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 받으세요"
집배원의 감정없는 목소리에 얼핏 졸음에 깨어
희야엄마는 도장을 찿아 대문으로 나갑니다.
'**대학교 총장'.....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합니다.
조심스레 봉투를 개봉하여
침침한 눈 찡그려 몇글자 읽어 봅니다.
'...합격 하였으므로 *월 *일까지 등록마감을.....'
희야엄마의 두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
'어르신...또 하나과정을 마치나 봅니다...'
희야엄마는 이름이 없습니다.
해방전에 관부연락선을 탔을때가 아홉살,어느 일본인집의
하녀로 팔려가면서 얻은 이름은 아야꼬 였고
열둘에 해방이 되었다 하여 보퉁이 달랑들고 부산으로 돌아와
오갈데 없어 부전시장의 가게심부름,식당 부엌데기로 살다가
악착스레 몇푼씩 저축하여 시장통에 국밥집 하나 마련하니 스물둘,
사는게 바빠 호적이 뭔지,피붙이가 뭔지도 모르게 세월이 갔습니다
육이오 난리통이 지나고 희미한 기억 더듬어 전라도 강경 어딘가에
형제가 있다하여우연찮게 소식이 닿아 성년의 해후를 했지만
그나마 뿔뿔이 흩어진 육남매중에 오빠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
사는데 불편하여 호적이름 하나 얻은게 전부 였습니다.
부모가 언제 돌아 가셨는지,뿌리가 어떤지는 이후론 잊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네 뭐네해서 부전시장이 허물어 지고
그냥저냥 월세가게이던 희야엄마는 졸지에 터전을 잃고
시장에서 월변 융통하던 언니를 통해 알게된 알음으로
동대구역 근처에 다시 밥집을 얻어 호구를 잇느라 대구로 옵니다
고향이네 타향이네 뭐 그런 느낌이나 설움도 없이 다만,
이미 혼기는 넘겼고 마흔줄에 노후대책으로 돈이나 벌자 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니 만치 명절이면 허전하고 갈수록 맘은 약해져서
그냥 운동삼아 이웃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 수성못 인근의 사찰에
자꾸 다니다 보니 마음의 의지가 되어 기대어 살게 되었습니다.
장사도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가고 늘그막의 양로원 신세는
면한다 싶을즈음,가게에 단골로 오시던 중년의 사업가를 만납니다
살아 오면서,숱한 남정네의 볼꼴,못볼꼴 다 겪고 심리도 알기에
단 한번도 몸을 허락하거나 살림 차릴 생각 없이 살았지만,
이 손님에겐 남자라기 보다는 친동기같은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외지출장이 잦은 그 손님의 사정을 헤아려 가게의 뒷방을 내어주고
남자 혼자 주물럭거림이 보기싫어 빨래까지 자연스레 맡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기다려지고 궁금해 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손님 역시 신실한 불자라,사정이 허락되는 휴일이면
함께 불단에 손을 모으고 기도에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뜻이리라....문득,이사람 닮은 아이하나가 욕심이 납니다
노발대발,역정이 대단한 그 손님에게 간곡히 빕니다.
"다른 욕심없고,의지처삼아 아이 하나만 가진다면 어디든 가서
어른의 길에 걸림없이 다만 정성으로 잘 키우며 살게 해달라'고..
인연의 기막힘을 천명이라 받아들이기로 한 희야 아버지의 묵인,
그래서 어거지 부부의 연이 맺어져 일년뒤 희야를 낳습니다.
핏덩이 걷게된 봄날,아이를 앞세워 본댁의 성님을 뵈러 가던날,
태어나 그처럼 험한꼴 처음으로 당하면서도 호적에만 올려달라
간곡히 사흘을 빌고빌어 결국 희야아버지의 사과와 곁들어
본댁의 막내로 입적은 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가산을 정리하여 서울로 떠나던 날 저녁,
늘 무덤덤한 목석이던 희야 아버지는 처음으로 아이를 볼비빔하며
그 큰눈에 그렁한 눈물을 담은채로 한지봉투 하나를 내 밉니다.
'* *희,**년 *월 *일 *시,**본가,*대,父 **'
아이의 뿌리 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열셋이 되던 가을, 눈시울 붉어진 희야아버지의
임종자리에서 희야와 아버지의 마지막 만남이 있었고,
서울에서 자리잡아 살며 희야엄마의 낙이라면 희야 크는모습과
세곡동 골짜기의 사찰에 기도 하는 힘으로 살았습니다.
매년등과 매 기도일의 연등달기로 재미를 붙이고 넉넉했습니다
구천에 계실 영감님과 희야친정이될 희야오빠,그리고 희야를 위한
갖가지 색의 등과 꽃을 붙이며 영감님과의 약속을 생각 합니다.
산신기도 입제가 있는 오늘 새벽엔 오랫만에 영감님이 오셔서
그 사람좋은 웃음으로 손짓하여 주었는데,아직은 못따라 갑니다
오늘은 여러가지 맘이 기쁩니다.
이번 입제에는 영감님의 천도제도 욕심 내어 봅니다.
아비 영전에 절 한번 못올린 희야를 위해 술잔 한번 올리게끔,
이 한번의 제 만큼은 용서가 되리라 다짐 두지만
어쩐지 맘이 옹송그려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