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꾼들이 가장 아름다운 섬 '우도'에 올렛길을 텃습니다. 옥빛깔의 영롱한 바다의 해안을 옆에 끼고 섬 한바퀴를 돌아 16km의 '우도올레'입니다.
섬속에 섬 우도, 제주도가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함축시켜 놓은 듯한, 한마디로 작은 제주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도 한바퀴의 16km는 제주올레의 12개 코스 총거리의 평균거리와 비슷합니다.
제주도에 딸려 있는 62개의 섬가운데 가장 크며 사계절 내내 소박하고 풋풋한 풍경을 연출하는 우도, 달리 불러서 '소(牛)섬'입니다. 그 사람사는 섬속의 속살을 구경하러 파도를 가르며 떠나보겠습니다.
우도, 소섬, 필자에게는 누구보다도 인연이 깊은 곳이 바로 소섬입니다.
태어난 고향이 바로 이곳이니 보통인연은 아닐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우도를 떠났기에 어린시절을 우도에서 보낸 멋드러진 추억은 하나도 없지만 친지와 선친의 산소가 우도에 있기에 최소한 일년에 한번은 성산포의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지극히 형식에 얽매여 수도 없이 우도를 다녀갔지만 늘 한정된 지역에서 한정된 움직임이었기에 우도가 간직하고 있는 진짜 아름다움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남들이 다 올라 본 우도봉에 조차 오르지 못했으니 말 다했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걸어서 돌아 보려고 마음먹었던 곳이기도 하고 마침 제주올레에서 우도코스를 새롭게 개발하여 길을 텃다고 하니 이번 휴일은 우도행 도항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도를 떠난지 40년을 훌쩍 넘겼지만, 그동안 단 한번도 우도의 올레를 제대로 걸어본적이 없습니다.
오늘만큼은 천천히, 정말 천천히, 풀한포기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짭짤한 냄새와 그리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호밀밭의 온화한 향기까지 마음껏 가슴에 담고 싶습니다.
올레걷기를 할때면 언제나 날씨는 나의 편, 이번 우도를 찾은 날도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하고 있고, 눈부신 햇살을 받아내고 있는 바다는 온통 짙은 코발트와 옥빛 일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우도올레가 개장한 23일에는 부득이 참가를 못했기에 이번에 도항선이 닿은 곳은 하우목동항, 이곳은 천진항과 더불어 우도의 또 다른 관문입니다.
마냥 걷다 보면 제자리, 우도올레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지금까지의 올렛길은 하나의 코스마다 일정한 구간에 시작점과 종착점이 있어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한번은 이동하는데에 고민을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섬을 한바퀴 돌아야 하는 우도올레는 그러한 고민 하나를 덜어 주었습니다.
올렛길의 길잡이 팻말을 보며 걸어도 좋고 흩느러진 풍경에 한눈을 팔아 길을 잃어 버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발길 닿는데로 들판을 가로 질러도 그길이요, 옥빛바다가 내지르는 파도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걸어도 어차피 그길입니다. 좀 튀고 싶다면 반대 방향으로 걸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습니다.
우도관광을 하려는 다른 사람들처럼 차량이나 스쿠터를 운전하는 번거로움은 훌훌 던져버려도 무방합니다. 우도의 속살을 느끼기 까지는 그냥 단순하게 도항선에 몸 하나를 싣기만 하면 모든게 해결됩니다. 우도올렛길에서는 사람냄새가 가장 짙게 다가옵니다. 가다가 목이 마르면 물 한모금 얻어 마시고, 땡볕이 따가우면 시원한 처마밑에 잠시 쉬어가면 그만입니다.
하우목동항에 내려 왼쪽으로 길을 잡아 처음만난 녀석들입니다. 공기맑은 곳에서의 풀만을 뜯어온 녀석들이라 그런지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우도의 관문중에 처음 생긴 항구는 천진항입니다. 오래전에는 하우목동으로는 도항선이 다니질 않았습니다. 몇년전이라고 기억은 나질 않지만 종달리에서 우도로 들어 오기 위하여 생긴 항구가 바로 하우목동항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70~80년대만 하더라도 차량들을 도항선에 실어 지금처럼 마음껏 드나들지도 못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고깃배 같은 조그마한 도항선이 하루 두세차례 운항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경운기가 몇대 들어온 적이 있는데, 분해를 하여 어렵게 들여온후 우도에서 조립을 하는 광경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뭇개', 상우목동과 하우목동을 예전에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정확한 지명의 유래는 찾아볼 수가 없지만 한자로는 '牛目洞(우목동)' 이라고 쓰는걸 보면 소의 눈이라는 뜻인데 이곳 우뭇깨 지역은 소의 눈 부분은 아닙니다. 어릴적에는 하우목동을 아랫무깨라고 불렀습니다.
우무를 사용한 연유로는 우도에서 가장 유명한 천초인 우뭇가사리가 연상되고 한자를 풀이하면 소의 눈이 연상되는데 두가지 모두 유래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먼저 우뭇개와 관련된 설에는 우무(天草) + 개(浦)의 합성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뭇가사리를 캐는 포구로, 아니면 우무가사리가 많이 생산되는 개(浦), 또는 바닷가에 인접한 마을로 풀이하는 설이며, 소의 눈과 관련된 유래를 살펴보면 우도는 전체가 흑회색의 암석과 모래이었는데 하우목동의 해안(지금의 서빈백사)만이 유독 하얀 모래였습니다. 이는 성산포나 종달리에서 보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데, 이 부분을 '우도의 눈(雪)'으로 표현한 것이 소의 눈(目)으로 와전되어 「牛目洞」이라 불리워진 것이라 합니다.
현재는 이곳마을의 이름을 '서광리' 라고 부르는데, 상.하우목동과 우도의 중심마을인 중앙동을 합쳐 서광리가 되었는데, 석양이 지는 저녁해가 너무 고와서 서녘서(西)와 빛광(光)의 서광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도사람들은 옛 지명인 우뭇깨와 아랫무깨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겨운 분위기의 아슬아슬한 돌담과 황금빛으로 노랗게 물든 호밀밭, 그리고 우도의 상징,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가슴에 담아내며 터벅터벅 걷기를 30여분, 서광리를 넘어서 이제 오봉리로 접어듭니다. 하고수동항에서 부터 약 1.3km에 위치한 오봉리의 주흥동 포구입니다.동그랗게 생긴 포구의 안쪽으로 바닷속 모래알까지 비춰지는 유리같은 바닷물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넋을 놓다 보니 걸어온 거리가 비해 걸린 시간이 곱배기는 소요된 것 같습니다. 어차피 시간의 구속은 받고 싶지 않기에 마지막 도항선이 출항하는 저녁 6시까지 아주 천천히 훑어 나갈 생각입니다.
오봉리, 한자로는 五逢里 라고 나타냅니다.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주흥동, 전흘동, 삼양동, 상고수동, 하고수동의 다섯개 마을이 합쳐졌다 하여 오봉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부터 전흘동, 하고수동의 빛나는 백사장을 거쳐 비양동에 이르기 전까지 우도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며 우도에서 가장 어민들의 생업 활동이 활발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주흥동을 지나 삼양동의 해안도로로 접어들면서 그림같은 해안 절경들이 쏟아집니다. 제주특유의 밭담을 끼고 이어지는 해안의 꾸불꾸불한 도로는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인하다는 우도해녀들의 거친 숨비소리가 가는 이의 발걸음을 또 붙들어 맵니다.
올렛길의 표시를 놓쳐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하마터면 무심코 지나칠뻔 했던 지점입니다. 분명 올렛길의 표식은 이리로 되어 있으나 통로는 이처럼 굳게 닫혀 있습니다. 마소를 가두기 위한 시설인지, 사람의 통행을 막기위한 시설인지는 알지 못한채 일단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하고수동으로 향하는 길, 분명 사람이 쌓아 올린 돌담이 분명한데,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삼양동 마을의 올렛길도 스쳐 지나가고
우도 특유의 농작물인 마늘의 진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어른 한사람이 걸어가면 족할, 좁다란 밭담길을 지나면
또다시 눈앞에는 조그마한 포구의 마을, 하고수동이 나타납니다.
하고수동의 포구를 살짝 지나쳐 눈앞에 펼쳐진 그림같은 모습의 하고수동 해수욕장입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운 빛깔을 발산해 내는 물빛과 여인의 속살처럼 눈부신 우유빛깔의 모래사장은 또 가는 발걸음을 힘차게 붙들어 맵니다. 어느덧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간간히 보이고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은 외국인 연인들의 모습을 보니 필시 저들의 눈에도 예사스러운 풍경은 아닌 듯합니다.
하고수동, 상고수동과 더불어 상하로 나뉘어 있는 '고수동(古水)' 한자를 그대로 풀어 '예물동네'입니다. 이곳에는 옛날에 용천수가 펑펑 솟아나는 샘물이 있었다는데서 유래된 마을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우도에는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 하고수동의 샘물인 '예물'은 예전에는 수량이 풍부하였다고 합니다. 생수가 없던 우도에 왜인(倭人)들이 이곳에 정박하게 되었는데 마실물이 없어 온 섬을 헤매고 다닌 끝에 이곳 하고수동에서 수맥을 찾아 우물을 팠더니 용천수가 펑펑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이 샘은 용수량이 아주 풍부하여 우도의 모든 주민들이 충분히 마시고도 남았는데 누군가가 샘의 뒷편에 집을 지은 후로 더 이상은 물이 솟지 않았는데, 그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 800여 미터 어귀를 돌아 서면 또 다른 마을 비양동 포구가 나타납니다. 어느덧 하우목동항, 주흥동항, 하고수동항에 이어 네번째 만나는 포구입니다. 누군가가 축구공을 차면 바다에 빠트릴 정도로 우도가 좁다고 했는데 이정도면 좁다는 소리는 쏙 들어갈 것 같습니다. 비양동에는 비양도라는 또다른 섬속의 섬이 하나 있는데 우도의 또다른 비경을 간직한 곳으로 입구에는 소라껍데기로 장식한 이색적인 구조물이 서 있기도 합니다.
△비양도에서 바라 본 비양동 포구의 모습입니다. 오른쪽 끝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마을은 하고수동입니다.
비양도에 있는 정자와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삼양동에 있는 답다니탑과 같은 형태의 망대입니다. 해안을 관찰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진 것으로 제주4.3사건 당시 우도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우도에는 보이는 우도망대와 답다니탑 망대, 두곳에 해안관찰용 망대가 있습니다.
망대 위에 올라 바라 본 우도의 전체적인 모습. 오른쪽에 하고수동 백사장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고 왼쪽으로는 우도봉에서 망동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이 보입니다.
조일리, 이곳 비양동(飛陽洞)에서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검멀레 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동네인 영일동(迎日洞), 두 마을이 합쳐진 행정구역이 바로 조일(朝日)리입니다. 우도에서 가장 먼저 아침 햇살을 맞이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우도 개척자인 김진사가 거주하였던 곳으로 우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터가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이쁘게도 벗어 놓고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연인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 두켤레가 다소곳이 비양도 등대섬의 입구에 놓여 있습니다. 이곳은 간조시에는 이처럼 걸어 들어갈 수 있으나 만조가 되면 위험하여 들어갈 수 없습니다. 비양도 등대가 바라 보이는 한켠에는 우도의 특산물인 돌미역을 말리는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관광객들에게 경관용으로 재배한 꽃양귀비 군락입니다. 이러한 군락이 이 곳 비양동과 망동산 근처에 있습니다. 양귀비과의 꽃으로 개화시기가 4~5월이라 지금 만개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양동 포구 옆으로 자리잡고 있는 조그마한 모래사장인데, 정말 아담하고 맑은 물빛과 깨끗한 모래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비양동을 지나 보석처럼 빛나는 해안길을 따라 멋드러진 바닷가의 풍경과, 조일리의 마을 안길을 따라 이어지는 정겨운 올렛길과 바쁜 일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농촌의 땀내나는 시골의 모습들이 스쳐가기를 40여분, 이제 곧 조일리의 최대 자랑거리 검멀레 해변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두분이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우도의 비경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우도봉이 보이는 검멀레 해안으로 향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아마 우도에서의 추억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 싶네요.
기암 협곡 사이에 옥빛의 짙푸른 빛깔의 검멀레 해수욕장의 장엄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보트관광을 즐기는 관광객들도 보입니다. 보트를 타고 보는 우도봉의 기암절벽 아래는 가히 절경중의 절경입니다. 동안경굴을 지나 주간명월까지 또한 우도봉 절벽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동물형상의 바위들은 진짜 살아 움직이는 듯 장관을 연출합니다.
검멀레 해수욕장, '검멀레'는 검은 모래를 뜻합니다. 말그대로 검은모래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해변입니다. 모래사장 길이가 백미터 가량 되는데요. 우도의 물빛이 어딘들 안이쁠까만은 이곳은 특히 짙은 옥빛의 물색깔이 너무 환상적입니다. 해수욕장이라고 이름이 붙여졌기는 하나 실제로 해수욕을 하기는 애로가 많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온통 돌 투성이라 자칫하면 상처나기 일쑤입니다. 단, 모래찜질과 함께 모래사장에서 텐트를 치고 피서를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곳 검멀레는 해수욕보다는 우도팔경중 동안경굴과 주간명월, 그리고 후해석벽을 감상하려는 통로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썰물때 이곳을 거쳐야만이 동굴속으로 진입할 수가 있습니다.
검멀레의 모래를 밟으며 들어온 곳, 바로 우도에서 자랑하는 해식동굴입니다. 우도팔경중 하나인 '동안경굴'이 바로 이곳입니다. 특히 '동굴음악회'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1997년 9월에 '동굴소리연구회' 주최로 처음 시작된 동굴음악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멋스러움에 인기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동안경굴, 동안경굴(東岸鯨窟)은 우도팔경(牛島八景) 중 하나입니다. 동안경굴은 밀물 때는 물 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굴 속에 굴’이 있는 이중 동굴이며, 입구는 좁아도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게 펼쳐져 또 다른 세계를 드러냅니다. 제주도의 해식동굴 중 비교적 규모가 큰 동굴로 바닥에는 용암류의 흔적이 나타나며, 길이는 113m입니다.
주의할 점! 우도올레를 걸으면서 '동안경굴'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필히 알아둬야 할 점이 있는데요. 동안경굴로 가려면 검멜레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를 건너 조그마한 동굴속으로 들어간 후성인 한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틈을 이용하여 다시 밖으로 나간 후에야 비로서 동안경굴로 갈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돌아올 때입니다. 동안경굴의 비경에 주눅이 들어 지나쳐 왔던 통로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나오는 길을 못찾아 헤맬 수 있습니다. 동안경굴로 접근하면서 지나치는 경로를 잘 파악하셔야 돌아 나오실때 문제없이 나올 수 있다는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필자가 들어갈 때 나오던 올레꾼을 스쳐 지났는데, 나오면서 보니 나가는 길을 못 찾아 당황해 하는 올렛꾼을 봤습니다.
동안경굴과 검멀레의 비경을 뒤로 하고 이제 우도봉으로 향합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드넓게 펼쳐진 초원, 그리고 우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경치가 우도 제일의 경관을 간직한 곳이기도합니다.
올레가 이끄는 길은 직접 우도봉으로 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망동산으로 가야하는데요, 망동산의 봉오리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비경을 선사하려는 의도로 보여집니다.
아닌게 아니라 망동산에서 바라본 우도는 자신이 품고 있는 모든 매력을 다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길게 이어진 해안선의 모습, 그리고 마을 안길의 꾸불꾸불 이어진 아름다운 골목들, 그리고 황금빛 들녘의 황홀함에서 우도봉의 장엄함까지 조망이 됩니다.
망동산에서 바라본 풍경들입니다. 우도에서 우도봉 다음으로 높은 곳이도 하며 우도봉은 '큰섬머리', 이곳 망동산은 '작은섬머리' 라고 부릅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우도 전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성산읍, 구좌읍 일대가 훤히 보이는 지리적 잇점 때문에 옛날 왜구의 침입이 있을 때는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이면 봉화불을 올려 성산읍의 대수산봉(大水山峯)과 종달리의 지미봉(地尾峯)으로 연락을 취했던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던 곳이기도합니다. 노일(露日)전쟁 당시에는 일본군 망루병이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을 침범하는 것을 포착 격파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망동산에서 내려 우도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꽃양귀비 군락, 비양동에 본 같은 품종이며 같은 목적으로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초록의 초원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의 색상에 눈이 부십니다.
우도봉으로 오르기전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터줏대감.
드디어 우도를 한아름에 품을 수 있는 곳에 발길이 닿았습니다. 우도에서 가장 높은 우도봉입니다. 이곳을 섬머리라고 부르는데, '섬의 머리', 즉 '쇠머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섬머리에는 유명한 우도등대와 삼각점이 있으며 해발 132.5미터이입니다. 남면과 남동면은 100여 미터에 가까운 단애를 이루어 절정을 자아낸다. 북사면은 분화구가 넓게 이어져 완만하고 길게 꼬리를 내려 바다에 잠기는데, 그곳이 바로 전흘동 '세비코지'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도봉은 정상에서 시작하여 끝트머리의 바다에 잠기는 부분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맞다 할 것입니다.
또한 이곳 우도봉도 우도팔경중의 하나입니다. '지두청사'라고 하는데, 지두청사(地頭靑莎)는 우도봉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전경을 말합니다. 우도에서 가장 높은곳인 섬머리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우도 전체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황홀한 초록빛 물결이 바다에 맞닿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도봉에서의 풍경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관광객들.
발길은 우도봉을 내려와 돌칸이를 거쳐 우도의 첫 관문인 천진항으로 향합니다.
우도에 있는 여러개 포구중 가장 큰 포구를 간직하고 있는 우도의 관문 천진항이 있는 천진리입니다. 이 마을은 원래에도 천진동(天津洞)이었는데, 1915년경 인구가 증가하여 동천진동, 서천진동 나뉘었다가 1986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다시 두마을이 합쳐져 천진리로 원래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우도의 사람들은 에로부터 이마을을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늘나라, 또는 하늘이라고 불렀는데 원래의 이름이 '한나루'였기 때문에 와전되어 불려진 것입니다.
'한나루'는 한(큰)과 나루(津)의 뜻을 담고 있는데, 한자로 표시를 하면, '대진(大津)'이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하지만 입에서 엡으로 불려져 온 '하늘이'라는 이름에 연유하여 지금의 천진동(天津洞)이 되었습니다.
천진항을 지나 다시 서빈백사로 향합니다. 출발한 곳이 하우목동항이라 한바퀴로 끝맺음을 해야 합니다. 도항선 시간에 쫓긴다면 이쯤에서 도항선에 몸을 실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천진동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이 일품이라는 우도팔경중 하나인 '천진관산'의 중심지와 올렛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쇠물통을 스쳐 지나갑니다. '쇠물통'은 마소가 물을 마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우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곳 우도팔경중 하나인 서빈백사입니다. 서쪽에 있는 새하얀 모래사장을 뜻하는 서빈백사(西濱白沙)는 이곳 우도 서쪽의 홍조단괴해빈해수욕장을 말합니다. 이 모래는 눈이 부셔 눈을 잘 뜨지 못할 정도로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데 우리나라에서 단 한군데 이곳 바다에서만 있는 풍경이기도합니다. -서빈백사와 홍조단괴해빈에 관한 내용은 따로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제 한어귀만 돌아서면 하우목동항입니다.
성산포에서 9시 출항하는 도항선을 타고 하우목동항으로 들어가 다시 같은 곳에서 오후 5시 도항선을 타고 나옵니다.
처음부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 보려고 계획했던 우도이기에 8시간이 걸렸습니다.
도보여행으로 우도 한바퀴를 계획하고 계시다면 넉넉한 시간 투자를 위하여 아침 일찍 서둘러 오후늦게까지 하루를 투자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걷기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 우도, 우도는 원래 무인도였습니다.18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는데요, 화산재와 바위투성이였던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살기 시작하였고 우도가 보이는 인근마을 주민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해산물을 채취하던중 조정에 탄원을 올려 결국 1842년에 윤허가 내려지게 됩니다. 1884년에 이르러 김석린 진사가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에 입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행정구역이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연평리에서 1986년 4월 행정구역이 분리 승격되면서 북제주군 우도면에 네개의 리(里)를 소유한 지역으로 바뀝니다. 지금의 행정구역상 명칭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입니다.
소를 닮아 우도라 불리는 이섬은 마치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 같기도 하고 소가 드러 누운 형상과 같다고도 해 소섬 또는 우도라고 불립니다. 소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남단은 높이 132m의 '섬머리'라 부르는 우도봉이 있으며, 그외는 대부분 나지막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늘 식수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물 저장소를 여러군데 만들어 빗물을 받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주로 하는데, 주요 밭작물로는 고구마, 보리, 땅콩 등으로 특히 우도의 땅콩은 전국적으로 그 고소함이 알려져 있어 해마다 땅콩의 재배면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주요 수산물은 어류 외에 우뭇가사리, 감태, 톳, 미역, 성게, 오분자기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특히 우웃가사리와 돌미역이 유명합니다.
올레꾼들이 가장 아름다운 섬 '우도'에 올렛길을 텃습니다. 옥빛깔의 영롱한 바다의 해안을 옆에 끼고 섬 한바퀴를 돌아 16km의 '우도올레'입니다.
섬속에 섬 우도, 제주도가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함축시켜 놓은 듯한, 한마디로 작은 제주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도 한바퀴의 16km는 제주올레의 12개 코스 총거리의 평균거리와 비슷합니다.
제주도에 딸려 있는 62개의 섬가운데 가장 크며 사계절 내내 소박하고 풋풋한 풍경을 연출하는 우도, 달리 불러서 '소(牛)섬'입니다. 그 사람사는 섬속의 속살을 구경하러 파도를 가르며 떠나보겠습니다.
우도, 소섬, 필자에게는 누구보다도 인연이 깊은 곳이 바로 소섬입니다.
태어난 고향이 바로 이곳이니 보통인연은 아닐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우도를 떠났기에 어린시절을 우도에서 보낸 멋드러진 추억은 하나도 없지만 친지와 선친의 산소가 우도에 있기에 최소한 일년에 한번은 성산포의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지극히 형식에 얽매여 수도 없이 우도를 다녀갔지만 늘 한정된 지역에서 한정된 움직임이었기에 우도가 간직하고 있는 진짜 아름다움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남들이 다 올라 본 우도봉에 조차 오르지 못했으니 말 다했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걸어서 돌아 보려고 마음먹었던 곳이기도 하고 마침 제주올레에서 우도코스를 새롭게 개발하여 길을 텃다고 하니 이번 휴일은 우도행 도항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도를 떠난지 40년을 훌쩍 넘겼지만, 그동안 단 한번도 우도의 올레를 제대로 걸어본적이 없습니다.
오늘만큼은 천천히, 정말 천천히, 풀한포기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짭짤한 냄새와 그리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호밀밭의 온화한 향기까지 마음껏 가슴에 담고 싶습니다.
올레걷기를 할때면 언제나 날씨는 나의 편, 이번 우도를 찾은 날도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하고 있고, 눈부신 햇살을 받아내고 있는 바다는 온통 짙은 코발트와 옥빛 일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우도올레가 개장한 23일에는 부득이 참가를 못했기에 이번에 도항선이 닿은 곳은 하우목동항, 이곳은 천진항과 더불어 우도의 또 다른 관문입니다.
마냥 걷다 보면 제자리, 우도올레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지금까지의 올렛길은 하나의 코스마다 일정한 구간에 시작점과 종착점이 있어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한번은 이동하는데에 고민을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섬을 한바퀴 돌아야 하는 우도올레는 그러한 고민 하나를 덜어 주었습니다.
올렛길의 길잡이 팻말을 보며 걸어도 좋고 흩느러진 풍경에 한눈을 팔아 길을 잃어 버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발길 닿는데로 들판을 가로 질러도 그길이요, 옥빛바다가 내지르는 파도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걸어도 어차피 그길입니다. 좀 튀고 싶다면 반대 방향으로 걸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습니다.
우도관광을 하려는 다른 사람들처럼 차량이나 스쿠터를 운전하는 번거로움은 훌훌 던져버려도 무방합니다. 우도의 속살을 느끼기 까지는 그냥 단순하게 도항선에 몸 하나를 싣기만 하면 모든게 해결됩니다. 우도올렛길에서는 사람냄새가 가장 짙게 다가옵니다. 가다가 목이 마르면 물 한모금 얻어 마시고, 땡볕이 따가우면 시원한 처마밑에 잠시 쉬어가면 그만입니다.
하우목동항에 내려 왼쪽으로 길을 잡아 처음만난 녀석들입니다. 공기맑은 곳에서의 풀만을 뜯어온 녀석들이라 그런지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우도의 관문중에 처음 생긴 항구는 천진항입니다. 오래전에는 하우목동으로는 도항선이 다니질 않았습니다. 몇년전이라고 기억은 나질 않지만 종달리에서 우도로 들어 오기 위하여 생긴 항구가 바로 하우목동항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70~80년대만 하더라도 차량들을 도항선에 실어 지금처럼 마음껏 드나들지도 못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고깃배 같은 조그마한 도항선이 하루 두세차례 운항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경운기가 몇대 들어온 적이 있는데, 분해를 하여 어렵게 들여온후 우도에서 조립을 하는 광경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뭇개', 상우목동과 하우목동을 예전에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정확한 지명의 유래는 찾아볼 수가 없지만 한자로는 '牛目洞(우목동)' 이라고 쓰는걸 보면 소의 눈이라는 뜻인데 이곳 우뭇깨 지역은 소의 눈 부분은 아닙니다. 어릴적에는 하우목동을 아랫무깨라고 불렀습니다.
우무를 사용한 연유로는 우도에서 가장 유명한 천초인 우뭇가사리가 연상되고 한자를 풀이하면 소의 눈이 연상되는데 두가지 모두 유래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먼저 우뭇개와 관련된 설에는 우무(天草) + 개(浦)의 합성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뭇가사리를 캐는 포구로, 아니면 우무가사리가 많이 생산되는 개(浦), 또는 바닷가에 인접한 마을로 풀이하는 설이며, 소의 눈과 관련된 유래를 살펴보면 우도는 전체가 흑회색의 암석과 모래이었는데 하우목동의 해안(지금의 서빈백사)만이 유독 하얀 모래였습니다. 이는 성산포나 종달리에서 보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데, 이 부분을 '우도의 눈(雪)'으로 표현한 것이 소의 눈(目)으로 와전되어 「牛目洞」이라 불리워진 것이라 합니다.
현재는 이곳마을의 이름을 '서광리' 라고 부르는데, 상.하우목동과 우도의 중심마을인 중앙동을 합쳐 서광리가 되었는데, 석양이 지는 저녁해가 너무 고와서 서녘서(西)와 빛광(光)의 서광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도사람들은 옛 지명인 우뭇깨와 아랫무깨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겨운 분위기의 아슬아슬한 돌담과 황금빛으로 노랗게 물든 호밀밭, 그리고 우도의 상징,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가슴에 담아내며 터벅터벅 걷기를 30여분, 서광리를 넘어서 이제 오봉리로 접어듭니다. 하고수동항에서 부터 약 1.3km에 위치한 오봉리의 주흥동 포구입니다.동그랗게 생긴 포구의 안쪽으로 바닷속 모래알까지 비춰지는 유리같은 바닷물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넋을 놓다 보니 걸어온 거리가 비해 걸린 시간이 곱배기는 소요된 것 같습니다. 어차피 시간의 구속은 받고 싶지 않기에 마지막 도항선이 출항하는 저녁 6시까지 아주 천천히 훑어 나갈 생각입니다.
오봉리, 한자로는 五逢里 라고 나타냅니다.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주흥동, 전흘동, 삼양동, 상고수동, 하고수동의 다섯개 마을이 합쳐졌다 하여 오봉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부터 전흘동, 하고수동의 빛나는 백사장을 거쳐 비양동에 이르기 전까지 우도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며 우도에서 가장 어민들의 생업 활동이 활발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주흥동을 지나 삼양동의 해안도로로 접어들면서 그림같은 해안 절경들이 쏟아집니다. 제주특유의 밭담을 끼고 이어지는 해안의 꾸불꾸불한 도로는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인하다는 우도해녀들의 거친 숨비소리가 가는 이의 발걸음을 또 붙들어 맵니다.
올렛길의 표시를 놓쳐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하마터면 무심코 지나칠뻔 했던 지점입니다. 분명 올렛길의 표식은 이리로 되어 있으나 통로는 이처럼 굳게 닫혀 있습니다. 마소를 가두기 위한 시설인지, 사람의 통행을 막기위한 시설인지는 알지 못한채 일단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하고수동으로 향하는 길, 분명 사람이 쌓아 올린 돌담이 분명한데,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삼양동 마을의 올렛길도 스쳐 지나가고
우도 특유의 농작물인 마늘의 진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어른 한사람이 걸어가면 족할, 좁다란 밭담길을 지나면
또다시 눈앞에는 조그마한 포구의 마을, 하고수동이 나타납니다.
하고수동의 포구를 살짝 지나쳐 눈앞에 펼쳐진 그림같은 모습의 하고수동 해수욕장입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운 빛깔을 발산해 내는 물빛과 여인의 속살처럼 눈부신 우유빛깔의 모래사장은 또 가는 발걸음을 힘차게 붙들어 맵니다. 어느덧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간간히 보이고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은 외국인 연인들의 모습을 보니 필시 저들의 눈에도 예사스러운 풍경은 아닌 듯합니다.
하고수동, 상고수동과 더불어 상하로 나뉘어 있는 '고수동(古水)' 한자를 그대로 풀어 '예물동네'입니다. 이곳에는 옛날에 용천수가 펑펑 솟아나는 샘물이 있었다는데서 유래된 마을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우도에는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 하고수동의 샘물인 '예물'은 예전에는 수량이 풍부하였다고 합니다. 생수가 없던 우도에 왜인(倭人)들이 이곳에 정박하게 되었는데 마실물이 없어 온 섬을 헤매고 다닌 끝에 이곳 하고수동에서 수맥을 찾아 우물을 팠더니 용천수가 펑펑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이 샘은 용수량이 아주 풍부하여 우도의 모든 주민들이 충분히 마시고도 남았는데 누군가가 샘의 뒷편에 집을 지은 후로 더 이상은 물이 솟지 않았는데, 그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 800여 미터 어귀를 돌아 서면 또 다른 마을 비양동 포구가 나타납니다. 어느덧 하우목동항, 주흥동항, 하고수동항에 이어 네번째 만나는 포구입니다. 누군가가 축구공을 차면 바다에 빠트릴 정도로 우도가 좁다고 했는데 이정도면 좁다는 소리는 쏙 들어갈 것 같습니다. 비양동에는 비양도라는 또다른 섬속의 섬이 하나 있는데 우도의 또다른 비경을 간직한 곳으로 입구에는 소라껍데기로 장식한 이색적인 구조물이 서 있기도 합니다.
△비양도에서 바라 본 비양동 포구의 모습입니다. 오른쪽 끝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마을은 하고수동입니다.
비양도에 있는 정자와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삼양동에 있는 답다니탑과 같은 형태의 망대입니다. 해안을 관찰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진 것으로 제주4.3사건 당시 우도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우도에는 보이는 우도망대와 답다니탑 망대, 두곳에 해안관찰용 망대가 있습니다.
망대 위에 올라 바라 본 우도의 전체적인 모습. 오른쪽에 하고수동 백사장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고 왼쪽으로는 우도봉에서 망동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이 보입니다.
조일리, 이곳 비양동(飛陽洞)에서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검멀레 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동네인 영일동(迎日洞), 두 마을이 합쳐진 행정구역이 바로 조일(朝日)리입니다. 우도에서 가장 먼저 아침 햇살을 맞이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우도 개척자인 김진사가 거주하였던 곳으로 우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터가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이쁘게도 벗어 놓고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연인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 두켤레가 다소곳이 비양도 등대섬의 입구에 놓여 있습니다. 이곳은 간조시에는 이처럼 걸어 들어갈 수 있으나 만조가 되면 위험하여 들어갈 수 없습니다. 비양도 등대가 바라 보이는 한켠에는 우도의 특산물인 돌미역을 말리는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관광객들에게 경관용으로 재배한 꽃양귀비 군락입니다. 이러한 군락이 이 곳 비양동과 망동산 근처에 있습니다. 양귀비과의 꽃으로 개화시기가 4~5월이라 지금 만개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양동 포구 옆으로 자리잡고 있는 조그마한 모래사장인데, 정말 아담하고 맑은 물빛과 깨끗한 모래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비양동을 지나 보석처럼 빛나는 해안길을 따라 멋드러진 바닷가의 풍경과, 조일리의 마을 안길을 따라 이어지는 정겨운 올렛길과 바쁜 일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농촌의 땀내나는 시골의 모습들이 스쳐가기를 40여분, 이제 곧 조일리의 최대 자랑거리 검멀레 해변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두분이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우도의 비경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우도봉이 보이는 검멀레 해안으로 향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아마 우도에서의 추억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 싶네요.
기암 협곡 사이에 옥빛의 짙푸른 빛깔의 검멀레 해수욕장의 장엄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보트관광을 즐기는 관광객들도 보입니다. 보트를 타고 보는 우도봉의 기암절벽 아래는 가히 절경중의 절경입니다. 동안경굴을 지나 주간명월까지 또한 우도봉 절벽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동물형상의 바위들은 진짜 살아 움직이는 듯 장관을 연출합니다.
검멀레 해수욕장, '검멀레'는 검은 모래를 뜻합니다. 말그대로 검은모래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해변입니다. 모래사장 길이가 백미터 가량 되는데요. 우도의 물빛이 어딘들 안이쁠까만은 이곳은 특히 짙은 옥빛의 물색깔이 너무 환상적입니다. 해수욕장이라고 이름이 붙여졌기는 하나 실제로 해수욕을 하기는 애로가 많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온통 돌 투성이라 자칫하면 상처나기 일쑤입니다. 단, 모래찜질과 함께 모래사장에서 텐트를 치고 피서를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곳 검멀레는 해수욕보다는 우도팔경중 동안경굴과 주간명월, 그리고 후해석벽을 감상하려는 통로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썰물때 이곳을 거쳐야만이 동굴속으로 진입할 수가 있습니다.
검멀레의 모래를 밟으며 들어온 곳, 바로 우도에서 자랑하는 해식동굴입니다. 우도팔경중 하나인 '동안경굴'이 바로 이곳입니다. 특히 '동굴음악회'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1997년 9월에 '동굴소리연구회' 주최로 처음 시작된 동굴음악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멋스러움에 인기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동안경굴, 동안경굴(東岸鯨窟)은 우도팔경(牛島八景) 중 하나입니다. 동안경굴은 밀물 때는 물 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굴 속에 굴’이 있는 이중 동굴이며, 입구는 좁아도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게 펼쳐져 또 다른 세계를 드러냅니다. 제주도의 해식동굴 중 비교적 규모가 큰 동굴로 바닥에는 용암류의 흔적이 나타나며, 길이는 113m입니다.
주의할 점! 우도올레를 걸으면서 '동안경굴'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필히 알아둬야 할 점이 있는데요. 동안경굴로 가려면 검멜레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를 건너 조그마한 동굴속으로 들어간 후성인 한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틈을 이용하여 다시 밖으로 나간 후에야 비로서 동안경굴로 갈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돌아올 때입니다. 동안경굴의 비경에 주눅이 들어 지나쳐 왔던 통로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나오는 길을 못찾아 헤맬 수 있습니다. 동안경굴로 접근하면서 지나치는 경로를 잘 파악하셔야 돌아 나오실때 문제없이 나올 수 있다는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필자가 들어갈 때 나오던 올레꾼을 스쳐 지났는데, 나오면서 보니 나가는 길을 못 찾아 당황해 하는 올렛꾼을 봤습니다.
동안경굴과 검멀레의 비경을 뒤로 하고 이제 우도봉으로 향합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드넓게 펼쳐진 초원, 그리고 우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경치가 우도 제일의 경관을 간직한 곳이기도합니다.
올레가 이끄는 길은 직접 우도봉으로 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망동산으로 가야하는데요, 망동산의 봉오리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비경을 선사하려는 의도로 보여집니다.
아닌게 아니라 망동산에서 바라본 우도는 자신이 품고 있는 모든 매력을 다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길게 이어진 해안선의 모습, 그리고 마을 안길의 꾸불꾸불 이어진 아름다운 골목들, 그리고 황금빛 들녘의 황홀함에서 우도봉의 장엄함까지 조망이 됩니다.
망동산에서 바라본 풍경들입니다. 우도에서 우도봉 다음으로 높은 곳이도 하며 우도봉은 '큰섬머리', 이곳 망동산은 '작은섬머리' 라고 부릅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우도 전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성산읍, 구좌읍 일대가 훤히 보이는 지리적 잇점 때문에 옛날 왜구의 침입이 있을 때는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이면 봉화불을 올려 성산읍의 대수산봉(大水山峯)과 종달리의 지미봉(地尾峯)으로 연락을 취했던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던 곳이기도합니다. 노일(露日)전쟁 당시에는 일본군 망루병이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을 침범하는 것을 포착 격파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망동산에서 내려 우도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꽃양귀비 군락, 비양동에 본 같은 품종이며 같은 목적으로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초록의 초원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의 색상에 눈이 부십니다.
우도봉으로 오르기전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터줏대감.
드디어 우도를 한아름에 품을 수 있는 곳에 발길이 닿았습니다. 우도에서 가장 높은 우도봉입니다. 이곳을 섬머리라고 부르는데, '섬의 머리', 즉 '쇠머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섬머리에는 유명한 우도등대와 삼각점이 있으며 해발 132.5미터이입니다. 남면과 남동면은 100여 미터에 가까운 단애를 이루어 절정을 자아낸다. 북사면은 분화구가 넓게 이어져 완만하고 길게 꼬리를 내려 바다에 잠기는데, 그곳이 바로 전흘동 '세비코지'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도봉은 정상에서 시작하여 끝트머리의 바다에 잠기는 부분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맞다 할 것입니다.
또한 이곳 우도봉도 우도팔경중의 하나입니다. '지두청사'라고 하는데, 지두청사(地頭靑莎)는 우도봉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전경을 말합니다. 우도에서 가장 높은곳인 섬머리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우도 전체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황홀한 초록빛 물결이 바다에 맞닿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도봉에서의 풍경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관광객들.
발길은 우도봉을 내려와 돌칸이를 거쳐 우도의 첫 관문인 천진항으로 향합니다.
우도에 있는 여러개 포구중 가장 큰 포구를 간직하고 있는 우도의 관문 천진항이 있는 천진리입니다. 이 마을은 원래에도 천진동(天津洞)이었는데, 1915년경 인구가 증가하여 동천진동, 서천진동 나뉘었다가 1986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다시 두마을이 합쳐져 천진리로 원래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우도의 사람들은 에로부터 이마을을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늘나라, 또는 하늘이라고 불렀는데 원래의 이름이 '한나루'였기 때문에 와전되어 불려진 것입니다.
'한나루'는 한(큰)과 나루(津)의 뜻을 담고 있는데, 한자로 표시를 하면, '대진(大津)'이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하지만 입에서 엡으로 불려져 온 '하늘이'라는 이름에 연유하여 지금의 천진동(天津洞)이 되었습니다.
천진항을 지나 다시 서빈백사로 향합니다. 출발한 곳이 하우목동항이라 한바퀴로 끝맺음을 해야 합니다. 도항선 시간에 쫓긴다면 이쯤에서 도항선에 몸을 실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천진동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이 일품이라는 우도팔경중 하나인 '천진관산'의 중심지와 올렛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쇠물통을 스쳐 지나갑니다. '쇠물통'은 마소가 물을 마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우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곳 우도팔경중 하나인 서빈백사입니다. 서쪽에 있는 새하얀 모래사장을 뜻하는 서빈백사(西濱白沙)는 이곳 우도 서쪽의 홍조단괴해빈해수욕장을 말합니다. 이 모래는 눈이 부셔 눈을 잘 뜨지 못할 정도로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데 우리나라에서 단 한군데 이곳 바다에서만 있는 풍경이기도합니다. -서빈백사와 홍조단괴해빈에 관한 내용은 따로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제 한어귀만 돌아서면 하우목동항입니다.
성산포에서 9시 출항하는 도항선을 타고 하우목동항으로 들어가 다시 같은 곳에서 오후 5시 도항선을 타고 나옵니다.
처음부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 보려고 계획했던 우도이기에 8시간이 걸렸습니다.
도보여행으로 우도 한바퀴를 계획하고 계시다면 넉넉한 시간 투자를 위하여 아침 일찍 서둘러 오후늦게까지 하루를 투자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걷기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 우도, 우도는 원래 무인도였습니다.18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는데요, 화산재와 바위투성이였던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살기 시작하였고 우도가 보이는 인근마을 주민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해산물을 채취하던중 조정에 탄원을 올려 결국 1842년에 윤허가 내려지게 됩니다. 1884년에 이르러 김석린 진사가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에 입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행정구역이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연평리에서 1986년 4월 행정구역이 분리 승격되면서 북제주군 우도면에 네개의 리(里)를 소유한 지역으로 바뀝니다. 지금의 행정구역상 명칭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입니다.
소를 닮아 우도라 불리는 이섬은 마치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 같기도 하고 소가 드러 누운 형상과 같다고도 해 소섬 또는 우도라고 불립니다. 소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남단은 높이 132m의 '섬머리'라 부르는 우도봉이 있으며, 그외는 대부분 나지막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늘 식수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물 저장소를 여러군데 만들어 빗물을 받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주로 하는데, 주요 밭작물로는 고구마, 보리, 땅콩 등으로 특히 우도의 땅콩은 전국적으로 그 고소함이 알려져 있어 해마다 땅콩의 재배면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주요 수산물은 어류 외에 우뭇가사리, 감태, 톳, 미역, 성게, 오분자기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특히 우웃가사리와 돌미역이 유명합니다.
첫댓글 우도 가기는 같는데 섬 밖에생각이 안나니.....
꼭 한번 가봐야것네요~~ㄳ
구경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