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을 떠나 보내는 길목에서 눈을 들어 이 땅을 바라보니,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환경은 너무나 어수선하며 불안하며 우울하다.
들리는 소식마다 마음 놓이고 평화롭고 신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잿빛이다.
국내정치 특히 여야간, 또 사회 각 계층의 심각한 갈등과 공격, 경제침체,
강대국간 첨예한 대립의 국제정세와 북한의 무모한 탄도미사일 발사 등 앞날이 우려된다.
그런데다 연일 계속된 유례없는 장마와 폭염과 열대야로 심신이 피로하고 짜증난다.
그래서 이 모든것을 잠시나마 잊고 머리를 식히려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지난 주말, 느닷없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농촌 7월의 논두렁이
생각나고 그리움이 찾아 왔다. 그러나 천리길인 고향은 갈 수는 없어 분당 집에서
그리 멀잖은 광주의 퇴촌마을의 어느 농촌 길을 찾아, 모자에 선글라스끼고 가벼운
차림으로 바지 주머니에 두손을 넣고 추억을 달래는 마음의 길을 어슬렁 거닐었다.
지금 7월의 농촌언어는 세상의 온갖 형형색갈이 한 색깔로 어울러진 초록빛 대화이다.
온 세상의 그 짙푸른 세상살이 속에서도 소박한 뒤꼍에 올망졸망 피어난 이름 모를
노랗고 하얀 풀꽃들마저 은연이 한 여름의 자기목소리를 내고 있다.
7월의 농촌세상은 이렇듯 큰 것은 큰 대로, 작은 것은 작은 대로, 깨끗한 것은 깨끗한 대로,
더러운 것은 더러운 대로 자기만의 멋으로 7월의 시간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서둘러 벼가 크게 자란 논두렁 길을 걸어 보았다.
그런데 논둑 길 가기 전, 또 다른 작고 진지한 삶이 목격된다.
아주 작은 벌과 쐐기인지 서로 노란 꽃봉오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아우성이다.
농촌은 자신이 가장 부지런을 떠는 것 같지만 언제나 항상 자기보다 먼저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농촌은 활기 있게 돌아가도 그게 농촌의 힘이다.
작은 미물인 벌과 쐐기에게서도 삶의 부지런함과 진지함을 게으른 인간에게
일깨워주는 곳이 바로 자연 속의 농촌이다.
저 건너 논에는 한참 키가 자란 벼가 하루가 다르게 부쩍 자라고 있다.
일사량이 가장 길다는 하지가 지난지도 한달이 넘었고 가장 덥다는 중복도
며칠 전 지나면서 제법 굵기도 굵어졌고 논바닥에 뿌리내린 힘도 만만치 않다.
그 벼를 대견함으로 바라보면서 거센 장마, 거대한 태풍 같은 세상풍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기원해 본다.
그런 마음으로 논두렁을 지나면서 괜스레 쓸데없이 같이 자란 피를 뽑아 버렸다.
논두렁을 지나 옆 마을로 들어서니, 돌담 사이로 올망졸망 여문 살구나무가 벌써부터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며 그 옆 뽕나무는 어느새 길게 그늘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점심시간을 알리면서 평상에 짙은 그늘까지 쳐 놓았다.
오디가 빨갛게 열린 큰 뽕나무 아래서 바라본 하늘에서는 구름이 서둘러 흘러가며
서둘러 흘러가는 그 구름을 보니 느긋하던 마음이 그새 바빠진다.
어디론가 바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게으른 인생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이다.
논두렁에서 바라본 7월의 마지막 길목의 풍경은 참 바쁘다.
농사꾼도, 자연도 바쁘고 주변의 모든 것이 바쁘다.
좀 더 성숙한 8월에게 전달할 자기역할을 다하기 위해 열심이다.
몇 개월 후 추수기를 생각하면서 풍년이 들기를 위해 떠나 보내는
농촌의 7월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세기 넘는 세월, 농촌을 떠나 살았던 내가 괜히 돕는다고 방해될지 모르겠지만,
스쳐가는 바람과 저 논의 벼는 나의 이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