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어부들과 그들의 아내들이다.
항구에서 어판장에서 그들과 이야기 하고 술을 마시고 일을 하고 그들과 같이 노래하고 논다.
작년 여름 어느 날인가 이곳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부산 갈매기, 줄여서 갈매기라고 불려지는 30대 여인이다.
그녀는 방파제 어디선가 어부들과 우연하게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그들의 손에 이끌려 이곳 어판장 앞 단란주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곳 주인인 어판장 이동식 커피가게 누나와 절친인 나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녀는 술집여자인 셈이다. 어부들과 혹은 그들의 아내들과 그녀는 노래방에서 노래도 잘 불렀고 춤도 잘 추었다.
뿐만아니라, 그녀의 사생활은 온통 어부들과 함께였다. 나는 그녀와 오빠 동생 사이가 되었다.
이곳 묵호항은 텃세가 없다. 과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오징어배를 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묵호항 산동네에 무허가 집을 짓고 정착을 했다.
갈매기 그녀의 부모가 부산 영도 산동네에 그렇게 정착을 하게 된 것과 같다. 어디선가 흘러온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가 아픈 사연을 안고 왔기에 누구라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이다.
그래서, 과거를 알 수 없는 술집 여자 부산 갈매기도 이곳 사람들과 아무런 스스럼 없이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부분은 육,칠 십대인 이곳 사람들은 그녀의 나이 조차도 의식하지 않는다.
외지 사람들이거나 신분과 지위를 따지지 않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특성이다.
천국을 불교에서는 정토(淨土)라던가. 천국이란 사실 별거 아니다.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 아닌, 마음 편한 곳. 현실 세계에서도 인간은 정토를 만들 수 있다.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천국은 어디일까?
돈 많은 부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불교 역사를 봐도 정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었다. 도교에서의 道가 머믈러 있을 수 있는 곳도 역시 그렇다. 가난하고 못나고 불쌍하고 모자란 곳에 항상 道가 있었다.
불교와 도교는 통하는 곳이 많다. 불교의 정토가 道가 통하는 곳이고, 그곳이 천국이다.
항구에서의 노동은 그들의 삶과 비슷하다. 지독하게 일하다가도 지독하게 놀기도 한다. 지독하게 벌기도 하다가 지독하게 가난하기도 한다.
남편은 험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아내는 항구에서 그물을 손질한다. 그리고 그 고기를 팔기도 한다.
일손이 부족하여 외국 선원도 많다. 외국 선원들 조차도 이곳에는 이방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어부의 아내를 엄마라고 부른다. 갈매기 그녀는 인도네시아 선원들 이상으로 그들의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항구에서는 일 하다가 술마시고 일하면서 놀고 노래부르고, 거기서 더 흥이 나면 커피 누나의 노래방으로 남편들과 아내들이 어울려 몰려가서 갈매기 그녀의 춤과 노래에 이끌려 질펀하게 노는 것이다.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는데, 오히려 새벽에 일을 나가는 관계로 낮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대낮부터 술이 취해 횡설수설해도 흉이 되지 않는다. 거지처럼 옷을 입고 다녀도 거칠 것이 없다.
노동의 조건은 이렇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심지어 알바생들 조차 조건을 따진다. 그러나 이곳은 조건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력서 같은 것도 없다. 열심히 어떤 조건에서도 일를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절박하면 그만인 것이다. 절박함만이 노동의 조건인 셈이다.
그리고 그 노동의 결과물은 이곳의 관습에 따라 나누어 가진다. 서로 열심히 일 할 수 밖에 없다. 눈치도 보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필요 없다. 근로기준법도 필요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보다 뽕짝과 지루박이 어울리는 곳이다.
진보고 보수고 좌파고 우파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런 것들은 개나 갖다 주면 된다.
이곳은 천국이기 때문이다. 淨土이기 때문이다. 천국이 따로 있는가. 멋대로 살면 천국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