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루 쿠루쿠루]

영화에 대해 정보를 적게 얻고 즐기고 싶으신 분들에겐 불편할 수 있는 글입니다.

남성영화. 신세계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최민식-황정민-이정재의 만남이라는 사실과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등 충무로의 핫한 각본을 썼던 박훈정작가의 새영화로 주목을 받았죠.

지난 입봉작 혈투가 일본 드라마의 깊은 표절로 의심받으며 흥행에도 실패.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상태에서 두 번째 영화는 그의 감독인생 사활을 건

압박감이 있는 프로젝트였을 겁니다. 언제나 그러했듯 박훈정작가는 굵직하고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써내려갔고, 이에 화답하듯 한 남자 한다는 배우들이 모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한국 최고이자 최악의 조폭기업 골드문의 회장이 무혐의로 풀려나던 날

찝찝한 교통사고로 죽어버립니다. 어느 대기업 못지 않게 덩치를 불린 골드문은 당연히

발칵 뒤집어 질 수 밖에 없었고, 조직의 젊은 리더들로 서열 신경전을 치루던

정청과 이중구의 대립이 당연히 이어졌죠. 그런데 사실 정청의 오른팔 이자성은

경찰이 심어놓은 프락치였습니다. 그를 심어놓은 강과장은 그를 이용해서

이 서열전쟁에 개입해 골드문을 콘트롤하려고 하죠.

영화의 시놉을 읽다보면 많은 영화들이 떠오르실 겁니다.

일단 언론에 공개된 시놉은 누구나 무간도를 떠올렸고, 혈투의 전례를 떠올리며 우려하게 만들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적힌 이야기를 읽으면 두기봉의 흑사회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영화는 어땠냐구요? 정청과 이자성을 보며 도니 브레스코도 떠올랐고,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은

대부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앗 잡탕인가요? 아니요 그러진 않습니다.

위의 말은 신세계의 이야기가 온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란 뜻이 되겠지만

저 모든 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으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얼개라면

나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단 얘기죠. 대중영화의 이야기는  애초에 새로운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프로젝트가 있는가하면 유명 플롯에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 영화는 후자죠.

후자의 경우 유니크함을 인정받기 위해선 그 영화의 자체적인 색과 맛을 내야 합니다.

여기엔 감독의 개성이나 영화가 가진 핵심 아이디어, 혹은 배우들의 완벽한 호연등이 작용하죠.

신세계는 합격점을 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참고용 이야기의 수준은

훌쩍 뛰어넘었어요. 원래 훨씬 긴 대서사시를 만들고 그 중간부분을 떼어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단순 허풍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저런 익숙한 요소들이 치고 나오지만

큰줄기를 가진 영화 속의 세계관이 일관되고 튼튼해 보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영화의 성취는 어떨까요? 아쉽지만 아주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거칠고 생생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딱 박훈정표 이야기스러움이 느껴지고

그의 이전 터프함을 즐겼던 관객들이라면 여전히 마초적 향기 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를 거에요.

하지만 그는 원숙한 감독은 아닙니다. 부러 늘린 리듬이나 호흡이 거슬리진 않아요.

오히려 이 이야기엔 그런 리듬이 맞죠. 과도하게 잔인할 필요도 없었지만 비정한 느낌도 살아있어요.

이건 아주 좋습니다. 문제는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증발하는 영화의 흡입력이에요.

그건 영화가 서사 안에서 긴장감을 촘촘히 쌓아가다가

다소 허무하게 긴장이 해소되고 그 것이 복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그건 황정민의 캐릭터와 그의 연기묘사가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영화의 감정선은 정확히 정철의 습격사건을 클라이막스로 정점을 찍고 흩뿌려집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서사의 전개를 위한 억지와 그 순풍을 탄 억세게 운좋은 남자의 후일담에 가깝죠.

강과장이 말하듯 정철이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하며 한 수를 벌어준 것은 영화 안의 모든 사건에

개입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일로

영화속 이자성의 앞길이 열린 것과 달리 영화가 가진 매력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건 정청과 이중구 사이의 긴장감이 영화를 이끄는 엄청난 원동력이었기 때문이죠.

강과장과 이자성은 명분상 이 영화의 핵심 인물이자 주인공입니다만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요.

사실 신세계 프로젝트가 딱히 와닿지도 않거든요. 한국에서 경찰이 목숨을 걸고 몇 년을 바쳐서

잡입해야 할 정도로 무게감 있고 위협적인 조직이 있을까요..? '이 일은 이세상에서 세 사람만 아는거야'

같은 설정은 기시감이 들기도 하거니와 너무 허술하지 않습니까! 강과장이 '야 넌 아직도 경찰이야!' 하는데

이 말이 설득력이 있던가요? 슬프게도 영화의 전체적인 색은 무간도에서 탈출하는데에 성공했습니다만

이자명과 강과장의 대화는 어울리지 않게 무간도의 옷을 뺏어입은 느낌이 들어버립니다.

반면 조직내의 생리를 묘사하는 정철과 이중구 사이의 일들은 아주 좋습니다.

정철이 강과장의 덫을 물지 않지만 이중구는 그걸 물고.. 그렇게 벌어지는 사건의 시작..이 정점을 찍는거죠.

하지만 거기서 끝입니다. 허무함을 의도한 서사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 이후 갑자기 이자명이 극을 이끌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이자명에게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영화는 명백히 이자명 비긴즈이고 이 지점은 대부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부의 탁월한 클라이막스 교차편집이 멋져보이는거죠. 그게 영화의 약점이었습니다.

영화는 분명 보기 좋은 지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비정하고 거친 조직의 세계.

그 안에서 정치와 돈, 욕망이 꿈틀대는 역겨움. 그리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지혜와 능력을 겨루는 깡패들. 여기에 배우들의 호연도 있고,

엘리베이터씬처럼 굉장한 씬도 만들어냈습니다. 좋은 대중영화에요 분명.

하지만 박훈정이 좋은 감독인가..에 대해선 아직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아직 그는 아깝지만 버려야 할 부분들. 에 대해서 더 배워야 할 것 같거든요.

툴툴대긴 했습니다만 영화를 보며 정말 즐거웠습니다.

최민식의 피로감에 젖은 늙은 여우같은 강과장이나 귀신같은 황정민의 양아치연기.

그리고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이중구의 서늘함은 물론이고 주진모(제가 참 좋아해요.),

송지효, 최일화, 김병옥 등 자기 자리에서 빛을 발해주는 연기자들의 연기가 아주 좋거든요.

이정재가 멋지긴 하지만 그 자리에 또 한 명의 연기귀신이 들어왔으면 이 클라이막스가

어떤 맛이었을까요? 더 나아갈 수 있었던 지점이 명확히 보이기에 좀 더 아쉬움이 느껴지는

그런 영화였던 거 같습니다.

*경찰이 일을 위해 살인, 폭력, 납치등의 일을 하면 과연 그게 용서가 될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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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heroes]

제목에 스포라고 적어주세요...

[루 쿠루쿠루]

본문 수정했습니다. 말 줄임표를 보니 기분이 많이 상하신 모양이군요. 영화감상에 불편함을 초래했다면 유감입니다;

[루 쿠루쿠루]

아;; 남성을 다룬 영화라고 할까요 :-)

[루 쿠루쿠루]

태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 이미 우아르 장르였던 달콤한 인생에서 이 장르가 얼마나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가 증명된 적이 있죠. ㅎㅎ 저는 두기봉의 영화를 보면서도 와 멋있다~ 하며 감탄해요. 홍콩느와르부턴 확실히 여성분들이 좋아할 요소들이 있죠 :-)

[그건니생각이고]

여지껏 살면서 느와르를 주변 여성분들이 추천해서 보긴 처음이었습니다ㅋㅋ 재밌었어요~!

[루 쿠루쿠루]

프리퀄이 나올수도 있다더군요 :-)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