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맥문동
작년에 화단을 보니 맥문동이 땡볕에 자라고 있었다. 식물을 잘 몰라도 맥문동이 대표적인 음지 식물이란 거 정도는 안다. 그래서 그것들을 다 파내서 하루 종일 그늘져 있는 곳에 옮겨 심었다. 예상대로 아주 잘 자랐다. 그것을 소재로 꺼지지 않는 희망에 대해 강론도 했다. 그런데 날이 더워지면서 잎이 누렇게 변하더니 마침내 이파리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어버렸다. 걔들은 생명력이 엄청 강해서 흙 위에 그냥 던져 놔도 사는 줄 알지만 그래도 땅을 잘 파서 심어줬는데 말이다. 마침 다른 풀들이 그 자리를 가려서 죽은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강인한 애들이 왜 죽었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고 계속 생각했다.
9월로 들어서며 정글 같은 화단에 빨간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검색해 보니 꽃무릇이었다. 작년에는 못 본 꽃인데 어디선가 씨앗이 날라 왔을 거라고, 풀이 조금만 자라도 예초기로 다 잘라 버리니 못 본 거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맥문동을 파낸 그 자리에도 그 꽃들이 피었다. 한동안 걔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더위 기가 꺾이기 시작하자 맥문동이 잎사귀를 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러면 그렇지. 아마 낯선 곳에서 자리를 잡느라고 몸살을 했었나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에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옮겨 심은 건 맥문동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검색해 보니 그것은 꽃무릇이었다. 잎이 맥문동과 비슷해서 나 같은 식물 문외한은 잘 구별하기 어려웠던 거다. 상사화처럼 꽃무릇도 잎과 꽃이 따로 피는 친구였는데, 7-8월 사이에 잎이 다 진다. 어디서 씨앗이 날라 온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심은 거였다. 내가 잘못 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깨끗하게 파내 간 그 자리에도 파란 꽃무릇 잎이 다시 처음 그만큼 자랐다.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닮았는데 제대로 잘 닮지 못해서 제 멋대로 생각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 한다. 처음부터 그건 꽃무릇이었는데 나는 맥문동이라고 우겼다. 그 아이들은 늘 그렇게 하듯이 피고 졌는데, 나는 맥문동이 왜 죽느냐고 의아해하고 속상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 보여주시는데도 보지 못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 재판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재판관’과 나는 어떤 면에서는 많이 닮았다. 악하지는 않지만 진리에 대해 눈을 감은 사람, 자신이 늘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생각과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 비유 말씀에서 귀찮아서라도 그 가난한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는 그 불의한 재판관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나고 우리다.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과 마음을 바꾸기를 그 가난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하는 것처럼 매일 매 순간 매달라고 요청하신다. 마치 어린 자식에게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아이를 달래고 소원하는 엄마처럼 말이다. 그 과부가 청했던 건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아니라 올바른 판결이었다. 하느님만 올바른 판결을 내리신다. 다시 한번, 하느님을 나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느님에게 맞추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영원을 생각하지 않으면 바로 세속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있으니,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진리에 나를 맞춘다, 매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내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내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그리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한다, 언제나 끝까지.
예수님, 고집스럽고 큰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바꾸지 않는 아주 단단한 저를 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다는데 걱정입니다. 이번 작은 소동처럼 교만을 부릴 때마다 저를 일깨워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를 넘어 무한과 영원을 응시하는 어머니의 눈을 따라 저도 그곳을 바라보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