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 국제신문 지면을 통해 철도청과 서울 롯데관광(주)이 주관하는 ‘그리운 금강산 관광열차’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2월 26일 토요일 부산역 출발(무박 3일) 동해역에 내려서 관광버스로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금강산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다.
관광요금은 어른 191,000원, 노인 176,000원, 청소년 181,000원, 어린이 156,000원(부산역에서 탑승시) 승차역은 구포, 밀양, 동대구, 구미, 김천에서 각각 관광객이 오른다.
1차 관광객은 319명, 부산에서 150명이 탑승한다고 한다.
부산역 담당안내원(440-2519)의 안내에 따라 구비서류를 준비한다.
우리팀은 동갑내기 부부계원팀 모두 11명!
하단에 살고 있는 총무(동서간)와 상의한 끝에 관광에 임하기로 뜻을 모으고 서류준비를 한다. 주민등록등본 각 1통, 여권용사진 2매(최근 3개월), 중식비 달러(1$, 5$, 10$), 주민증, 그 외 관광시 유의사항, 물품휴대주의 등...
정말 같은 동족같에 뭐 이리 까다로운지 원...
외국가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비극의 아픔을 가진 남과 북의 다른 이념이 관광에 부담을 가하는 가 보다.
총무가 구비서류 일체를 책임지고 하느라 부산역을 여러번 오가면서 수고가 많았다.
2월 20일...2월 25일... 시간은 좀처럼 가질 않는다.
기다림의 나날...
잠도 제대로 안 오고...
방송을 통해 신기하게만 느껴오던 차단된 벽속의 나라 ‘북한’ 을 간다는 행복감에 젖어서..
부산역에서 나누어준 관광 안내문을 열 번도 더 읽고 읽어 외울 정도다.
내 주위에 자랑을 부지런히 해 대기도 했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눈치다.
2월 26일.
그 날도 태양은 어김없이 떠올랐다.
설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일행은 19:45분 동해행 열차에 나란히 탑승했다.
정차역은 부산역 - 구포 - 밀양 - 동대구 - 구미 - 김천순이다. 여기서 동해까지 논스톱이다. 낭만을 듬뿍 실은 열차는 관광객을 모두 싣고 동해를 향해 덜컹덜컹 달린다.
차내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듣고 일정을 체크한다. 승무원님들이 친절하게 관광객들을 하나하나 살피신다.
또한 불편사항도 꼼꼼하게 챙기신다. 이 열차는 금강산 전용열차다. (무궁화 4504호)
객실의 좌석은 편하다고 느껴진다. 온도가 높아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께 부탁을 드렸더니 온도를 조절해주시고 차내의 형광등을 꺼 주시는 배려도 아끼지 않으신다.
침대칸, 식당칸을 지나다보니 음식을 나누는 관광객과 주무시는 관광객도 더러 있다.
PSB 방송국에서도 금강산 관광길에 나섰다. 관광객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는데 나도 인터뷰에 응했다. ‘리얼터지 오늘’ 에 방영된다고 한다.
작은 소등에 낭만이 배어온다. 차창밖으로 까만 밤들이 따라온다. 객실 내 관광객 모두들 의자를 뒤로 젖힌 채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영주역을 지났다. 11시가 넘었다. 다음은 봉화역이다. 그냥 지나쳐버린다. 내가 살던 고향인데... 아쉽다.
몇몇 관광객들은 한쪽 구석으로 자리하고 웃고 떠들어댄다. (짜증! 왕짜증!)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고 금강산이 눈 앞에 아롱아롱 그려진다.
덜컹덜컹~~
산이 높을 걸 보니 강원도로 접어들었나 보다.
자정이 넘은 시간! 승무원 발걸음도 조심조심 옮기신다. 까만 밤이 자꾸만 따라온다.
동해역까지 아직 멀었다.
< 금강산 행 관광버스 >
03:12분 예정대로 열차는 동해역 플렛폼을 미끄러지듯 빠져들어 멈춰섰다.
안내방송을 통해 모든 짐을 챙기고 홈을 빠져나왔다.
광장에 서울에서 온 롯데관광(주) 버스 8대가 우리를 맞이한다. 부산역에서 받은 차표에는 관광버스좌석표까지 연계되어 있어서 번호를 찾아 차례로 정해진 좌석에 탑승했다.
새벽을 밝히려는가? 날씨는 엄청 추웠다. 걱정이다. 금강산은 더 추울텐데...
동해고속도로로 8대의 버스가 나란히 달린다.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새 길이다.
옥계를 지난다. 이 곳에는 옥계탄광이 유명하단다. 강릉을 지나 구정휴게소에서 잠시 볼 일(?)을 본다. 마지막 휴게소라 한다. 통일 전망대에 06:2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양양을 지난다. 동해바다를 끼고 북으로 북으로 치 닫는다. 화진포구 해변의 아름다움도 새벽안개에 가려있다. 오는 도중 동해일출을 보았다.
설악산 국립공원을 지나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 조금 못 미처 현대직원가이드 8명이 탑승.
지금부터 관광객들이 치러내야 할 유의사항과 여권을 하나하나 나눠준다.
전망대 밑 예약된 식당에서 시원한 명태국으로 32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했다. 든든하게 많이 먹으라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커피로 마무리하고 전망대는 시간상 올라가 보질 못하고 남측 CIQ로 향했다.
가이드는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CIQ는 기존건물이 아닌 조립식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검색대로 향한다. 가지고 온 짐을 모두 검색대로 통과시키는 절차다. 무사히 전원통과!
현대직원들이 잘 다녀오라며 배웅을 해 준다.
갑자기 정주영 회장님이 문든 떠오른다. 고인의 거룩한 뜻이 아니었으면 우리 관광객들 차마 이런 걸음 말이나 됩니까?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편히 잠드소서!
아산 직원들을 뒤로 하고 곧 비무장지대(DMZ)로 접어들었다. 며칠 전 내린 폭설로 인해 온 산야가 백설로 뒤덮혀져 있다. 가끔씩 군인들의 벙커도 보인다.
새들이 날아가고 바람이 서글피 울고 있다. 어쩌면 통곡을 하는 지도 모른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철책선 너머 동해바다의 출렁임이 보인다. 가슴이 쓰리해진다. 한참을 달렸나 보다. 행행한 산야를....... 삭막감이 감돈다.
끊어진 철도가 우리와 같이 달린다. 지금은 남과 북이 합심하여 끊어진 허리를
이어가는 철도 공사현장도 보인다. 현대 중장비가 곳곳에 서 있다.
남북철도 연결사업은 공사자제는 남한에서 제공하고 인력은 북한에서 도맡아서 한다고 한다. 이 사업이 완성되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실크로드가 펼쳐지는 민족의 대동맥 국책사업이다. 동북아물류가 해로가 아닌 육로로 연결되어 세계로 나아가는 초석이 된다고 한다.
가이드가 또 다시 주의사항을 귀담아 듣기를 청한다.
- 북측 군인과 민간인과는 절대 말을 건네지 말 것!
- 담배꽁초나 휴지를 버리지 말 것!
- 큰소리로 웃거나 떠들지 말 것!
- 검색대를 통과 시 묻는 말에 무조건‘모릅니다‘ 라고 대답할 것!
- 불필요한 물품은 맡기고 갈 것! (휴대폰, 동전, 열시고리, 쇠붙이류, 제한된 카메라 등)
- 화장실 사용 시 일정액을 지불해야 하니 안내에 따를 것!
- 손은 흔들어도 무방!
잘못하면 위약금을 물기도 하고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니 그저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를 한다.
얼마를 흘러들었는지 남측군인 마지막 초소를 통과했다. 투구를 쓴 우리 군인이 손을 들어 맞이해 준다. 7번 국도 표지판이 철로와 나란히 나 있다. 부산, 경주, 포항, 울진, 삼척, 동해, 속초를 거쳐 고성까지 연결 된 도로다.
저쯤에 북한 초소도 보인다. 초소 조금 못 미쳐 전봇대가 드문드문 서 있는 사잇길 옆에 군사분계선 표지판 쇠말뚝 하나가 나지막히 곶혀있다. 녹이 쓴 채 50년을 버티어 온 그 표적!
분단의 현장을 실감케 한다.
울분이 치솟는다. 관광객 모두 차창 밖으로 펼쳐진 암담한 현실에 제각기 알 수 없는 신음을 토해낸다.
초소 앞 버스는 멈춰섰다. 북한군인 두 명이 막사사이로 손을 좌우로 흔들며 발을 맞추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검문검색이 있겠습니다.” 북한 군인 두 명이 차내로 올라선다. 국방색 군복에 방한모를 쓰고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있다. 어깨에는 별 모양의 부대표시와 계급장도 달려 있고 피부가 까무잡잡하며 무표정한 모습이다.
갑자기 차내가 을씨년스러워졌다. 한민족끼리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한 명은 운전석 옆에 차렷! 자세로 서 있고 장교인 듯한 중년 군인이 관광객 사이를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고 뒷자석까지 걸어가 검문을 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관광객들 모두 부딪힐까 봐 잔뜩 움츠린 채 안쪽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짧은 시간 속! 군인들이 내려가고 관광객 모두 움츠리고 참았던 숨들을 한꺼번에 몰아 내쉰다. 휴유!
같은 민족끼리 만나면 반갑워서 악수는 고사하고 이토록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북한 군인을 대하고 보니 세상에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진다.
우리는 왜 이런 분단의 서글픈 노래를 불러야 하나?
군인들은 차 밑 트렁크까지 구석구석 검색을 한다. 바깥초소엔 군인들이 차렷! 자세로 마네킹 같이 서 있다.
검문 끝!
금강산 첫 관문인 해금강을 끼고 아무런 일도 없은 듯 버스는 미끄러진다.
낙타봉이 보인다. 해발 187m 울룩불룩 낙타등 같은 괴암들이 자태를 뽐낸다.
구성봉도 보인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9명의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바위다.
호수 뒤에 정자를 짓고 살았다는데....호수의 폭은 3km.
영랑호도 보인다. 김소월의 시구절이 떠오른다.
해금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란다. 금강산 봉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 자체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태까지 오면서 보지 못했던 장관이 하나 둘씩 펼쳐진다. 정말 아름답고 꿈에 그리던 그리운 금강산에 온 것이다.
신이 창조하신 귀한 선물! 우리의 금강산이 아닌가!
남강다리를 건너 온정리로 향한다. 마을이 보인다. 가이드가 양지마을이라며 알려준다.
‘ㄱ’자 모양의 초라한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남한의 60년대 시골모습 그대로다.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북한 주민을 처음 발견했다. 눈이 쌓인 논에는 썰매를 타고 노는 어린이들도 보인다. 평화로운 정경이다.
온정리에 위치한 북측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다. 장전항 부두를 끼고 거대한 유람선 호텔 해금강이 우뚝 서 있다. 사진촬영은 제한된 구역에서만 가능하다. 다른 곳에서는 촬영을 못 하게 한다.
주위에는 금강 빌리지와 금강 폔션타운과 해수욕장도 있다.
장전항 건너 산 아래 마을에는 현대 영농장이 있어 모든 채소와 과일을 재배한다고 한다. 그 길을 따라가면 고성읍이 나온다고 하던데...
관광객 모두 짐을 들고 가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현대직원들이 반기며 서 있다.
검색대 아래엔 북한 측 군인들이 컴퓨터 앞에 자리잡아 앉아있고 검색대위엔 두 세명이 나란히 서서 현대에서 넘겨 준 서류와 사진을 얼굴과 대조하고 확인한 후 도장을 찍고 통과시킨다.
관광객 모두 겁에 질린 듯한 이상한 표정이 이 곳에서 연출된다.
다행히 전원 무사히 통과!
우리가 검색대를 통과하는 동안 관광버스도 검문에 들어갔다, 한치의 빈틈없는 통관절차다.
햇볕이 무척 따사롭다고 느껴진다. 장전항의 물결이 더불어 무척이나 검푸르게 보인다.
가슴에 멍을 안고 살아서일까?
98년도 처음 금강산 관광객이 배를 타고 닿은 곳이 이 곳 장전항이다.
그 당시 부두 시설이 열악하여 큰 배가 닻을 내릴 수가 없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고 북한 장전 1,2호가 바다로 들어가서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2000년 현대는 장전항 이 곳에 부두시설을 건설하여 지금은 배를 곧바로 부대에 정박시킬 수가 있다. 다시 탑승!
왔던 길을 다시 돌아나와 온정각 휴게소에 도착했다.
< 온정각에서 >
넓디 넓은 광장에 현대식 멋진 목조건물이 산뜻하게 지어져 있다. 원형 모양을 한 문화회관도 보이고 주차장 뒤로 제 2 온정각도 보인다. 문화회관에서는 남측 관광객을 위한 ‘평양 모란봉 예술단’ 이 매일 공연한다고 한다.
‘고 정몽헌’ 아산회장님의 추모비도 세워져 있다고 한다. 고인의 큰 뜻을 다 이루시지도 못하시고 비명에 가시어서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그 곁에 야영장 표지판도 보이고 모든 편의시설이 곳곳에 들어 서 있다. 병원, 온천빌리지, 호텔, 금강산온천, 마트, 기념품판매대, 식당, 골프장, 스키장 모든 것이 들어 차 있다.
관광특구에 온 셈이다. 해운대보다 시설면에선 우선이다.
평양에 가면 ‘정주영 체육관’ 도 있다고 한다. 온정리 저 편에 이산가족면회장도 있다고 한다. 그저 북한땅이 아닌 착각에 빠져들었다. 온통 현대 아지트다.
온정각 앞마당에 눈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직원들이 우리를 반기면서 삽으로 눈을 걷어내고 있다. 등산준비를 갖추는 동안 화장실을 급히 다녀오고 아이젠을 전원 착용하라는 가이드아가씨!
눈 산행이 시작된다. 꿈 속에서 본 금강산이 떡 버티고 내려다 본다.
산을 오르기 전 가이드가 식사문제로 안내를 했다. 북한식 식사와 남한식 식사로 구분되는데 북한 음식을 주문할 경우 미리 예약을 하여 표를 사 두어야 한다고 한다. 마당 구석진 곳에 가건물로 된 음식 매표소가 보인다. 그 옆에 회색빌딩 하나가 보이는데 ‘김정숙 휴양소’ 라 한다. 제한된 구역이다. 관광객들은 분주하게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 구룡연 코스 >
다시 탑승!
금강산 깊숙이 자리한 주차장에서 모두 내렸다. 모두들 아이젠을 착용하느라 분주하다. 주차장 한 켠에 안내 표지판 앞에 북한 여성 안내원이 서 있다. 민간인을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참 예쁘고 통통하게 생겼다.
“반갑습네다! 반갑습네다!”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표지판을 가르키며 설명을 시작한다.
“반갑습네다. 선생님네들. 여기까기 오시느라 고생 많은셨습네다. 모조리 구 경 하실라믄 귀담아 들으셔야만 합네다. 아니면 크게 다치십네다.”
지금도 그 안내양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 말도 건네 보았다. 예쁜 보조개가 피고 있는 우리의 혈육! 농담도 곧잘 한다.
- 코스안내 -
주차장(P) - 목란다리(목란관 식당) - 양지다리 - 금수다리(삼록수) - 만경다리 - 금강문 - 흔들다리 - 무대바위 - 옥류담 - 연주담 - 관폭정 - 구룡폭포
- 상팔담
목란다리를 건너 목란관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간판은 없고 벽에다 목란관이라고 적혀 있다. 마당 앞에 북한 여성 종업원이 숮불에 고기를 지글지글 굽고 있다. 시식을 하라는 가 보다. 관광객들이 빽빽이 둘러 싸여 있다. 등산이 바빠 그냥 지나친다.
눈이 내려 어린애 키만큼 쌓여 있다. 등산로는 미끄럽지도 않고 밟으니 폭삭폭삭하다.
이 곳 날씨는 겨울 속의 여름이다. 축복이 내리신 것일까?
관광객들은 두꺼운 옷을 벗어던지고 이마엔 땀이 흥건하다. 서서히 금강의 작품들이 하나둘씩 다가오는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산 자체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가운데 푸른 소나무가 띄엄띄엄 바위 속에 꽂혀 있어 조화가 맞춘다. 눈과 소나무, 기암괴석, 삼위일체다.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다가오는 봉우리 봉우리마다 각기 다른 자태!
그래 노래나 한 번 불러보자!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글로 적어 무엇하며 말로 해서 무엇하리!
철따라 이름도 갈아입는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은 봉래산 가을은 풍악산 겨울은 개골산(설봉산)
양지다리를 건너 북한 안내원 아가씨를 만났다. 더 예쁘고 친절하다. 또박또박 설명을 잘도 한다. 금강산 제일의 삼록수 자랑이 대단하다. 이 물 한 모금을 마시면 10년을 젊어지고 2잔을 마시면 20년 젊어지며 너무 많이 마시면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인삼과 녹용이 섞여서 흘러 내려오는 천하 제일수라고 한다. 우리는 그저 좋다기에 배가 부르도록 마셔댔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에는 쉬어가는 곳에 제법 널찍한 바위 앞에 남자 안내원이 서 있다.
“기차게 잘 오셨습네다. 제 말씀을 잘 들으시라요” 설명을 한다. 안내원이 가르키는 곳에 비봉폭포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얼어붙어 쏟아지는 물줄기는 고드름이 되어 있다.
가을에 오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금강산 4대 폭포 중 최고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봉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의 폭포다.
온통 산 요소요소마다 붉은 글귀들이 난무하게 새겨져 있다.
주체사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북한의 현실이 암담하게 느껴진다.
다시 숨을 몰아쉬고 금강문 앞에 이른다. 북한 아가씨가 곶감과 약차를 주전자에 끓여서 판매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모두 한 잔씩 사서 마시고 있다.
한 사람이 통과 할 수 있는 작은 문으로 금강굴을 지나 흔들다리를 겨우 건넜다.
벌써 맨 먼저 올라간 선두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내려오고 있었다.
옥류담, 연주담 모두 눈에 쌓여 제 멋을 자랑하지 못하고 있다. 가이드가 얼마남지 않았다고 재촉을 한다.
숨이 턱에 차 오를 즈음에 구룡폭포 앞에 자리한 관폭정에 도달했다. 관광객이 뒤섞여 오르고 내리고 좁은 길이 온통 교통대란이다.
땀을 식히기는커녕 정자에서 바라본 금강산의 절경은 너무나 기가 막혀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 작은 정자 마루가 왁자지껄 야단이다.
‘MBC 느낌표!’ 녹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동엽과 남측결선퀴즈 진출자들(초등학생10여명)이 퀴즈를 풀고 있었다. 남과 북이 함께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나도 토요일이면 채널을 고정시키고 시청하던 프로를 직접 녹화현장에서 보게 된 것이다. 정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통일이 반쯤이나 된 것 같다.
지금 이 곳이 신선이 놀던 곳이 아닌가! 내가 신선이라면 영원히 이 곳에서 저 물을 마시며 살다 지리라! 착각은 자유라 했던가.
신동엽씨 관광객들과 일일이 사진촬영한답시고 녹화에 상당히 지장을 주었다는 제작진들의 푸념~!
하늘을 쳐다보니 햇볕은 쨍쨍~ 구룡폭포는 꽁꽁~ 정자 속은 와글와글~ 어휴!
구룡연 위쪽에 상팔담이 있는데 전설속의 나뭇꾼과 선녀의 애기가 전해오는 곳이라 한다. 우리는 전설 속의 그 현장을 쳐다만 보고 시간에 쫒기는 바쁜 걸음으로 돌아 내려왔다.
목란관 아래 주차장에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젠을 벗어 눈을 털고 제빨리 차에 올랐다.
북한 안내양이 안녕히 가시라며 작별인사를 건냈다. 어째 시집 온 딸을 두고 가는 마음 같아 코끝이 찡하다.
내려오는 길에 금강산 4대 사찰의 하나인 신계사 절터로 향했다. 장안사, 유점사, 표훈사와 함께 유명한 사찰로 꼽힌다.
문필봉을 끼고 금강산 일출이 제일 먼저 떠비취는 명당터에 자리한 이 절은 519년에 지었으나 6.25 때 소실되고 돌기둥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남쪽 해인사에서 오신 스님이 한 분 계시는데 본채만 겨우 복원하여 남북 공동으로 낙성식을 가졌다고 한다. 공사중이라 건축자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돌탑 앞에 몇 백년을 묵었는지 알 수 없는 보리수 나무 두 그루가 세월을 잉태하고 서 있다. 스님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온정각으로 내려왔다.
14시가 가까운 시간 식당에 들려 미화 10불을 지불하고 부폐식 비빔밥을 부지런히 채워 넣었다. 산행을 한 후라 그런지 밥맛이 아니고 꿀맛같았다. 현대식당 종업원들이 모자라는 음식을 부지런히 나른다. 모든 야채는 현대영농장에서 재배하여 제공되는 것이라 한다.
북한음식 처음 맛본 느낌! 딱이야요!!
또 바쁘다. 셔틀버스를 타고 금강산 온천욕을 가야 한다.
15:20분이면 남쪽으로 출발해야 하기에 한 시간도 채 안 남았다. 최신형 온천탕에 몸을 내 던진다. 수질이 얼마나 좋은지 몸이 미끈미끈하다. 모든 병이 다 낳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며칠 묵어갔으면 좋으련만...
이 온천은 지하 200m에서 솟아오르는 천연 자연수라 한다. 노천탕에 끊어오르는 연기가 자욱하다. 벌거벗은 나신들이 뒹굴고 허우적거린다.
심장병, 피부병, 신경통에 효혐이 있다는데.....이 물을 퍼 담아갈까? 아니면 호스를 부산까지 연결해 갈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욕심이다. 이 곳이 어떤 곳인데.. 돌 하나 가지고 갈 수 없는 북측 CIQ의 살벌함을 잊었는가?
온천욕을 끝내고 나오니 8,000여평의 부지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 온천건물이 제대로 보인다. 들어갈 때 바빠서 제대로 쳐다 보지도 못하고 들어갔었다.
한꺼번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북한 제일의 온천탕이라 한다.
넓은 마당에는 조경시설이 멋지게 어울러져 있었다. 때마침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버는 꽃마차도 볼 수 있었다. 보통 하루에 1,000명이 이 곳을 다녀간다는 통계! 남쪽 사람들 애국자다. 2004년 한해동안만 28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앞으로 세계 제일의 관광지가 이 곳에서 탄생된다고 하니 뿌듯하다!!
편의점에서 쇼핑을 마친 관광객들이 부지런히 차에 올랐다. 다시 온정각 주차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야 하기에..
15:10분이다. 10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흰색 낡은 건물사이로 버스가 지나서 주차장에 멈춘다.
온정각 앞마당은 어느새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많은 인파와 관광버스의 물결! 과연 이 곳이 북한땅인가?
무박당일코스팀만 3:20분 전원탑승! 오~라이~
좌석에 앉으니 감회가 새롭다. 천하제일 금강산!
우리가 이 곳에 발자국을 남겼다. 작은 역사가 꾸며지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철마다 산이름이 네 번 바뀌는 곳 있으면 나와보라지!
1926년 스웨덴 국왕이 금강산을 다녀가시면서 하신 말씀 책자에서 읽었다.
“하느님께서 천지창조하시었던 엿새 동안에 마지막 하루를 오직 이 금강산 만드는 데 보내셨을 것이다.” 라고.....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다. 이 산은 인삼과 불로초도 풍부하다는데 눈에 쌓여 구경도 못 했다.
버스는 남쪽으로 기운다. 관광객들은 아쉬워서 창문쪽만 뚫어저라 내다보고 있다. 금강산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
'금강산아! 잘 있어라. 다음에 또 올께!' 버스는 속력을 내 달린다.
한 무리의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반갑다고 우리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댔다. 우리도 반가워서 같이 흔들어 답례를 해 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겨례 한민족의 동질성이었으리라!!
건너 마을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넓은 들판에 논을 가로지르는 전봇대가 나란히 서 있다. 낡고 썩은 듯한 나무로 된 전봇대 위로 한 줄의 전기선이 연결돼 있다. 전기가 모자라는 북한의 실정이 증명되고 있었다.
논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깃발이 ,꽂혀져 있다. 오늘 일을 할 집단농장표시라 한다.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주민들이 저 멀리 보인다. 개인농사는 NO, 집단농업 방식으로 가꾸고 거두어 배급식으로 타 먹는 북한이 아니던가...
흥청망청 자유로이 소비하는 우리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버스 타고 갈 길 자전거 타고 다녀야겠고, 술좌석은 1차로 끝내고, 핸드폰 두 번 쓸 거 한 번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그 외 기타 등등..모두 느낌표보고 반성하시길~~
다시 북측 CIQ에 도착했다. 올 떄와 똑같은 통관절차다.
검색대원장교도 이제 무섭지 않다. 엷은 미소를 띄고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수고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라며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무표정---
무덤덤---
다행히 전원 무사히 통과!
군사분계선앞.
오전에 검문하던 군인 2명이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젠 친근감이 들기도 하는데 막무가내로 묵묵부답이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북한초소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길 옆 철로 공사장 중장비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로 노무자인 듯한 북한 주민이 차 뒤에 숨어서 눈만 빼꼼히 내 놓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100m 앞. 남측 마지막 검문장소.
우리 아들들이 안녕히 가시라며 인사를 하고 통과하라고 손짓을 한다. 금강산도 아쉬운 듯 잘 가라며 인사를 한다.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여 다시 출입 통관절차를 밟는다.
아무런 불상사 없이 관광을 마친 셈이다. 맡겨 두었던 소지품과 휴대폰도 찾았다. 가이드와는 이 곳에서 마지막 작별이다. “문보라양! 수고하셨습니다. 안녕!” 한달만에 휴가를 받아 집에 간다고 좋아라 하던 아가씨. 매일 북한땅을 넘나 든다고 한다.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입력되어 있었다. 북한의 암울한 참상이 떠올라 휴대폰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관광버스는 신이 나서 해안은 끼고 남으로 남으로 내달린다. 동해역에 21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지금은 19시가 다 된 시각! 동해의 낙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한 조화가 이토록 아름다울까?
예정보다 빠르게 동해역에 도착하였다.
이 곳에서 기사님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동해역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22: 10분에 출발하는 금강산 관광열차에 오르면 무박 3일 일정은 이것으로 끝이다.
< 꿈을 담은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
어제 우리가 타고 온 무궁화 열차가 그대로 기다렸던 것일까?
승무원들도 어제 같이 오신 그 분들이시다. 배도 부르고 지금부터 할 일은 잠자는 일 밖에..
내일 새벽 05:47분 부산역 도착까진 7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승무원들 고생도 덜어드려야 겠고 몸도 피로에 지쳐 휴식을 취해야겠기에 잠을 청했다.
의자를 뒤로 젖히니 제법 편안하다.
덜컹덜컹~~
어둠을 타고 레일 위를 검은 객차는 속력을 더해간다. 안내방송도 이젠 접었고 가끔 열차 교접관계로 이름모를 간이역에 머물기도 한다.
지정된 정차역에 관광객이 하나둘씩 내린다.
드디어 28일 새벽 구포쯤에서 객실 내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관광객을 깨우는 철도청의 비법이다. 정말 철도승무원들 무사히 관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행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정차!
플랫홈을 빠져나오는데 어깨가 우쭐해진다. 괜히 알아주는 이도 마중나온 이도 없는데 말이다. 직원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아서 그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부산역 광장은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기를 느낄만큼 쌀쌀했다.
우리 일행들 모두 각자 해산!
이번 여행에 수고와 배려를 주신 철도청 관계자 여러분과 서울롯데관광(주), 현대아산 모든 직원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나 자신에게 더욱 감사한다.
첫댓글 명명이님 금강산 다녀오심 축하하고 여행기 잘 읽었어요. 난 언제 금강산 가보나...
금강산?! 저도 가보고싶어용~ㅠㅁ ㅠ 금강산여행에 대한 좋은 정보두 감사^-^ 부럽네요^^
금강산 기행문 문장자체도 걸작이군요 자주방문해 주세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