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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당
총재(제15대 대통령 후보) 허경영 (53세)
허경영은 1950년 1월 1일 중랑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태어나 전쟁고아가 된 뒤 초등학교때 농부의 양아들로 있으면서 주역 등 30여권의 유교서적을 독파하고 야간중학교시절 승려의 양아들이 되어 팔만대장경을 독파하고 야간고등학교때 목사의 양아들이 되어 성경을 모두 배웠으며, 야간대학시절 한국첫째 재벌의 양아들이 되어, 한국첫째 그룹을 뒤에서 움직이며 노동조합이 생기지 않도록 노사화합비결을 창안하여 지금까지도 그룹에 노동조합이 없게 했으며, 그후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이 되어 방송통신대학, 새마을 운동, 소련의 한국 핵미사일기지인수 등 100여건의 세계가 놀랄 만한 정책을 관철시키며 박대통령과 함께 고도경제성장을 주도해온 실제인물이다. 그가 박대통령과 20대에 국가경제개발을 주도해온 그가 때묻은 기성 정치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3000명의 살생부를 왜 이 시점에 공개하며, 이 역사의 비밀공개와 함께 대통령의 물질혁명에 이어 정신혁명을 마무리하고 부패한 정치꾼들에 의해 빼앗긴 우리 국민의 가정의 평화와 사회의 평화를 새마을정신으로 반드시 회복하여 21세기의 새나라 운동을 창안하여 남북통일과 아시아 연방통일과 세계평화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 예정된 지도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2의 박정희 ! 허경영(53세) 그는 누구인가?
허경영의 가장 큰 결점은 그가 박대통령 보다 더한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부정부패로 이 나라를 망친 정치, 종교, 재계의 3,000여명의 살생부를 내세우며 299명의 국회의원이 몽땅 사라지는 길만이 이 나라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과 함께 1997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의 KBS, MBC, SBS 대통령 후보 합동 TV 토론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열광적 박수와 26%의 여론지지를 얻었던 허경영(53세)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 !
제 15대 대통령 후보로 나온 허경영 총재의 TV 합동 토론회 장면
1979년 박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를 따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공화당을 버리고 뿔뿔이 돈과 명예와 일신의 안일을 도모하기 위해 흩어져 버렸으나 20대에 박대통령 밑에서 10년간 정책 보좌역을 하면서 소련의 핵 미사일 기지인수, 방송통신 대학설립, 새마을 운동건의 등 100여가지의 정책을 직접 건의하여 실현시키며, 국가경영을 경험한 허 경영(53세). 1968년 체코의 독립 운동때 체코를 침공한 브레즈네프의 팽창주의 전략과 1969년 닉슨의 「아시아인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소련과 반대되는 축소주의 전략인 브레즈네프 독트린과 닉슨 독트린의 역학관계를 절묘하게 이용하여 소련의 블라디보스톡 아래 가무버 핵미사일기지 한 개를 매수할 수 있었으며 그 작동 스위치는 박 대통령이가지고 있게 되었다. 또한 소련은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가 부활할 것을 염려하여 1975년4월 17일 공산화된 캄보디아에 이어 4월 30일 공산화된 월남 캄단항의 핵 잠수함기지와 불라디보스톡 잠수함기지와의 벨트를 형성하려 했는데 제주도가 방해되자 제주도를 빌려줄 것을 제의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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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허경영은 박 대통령을 설득해 제주도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 백록담에 물을 채우고 인공폭포를 만들어 그 폭포의 물로 양수발전소를 만들면 세계적 관광지가 되고 1000만KW/h 정도의 전력을 생산하여 제주도의 화력발전소와 전국의 발전소를 다 없앨 수 있다는 제의와 함께 빌려주지 못하도록 하고 오히려 소련의 핵기지 인수를 건의하여 1975년 10월 결국 성사 시켰던 것이다. 때마침 1975년 4월 캄보디아의 월남이 공산화 되자 김일성이 브레즈네프를 찾아갔는데 남침을 거절하자 소련과 군사 동맹관계를 해체하고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남침준비를 완료했을 때인지라 소련은 일본과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우리 나라가 지리적으로 필요했고 미국은 중국과 소련과 연결 되어있는 북한이 필요할 때였으므로 미군 철수라는 악재가 소련과의 연결을 가능케 해주었으며 남침 일보직전인 1975년 10월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를 인수할수 있었다. |
그후 허경영은 20년간 박정희사상 연구소와 민주공화당을 지금까지 지키며 박대통령이 이루어 놓은
경제를 부정부패로 경제 식민지를 만들고 수많은 가정을 파괴시키는 천인공로 할 기성 정치인들을
보면서 반드시 박대통령의 물질 혁명에 이어 정신 혁명을 마무리 할 것을 다짐하며 새마을 정신의 계승발전과
새로운 시대 창조를 위해 박대통령 밑에서 민주공화당의 의장을 지낸 백남억 현 공화당 고문과 15년간
박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장국진 현 공화당 고문, 박 대통령의 경호실 1급 보좌관을 10년간 지낸
이명화 현, 민주 공화당 고문을 모시고 옛 공화당의 맥을 오늘에 이어오고 있다.
공화당 허경영 대통령 후보가 92년 10월 18일 잠롱 방콕시장과 함께 원주의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해 김용기장로 흉상 앞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시장은 이때 36명의 태국 국회의원과 함께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1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태국국왕으로부터 토지 100만평을 하사받아 잠롱농군학교 교장을 병행하고 있다. | |
소련의 블라디보스콕에서 한국의 핵미사일기지가 있는 가무버의 OO기지까지는 블라디보스콕 항공사의 미러헬기(MI-8)로 한 시간쯤 걸린다. 미러헬기의 동체에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AIR)이 새겨져 있다. |
박근혜의원과 함께한 허경영 총재 |
허경영은 '무궁화 꽃은 지지않았다'라는 한국이 나아갈 21세기의 비젼을 밝힌 책을 내어 놓았는데 국민적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최근 박대통령이 서독에 간호원과 광부를 그리고 월남과 사우디 등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내어 그들의
목숨과 바꾸어온 달러로 건설한 포항제철의 주식과 그 외에도 대부분의 대기업 주식의 50% 정도를
최근에 해외에 매각했으며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연간 80조나 되는 사교육비를 지출하여 지하자금으로 유입되므로서 경제파국을 조장하고 부정부패로 망친 IMF와 2000억불의 빚을 갖는데 급급한 현실을 보며
이미 1000여명의 기성 정치인의 살생부를 준비해놓고 있다.
또한 오늘의 젊은이들의 건강과 인내의 한계를 요구하며 젊은이들을 병력과 학업과 구직이라는 3중고에서 방황과 탈선을 조장한 정치인 사학재단과 교육자들 그리고 경제 학자들에 대한500명의 살생부를 준비해 두고 있다.
그래서 허경영은 그의 10대혁명 공약에서 젊은이들의 지속적인 학업을 위해 군 생활 6개월로 단축하고 일반 지원병을 늘리는 즉 징병제도를 모병제도로 점차적으로 바꾸어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며 강도 높은 교육 혁명을 내어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박근혜의원과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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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 대통령 기념사진관을 관람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과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
허경영은 기득권 층의 엄청난 비난을 각오하고 이 책으로 한반도가 세계를 변화 시키기 위해 수면 위로 나서기 시작했다. 허 경영 그는 참으로 박대통령과 함께 독일이 150년걸린 라인강의 기적의 경제 성장을 15년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이루어 낸 젊은이로써 이 땅의 경제와 도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하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만약 박대통령이 조금 더 집권 했더라면 우리는 외국에 돈을 빌려주는 채권국이 되고 일본경제를 앞질렀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직자로 알려진 태국의 방콕시장 잠롱(좌측)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 허경영 민주당 총재가 잠롱 청백리 방콕시장의 방한을 안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측은 박권상 KBS사장 좌측은신중식 시사저널 사장 |
그는 국민 개개인이 가난에서 해방되는 것이 곧 인권 보장이요, 민주주의가 가능해지는 첫 걸음이라고 보았다. 박대통령은 경제는 내팽개치고 미국식 민주주의만 외치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한국식 민주주의보다 경제부강을 주장했다. 즉 나라가 부강해지면 중산층이 생기고, 중산층이 많이 생기면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민주주의와 통일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 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못배우고, 못배우기 때문에 가난해야만 하는 악순환을 박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다. 국가 혼란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루어 낸 사회지도력과 통솔력, 경제 발전의 업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라고 해서 어찌 잘못이 없었겠는가. 허경영은 3선 개헌을 반대했으며 청룡상이던 박 대통령에게 청룡은 가난의 먹구름인 보리고개를 걷어낸 뒤 황급히 떠나야 하며 경제 개발과 지도자 개인의 청렴을 핑계로 장기 집권이 합리화 될 수 없다는 하늘의 뜻을 강조하며 1975년부터 사회를 권고했었다. 박대통령 개인은 청렴했지만 장기집권 이다보니 권력내부에 어찌 인권 탄압과 부정부패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박대통령의 청렴은 필리핀등 다른나라의 독재자들과는 달리 국가 경제를 후퇴시키지 않고 발전 시키겠다는 것은 박정희 지지자와 박정희 반대자들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독재자는 미국이었으며 박대통령은 한미 미사일 협정, 한미 한정협정, 국군통수권, 핵우산, 종교우산, 경제우산, 문화우산 등 미국의 일방적인 독재에 항거하는 민족주의자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박대통령이 살아 돌아온다면 박대통령 서거당시 1억불이던 외채가 2000억불이 되어있는 것과 1조원이던 농어민 부채가 30조가 되어 있는 것과 IMF와 도덕타락을 보면 과연 오늘날의 지도자들 중의 몇 사람이 살아남겠는가? 5.16혁명당시 북한이 우리보다 전력, 국방, GNP가 10배나 앞서 있었지만 박대통령의 청렴성의 감동한 우리국민들이 '잘 살아 보세'라는 세계적 새마을 운동에 동참하여 일어섬으로서 전세계에 새마을 운동을 전파했으며 혁명 당시 61년 1천만불이던 수출을 60년대말 1억불, 70년대말 10억불을 기록해 80년대 100억불, 90년대 1000억불의 기틀을 만들었던 것이다. 박대통령이 평소에 염려하던 한국식 민주주의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말은 결국 민주화를 내세운 두 김씨들의 집권이후 부정부패와 도덕 타락 IMF로 인한 경제적 몰락으로 나타났다. 허경영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TV토론에서 한국식 민주주의만이 이 나라의 정치와 도덕을 살리는 유일한 길 임을 시인한 바 있었다. 그는 3000여명의 살생부로 사회 지도자를 도려내는 것이 그들의 자손과 우리나라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장조하여 열광적인 26%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허경영이라고 해서 2000년대의 지도자가 되면 대대적인 사면과 화합을 내세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방법은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이 써 왔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진정한 국민적 화합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정하고 평등한 사필귀정과 결자해지의 추상같은 심판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4천7백만이라는 우리국민의 뿌리에서 온갖 사회병리현상의 싹이 계속 자란다면 그 나무의 싹이 되는 3000명의 지도자를 잘라 내는 것만으로 되겠는가. 썩은 정치호수의 물을 정화시키려면 4700만이라는 흘러 들어가는 물을 정화부터 해야 했기에 허경영은 먼저 "무궁화 꽃은지지 않았다."와 "3000명의 살생부(제2권)"을 내어놓게 된 것이며, 국민평생교육과 교육혁명 공약을 내어 놓았다. 36세에 죽은 진시황제가 무모하게도 만리장성을 만듦으로서 오늘날 12억 중국인이 매년 1500억불의 관광 수입으로 굶어 죽지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성을 쌓으며 70만명이 죽지 않았던가. 미래지향적인 지도자는 당대에 모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무모한 계획을 세우는 어린 진시황제를 보고 그의 조부 효문왕은 "영웅이란 억지를 쓰고 그 억지를 관철시키는 사람이다."라고 했듯이 허경영의 3000명의 살생부와 국가개혁의 계획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토양속에서 한 사람의 선지자, 선각자, 선구자가 발을 붙인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이런 정서 속에서 정치 개혁을 꿈꾸던 수많은 선각자들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갔지만 허경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민에게, 기득권 정치세력에게 언론에게 왕따 당하기를 꺼리며 개혁을 꿈꾸지 아니하는 방관자적 한국 정치풍토에서 세인들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단적이고 혁명적인 지도자의 길을 택한 허경영이야 말로 계란으로 바위에 부딪히더라도 하늘이 준 소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 자살을 했겠는가? 일본군의 화살을 맞았다며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가슴을 찔러 자결을 한 이순신 장군이 만약 자살을 택하지 않고 전쟁에 승리한 채 한양으로 돌아왔더라면 임금이 되려했다는 누명을 씌워 3족을 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승리하자 이내 자신의 자결만이 모함하려는 기득권 세력으로 부터 부모와 3족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새 인물의 등장을 저지하는 기득권들의 음모의 연속이었다. 원효대사를 땡중에 비유한 우리의 양반적인 사고 방식, 붕당적 사고 방식과 마치 예수를 미치광이로 처형한... 유대인 기득권 세력이 오늘날까지도 전통적 엘리트들에 의해 이 땅의 젊은이들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죽이고 애국과 국민의 병역 의무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등 사회를 고쳐 보겠다는 선각자에 대한 비난에는 세계 제 1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통적 지식인들은 기득권유지와 붕당적 이익을 쫒는 소아병적이고 추잡한 행위를 계속하며 교육과 정치를 망치고 가정과 국가의 경제와 민족의 혼을 말살하며 우리 민족을 무장해제 시키고 말았다. 그들은 허경영이 낮에 일하고 남이 잠자는 밤에 야간 중, 고, 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얻은 학벌을 별 볼일 없는 학벌로 일축하고, 일류병을 없애기 위해 학벌을 밝히지 않는 그의 이력을 보고 비난할 것이다.
방콕의 잠롱시장에게 허경영 후보가 동양화 50점을 선물하고
있다. 가운데 흰 양복이 허경영 후보. 좌측 끝은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이었던 서경석 목사 |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세계평화복지 대상을 수상하는 허경영 공화당 총재와 공동 수상자인 독일 핵 과학자 THOMAS L.HWA씨(우측)와 미국의 유진벨 재단이사장인 STEPHEN W. LINTON시(우측끝). 호주의 의사인 TRECY. MARYROSE씨(우측중간). 중국의 길림성 장애인 연하회 이사장인 리희영(좌측)씨. |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서 박지만 씨와 허경영 총재 | 개인의 돈으로 3만5천 명의 불우자, 걸인, 무의탁자를 보호해온 허경영 대통령 후보가 그들의 애로를 듣고 있다.(O표가 있는 잠바차림이 허경영 대통령 후보) |
허경영의 출생
1950년 1월 1일 허경영
대통령 후보가 태어난 서울 중랑교 철길 아래의 움막이 있던 곳 그래서 허경영 (許京寧)의
이름 가운데가 서울경(京)자가 들어 있게 되었다. |
허경영 총재의 어머니가 6.25사변도중 태어난지 6개월된 허경영총재를 서울에서 데리고 내려와 살게된 지리산 부근의 지수마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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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許京寧)
이름은 아버지의 옥중 유언
서울은 왜 세계적인 수도인가? |
세계 역사는 민주주의라는 절차를 밟지만 그 역사의 수레 바퀴는 단 몇 사람에 의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00년 4월 13일 총선에 215명의 민주 공화당 후보를 준비하였으니 국회의원 후보등록 얼마전부터 청와대에서 진행되는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본 허경영은 여당 견제표가 야당으로 몰릴 것으로 보고 그 자신과 모든 후보의 출마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몇몇 후보가 끝가지 출마하기도 하였으나 이 책과 「3000명의 살생부」가 1250만부 판매를 돌파하여 광범위한 국민지지 여론이 있기전인 4.13일 총선은 시기적으로 민주공화당의 바람을 일으키기는 무리였다. 또한 여야 국회의원 후보들의 엄청난 물량공세와 자원봉사들을 유급으로 고용하고도 선거 비용을 개인당 6775만원이라는 구의원 선거비용도 안되는 돈을 썼다고 모든 후보가 신고한 것을 보고 또 한번 우리 국민과 사법부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보며 이번 당선자 대부분이 유감스럽게도 허경영의 3000명의 살생부에 들어 가게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법망은 피해 나갈 수 있어도 머지않아 닥쳐올 사필귀정과 결자해지라는 하늘의 공정하고도 추상같은 심판을 결코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허경영의 책은 2002년 대통령선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는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이변이 일어날 것이다. 1997년 대선때 수없이 당을 옮기며 신의를 저 버린 누구나 다 알고있는 대권후보. 국가를 동원한 불법 대선자금 연루 대권 후보들이 대선시민연대의 강력한 낙선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박 대통령 이후 20년간 민주 공화당을 지켜오고 있는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예상을 뒤업는 국민의 선거혁명으로 당선되어 세계의 정신사적 물질사적 위기가 인도의 시성 타골의 말대로 한반도에서부터 뿌리 뽑혀 나가게 될 것이다. 허경영은 IMF로 우리의 흔들리는 가정과 갈 곳없는 어린이들을 보며 우리 국민이 더 이상 정치의 피해자가 되지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세웠으며 최우선으로 10대 혁명공약을 들 수 있다.
허경영은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에서 그 동안 강대국에 의해 우리 국민이 잘못알고 있던 모든 것을 밝혀 놓았다. 박대통령을 없애고 대통령을 노린 차지철의 쿠데타 기도의 전모와 나의 건의에 의해 1975년 10월 소련 블라디보스톡 아래 가무버에 있는 핵미사일 기지를 박 대통령이 인수하게 된 경위, 그리고 김형욱 죽음의 완전공개와 김재규와 미국의 박정희 제거 계획, 김대중선생의 진짜 납치범, 김재규 사형집행의 진실 등 세계가 놀랄 만한 수 많은 역사의 미사가 밝혀져 있다.
작금의 정치적 타락, 경제적 불안, 빈부격차, 사회적 무질서, 도덕적 해이, 교육의 실종, 부패의 만연 등 고질적인 문제들은 이제 평범한 처방과 기성 정치인들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근본적인 치유책이 있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병은 선지자, 선각자, 선구자적인 지혜와 천지조화와 천문지리를 꿰뚫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정치가 정치의 기본적 과제인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 각자가 스스로 해결해 보고자 동분서주 하다보니 약육강식의 동물적 본능이 사회질서와 도덕을 앞서게 되고 청소년들을 그 희생의 제물로 만든 것이다.
혼탁과 불안정과 불투명과 불공정하고도 불평등한 각종제도와 잣대 속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확대되고 상대적 박탈감에 희망을 잃고 파괴되는 가정과 대규모로 양산되는 불우 청소년을 보며 허경영총재는 배고프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하늘을 보고 통탄하고 또 통탄했다.
자기 이익만을 철저히 계산하지 않으면 가족을 지켜 나갈 수 없는 이 각박한 계량적 사고 앞에서 개인의 양심, 사회적 양심, 사회적 정의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극단적 이기주의!
단체와 사회 국가를 생각하지 않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환경과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극단적인 금전지상주의!
이러한 세기말적인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나 그 첫 번째는 우리 국민을 이끄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정의보다는 권모술수가 승리하는 이 사회를 보면서 허경영은 이제 하늘이 그에게 준 소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의식주라는 인간의 기본적 본능이 해결되지 않을 때 모든 가치관의 중심은 본능 해결에 귀결될 수 밖에 없게 되며 사회 정의가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동물 본능적 사회가 되어 부익부 빈익빈이 확산되며 사회공동체 의식과 도덕이 붕괴되고 수많은 범죄자가, 불우자가 양산되는 정신사적 위기의 도미노 현상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이 세계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아직도 굶어 죽어가는 인간의 먹는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는 부작위의죄(不作位의罪)를 범하는 직무 유기자들이라니 더 이상 기성 정치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허경영은 100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불가사의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이해 할 수 없는 일로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네 살 때 웅덩이에 빠져 물에 떠 있는데 애절하게 「이리와 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서 솔방울을 따러 소나무에 올라 갔다가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에서 옷이 걸리어 사라 났던 일, 독사에 물리고 벌떼에 쏘여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다가 이상한 현상을 보고 다시 깨어난 일, 지리산의 경사진 길을 나무를 쥔 채 날아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데 살아난 일, 소를 먹이다가 새끼를 밴 어미소가 밭 뚜렁에 미끄러지는 것을 아래에서 받치다가 소에 깔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일, 서울에 와서 야간 중학시절 엑스트라로 영화 촬영현장인 도봉산에서 바로 얼굴 앞에 폭약이 터져 10여미터 공중으로 올라 갔다가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일 야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홍제동 산꼭대기에 2인용 군용 천막을 치고 학교를 다녔는데 밤중에 잠을 자는 도중에 눈보라에 천막이 날아가고 없어서 찾아다니다가 절벽으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의식을 잃었던 일, 추운 겨울 천막속에서 잠을 자다가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어 버스 안에서 의식을 잃었다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에야 깨어난 일,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공사장에서 벽돌을 지다가 다치자 할 수 없이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3일동안 연거푸 피를 뽑아 매혈을 했는데 세 번째 피를 뽑고 나오다가 위생병원 잔디밭에서 의식을 잃었던 일, 야간 고등학교시절 155번 버스 종점에서 버스 정비공으로 있을 때 버스 안에서 잠을 자다가 끌어안고 잠자던 전구에서 이불에 불이 붙어 불타는 버스 안에서 질식했던 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려다가 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김으로서 허경영은 남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그 동안 3500여명의 불우자를 돌보며 방콕의 잠롱 시장과 함께 의형제를 맺고 세계인류 평화상을 받는 등 그늘에서 소외된 자들을 남 몰래 도와 왔다.
그러나 그는 잘 알고 있다. 부분적인 봉사만으로는 날로 늘어가는 불우 청소년과 문제 가정과 물질사적 정신사적 위기의 뿌리를 차단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제 이 시대의 청소부가 되고자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와 「3000명의 살생부」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워싱턴에서 박근혜의원과 환영식에 참석한 민주공화당
허경영 총재 |
워싱턴에서 박근혜의원과 환영식에 참석한 민주공화당 허경영 총재 |
2001년 1월 18일 미국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좌측은 정부대표로 참석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허총재의 우측은 재계대표인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 좌측끝은 재계대표인 손길승SK 회장(워싱턴에서) |
미국의 공화당과 한국의 공화당이 워싱턴에서 2001년 1월 23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허경영 공화당 총재가 연설을 하고 있다 |
부시취임식에서의 부시대통령부부와 체니부통령부부 앞에 서있는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 부시취임식에서의 부시대통령과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
부시취임식에서의 부시대통령과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
허경영과 박 대통령의 구사 일생
책을 읽은 독자들이 보내온 87만여통의 격려 편지와
E-MAIL 내용중 공통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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