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雪 기념 산행.(김장의날)
중국에서는 소설 후 5일씩을 묶어 3후(三候)로 삼았다. 초후(初候), 중후(中候), 말후(末候)가 그것으로 초후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에는 천기(天氣)는 오르고 지기(地氣)는 내리며, 말후에는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을 명절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눈이 내릴 정도로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한다. 그러나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치므로 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는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첫 추위가 온다.
소설은 대개 음력 10월 하순에 드는데,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로 날씨가 급강하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 전에 김장을 하기 위해 서두른다. 이미 농사철은 지났지만 여러 가지 월동 준비를 위한 잔일이 남는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한다. 또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한다.
한편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대개 소설 즈음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진다. 이날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소설 무렵에는 배를 잘 띄우려 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다음의 손돌바람과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몽진을 가던 때라고도 하고, 조선시대에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仁祖)가 한강을 건너던 때라고도 한다. 사공 중에 손돌(孫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피난을 가는 왕을 모시고 뱃길을 서둘렀지만, 왕이 보아하니 손돌이 자꾸 일부러 그런 것처럼 물살이 급한 뱃길을 잡아 노를 젓는 것이었다. 왕은 의심이 갔다. 그래서 신하를 통해서 물살이 세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고 하였지만 손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은 의심을 이기지 못하고 선상에서 손돌을 참수(斬首)하고 말았다. 손돌은 죽기 전에 억울함을 하소연하였지만 소용이 없음을 알고 바가지를 하나 내놓으며 물에 띄운 바가지가 가는 길을 따라 뱃길을 잡으라고 말하였다. 물살은 점점 급해지고 일행은 하는 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 준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웠다. 바가지는 세찬 물살을 따라 흘러갔으며, 왕을 실은 배도 그 뒤를 따랐다. 무사히 뭍에 내린 왕은 그때야 비로소 손돌의 재주와 충심을 알았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손돌을 죽세찬 바람이 불고 물살이 급해졌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싣고 가던 말의 목을 잘라 제사를 모셨더니 파도가 잠잠해졌다고도 한다. 뭍에 도착한 왕은 곧 후회를 하였지만 손돌의 목숨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덕포진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장지(葬地)를 정해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이때가 10월 20일이었는데, 매년 소설 즈음인 이맘때가 되면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무렵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름은 고향이 없다
“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애초에 정해진 바탕이 없다.”
일찍이 東坡(동파)는 자신의 시에서
“行雲流水(행운유수), 初無定質 (초무정질).” 이라 하였다.
누구도 바다의 고향을 묻지 않는다. 바다의 고향은 강이었고 개천이었고 계곡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황지우 시인은 말했다.
“길은 가다보면 뒤에 있다.”
돌아보면 누구나 자신의 ‘지나온 길’이 보이지만,
앞을 보고 걸을 때 ‘가야했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정처 없는 길이었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란 없다.
오직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방법은 언제나 내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
비록 경로를 이탈한 변방의 아웃사이더에 불과 할지라도 무의미한 인생이란 없다.
세상의 ‘경로’란 것도 세속이 만들어 낸 관습과 문화일 뿐, 모든 인생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고정 불변의 정언명령은 아니다.
모든 꽃이 반드시 봄에 피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며 심지어는 겨울이 돼서야 피는 꽃도 있다.
사과나무와 떡갈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다르듯 저마다 인생의 봄은 이렇게 서로 다른 법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
어차피 세월은 흘러갔고 구름은 소멸할 뿐이다.
바다에게 고향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새는 날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나그네는 갈 길이 남아 있을 때 행복한 법이다.
가지 않은 길이란 갈 수 없었던 길이 아니라 가기가 두려워 회피한 길이다.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후회는 쉬운 길을 선택했던 자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가지 못한 길을 뒤돌아보는 자보다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자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다.
그것이 길을 ‘아는 자’와 ‘걷는 자’의 차이이다.
누구나 인생을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게 살고 싶지만,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삶이 훨씬 더 아름답다.
어쩌면 행복이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목적지를 가는 여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 여정의 한 길목에 서 있다.
루쉰이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도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걷기로 했다.
내 몸의 열기를 계속 간직하고 싶기에 그 불을 계속 지피는 것이다.
👨👩👦👦"식구(食口)란 개념은"
swkor624.tistory.com/m/1927
보건소에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었다. 모래 금요일 아산병원 비뇨기과 검진이 있는 날이라 미리 검사를 하고 오란다.
정발산을 가기위해 들머리로 가는 도중 이곳에서 권순창 박사를 만났다.
그진 1년만의 만남인것 같다.
교수들끼리 일산 세미나에 참석 하려고 시간이 있어 정발산을 다녀오는 길이란다.
8~9명 되는것 같았는데 여러사람에게 소개를 하지만 인사로서 끝내고 그분들은 바삐 그들의 행사장으로 가고 우리는 산으로 올랐다.
오랜만의 만남인데 그냥 헤어져 많이 서운했다.
왠지 오늘은 피곤함을 느껴 정발산을 오르면서 중간 의자에 쉬어 가기도 했다.
나로선 처음이지만 충분한 시간의 여유 때문도 있으리라.
평심루 도착.
우리 부부의 흔적도 담아보고.
흐리긴 해도 북한산이 살며시 보이기도...,
평심루에서,
멀리 보이는 심학산.
정발산 주변의 시가지.
정발산의 정점에서.
추색으로 물든 메타세콰이어.
미니골프장.
마두도서관.
국립암병원 입구.
혈압도 체크하고....,
다음달 8일 암검진 예약도 하고...,
검진일 예약후 귀가.
여래사.
은행에서 용돈 일출후 나는 이발함.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걷기도 많이했다.
GPS 미사용분까지 합하면 9km 이상 걸은 셈이다.
목과 머리(정수리)가 많이 아프고 오른쪽 무릎과 허리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많이도 궁금하다.
영국에 국빈으로 초청된 윤대통령의 외교도 기대하며 중국을 3대0으로 제패한 우리축구가 바로 국력임을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이 제4회 김치의날이다.
매년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세계 문화유산인 김장 문화를 계승하고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지정됐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도 기념일로 제정할 만큼 김치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