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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안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 가운데의 거함과 누림을 의미합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과 의미 자체가 절대 진리이자 절대 의이며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이고 근본이며 실제인 것이고, 바로 그러한 말씀으로 존재, 창조,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인이시자 오직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통치하시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어쨌든 전지전능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친히 말씀으로 온전히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기에 그 나라 가운데 거하면 그 자신의 인간적인 힘과 세상적인 방법들로 고생할 것이 없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은혜와 능력들이 넘치는 것이며, 진정 바로 그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힘주시고 응답하시며 예비하시고 책임져 주시며 대신 싸워 주시고 필요하면 기적까지 베풀어 주시면서 진정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것이기에 우리 인생들이 생각하고 소원할 수 있는 모든 일들에 있어 안식 같은 최고의 상황이 실제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안식에 있어서 완전하고도 영원한 안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가 있는 하늘나라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한 후 그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서 거하다가 말씀대로 세상 끝 날에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신령한 몸을 입고서 영원하고도 완벽하게 누리게 되는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는 요한계시록 21장에 계시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하나님 아버지께로 부터의 새 예루살렘에서의 완전한 안식과 영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와 관건은 이 땅에서의 안식, 곧 비록 어둠의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고 있는 불완전하고 위험한 요소들 투성이이며 죄와 악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연약한 몸을 입고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안식인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세상 끝 날에서처럼 신령한 몸을 입고 신령한 곳에서 완전하고 완벽하게 누리는 만큼이야 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작거나 부족할 수는 없는 안식, 참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누릴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안식인 것으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다름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가운데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며, 그에 있어서의 모든 길과 열쇠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모든 계획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로서의 그 목숨값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구원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이신 것이고, 그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이나 통로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모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 실제적인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모든 근거가 되실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에 있어 중보자이시자 길과 통로와 대문과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모든 방법이자 열쇠이신 것이고..
실상은 따지고 보면 안식 및 안식과 동일 선상에 있는 일들마다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이루시는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속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이며 오직 말씀으로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하게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일들을 한 뜻으로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안식을 위시해서 우리 인생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말씀, 말씀의 신앙과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부연하면 우리 인생들은 실상 먼지와 같고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어질 우리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이 아니라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의지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자 그러한 십자가 목숨값의 구원과 함께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실질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실제들에 의해..
곧,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직접적, 실제적인 하늘의 힘과 은혜들을 덧입어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며, 정말 회개의 능력과 효력들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들로 인해 더 말씀으로 나아가고 주야로 더욱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몸부림과 결단과 열정들도 가능하며, 그러면서 더욱 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 지고, 더더욱 크고 장성한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며, 그와 함께 갈수록 더 풍성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 모든 안식과 승리들로 나갈 수 있고 생생히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구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온 세상,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으며, 모든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서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죄와 문제들, 진노와 심판들에서 대속, 대신하시며, 사함, 나음, 치유, 승리, 역전, 평화, 복, 부흥, 부활, 영생 등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필요한 모든 구원의 일들을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것이고, 실상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은 그만한, 아니 그 이상의 가치와 능력이 있는 것이며..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그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는 분인 것일 뿐 아니라 특히 그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계획과 약속과 섭리들의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시고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며, 바로 그러한 구원과 함께 실질적, 현실적으로 생생히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권능은 시공을 초월하고 전지전능만큼으로 역사하면서 모든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다 실제 경험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은 단 하나라도, 단 한 번이라도 예외이거나 빠짐없이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원론적으로는 정말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구원에 참예하며 하나님의 것으로 거듭난 자들만이 안식을 어떤 모양으로든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들 가운데 온전히 누리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안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 번 더 강조하면 본질적으로는 아래 본문에서도 그러한 안식의 약속과 함께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다름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이 안식과 직결되어 있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살고 의지하게 될 때 그러한 믿음에 따라,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어떤 면에서는 그 당사자의 영성과 단련과 그릇에 따라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함께 하는 뜻과 약속과 말씀대로 성자 하나님이시자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만큼,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전지전능하심의 실제와 실상들만큼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역사들을 말씀 그대로 날마다 맛보고 누릴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세상 끝 날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삶의 자리들,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 믿음과 함께, 구체적,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고, 그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 특히 평안과 안식들을 당연히, 날마다 누릴 수 있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세상 끝 날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일 뿐 아니라 험하고 죄악들이 많은 이 세상에 산다는 데 있고, 게다가 우리 인생들은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에 그 누구라도 그 자체로 의인인 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약해지고 악해지며 넘어지기 쉬워 수시로 크고 작은 허물과 죄악들에 빠지곤 하고, 그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고 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인데 특히 어둠의 세력과 권세들의 유혹과 시험들, 대적과 공격들이 결코 녹녹하지 않은 현실과 실상인 것으로..
무엇보다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으로 인해, 또한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힘과 함께 경험케 하시면서 이미 주시고 이루어 놓으신 구원과 그 나라, 특히 그 한가운데 있는 하늘의 힘과 안식의 일들이 가려지고 막히며 멀어지곤 하는 것이고, 오히려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과 온갖 불신앙들 등으로 인해 잠자거나 병들거나 죽은듯한 신앙이 됨과 함께 안식이나 평안과는 반대로 사람막대기나 인생 채찍 같은 징계들에, 또한 마치 광야 40년과 같은 방황과 곤고들에 생각보다는 많이 허덕이고 헤매는 현실인 것이며, 게다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심각한 사탄의 올무와 구실과 곤고와 도구들 등이 되기도 하고 빠지며 넘어지기도 하는 실제와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실상과 현실들보다 더더욱 분명하고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사실은 다시 한 번 더 말하면 그 누구든지 바로 그러한 모든 상황들 속에서도 말씀으로 살 수 있다면, 곧 질그릇과 같은 자신의 힘과 언젠가 허망하게 다 사라질 세상의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의지하며 죄가 아닌 말씀에 설 수 있다면, 특히 범한 죄악들은 더 늦기 전에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결단하고 몸부림칠 수 있다면..
그와 함께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실제로 얻게 되고 더욱 충만케도 될 수 있다는 것이고, 특히 말씀의 나라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법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를 풍성히 맛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며, 그것은 창세전부터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 가운데 있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 정확하게는 그 백성된 자들을 위해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신 역사들인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구주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이미 임해 있고 예수님으로 인해 가능한 나라인 것이고, 직접적으로는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된 분이시자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권능으로 인한 실제와 경험들인데 바로 그러한 믿음과 함께, 곧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이고 바로 그러한 말씀으로 통치하며 다스리는 그 나라에 실제로 날마다 생생하게 거하며 풍성히 맛보고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바로 그러한 신앙들, 그러한 상황과 경험들,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 땅에서도 그 백성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구주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주시고 누리게 하시며 예비하신 하늘의 안식이라 할 수 있고, 다시 말해 주님께서 도우시고 힘주시며 다스리시고 책임져 주시는 주님의 안식, 곧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생생한 실제가 되고 강력한 경험이 되게 하시는 안식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말로 말씀의 신앙과 열정들, 말씀대로의 믿음과 세상, 곧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이고 실체인 하나님의 나라와 역사들인데 그러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들이 더욱 넘쳐나면서 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듯 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말씀대로의 믿음들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더 생생하게 나타나고 하늘의 평강과 안식이 가득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더욱 더 강렬하고 풍성하게 되어 가며, 더 나아가 가면 갈수록 더욱 더 확장케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4:10~14)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30일(월)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