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길목에서 싫기만 추위를 맞이해야 만 한다. 스산한 길이 싫고 몸서리 쳐 지는 바람이 싫다. 체질적으로 겨울을 너무 좋아 하지 않는다. 내 몸은 따뜻함을 사랑 하는 가 보다.
아침부터 민 기적 거려서 어디를 가긴 가야하는데 생각뿐이다. 딸이 컴퓨터로 영화를 보자고 해서 기대를 약간 하면서 같이 앉았다. 딸 말로는 6부 까지 있다는데 1부가 끝나자 내가 "양희야 이 영화 그만 보면 안 되겠니?" 라고 말했다. "엄마! 왜?" "으응. 엄마가 보니까 아무리 유럽영화라도 너무 허구맹랑 하다 내 머리로는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아!" "엄마! 엄마 난 재미있는데, 엄마 문화 코드에 맞지 않는갑다."
아침에 두 모녀의 대화 자체 이다. 그렇다 내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 차라리 귀신영화를 보는게 낳지…….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판타지아를 좋아하는 내 딸에게는 무지 흥미 진진 하다네. 반 핼싱이라는 영화인데 나는 영~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영화를 아침부터 두 모녀가 매달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넘었다. 요즘 수시합격 후 이리저리 놀고 있는 딸아이 에게 특별히 좋은 것은 권유 못하고 도서관가서 양서나 많이 읽어 보라고 했더니 나름대로 잘 알아서 하는 것 같다. 아이는 새로 다닐 대학교에 보내고 나는 그제야 길 떠날 채비를 했다.
내 버릇이 길 떠날 때 특별한 준비 없이 훌쩍 떠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늘은 특별히 김해 가면 친구를 만나서 차 한 잔 할까 하고 친구 전화번호도 메모지에 적었다. 며칠 전 통화 했지만 사무실 전화 얻고 손폰 번호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 때는 혹시 김해 가서 볼 일 다 보면 한가 한데 만나자고 해야지 했었는데 나의 마음이나 생각이 다른 여느 때와 같이 다들 바쁘겠지 나처럼 한가로운 사람이 또 있을라고. 친구가 괜히 인사치레로 차 한잔 하지 했을 거라고 믿었다. 늘 상 이런 마음 때문에 반겨 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지레 포기 하고 만다.
아무튼 김해 가는 시내버스 123번을 탔다. 그전에 김해 박물관에 가면서 길을 익혀 두어서 헤매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했었는데 막상 김해 백화점 앞에서 내외동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서는 내리는 곳을 잘 몰라 결국 두 코스나 걸어야 했다. '운동 삼아 걷지 뭐' 하고 좋게 생각했다. 동행이 있었으면 원망을 들었을 일이 이었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이러한 시행착오도 쉽게 용서 되는 것이 너무 좋다.
한번 가 본 적 있는 곳이라 건물 옥상을 봐도 대충은 어디 즘인지 감이 왔다. 뚜벅 뚜벅 걸었다. 노랗게 찐하게 물이 들어 나무에 매달려 있던 은행잎들이 희끗희끗 보기 싫은 노란색으로 퇴색하여 보도블록에 이리 저리 나뒹굴고 길을 걷던 나의 발길에 걷어차이고 짓밟힌다. 그렇다고 은행잎이 아플까봐 피해서 걸을 수 없고 위를 지나니 아! 이렇게 가을이 가는 구나 싶어서 잠시 가로수에 아직도 안타깝게 매달려 있는 은행잎을 바라보니 얼마 안가서 모두 인도로 떨어 질 것만 같아 서글프기도 했었다.
드디어 문화의 전당 건물 앞이다. 그러나 막상 계단을 봐도 들어 갈 수 없었다. 건물이 덩치가 커다 보니 뒷문도 정문 같아 보였다. 또 반 바퀴를 돌아서 정문에 안내 푯말을 보고 윤슬 미술관을 잘 찾을 수 있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이었다. 전시관 입구에 책상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할까? 안내원들 고생 한다고…….하루 종일 앉아 책상만 지키지 뭐 따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한가한 공무원 아닌가? 속으로는 약간 비유가 상했지만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참았다. 서먹한 출입구부터 해결 했으면 좋겠다. 영화관 가서 인사 받는 것처럼 공손히 관객에게 인사를 하면 어떨까? 그러면 괜히 그날 관람은 업그레이드 되지 않을까 싶다. 안 그래도 미술관에 출입하는 것이 보통 용기가 아닌가 하고 괜한 객기를 부린다.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 하는 이렇게 눈은 있다고 큰소리를…….
오후 2시쯤인데도 미술관 실내는 관객이라고 나 혼자 뿐이다. 조용해서 좋기는 했지만 오히려 못 올 곳에 왔다 싶기도 하였다. 미술 감상 하면서 메모해 둔 글들을 수정 하지 않고 그대로 올려 보고 싶다. 그렇게 하면 그 시간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다.
밤새 내려앉은 새하얀 눈 고요한 아침. 아직도 뒷산은 아침이 오지 않은 듯 작가의 생각은 깊은 산속 외딴집에 따끈하게 금불을 넣고 가족들이 그 속에서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현상을 표현 했을 것이다. 이 그림의 이름을 붙여 준다면 '소박한 산골의 꿈' 이라고 하고 싶다.
또 다른 그림은 어느 인적이 드문 원목 장에 오랫동안 쌓여 세월의 흔적과 함께 있는 통나무들 누군가 집을 짓기 위해서 준비 해 둔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눈에 비친 통나무들의 느낌은 나이테 인 것 같다. 각각이 색감도 다르고 나이테 숫자도 다르다 톱질한 모습도 다르다. 수채화가 표현 할 수 있는 장점을 듬뿍 살린 것 같다. 잘린 나무에 수분이 다 빠진 듯이 통나무의 세월을 가늠하게 해 주기도 한다. 전체적인 느낌은 빨리 통나무로 집을 지어서 한 가족의 단란한 삶을 기다리기는 것 같다.
또 하나의 그림은 시골 기와집 담장의 모습을 오래된 넝쿨나무와 그린 작품인데 넝쿨나무의 끈질긴 생명력과 돌담의 조화로움을 표현한 옛 시절을 추억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돌담을 쌓을 때 지혜로운 기교가 엿보인다. 자연석을 모아서 큰 돌들을 맨 밑에 맞춰 놓고 그 틈을 작은 돌을 끼워 정교하게 배열 해 놓은 것들을 화가는 자연 그대로 멋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 하였다. 작품을 감상 하면서 돌담을 쌓아 올린 사람과 그 돌담을 그려서 예술 작품으로 승화 시킨 화가와 이 돌담을 쌓아 올린 이름 모를 장인과의 관계도 인연이라고 생각 하지만 그 두 사람의 혼은 어느 시점에서는 일치 했을 거라고 본다. 돌담에 사용한 돌과 기와와 흙들 자연그대로이지만 그 재료들을 화가는 너무나 정교한 붓놀림으로 표현 하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꼭 저물어가는 늦을 가을날 그 돌담 벽을 지나 걸어가는 기분 이였다.
그밖에도 여러 점의 작품들이 있다. 소라 껍질과 밧줄의 조화로움. 물 빠진 해변에 통통배 한척 비스듬히 한가롭게 가을노래를 부르고 있고 바닷가에 해송의 튼튼한 줄기위로 푸르게 생명의 존재를 알려 주는 담쟁이 넝쿨 같은 식물이 어울러 있는 해송 작품…….
전시회에서 명패를 봤지만 작품이름이 특이 하게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감상 하면서 일일이 마음으로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미술관 실내에서는 남이 볼까 부끄러웠지만 간단한 느낌을 메모하는 습관도 좋은 것 같다. 무엇이든 실험 정신이 중요 한 것 같다.
이렇게 김해 수채화전 감상은 끝이 났다. 머리 속에 화가들의 암시를 생각하며 미술관을 걸어 나왔다.
문화와 가까워질수록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욕망일까? 미술관을 나와서도 뭔가 허전 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건널목 하나 신호등 신호 보면서 건너니까 또 다른 큰 건물 하나가 있다. 아는 사람을 만났듯이 반가운 마음으로 올려다보니 CAV 라는 글씨가 나를 유혹 하였다. 발길이 마술에 걸린 것처럼 그 큰 건 물속으로 빨려 들었다. 핸드폰을 꾹꾹 눌러 보았다. 3시가 조금 넘었다. 영화 프로그램 전광판을 계속 훑어보았다. 시간이 맞아야 한다. 저녁에 모임 약속 때문이었다. 영화 제목은 썩 끌리지 않았지만 시간 때문에 3시 30분에 상영하는 사랑이야기로 결정 했다. 영화 감상문은 따로 글을 쓰고 싶고 이제 영화관을 나와 부산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미 해가 져 컴컴한 길을 무작정 걸어야 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무조건 걷는 것이 최선이 이었다. 다행히 역방향으로는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2번 버스를 타고 다시 김해 백화점에 내렸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갔더니 그 시간이 되니 배가 고팠지만 마땅히 식사 할 곳도 없고 버스 정류소 앞 떡볶이 집에 오뎅이나 서너 개 먹고 요기를 했다. 천백원인데 주인아저씨 백 원 깎아 준단다. 내가 돈이 없어 보였나? 그건 아닐 텐데 서글픈 생각이 잠시 들었다. 백화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젊은 연인 두 사람이 곰돌이 털 달린 실내화를 고른다고 뒤적거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옛 추억을 떠 올려 보기도 했다. 저런 시절 있긴 있었지…….
요즘은 여행은 늘 혼자다. 언젠가는 남편과 오붓하게 다닐 날 오겠지 하고 생각도 해 보지만 혼자 다녀 버릇하니 혼자가 편하기만 하다.
그리고 여행 후 후기를 쓰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일탈 자체가 중요 한 의미가 있는 듯 하다.
부산 오는 버스는 비좁기도 했지만 경전선 공사 이유로 얼마나 막히는지 버스에서 마음이 조리고 몸이 이리 두 척 저리 두 척 하기만 하다. 모임 시간은 다가오고 차는 안가고 어제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이번 달부터 모임 총무를 맡아서 미리 예약도 해야 하고 할 일도 다른 사람 보다 더 많은데 막힌 길 때문에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다행히 우리 동네 도착하니 7시 20분 모임에 늦지는 않았다. 김해 수채화전 관람과 영화 사랑이야기를 본 오늘 하루는 참 길고 행복 했다.
첫댓글 글에서 따뜻함이 전해지는것으로 보아,,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내신것 같아요.마치 저도 hermi65님의 일정을 그대로 경험한 느낌이네요.한편의 수필을 경험한것 같고요.제가 개인적으로 이런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글을 좋아하거든요.잘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새글을 쓸 수 있게 용기 덤뿍 주시는 댓글에 또 다시 도전의 힘을 내봅니다!
저도 미술관 가면 메모하곤 해요. 물론 그 메모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림의 형태를 잠깐 남겨보기도 하고요. 그림에 대한 감상평 '아침이 오지 않은 듯~ '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산골의 꿈 등 hermi65님의 그림에 대한 평을 보니 저도 달려가서 그림이 보고 싶어지는걸요.. (김해가 너무 멀지만) 예전에 가야국~ 탐방기 읽고 경주가신다고 하신것으로 기억하는데 경주는 잘 다녀오셨나요?
네에..경주기행문이 빠졌군요.ㅋㅋㅋ 아이들 데리고 잘 다녀왔답니다.^^& 기억이 새삼 나는데 다시 적어 볼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