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등과 같이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은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당시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안식일에 있어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어느 정도로까지 오해하고 있는지를 잘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실상 안식일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식하신 날로 그 하나님 아버지를 기념하고 사모하며 위하고 그 속에 거하며 동행하고 누리는 날로 조금만 따지고 봐도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에 안식일에 관련되고 제대로 지키는 모든 일들은 본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어떻게든 오직 말씀과 직결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안식을 누리는 것도,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도 진정 같은 연결 선상에 있는 것으로 결국은 모두 말씀, 말씀의 신앙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면 안식일에 다른 그 무엇보다 진정한 말씀의 신앙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고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함이 되며 그 속에 순간순간 거하고 실제로 맛보면서 온전한 안식을 누림과 함께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또한 날마다 순간마다 이 세상 일상에서의 안식을 누리는 것도, 그 전에 그러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부터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되어 영원한 안식, 영원한 본향을 누리게 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하나같이 말씀, 말씀의 신앙과 직결되는 것으로..
처음부터, 사실상 창세 전부터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계획, 약속, 준비, 진행된 것이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나고 누리게 되며 성취될 수 있는 역사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물론 그렇다고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 단독이신 것은 아닌 것으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그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라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안식에 있어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 믿음으로 인해, 의지함으로 인해 값없이 참예케 되고 실제로 거하게 됨이 가능한 것이며, 그렇기에 마태복음 12장 8절에서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께서 정말 안식일에 주인이 되실 수 있는 분인 것이고..
더 나아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으로 조금만 통찰해 봐도 안식과 관련된 모든 일들, 모든 은혜들은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한 번 더 강조하면 당연히 안식과 관련된 모든 사안들마다 전적으로 말씀과 직결되는 것이고, 참으로 말씀의 신앙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안식과 관련된 은혜들이 더욱 더 강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께서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안식일에 고통과 절망과 어둠 가운데 있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치료와 생명과 구원의 일이야 말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가장 합당한 것이면서 안식일에 있어서도 가장 합당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사실은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어 온전한 안식,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도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으로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더 이상과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실제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어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안식을 생생히 누리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풍성히 누리게 된다는 것도 다름 아닌 더 이상과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 대신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찬미하고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매사에, 모든 일들, 날들에 있어, 특히 안식일, 또한 주일에 있어서야 말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할 때 가능한 것이고 생각 이상으로 직결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요한복음9:13~1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30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