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회의 보물
바람이 무섭게 분다.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가 집이 통째로 날아갈 거 같다. 세상 마지막 날이 이렇지 않을까? 예수님 말씀대로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마르 13,24-25).” 이 말씀을 하신 지 2천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대로지만, 요즘 기후 재앙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 핵폭탄 말이 나오는 걸 보면 그날이 멀지 않은 거 같기도 하다.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 땅에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떨어졌던 거처럼 온 세상에 엄청난 재앙이 덮친다면 내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권력과 재물도 다 사라지고, 눈을 홀리고 마음을 훔치던 모든 것들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없어지면 말이다.
그런 상상이 나를 무섭게 하지만, 그래도 어디 나의 죽음만 할까? 죽는데 부귀영화나 지구멸망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건 내가 하느님 앞에 선다는 사실이다. 재물이나 그 알량한 지위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는 이들도 함께 가지 못한다. 오직 나 홀로 하느님 앞에 선다. 나의 선행과 의로운 행위들만 나를 따라올 거라고 하는데, 그것들은 이미 하느님 안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까지 전부 다 남아 있다. 여기서 들었던 모든 것이 남김없이 사실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내게 위세를 부리고 내 눈을 홀리고 마음을 훔쳐 가던 모든 것들은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 말씀만 남는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31).” 믿든 안 믿든 그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어도 이 말씀 그대로 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라우렌시오 성인 말처럼 가난한 사람이 교회의 보물인 이유다.
2016년 이후로 오늘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낸다. 전례력에 축일이나 대축일이 있는 게 모든 날이 축일이고 대축일이란 걸 알려주려고 그런 거라는 우스갯말처럼 주변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늘 둘러보라고 그것도 연중 마지막 주일에 가난한 이의 날을 지내는 이유일 거다. 나라님이 아니라 구세주 예수님도 없애지 못한 가난을 우리가 무슨 수로 극복할 수 있겠냐마는 내가 행하는 자선과 애덕의 목적은 가난 타파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임을 기억한다. 그들이 내가 주님께 잘 해드리게, 하느님을 사랑하게 도와준다. 기도가 중요하지만 그 기도가 자기에게만 향할 때 그런 게 나를 구원할 리 만무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말한다.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 ……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도 아닙니다”(「복음의 기쁨」, 2항).
전쟁을 왜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참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강대국은 지구를 살려보자고 맺은 기후 협약을 안 지키거나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거기서 탈퇴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나도 이렇게 안타깝고 화까지 나는데 하느님은 왜 가만히 계시는 걸까? 하느님의 이 침묵은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해 교종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환영하고 포용할 때마다 하느님의 이 침묵이 깨진다고(담화문 7항)’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가난한 이들은 아직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 많습니다. 부를 최우선시하고 자주 물질 재화라는 제대 위에 인간 존엄성을 희생 제물로 바쳐 버리는 문화 속에서, 가난한 이들은 시류를 거슬러 헤엄치며, 삶의 본질이 그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분명히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진정성은 만남과 곁에 있어 줌으로 드러나는 애덕 안에서 확인됩니다.’라고 가르친다. 이미 야고보서에 기록된 대로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몸이 되고, 돈이 되고, 그분의 마음이 되는 거다. 가난한 이들은 나를 하늘나라로 이끌어 준다.
예수님, 가난한 이들 안에서 아직은 주님 얼굴을 뵙지는 못하지만, 저를 향한 주님 마음과 주님이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는 압니다.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 제가 이 세상에 사는 이유라는 걸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가난한 사람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 이콘을 전하면 이 이콘이 그들을 아드님께로 이끌어 준다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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