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배가 불룩하게 나오기 마련이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불룩 나온 배를 '사장님 스타일'이라고 자랑했을 정도. 그러나 더 이상 중년의 뱃살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최근 중년기 복부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에서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내장지방이 많은 중년은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할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내장지방 두꺼울수록 '알츠하이머병' 발병 높아져
나이를 먹으면 근육량·여성호르몬·신진대사율 등이 줄어들면서 뱃살이 찐다. 몸이 노화하면서 호르몬 분비가 줄면 체내에서 지방이나 남는 칼로리를 태워 없애는 근육도 감소해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성장기 때와 달리 지방이 몸에 점점 쌓이게 된다. 특히 복부는 팔다리 등 다른 신체 부위보다 팽창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지방이 축적되기 좋은 곳이다.
나이 들어 뱃살이 나오면 노화가 촉진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중년 이후 뱃살이 늘어나면 3대 실명 질환인 황반변성 발병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한다. 또한 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심뇌혈관 질환·각종 암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중년 이후 뱃살이 늘어나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워싱턴대(University of Washington) 연구팀은 내장지방이 알츠하이머병 초기 증상인 기억상실이 나타나기 15년 전 일어나는 뇌 변화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조기에 확인하기 위해 정상적인 인지 기능을 가진 중년층 인구를 대상으로 체질량지수(BMI), 인슐린 저항성, 복부지방 조직, 아밀로이드와 타우 축적, 뇌 두께 등을 살폈다. 아밀로이드와 타우는 뇌세포 간 소통을 방해하는 단백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의하면 BMI 30 이상이면 비만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평균 BMI가 32인 40~60세 중년 54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대상자에게 혈중 포도당 농도를 측정하는 '포도당 부하 검사'를 통해 인슐린 저항성을 확인했으며, 복부 자기공명영상(MRI)를 통해 피하지방과 내장지방 부피를 측정했다. 뇌 MRI 촬영을 통해 알츠하이머병과 연관이 있는 부위를 측정하여 뇌 부위의 피질 두께를 확인했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은 뇌 양전자단층촬영(PET)을 통해 살폈다.
그 결과, 피하지방 대비 내장지방이 두꺼울수록 전두엽 피질 부위에서 더 많은 양의 아밀로이드가 감지됐다. 즉 내장지방이 많을수록 뇌의 염증 증가가 높아졌다. 내장지방은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메커니즘 중 하나인 뇌 염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50세부터는 알츠하이머병 발병과 연관된 뇌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내장지방과 뇌 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알츠하이머병 초기 증상인 기억상실이 발생하기 최대 15년 전부터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여성보다 중년 남성에서 치매 위험 높아
뱃살 때문에 허리둘레가 엉덩이둘레에 가까워질수록 치매 위험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연구는 또 있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상원·김희진(신경과), 강미라·신희영(건강의학본부) 교수팀과 연세대 예방의학과 김창수 교수팀은 정상적인 인지 기능을 가진 건강검진 수진자 1,77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특히 연구팀은 여성보다 남성에서 이러한 연관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자들의 뇌를 3차원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후 허리·엉덩이 둘레 비율(WHR)과 함께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속 대뇌피질의 변화를 측정했다. 남성의 경우 허리·엉덩이 둘레 비율이 높을수록, 즉 복부비만인 사람일수록 대뇌피질 두께가 얇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허리·엉덩이 둘레 비율이 1에 가까운 사람은 나이와 흡연력, 음주, 당뇨병 등이 대뇌피질 두께를 더 얇게 하는 위험요인이었다.
반면 여성은 이번 연구에서 복부비만과 대뇌피질의 두께 변화가 통계적으로 유의성이 없었다. 서상원 교수는 "균형 잡힌 몸매를 갖는 게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남성들은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뱃살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내장지방' 덜 쌓이게 하고 싶다면 운동해야
내장지방을 빼고 싶다면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우선 설탕, 액상과당 등과 같은 정제 탄수화물 섭취를 삼가야 한다. 탄수화물 자체가 체중감량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특히 정제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중성지방 수치가 올라 내장지방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하루 음식 섭취량을 하루 평균 권장 칼로리(2,500Kcal) 이하로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저녁 6시 이후 야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빨리 먹는 습관 또한 내장지방을 쌓는 지름길이다. 너무 많은 영양분을 한 번에 섭취하면 전신으로 영양분이 가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내장지방으로 쌓이기 쉬워서다.
내장지방을 덜 축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게 좋다.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내장지방이 덜 쌓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만약 식이요법을 지키기 어렵다면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하루 30분 이상 주 5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뱃살을 줄일 수 있다. 내장지방 제거에는 특히 달리, 수영, 자전거 타기 등과 같은 유산소 운동이 도움 된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장기 사이에 낀 중성지방이 잘 연소된다. 운동은 몸에 살짝 땀이 날 정도의 중간 강도로 일 30분, 주 3일 이상 하도록 한다. 중간 강도의 운동을 지속하다 보면 점점 운동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럴 때 내장지방을 태우려면 운동 지속시간이나 강도를 높여야 한다. 고강도 운동을 짧게 반복하는 인터벌 운동이 높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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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리 |하이닥 건강의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