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Kairos)와 시절인연(時節因緣)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때(Kairos)’는 불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된다.
‘하나님의 때(Kairos)’는 하나님이 이 세상만물을 운용하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어떤 일이나 현상 등이 일어나는 때를 말한다. 이 ‘하나님의 때(Kairos)’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고 인간은 다만 기도하며 그 때를 기다릴 뿐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은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도 내포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정해지는 시간 즉 ‘시절인연’은 바로 자연을 창조하시고 운용하시는 하나님이 정하는 시간 즉 ‘하나님의 때’가 되는 것이다.
*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시절인연(時節因緣)의 본래의 뜻은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용어다.[1] 명나라 말기의 승려 운서주굉(雲棲株宏)이 편찬한 '선관책진(禪關策進)'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로, '시절인연이 도래(到來)하면 자연히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현대에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통하며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도 내포한다.
불교의 인과응보설에 의하면 아무리 거부해도 때와 인연이 맞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말을 남겼다. 즉, 인과 연이 합하여질 때가 인연이 시작되는 때이고, 인과 연이 흩어질 때가 바로 인연이 끝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또, 윤회를 믿는 불교에서는 전생이나 현생에서 지은 업(業)에 의해 돌아가는 인과의 법칙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을 조성하면 인연이 일어난다고 본다. 즉, 우리가 우연의 일치로 일어났다고 보는 모든 일은 사실 모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원인이 있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절인연이 맞으면 아무리 거부해도 인연을 만들게 되며, 시절인연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인연을 맺으려 애를 써도 인연을 맺을 수 없게 된다. 인연이 맞아 일이 잘 풀리다가도 어느 때부터 잘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맞던 사람과 자꾸만 엇나가게 되면 그 때가 바로 인연이 다한 시기라고 한다. 다만, 세상만사를 '시절인연'이라는 4글자 단어에 맞추어 보게 되면 잠시 오는 위기조차 넘기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되므로 노력이라는 것도 해봐야 훗날 그것이 그저 잠시 찾아오는 시련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것이 인연의 끝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만날 수 없던 인연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는 인연이 없었던 거야."라고 말하며 헤어진 인연에 대해서는 "우리 인연은 딱 거기까지였다."라고 말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맞는 이야기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은 운명이라는 말과도 비슷한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을 만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업에 의해 탄생한 결과는 우리가 보기엔 우연의 일치지만 어떻게 보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절'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2]도 비슷한 말이다. 이는 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만나게 되며, 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만날 수 없다는 말로 중국의 오랜 속담이다.
[1] 여기서 인연은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물의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는 결과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었는데, 현대에 와서 인연이라는 말이 대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말로 고착화되었다.
[2] 원(元) 잡극《張協狀元》에서 유래하였고 《水滸傳》에 쓰여서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