신다.
동네를 물으니 침교라 하신다.
진원 박경진의 묘에 올라간다. 금식형이 현주씨와 고종간이고 그 부친이 태삼씨라 한 것이 생각난다.
박경진-태삼-담주씨계가 종가고 현주씨는 차남이다.
태삼씨의 부인이 고령 신옥순이다. 이름까지 씌여 있다.
다시 산길을 올라간다. 박씨와 송씨의 무덤이 많다.
송재열이 찬한 주현씨의 묘를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강암 송성용의 글씨가 보이는 묘비를 지나 또 여산송씨묘를 만난다.
탄포삼거리가 가까울 듯한데 산길은 안 보이고 임도가 나타난다.
길 위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며 충전을 한다.
혼백산을 찾으니 휴게소 부근의 4차로 길을 건너게 안내한다.
개들이 짖는 휴게소 뒷쪽을 따라 지하통로를 건넌다.
침교를 바라보며 아평마을 저수지로 올라가다 산길로 간다.
10여분 오르니 혼백산이다. 산길에 접어드니 편하다.
이제 남양 운교마을인지 중산리 앞의 바다가 저녁해에 물들어가는 풍경이 보인다.
조림된 숲의 내리막에 들어서는데 앞에서 큰 새 한마리가 솟아오른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갑자기 무서움이 든다. 내 위를 배회하는데 폰으로 찍기엔 너무 멀다.
그가 뿌려놓은 하얀 배설물이 페인트처럼 깔려있다.
운교고개를 넘는다.
리본이 나타나 주니 반갑다.
천봉산까지의 길은 또렷하다. 내가 몇 번 와 본 길이어서 이제 마음이 편하다.
골안고개는 가 보았으니, 삼거리에서 옥녀봉삼거리로 길을 잡는다.
우도 부근 바다는 흐릿한 햇빛으로 물이 들었다.
남양산성을 두고 옥녀봉에서 중산마을 가는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온다.
길의 흔적은 금방 없어진다. 나무를 잡고 미끌리며 내려온다.
나무가 나무를 뚫고 지나간 나무를 한참 들여다 본다. 신기하다.
철망이 둘러진 4차로를 따라 농로가 있다.
오른쪽은 금방 막혀 되돌아 왼쪽으로 가니 지하통로가 있다.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중산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기약이 없다. 건너편의 시간표를 보니 과역터미널에서 17:50분 버스가 있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 걷다가 타자고 부지런히 운교앞까지 걸어 잠깐 서 있으니 버스가 온다.
고맙게도 대서로 돌아 덕촌 정류장에 내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