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로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동원되었다. 나의 몸통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온 길고 억센 손갈퀴는 필요할 땐 한곳에 모여 섬세한 작업에 쓰였고 자재를 이리저리 운반하는 것에도 쓸모가 있었다. 네 개의 곤충의 발을 닮은 다리는 벽에 매달려 작업하거나 위험한 위치의 작업을 수월하게 하였다.
그러니까 한때 그랬다는 것이다.
물속에 잠긴 다리는 하나가 수면 아래 긴 균열에 박혀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 했다. 그 후 천천히 남은 세 다리로 이전보다 훨씬 깊게 잠긴 세상을 돌아다니는 법을 터득하였다. 긴 손갈퀴는 여덟개나 되던 것이 단 두개밖에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지저분한 풀과 녹이 끼어 절컥거렸다. 그것은 각각 하나씩 긴 I형 철골과 접합부 관절을 들고 있었다. 철골은 먼 바다건너에서 일 년 전부터 운반해온 것이다. 접합부 관절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던 중 운 좋게 수면 가까이 잠긴 것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나만큼이나 의미없는 짓을 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수면위로 비죽 튀어나온 가로등은 영광스러운 귀환길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줄지어 서있었다. 나는 세 다리를 놀려 느릿느릿 움직였다.
항상 보이던 누런 표지판은 원래는 푸른빛이었을 것이다. 그것엔 무심한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표지판의 주름이다.나는 내가 인간이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노인일까? 삶을 헛된 굽은 등에 의지하는? 그러나 결코 자존심을 잃은 적이 없는?
이곳에 돌아온 것은 십 오 년 만이다. 그동안 깊게도 더 잠겼다. 벌써 모퉁이의 쌍둥이 빌딩은 창문까지 잠겨 머리통수만 남은 것 같다. 발 밑의 한탄스러운 조각상들을 조심스럽게 건드리지 않고 피해 움직이는 법은 기억하고 있다. 수면에서 올라온 흔들리는 안개 속에서 가슴처럼 둥글고 거대하게 솟아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소 흥분되는 것을 느끼었지만 성급하지 않게 다리를 휘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해가 머리에서 각 25도를 움직이고 난 뒤 나는 그것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이 날카롭고 약간 움푹 패인 그 부위는 턱이다. 그것은 수면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마치 이 일대를 검게 썩어버린 물 같이 보이게 만들었다. 작게 파도가 쳐 끝없이 아랫턱을 침식시키고 있다. 나는 왼쪽으로 돌아가 귀 부위를 찾았다. 그곳은 여러 완만한 경사가 이리저리 나 있어 타고 올라가기 적당하다. 나는 갑자기 발 밑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물속에서 발을 하나 꺼내 귓볼에 올렸다.
수면에 내민 ‘얼굴’은 대체로 매끈한 표면과 숭숭 뚫린 흉물스러운 철골 구조로 되있었다. 가로 육 미터 높이 십오미터가 넘는 나에게도 거대한 건축물이다. 한바퀴를 빙 도는데 하루 종일 걸릴 것이다. 바로선 콧대 끝은 왠만한 고층빌딩 높이보다 높다. 완만한 볼, 움푹 파인 눈살, 미묘하게 미소짓는 입술. 멀리서 보면 세상의 신이 고요한 탕에서 머리만 내놓고 목욕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미 멸망한 왕국의 오래된 신전에서. 귀를 등산했으면 세 갈래로 적당히 파인 눈살을 잘 붙잡고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한다. 작게 돋은 점. 수천 가닥의 팔뚝만한 눈썹, 날카로운 형태의 눈꼬리. 그리고 눈. 그것은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흰자위로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썹이 미묘하게 가라앉고 시작되는 콧대. 나는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 기다란 둔덕의 끝을 치켜보았다. 해는 코 너머에서 얼굴을 감싸듯 저물어 붉은 피부를 씌워주는 것만 같았다. 바람은 산산히 흩어졌다 모이며 노닐었다. 저 멀리 아래서 들리는 규칙적인 파도의 찰싹이는 소리.
짐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인다면 I형 철골을 끼워 넣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곧이어 어둠이 잠식해오고 그것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 하지 못한 것은 내일 하면 된다. 지난 천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정지한 사물처럼, 아니 그것 자체로서 가만히 다리를 굽히고 앉아 해가 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내가 만든 물위에 뜬 인간의 얼굴은 조명의 각도에 따라 수만가지 표정을 지었다. 음산하고 화난 표정부터 환희에 찬 격앙된 표정까지. 돗대처럼 선 코, 깊은 눈매와 광대, 도톰한 입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림지우고 뒤틀리고 색조를 띄었다. 해가 모두 지고 나서야 그것들은 영원한 석상처럼 잠들었다.
나는 잠이 없으므로 주로 밤하늘을 바라본다. 보석같이, 생물의 눈처럼 반짝이는 별, 고요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달빛. 그것을 고장난 기계장치처럼 불규칙하게, 불분명하게 가리고 들추는 구름. 물론 알고 있다.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생기 넘치는 이 얼굴에, 이 마스크에 진정한 인격이 찾아오기를.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어쩔 때는 아예 만나지 못하는 밤도 있었다. 아무리 환상, 꿈속의 존재라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그런 밤은 조용히 흘러가는 구름이나 치켜보다 일출을 감상하면 된다. 어쩌면 그녀도 내가 없는 것을 깨닫고 시무룩해졌던 밤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지만.
달이 수직 기준 18도를 움직였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나도.”
나는 그녀의 콧대와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도톰한 부위 사이에 몸을 기대고 누워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눈을 볼 수 있었다. 달빛 아래 여전히 무의미한 흰자위만 반짝이는 눈이었다.
“잘 지냈어?” 내가 물었다. 나의 목소리는 지지직 거리는 스피커에서 이름모를 선율처럼 흘러나왔다.
“잘 지냈다 마다. 네가 없는 동안 또다시 놀라운 생각을 해냈지.”
“그게 뭔데?”
“내 몸이 점점 모이고 있다는 생각.”
“놀랄 것도 없네. 내가 열심히 만들어주고 있으니. 잘하면 다음 천년 동안 흉부까지 만들겠는걸.”
“그런 이야기가 아냐. 물론 너의 수고에는 깊이 감사해. 그건 정말… 감격스러워.”
“빈정대는 것 같은데?” 나는 즐겁게 손갈퀴를 딱딱 부딪혔다.
“나의 흩어졌던 신체가 마치 덩어리 째로 복귀하고 있는 느낌이야. 이 거대한 찻잔속에서 따로따로.”
그녀는 그녀와 내가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이 출렁이는 바다를 찻잔이라고 부른다.
“정말이라면 조금 슬프겠군. 나는 온전히 나로서 널 완성시키고 싶은데.”
“걱정 마. 그렇다 해도 네가 날 완성시킨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야. 작품이 스스로 완성할 때 비로소 작가의 의무가 다한 셈이지.”
달빛이 어렴풋하게 비춘 그녀의 턱부근은 일말의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속삭임같은 목소리는 그녀의 안에서, 얼굴 전면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깊은 철 피부 아래 무언가가 깃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강박을 가진 또다른 나 자신이.
“네 왼쪽 광대 아래 턱근육 섬유로 사용할 것을 챙겨왔어. 육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져왔지.이제 네 얼굴은 거의 완성 되가.”
“점점 멀리서 구해오는 구나. 다음 번 재료는 어디서 구하게?”
“지난번에 돌아오면서 봐 둔 쓰레기섬이 있어. 쓸만한 고철 더미들이 군데군데 보이더군. 다시 그곳을 가려면 반 년은 걸릴 거야.”
“또다시 오래 못 보겠구나.....”
“그래, 내일 작업을 마무리하면 다시 떠날 거야.”
그녀는 한참을 침묵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의 손아귀와 잘게 부서지는 파도. 나는 기이하게도 그녀의 신체라도 되는 듯 그녀가 느끼는 감각을 느낄 때가 있다. 이것이 나라는 존재가 가질 얼굴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러나 내가 곧 그녀라는 생각은 쉽게 하기 어렵다.
“보통의 건축 트럭은 이런 세상에서 날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보통의 인간도 그런 생각은 못 할 걸. 심지어 그들은 최고의 모델들을 저마다 하나씩 달고 다니는데도.”
“그럼. 네 말이 맞아.”
나는 별빛이 비치는 일렁이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시야가 그녀의 이마에 절반이 가려 먼 바다에서 반짝이는 것 같았다. 밤의 술을 따른 그 찻잔은 이따금 숨죽여 우리 대화를 엿듣는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봤을 때가 언제더라?”
“오백 이십 육년 하고 83일 전이었지. 꼬마랑 늙은이를 태운 낡은 배가 여길 가로질러 갔어.”
“그들이 그리운 걸.”
“늙은이는 너와 나를 보고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 꼬마는 쉴 새없이 재잘댔지만.”
“그 아이와 한 대화가 아직도 기억나. 나를 보고 해질녘 파도의 얼굴 같다고 했어.” 그녀가 기쁜 듯이 회상했다.
“그야 그들이 해질녘 파도 칠 때 여길 지나갔으니 그렇지. 지나치게 직유적인걸.”
“그들이 다시 돌아올까?”
“그 손자의 손자의 손자의… 음. 아마 아닐껄.”
“그리워.”
“오 백 년은 인간 역사에서 한 왕국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햇수야. 새로운 신과 성경이 생겼다 불타는 햇수이고. 정교한 탑이 세워졌다 홍수에 무너지는 햇수이지.”
나는 손가락을 버릇처럼 다시 까딱거렸다. 어느새 밤은 밀도 짙은 아침 햇살 만큼이나 검고 단단해졌다. 그녀의 면피를 덮은 익숙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들이 다시 지나가면 내가 이만큼 완성된 것에 깜짝 놀랄 거야.”
“놀라 까무러치겠지.” 나는 중얼거렸다.
“그들이 물을 거야. 살아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마지막 사냥감의 숨결처럼 치밀하게 피어 오르는 흰 연기가 멀리서 돋아났다. 고래의 숨일 수도 있고, 세상에 남은 손자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일 수도 있다.
“외로움은 나의 전문이지.” 그녀가 선언했다. 그리고는 얼른 덧붙였다. “너의 전문이기도 하지.”
“살아있는 것은 외롭다는 의미야?”
“너와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해?”
나는 작은 진동을 느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정상적인 유속을 방해한 그녀의 거대한 형체가 받는 주기적인 파도의 충격이겠지만, 나는 그녀의 피부에 미세한 긴장을 느꼈다. 영원한 닻을 내린 부동의 별빛, 그녀의 배.
“언젠가는 죽을 거야. 벌써 바보같이 다리 한 짝을 잃었는 걸.”
“좋겠다. 다리 한 짝이라도 잃을 게 있어서.” 그녀가 진심으로 투덜댔다.
“금방 만들어 줄게. 다음 만년이면 다리까지도 가능할 꺼야.” 내가 타일렀다.
“그렇지만 결국에 모든 게 끝나겠지. 다리가 찻잔 저편에서 돌아오든, 아니든.”
“맞아. 결국 이 세상과 함께 끝나게 돼 있지.”
“외로워.”
“내가 있는데도?”
“지금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녀의 속삭임이 타오르는 불의 소리처럼 일렁였다.
그녀는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둘 모두의 진공 속 심장 고동을 귀 기울였다. 가끔은 들려올 리 없는 것이 가만히 귀 기울이다 보면 들려 오기 마련이다.
“나는 몸이 생기면 일어날 거야. 찻잔의 여기 저기를 둘러볼 거야.”
“의외로 실망할 지도 몰라. 어디를 가도 그저 출렁이는 바다 뿐 인걸.”
“그때 인간들처럼 배를 타고 다니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지.”
“그래, 그렇겠다.”
“외로워.”
한없이 많은 말을 담고 있어 도리어 아무 말도 들을 수 없는 쏟아지는 빗줄기. 떠오르는 생각과 기쁨을 한껏 붙잡아 다시 지면으로 쏟아 붙는 별들의 폭포, 천둥, 빛. 철의 점들과 대지를 질주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물어뜯긴 말들, 소들, 털이 난 짐승들, 그들이 흘린 검은 피가 모인 은밀한 지혜의 문자들. 바위에 새겨진 그 모든 그리움들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언제든 뛰쳐갈 채비를 한 새벽녘의 안개 속 생명의 진득한 울음과 열기이다.
“꿈이 있는 것만큼 헛된 것이 있을까? 외로움?” 내가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는 말만큼 네가 비웃을 말이 또 있을까?”
“찻잔 속은 고요해. 따뜻하고. 파도도 안쳐.” 그녀가 답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도 헛되지 않고, 비웃지 않아.”
나는 동 트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마에서부터 빛나는 그녀의 눈썹이 짙게 그림자를 지워 텅 빈 눈동자를 가렸다. 그녀는 이 짧은 시간동안 잠을 자는 것이다. 그녀는 그녀대로 바쁠 테니, 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움직일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두어 시간 뒤부터 천천히 다리를 뻗고 뺨을 기어가 작업을 시작하면 되는 노릇이다. 뭣하면 내일부터.
얼굴이란 서둘러서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반짝이는 바다, 새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