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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대수(以髮代首)
머리칼로 목을 대신한다는 뜻으로, 조조의 간사함과 허위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이 사용되었다.
以 : 써 이(人/3)
髮 : 터럭 발(髟/5)
代 : 대신할 대(亻/3)
首 : 머리 수(首/0)
출전 : 삼국연의(三國演義) 第017回
이 성어는 유명한 삼국지(三國志)에서 연유하는데, 장수(張繡)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건안(建安) 3년(198년) 조조(曹操)가 나섰다.
그런데 행군 도중 조조는 전쟁이 끊이지 않아 군대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데다 민심까지 흉흉해 군대가 온다는 소리만 들리면 백성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조는 군대에 명령을 내렸다. “나는 천자의 영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켰다. 이는 역적을 쳐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무리를 없애려 함이다. 바야흐로 보리가 익어가는 때에 부득이하게 군사를 일으켰지만 나의 장졸들이 보리밭을 지나다가 보리를 밟으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그 목을 벨 것이다. 군법이 엄하니 백성들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명령이 하달되자 병사들은 보리밭을 지날 때는 모두 말에서 내려 손으로 보리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조조 자신에게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조조가 말을 탄 채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행동에 흡족해하고 있을 때였다.
밭 가운데서 갑자기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자 조조가 탄 말이 놀라서 길길이 날뛰다가 보리밭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보리밭 한 구석이 말발굽에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조조는 몹시 당황했지만 그 와중에도 꾀를 내었다. 그는 곧 부하를 불러 보리밭을 밟은 자신을 벌하라고 했다.
하지만 부하(主簿)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승상께 군령을 따져 죄를 물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조조는, “나 스스로 명령을 내려놓고 솔선하여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무리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라면서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베려고 했다.
그때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곽가(郭嘉)가 달려들어 만류하며 말했다. “춘추에 이르기를 법도 존귀한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승상께서는 대군을 이끄시는 존귀한 몸이신데 어찌하여 벌을 받으려 하십니까?”
이에 조조는 한동안을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춘추에 그런 말이 있다면 나는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내 머리칼로 목을 대신하리라.”
말을 마친 조조는 칼을 들어 머리카락을 자른 후 각 군영에 그 머리칼을 돌리며 이렇게 전하도록 했다. “승상께서 보리를 밟으셨기에 이와 같이 머리칼을 잘라 목을 대신하였다”
그러자 장졸들이 모골이 송연하여 누구도 감히 군령을 어기지 못하니 군대의 기율이 바로 섰다. 훗날 누가 시를 지어 논했다.
十萬貔貅十萬心,
一人號令眾難禁。
사나운 병사 10만, 그 마음도 10만이라
한 사람 호령으로 금하기 어려운데
拔刀割髮權為首
方見曹瞞詐術深。
칼을 뽑아 두발 잘라 머리 대신하니,
조아만 조조(曹阿瞞) 사술(詐術), 깊구나.
조조는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 바닥에 던짐으로써 스스로에게 곤형(髡刑)을 내렸음을 보여준 것이다. 곤형이란 머리카락을 자르는 형벌로 육형(肉刑)의 하나였다.
사실 옛날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며 머리카락을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비록 머리카락을 잘랐지만 목을 벤 것과 진배없는 매서운 형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적으로 허세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操即奏張繡作亂, 當興兵伐之。天子乃親排鑾駕, 送操出師, 時建安三年夏四月也。操留荀彧在許都, 調遣兵將, 自統大軍進發。行軍之次, 見一路麥已熟。民因兵至, 逃避在外, 不敢刈麥。操使人遠近遍諭村人父老, 及各處守境官吏曰:吾奉天子明詔, 出兵討逆, 與民除害。方今麥熟之時, 不得已而起兵, 大小將校, 凡過麥田, 但有踐踏者, 並皆斬首。軍法甚嚴, 爾民勿得驚疑。百姓聞諭, 無不歡喜稱頌, 望塵遮道而拜。官軍經過麥田, 皆下馬以手扶麥, 遞相傳送而過, 並不敢踐踏。
操乘馬正行, 忽田中驚起一鳩, 那馬眼生, 竄入麥中, 踐壞了一大塊麥田。操隨呼行軍主簿, 擬議自己踐麥之罪。
主簿曰:丞相豈可議罪?
操曰:吾自制法, 吾自犯之, 何以服眾? 即掣所佩之劍欲自刎。眾急救住。
郭嘉曰:古者春秋之義, 法不加於尊。丞相總統大軍, 豈可自戕?
操沉吟良久, 乃曰:既春秋有法不加於尊之義, 吾姑免死。乃以劍割自己之髮, 擲於地曰:割髮權代首。
使人以髮傳示三軍曰:丞相踐麥, 本當斬首號令, 今割髮以代。於是三軍悚然, 無不懍遵軍令。
(三國演義/第017回)
조조가 인재를 얻는 법
난세의 친화력
조조의 시대는 난세였다. 난세의 특징은 인심이 흔들리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는 시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성의와 신뢰가 의미가 없다. 오직 생존만이 목적이다. 조조는 난세의 리더십을 발휘해서 천하를 거머쥔 인물이다.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고 큰일을 처리하는 대범한 인물이었다. 결코 고리타분하거나 인정이 통하지 않는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는 일을 처리할 때는 엄숙하면서도 진지했고, 평상시에는 소탈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지만 사소한 일에는 대충대충 넘어갔다. 지도자의 위엄을 가졌으면서도 인간미와 유머가 있었다. 조조의 가장 큰 특징은 호방한 기개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서기 200년 중원의 판도를 결정하는 관도(官渡) 전투에서 원소를 물리친 후 그의 부하가 원소와 내통한 편지가 발각되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조사하여 죽여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조조는 “당시에 원소의 세력이 강대하여 나도 자신을 보호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야 어떠했겠는가!”라고 선을 그었다. 그 편지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게 하고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오환을 정벌하려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어으나 조조는 이를 무시하고 정벌을 감행했다. 천신만고 끝에 대승을 거둔 뒤 조조는 당시 출정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조조의 보복이 두려웠던 그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조조는 "여러 사람들의 충고로 만전의 계책을 세운 탓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으니 공이 크다"며 후한 상을 내렸다. 이렇게 반대되는 의견을 수용하여 그들을 격려하는 자세는 역대 지도자들 중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조의 최대 장점은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다. 오직 재능으로 인재를 평가하고 자신과의 친소관계는 구분하지 않았다. 진수의 평가와도 일치한다. 정사 삼국지 무제기의 평가를 보자. '그는 신불해 상앙의 치국책을 운용했고 한비자 백자의 기이한 전략을 겸비했으며 능력있는 사람을 발탁하고 그들이 각각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그는 정성껏 대해 신뢰를 얻고 사람을 등용하면 의심하지 않았다.
조조의 배역은 주유의 말로 표현하면 이름은 한나라의 재상이지만 한나라의 도적이다. 조조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많은 사람이 조조를 이렇게 평가했다. 물론 조조가 사람을 모은 더 큰 목적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누가 인재인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조조의 진영은 복잡했다. 원래 중앙 정부에서 임용된 사람, 후에 조조에게 선발되어 올라온 사람, 조정 관원의 추천으로 임명된 사람, 적진에서 투항하여 건너온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한마디로 조조의 진영은 의심이 가득한 진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신뢰 문제였다. 지도자로서 조조가 진심에서였든지 쇼를 했던지 반드시 성의와 신뢰를 표현해야 했다. 조조가 관용을 베푼 경우도 ‘자신이 성심 성의껏 사람을 대하고 신뢰로 충만한 사람이며 사람에게 속아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안심하고 자신에게 투신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천하에 알리는 정치 행위로 볼 수 있다.
법령이 엄격하고 상벌이 분명했다. 상벌은 조조에게 예외가 아니다. 조조가 군령을 어겨 보리밭을 밟아서는 안되며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기병들 모두가 말에서 내려 걸으며 무기로 이삭을 받치고 갔다. 그런데 조조의 말이 보리밭에 뛰어들었다. 조조는 자신의 머리칼을 베어버려 벌을 받았다.
머리칼로 머리를 대신한다(以髮代首). 이 이야기는 조조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았던 조만전에 수록돼 있다. 조조의 간사함과 허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육형(肉刑 )의 하나로 곤(髡)이라 불렀다. 조조가 최염을 처벌하면서 내린 판결도 곤형이다.
조조은 상벌은 엄격하고 확실했다. 당근과 채찍의 법칙을 기가막히게 운용했다. 조조에게 상을 받으려면 특별한 공을 세워야 한다. 곽가의 말을 빌면 조조의 은혜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헤아림이 주도면밀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천하를 놓고 다퉜던 유방과 항우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한 결정적 이유는 상벌의 엄격함에 있었다.
겉으로 호방하고 역발산의 기개를 자랑했던 항우는 전리품을 나눠주는데 참으로 인색했다고 한다. 반면 배운 것도 없고 시정 잡배 출신인 유방은 사람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한 인물이다. 그는 어떤 전리품이든지 부하들에게 아낌없이 주면서 천하를 도모했다.
조조는 통수권자가 돼도 한번도 부하에게 생색을 내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항상 공로를 부하에게 돌렸다. 맹목적으로 공을 돌리지 않고 누구에게 어떤 공이 있는지를 낱낱이 밝혔다. 부하들이 어떤 상을 받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칭찬도 마찬가지였다. 겸손한 태도로 훌륭한 사람을 본받으려 했다.
조조가 부하들의 건의를 듣지 않고 따르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러나 조조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면 숨기지 않고 반드시 부하의 건의와 지적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한 후 감사를 표시했다. 반성은 늘 웃으면서 했다.
조조는 인재를 중시하였다. 그는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재능이 있는 자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였으며 상벌을 분명히 하고 언로를 개방하였다. 비록 적일지라도 재능만 있으면 구애받지 않았다.
조조가 인재를 구하는 최대의 최대무기는 친화력이었다. 친화력은 그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조조는 감성이 풍부하고 장난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권위를 앞세워 폼과 잡는 리더십으로는 부하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엄숙한 것은 좋지않다. 사람들이 마음속의 장벽을 높아 가까이 할 수 없다. 사소한 일은 대충 대충하면서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인정미와 유머 감각을 갖추면 더욱 좋다. 이런 사람들이 진심어린 지지와 옹호를 얻는다. 조조가 이런 인물이다.
조조군단의 초기의 대표적 참모는 순욱과 순유 곽가 정욱 등이다. 대부분 거의 주동적으로 조조에게 투신한 인물들이다. 순욱이 제일 먼저 원소의 진영에서 넘어왔다. 헌제 초평 2년(191년)이다. 순욱이 29세다. 삼국지 순욱전에서 원소를 떠난 이유로 ‘그가 대업을 이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조조는 ‘이 사람은 나의 장량’이라고 기뻐했다.
당시 조조는 동군 태수에 불과한 인물이었다. 196년 건안 원년 조조는 모개와 순욱의 건의를 받아들여 천자를 맞이하여 허현으로 천도했다. 순욱은 조조의 총참모장의 역할을 했다. 조조가 외지에 나갈 때 군대와 국가의 사무를 총괄했다.
곽가는 일찍이 원소의 모사인 신평과 곽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원공(원소)은 한낱 주공이 사인들을 예우한 것만 본받고 등용하는 도리를 모른다. 생각은 복잡하지만 요령이 부족하여 계책을 세우기 좋아하지만 결단력이 없으며 함께 천하 대란을 구제하고 패왕의 기업을 세우려고 해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곽가는 조조와 첫 상봉을 한 뒤 ‘참으로 나의 주인이 될 만하다’고 기뻐했다. 조조는 ‘내가 대업을 이루면 반드시 이사람 덕분일 것’이라고 칭찬했다.
적진에 있던 많은 명장과 명신들도 그들의 주인을 버리고 조조에게 투항함으로써, 조조의 진영에는 명장과 명신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의 유능한 장수 장료(張遼)는 원래 여포(呂布)의 사람이었고, 장합(張颌)도 원소(袁紹)의 부하였다.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진림(陳琳)도 일찍이 원소의 문인으로 조조 토벌 격문을 써서 조조의 조상 3대까지 욕한 인물이었다. 원소가 패하고 조조의 포로가 된 후 조조는 그의 옛 과오를 불문에 붙이고 그를 군모좨주(軍謀祭酒)에 임명하였다.
건안칠자의 또 한 사람인 왕찬(王粲)은 원래 유표(劉表)에게 의지하고 있었는데 조조가 형주(荊州)를 정벌했을 때 그는 유표의 아들 유종(劉琮)에게, "제가 알기로 조공(曹公: 즉 조조)은 걸출한 인물입니다. 웅대한 지략이 당대에 으뜸이고 뛰어난 지혜가 세상에서 출중합니다"라고 하면서 조조에게 투항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원소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어도 나오지 않던 전주(田疇)도 조조가 오환을 정벌할 때 적극적으로 찾아와서 책사가 됐다. 조조가 총명한 것은 부하들을 진솔하게 대하면서 마음을 산다는 것이다. 조조는 물론 지모가 뛰어난 신하들 모두 영리한 사람이므로 사소한 잔꾀를 부리기 보다 정공법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잔꾀를 부리다가 상대방에게 의도가 간파당하면 신뢰를 잃기가 쉽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제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의미가 이렇다. 조조는 이러한 경계선상에서 하는 게임에 천재라고 봐야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날고 긴다는 모사들과 한마음이 되고 응집력을 강하게 했다.
그의 시문을 읽어보면 그의 영웅적인 기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는 시문에서 자유자재로 전고를 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출하였지만 호방하면서도 저속하지 않다.
그의 시 '관창해(觀滄海)'와 '단가행(短歌行)'에서는 짧은 인생 속에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원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그의 영웅적인 기개라 할 수 있다. 그는 생명의 유한성을 영원성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고 인생과 우주에 대하여 깊이 통찰하였다.
그는 시대적 폐단을 개혁하고 사회적 기풍을 쇄신하여 경제를 안정시키고 역사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그의 문치무공(文治武功)은 중국역사상 찬란한 광채를 발하였다.
조조, 참수 대신 머리카락 잘라 군령을 세우다
원술은 회수 남쪽의 넓고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손책이 맡겨둔 옥새를 보며 점점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급기야 황제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주부(主簿) 염상이 말렸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옛날 주나라의 후직은 여러 대에 걸쳐 덕을 쌓고 공을 세웠으며 문왕(文王) 때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신하로서 복종하고 은나라를 섬겼습니다. 명공의 가문이 비록 대대로 존귀했다고는 하나 주나라처럼 왕성하지는 않았고, 한 왕실이 비록 쇠미하다고는 하나 은나라의 주왕(紂王)처럼 포악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원술은 반대하는 자는 모조리 참수하겠다며 입을 막은 후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연호를 중씨(仲氏)라 하고 풍방의 딸을 황후로 책립했습니다. 여포의 딸을 오게 해 동궁비로 삼으려고 했지만, 여포가 중매자로 나선 한윤을 잡아 허도로 보내서 조조가 죽였다는 것을 알고는 20여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서주로 쳐들어왔습니다.
여포는 대책회의를 열고 진등의 계략을 받아들여 원술의 부하인 한섬과 양봉이 여포와 내응토록 하는 한편, 유비에게도 구원을 청했습니다. 황제의 깃발을 나부끼며 진격해 온 원술이 여포를 꾸짖었습니다. "이 주인을 배반한 종놈아!"
화가 난 여포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화극을 번쩍들고 적토마를 타고 내달렸습니다. 원술의 장수와 부하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산 자들은 도망치느라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원술이 패잔군을 이끌고 허둥댈 때, 이번에는 관우가 길을 막았습니다. "반역자 놈아! 아직도 죽음의 벌을 받지 않겠느냐?"
원술은 크게 패하고 회남으로 돌아갔습니다. 원술은 손책에게 군사를 빌려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책은 자기가 맡겨놓은 옥새로 황제를 참칭하는 대역부도한 놈이라며 거절했습니다. 둘이 맞붙으려는 때에 조조의 사자가 손책에게 왔습니다. 손책을 회계태수(會稽太守)에 제수하고 원술을 정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손책은 조조와 협공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17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유비, 여포 등과 함께 원술을 정벌하러 달려왔습니다.
원술은 전세가 불리하자 부하들에게 수춘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몸을 피했습니다. 조조군의 군량이 바닥나기를 기다리는 지연 작전을 펴기로 한 것입니다. 전투는 지지부진했습니다. 흉년으로 군량미 마련도 쉽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손책에게 양곡 10만 섬을 빌렸지만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양곡 창고지기 왕후가 걱정하자 조조가 말했습니다. "작은 되(小斛)로 나눠줘 우선 급한 불을 끄면 될 것이다." "병사들이 원망하면 어찌하옵니까?" "나에게 생각이 있다."
얼마 뒤 병사들의 불만이 높아졌습니다. 조조는 은밀하게 왕후를 불러 한 가지 물건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끌어내 단칼에 목을 베어버리고 군사들이 볼 수 있도록 방을 붙였습니다. '왕후가 일부러 작은 되로 나눠 주고 군량을 훔쳤으므로 삼가 군법에 따르노라.'
이와 함께 영채의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흘 안에 성을 함락하지 못하면 모두 참형에 처하겠다고 말입니다. 결국 조조군은 힘을 합쳐 성을 점령했습니다.
원술이 황제를 참칭한 것에 대해 모종강은 아래와 같이 평했습니다. "원술이 황제를 칭하자 천하가 일어나 함께 친다. 조조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천자가 별것 아니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하가 무서워 감히 못 하는 것뿐이다. 하물며 천자가 되어 좋다는 것은 천하의 권력을 쥐기 때문인데, 권력은 모두 자신이 쥐고 있으면서 명분은 모두 황제에게 돌렸으니 조조의 계획은 훌륭했다. 조조는 명칭은 사양하고 실리를 가졌는데, 원술은 실속도 없이 명칭만 고집했으니 어찌 교묘한 조조에 우둔한 원술이 아니겠는가."
조조가 원술을 뒤쫓아 뿌리를 뽑으려고 할 때, 장수가 다시 세력을 뻗쳐 남양(南陽)의 여러 현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조조는 허도로 돌아와 군세(軍勢)를 점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장수를 토벌하기 위해 출병했습니다. 이때는 보리를 수확할 때였습니다. 조조는 전군에 ‘보리를 밟는 자는 누구든 참수하겠다’는 군령을 내렸습니다.
군사들은 모두 조심해서 지나갔고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며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조의 말이 비둘기에 놀라 보리를 밟았습니다. 조조가 즉각 칼을 빼 자신의 목을 찌르려 하자 참모들이 말렸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자신의 두발(頭髮)을 잘라 참수를 대신했습니다. 이를 본 군사들은 군령을 엄수하며 무사히 보리밭을 지나갔습니다.
모종강은 이 부분에서 또 조조를 평하기를, "조조는 평생 빌려 쓰지 않은 것이 없다. 천자를 빌려 제후에게 명령했고 또한, 제후를 빌려 제후를 공격했다. 심지어 군사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남의 머리도 빌려 썼고, 군령을 펴기 위해서는 자기의 두발도 빌려 썼다. 빌리는 꾀는 갈수록 기이해지고 빌리는 기술은 갈수록 환상이다. 그야말로 천고에 제일가는 간사한 영웅이다."
조조는 남양으로 진군해 장수를 공격했습니다. 장수는 성을 지키며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조조는 성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서문과 북쪽에 장작과 풀단 등을 높이 쌓고 공격하라 했습니다. 장수의 참모인 가후는 이 광경을 보고 즉시 조조의 뜻을 간파했습니다. 그리고 조조의 계책을 역이용해서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조조가 찬탄했던 책사 가후. 그는 어떻게 조조의 계략을 알아채고 조조를 무찔렀을까요.
[1-20회] [술술 읽는 삼국지](20) 가후의 신출귀몰함에 놀란 조조, 곽가의 십승십패설에 웃다
▶️ 以(써 이)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이 연장을 사용하여 밭을 갈 수 있다는 데서 ~로써, 까닭을 뜻한다. 상형문자일 경우는 쟁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以자는 ‘~로써’나 ‘~에 따라’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以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以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수저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밭을 가는 도구이거나 또는 탯줄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무엇을 그렸던 것인지의 유래와는 관계없이 ‘~로써’나 ‘~에 따라’, ‘~부터’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以(이)는 ①~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根據)로 ②~에 따라, ~에 의해서, ~대로 ③~때문에, ~까닭에, ~로 인하여 ④~부터 ⑤~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⑥~을 ~로 하다 ⑦~에게 ~을 주다 ⑧~라 여기다 ⑨말다 ⑩거느리다 ⑪닮다 ⑫이유(理由), 까닭 ⑬시간, 장소, 방향, 수량의 한계(限界)를 나타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어떤 범위 밖을 이외(以外), 일정한 범위의 안을 이내(以內), 어떤 한계로부터의 남쪽을 이남(以南), 어떤 한계로부터 동쪽을 이동(以東), ~이어야 또는 ~이야를 이사(以沙), 그 동안이나 이전을 이왕(以往), 까닭으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을 소이(所以), ~으로 또는 ~으로써를 을이(乙以), 어떠한 목적으로나 어찌할 소용으로를 조이(條以), ~할 양으로나 ~모양으로를 양이(樣以), 편안한 군대로 지친 적군을 침을 이일적로(以逸敵勞),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보충함을 이존보망(以存補亡), 이것이나 저것이나를 이차이피(以此以彼), 횡포한 사람으로 횡포한 사람을 바꾼다는 뜻으로 바꾸기 전의 사람과 바꾼 뒤의 사람이 꼭 같이 횡포함을 이포역포(以暴易暴), 속담 새우 미끼로 잉어를 낚는다로 적은 밑천으로 큰 이득을 얻는다는 뜻의 이하조리(以鰕釣鯉),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댄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기만하고 권세를 휘두름을 이르는 이록위마(以鹿爲馬) 등에 쓰인다.
▶️ 髮(터럭 발)은 ❶형성문자로 髪(발)은 통자(通字)이고, 发(발)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터럭 발(髟; 머리털, 수염, 늘어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좌우로 나눈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犮(발)로 이루어졌다. 빗으로 깨끗이 빗은 머리라는 뜻이 전(轉)하여 널리 머리털의 뜻으로 되었다. ❷형성문자로 髮자는 '터럭'이나 '머리털', '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髮자는 髟(늘어질 표)자와 犮(달릴 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犮자는 개가 달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 역할만을 하고 있다. 髮자는 길게 드리워진 머리털을 뜻하기 위해 머리털이 드리워진 모습의 髟자를 응용한 글자이다. 그래서 '머리털'이나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난 긴 털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髮(발)은 ①터럭(몸에 난 길고 굵은 털) ②머리털 ③초목(草木) ④메마른 밭 ⑤모래땅 ⑥줄기 ⑦머리털을 기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터럭 모(毛), 터럭 호(毫)이다. 용례로는 맨 처음에 베필이 된 아내를 발처(髮妻), 목뒤 머리털이 난 가장자리에 생기는 부스럼을 발제(髮際), 몹시 성낸 모양을 발지(髮指), 털끝 만큼 하찮은 원망이나 원한을 발원(髮怨), 머리 기름을 발유(髮油), 하얗게 센 머리털을 백발(白髮), 머리털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치레로 머리에 쓰는 물건을 가발(假髮), 머리털을 다듬어 깎음이나 머리를 빗음을 이발(理髮), 머리털이나 머리에 난 털을 두발(頭髮), 사람의 몸에 난 온갖 털이나 머리카락을 모발(毛髮), 차이 따위와 함께 쓰이어 순간적이거나 아주 적음을 나타내는 말을 간발(間髮), 북극 지방의 초목이 없는 땅을 궁발(窮髮), 길렀던 머리를 빡빡 깎음 또는 그러한 머리를 삭발(削髮), 짧은 머리털을 단발(短髮), 길게 기른 머리털 또는 그 사람을 장발(長髮), 가느다란 털이나 아주 작은 물건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을 호발(毫髮), 머리카락이 치솟아 관을 밀어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이 났음을 일컫는 말을 발충관(髮衝冠), 머리털은 빠져서 짧으나 마음은 길다는 뜻으로 몸은 늙었으나 일 처리는 잘한다는 말을 발단심장(髮短心長), 머리털 하나로 천균이나 되는 물건을 끌어 당긴다는 뜻으로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한 위험한 순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기일발(危機一髮), 귀밑머리를 풀어 쪽을 찌고 상투를 튼 부부라는 뜻으로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를 이르는 말을 결발부처(結髮夫妻), 머리털을 잡고 먹은 것을 토해 낸다는 뜻으로 인재를 구하려고 애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악발토포(握髮吐哺), 머리털 하나 들어갈 틈도 없다는 뜻으로 사태가 단단히 급박하여 조그마한 여유도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간불용발(間不容髮), 살갗은 닭의 가죽처럼 야위고 머리칼은 학의 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늙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계피학발(鷄皮鶴髮),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을 이르는 말을 노발충관(怒髮衝冠), 머리를 잘라 술과 바꾼다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모정의 지극함을 이르는 말을 절발역주(截髮易酒) 등에 쓰인다.
▶️ 代(대신할 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弋(익)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 표적의 말뚝, 명확하게 함; 대)部와 앞세대와 뒷세대의 사람(人)이 번갈아 들다는 뜻이 합(合)하여 '대신하다'를 뜻한다. 사람의 일생을 가르는 시간적(時間的)인 한동안, 세상, 세대(世代), 대대로 이어지는 데서 갈마들다, 바꾸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代자는 ‘대신하다’나 ‘교체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代자는 人(사람 인)자와 弋(주살 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弋자는 짐승을 잡기 위해 줄을 묶어두던 말뚝을 그린 것으로 ‘주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代자는 이렇게 줄을 묶어두던 弋자에 人자를 결합한 것으로 사람이 끈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사람이 끈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세대(世代)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代(대)는 (1)대신(代身) (2)예전부터 이어 내려오는 가계(家系) (3)이어 내려오는 가계(家系)나 어떤 자리(지위(地位))에 있는 동안을 세는 단위(單位) (4)연령(年齡)의 대체의 범위(範圍)를 나타내는 말. 10, 20, 30… 들의 아래에 쓰이어, 10세로부터 19세, 20세로부터 29세, 30세로부터 39세까지의 각 나이층을 이르는 말 (5)임금이 치세(治世) (6)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 대금(代金)의 뜻을 나타내는 말 (7)명사(名詞) 뒤에 붙어 가장 큰 구분(區分)으로 나눈 지질(地質) 시대(時代)를 나타내는 말 (8)선비(鮮卑)의 추장(酋長) 탁발이로가 315년에 진(晉)으로부터 봉(封)함을 받아 세운 나라. 북위(北魏)는 그 후예(後裔)임 등의 뜻으로 ①대신(代身)하다, 대리(代理)하다 ②교체(交替)하다, 번갈아들다 ③시대(時代) ④일생(一生) ⑤세대(世代) ⑥대리(代理) ⑦대금(代金) ⑧계승(繼承)의 차례(次例) ⑨번갈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간 세(世), 지경 역(域), 지경 경(境), 지경 계(界), 지경 강(疆)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상태나 성질을 어느 하나로 잘 나타내는 일 또는 나타낸 그것을 대표(代表), 다른 것으로 바꿈을 대체(代替), 새것으로나 다른 것으로 바꾸어 갈아 채움을 대신(代身), 어떤 안에 대신할 안을 대안(代案), 물건을 산 대신의 값 또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생기는 희생을 대가(代價), 남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함을 대리(代理), 남이나 어떤 기관을 대신하여 그의 의견이나 태도를 책임지고 말함을 대변(代辯), 물건의 값으로 치르는 돈을 대금(代金), 대신하여 행함을 대행(代行), 식사나 축사 등을 대신 읽음을 대독(代讀), 남을 대신하여 글을 씀 또는 그 글씨를 대필(代筆), 이 뒤의 세대로 앞으로 오는 시대를 후대(後代), 대대로 이어 내려온 그 여러 대 또는 그 동안을 역대(歷代), 역사적으로 구분한 어떤 기간을 시대(時代), 서로 번갈아 드는 사람 또는 그 일을 교대(交代), 세상에 드물어 흔히 없음을 희대(稀代), 어떤 계통의 최초의 사람을 초대(初代), 거듭된 여러 세대를 열대(列代),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함을 계대(繼代), 어느 시대나 인재가 없지 아니하다는 말을 대불핍인(代不乏人), 이 세상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라는 말을 절세대미(絶世代美), 지난 시대에는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으로 매우 놀랍거나 새로운 일을 이르는 말을 전대미문(前代未聞), 어질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한 세상이라는 말을 태평성대(太平聖代),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기거나 들어서는 일을 신진대사(新陳代謝), 제비가 날아올 즈음 기러기는 떠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소식 없이 지냄을 이르는 말을 연안대비(燕雁代飛), 부모를 명당에 장사하여 그 아들이 곧 부귀를 누리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당대발복(當代發福) 등에 쓰인다.
▶️ 首(머리 수)는 ❶상형문자로 얼굴, 머리, 목 등 사람의 머리 앞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옛 자형(字形)은 머리털과 눈을 강조하였다. 머리는 몸의 맨 위에 있어 '우두머리, 처음'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首자는 ‘머리’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首자는 사람의 머리를 뜻하는 글자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은 동물의 머리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首자를 보면 입이 길쭉한 동물의 머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큰 눈과 뿔을 표현하고 있어서 마치 사슴의 머리를 그린 것과도 같았다. 이처럼 首자는 동물의 머리를 그린 것이지만 실제 쓰임에서는 사람의 ‘머리’나 ‘우두머리’를 뜻한다. 그래서 首(수)는 (1)시(時)나 노래를 세는 단위(單位) (2)동물(動物)의 개수(個數)를 세는 단위(單位) 등의 뜻으로 ①머리, 머리털 ②우두머리, 주장(主將) ③임금, 군주(君主) ④첫째, 으뜸 ⑤칼자루 ⑥요처(要處) ⑦끈, 줄 ⑧마리(짐승을 세는 단위) ⑨편(篇: 시문의 편수를 나타내는 말) ⑩시작하다, 비롯하다 ⑪근거하다, 근거(根據)를 두다 ⑫복종하다, 항복하다 ⑬자백하다, 자수하다 ⑭나타내다, 드러내다 ⑮향하다 ⑯절하다, (머리를)숙이다 ⑰곧다, 바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우두머리 추(酋), 머리 두(頭), 괴수 괴(魁)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꼬리 미(尾)이다. 용례로는 한 나라의 정부가 있는 도시를 수도(首都), 맨 윗자리를 수석(首席),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임을 수긍(首肯), 내각의 우두머리를 수상(首相), 등급이나 직위 등의 첫째나 우두머리 자리를 수위(首位), 반열 가운데의 수위로 행정부의 우두머리를 수반(首班), 위에 서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나 통솔하는 사람을 수장(首長), 한 단체나 기관 등 어떤 조직 가운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 또는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수뇌(首腦), 한 당파나 모임의 우두머리를 수령(首領), 사물의 머리와 꼬리를 수미(首尾), 해의 처음을 수세(首歲), 구멍에 머리만 내밀고 엿보는 쥐라는 뜻으로 진퇴나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의 비유한 말을 수서(首鼠), 목을 자름을 참수(斬首), 한 당의 우두머리를 당수(黨首), 국가의 최고 통치권을 가진 사람 곧 임금 또는 대통령을 원수(元首), 배의 머리를 선수(船首), 날이 썩 날카롭고 짧은 칼을 비수(匕首), 한자 자전에서 글자를 찾는 길잡이가 되는 글자의 한 부분을 부수(部首),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임을 긍수(肯首),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다는 처형을 효수(梟首), 사형수의 목을 옭아매어 죽이는 것을 교수(絞首), 학의 목으로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림을 비유하는 말을 학수(鶴首), 관을 쓰지 않은 검은 머리라는 뜻으로 일반 백성을 이르는 말을 검수(黔首), 여우는 죽을 때에 자기가 본디 살던 산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고향을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구수(丘首),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한다는 뜻으로 뜻이 잘 맞아 일이 잘 되어감을 이르는 말을 수미상응(首尾相應),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을 수구초심(首丘初心),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 또는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서양단(首鼠兩端),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일을 해 나간다는 말을 수미일관(首尾一貫), 참형을 당하여 머리와 다리가 따로따로 됨을 이르는 말을 수족이처(首足異處), 비둘기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듯이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함 또는 그런 회의를 구수회의(鳩首會議),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학수고대(鶴首苦待), 여우는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고향을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을 호사수구(狐死首丘)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