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50년간 의대 정원의 증감을 반복했지만 의사와 정부 간 갈등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①단계적이고 유연한 증·감원 ②논의 기구를 통한 결정 ③의사 부족이 심한 지방 중심의 증원 등 세 가지 원칙을 지킨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처럼 대규모 증원을 밀어붙이지 않고, 당시 의료·교육 수준을 고려해 이해관계자 간 충분한 논의로 결정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의료 수요·공급에 따라 의대 정원을 유연하게 조정해 왔다. 1973년 의대가 없는 지방에 의대를 신설해 6,200명이었던 정원을 1981년 8,280명까지 늘렸다. 이후 증감을 반복하다 지역 의사 부족을 이유로 2006년 지방 의대 정원을 늘렸다. 다만 한국과의 차이는 한 번에 많이 늘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지자체마다 10명씩, 다음 해에는 5명씩 단계적으로 늘렸다. 2017년 9,420명으로 정점을 찍자 공급 과잉 우려에 '정원은 9,420명을 넘지 않는다'는 기준을 세웠고, 지난해 9,384명으로 다시 줄였다.
'협의체' 운영도 갈등을 막는 요소다. 일본은 1983년 '장래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를 시작으로 별도 조직을 운영해 의대 정원을 결정했다. 검토회에는 22명이 참여하는데 3분의 2가 의료 전문가다. 의료 현장의 애로사항을 충분히 반영하려는 취지다. 지방자치단체, 의료 컨설팅 회사, 복지시설 관계자, 시민단체도 참여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한다.
일본은 '지역 의료 확충'에 초점을 맞춰 증원을 논의하기 때문에 반발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일본의사회가 2010년 정부에 증원 반대 의견을 제출하면서도 "의사 부족 지역에 한해 일부 증원은 인정한다"고 명시했을 정도다. 2008년에는 지방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틀' 제도도 도입했다.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지역 의대가 입학생을 모집하는 대신 대학과 지자체가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졸업 후 지자체가 정한 지역에서 9년간 의무 근무하는 조건이다.
지역틀 시행 전인 2007년 지역 학생 선발 제도로 입학한 학생은 173명, 전체 정원의 약 2%에 그쳤다. 그러나 2008년 지역틀 도입 이후 의대에 입학한 지역 학생 수는 꾸준히 늘었고, 2021년에는 1,723명까지 증가했다. 전체 의대 정원의 약 19%가 지역틀 등 지역 학생 선발 제도로 의대에 입학한 것이다. 김 연구원은 "일본은 지금도 지역틀 확대와 다른 지역 파견 등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야노 전문의도 "일본에서는 지역 인재가 지역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며 "지역틀 외에도 각종 학비 지원 제도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의대 증원을 하더라도 지역에 정착시킬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세키 도모토시 죠사이대 교수는 "일본은 지역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도록 지역틀 등 각종 방안을 고민해 왔다"며 "근무 환경, 의료 장비, 연수 등 지역 의료 수준 자체를 올려야 증원한 만큼 지역에 정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