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국민(초등)학교시절...그러니까 구한말...은 아니고 1960년대 중반이지요.
당시 빡빡머리를 깎을 때 이발소 요금이 25원정도인데, 2.5Km정도 떨어진 곳의 야메이발관에서는 반값 정도인 15원에 깎을
수가 있었습니다.[할부나 카드는 안됨]
여기서 야메이발관이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본어의 "그만두다"라는 뜻의 야메루(やめる)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즉 의학을 하다가 도중에 그만둔 사람이 시술을 하는 경우 야메의사가 되는 것이지요.
다시 이어서...단지 면도와 머리를 감겨주지 않을 뿐 시원하게 머리를 깎는 것은 똑같았고 비용절감 10원은 요즈음으로 치
면 10만원의 위력을 능가하는 엄청난 부의 축적이 됩니다.
참고로 당시에 두개만 먹으면 한끼 식사가 해결될 수도 있는 계란빵(호두과자와 같은 모양)이 1원에 두개 였습니다.
그런데... 논두렁에 파헤친 흙때문에 발이 빠지는 어려움을 겪고 야메이발관에 이르렀을 때 이발사가 부재중일 때가 많았다
는 점이 아쉬웠고, 늘 술에 절어있는 야메이발사가 낮잠을 자고 있노라면 "삼고초려"와 "유비가 낮잠자는 제갈량을 깨우지
않았던" 고사를 실천하기도 했지요...10원 때문에...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머리를 깎는 과정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술을 좋아하던 야메이발사는 머리카락을 깎으면서 거의 반절은 뽑아버리는 수준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격언을 가슴에 새긴 것도 초등학교 시절이라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머리카락이 뽑히는 동안 눈물을 반 양동이 정도 흘리면서도 황금벌의 수확을 앞둔 농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
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기가막히게 야메이발을 한 것을 알아맞추셨습니다.
빡빡머리 군데군데에 안테나가 남아있기 때문이었지요.
깎으면 자라고 또 깎으면 자라는 머리...그리고 야메이발관의 추억...
그러나... 어려운 백성을 살펴야 할 정치만큼은 야메이발 처럼 해서는 안되겠지요!
$$$ 빡빡머리에 우뚝 솟은 안테나처럼 날마다 튀어 나오는 슬픈 소식들... 답답한 18사략 올림 $$$
첫댓글 ㅋㅋ. 재미있는 글이군요....야메이발 하니, 야메치과도 생각납니다....그 당시에는 정규면허 보다는 서당개 풍월처럼 어깨너머로 배운 자칭 돌파리들이 많았지요.....돌파리 치과의사에게 치아를 한번에 서너개 뽑고 죽다 살아난 적이 있는데~ 요즘은 그런 돌파리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