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힘(אלהים)이 복수형인 이유
문제 제기: 왜 하나님의 존함인 엘로힘(אלהים)이 복수형으로 쓰였는지를 밝히려는 시도는 몇 천년 동안 식지않고 탁자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단어의 특이하고 복잡한 문법적, 구문론적, 통사론적 사용법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연구한 끝에 세 가지의 가능한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1) 다신 복수(多神複數), (2) 장엄 복수(莊嚴複數), (3) 삼위 복수(三位複數). 다신 복수란 복수형 엘로힘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을 여러분으로 보는 해석이고, 장엄 복수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너무 크시고 광대하신지라 복수로 표기되었다는 해석이며, 삼위 복수란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신지라 복수로 쓰였다는 해석입니다. 이 세 가지의 해석이 오늘도 식지않고 탁자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존함: 허만 바빙크는 성경이 “표식”의 용법으로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연구를 통하여 밝혔습니다. 표식의 용법으로 이름이 사용된다 함은 이름을 소유한 대상의 특성이 이름을 통하여 보여짐을 말합니다. 이름은 그저 호칭의 개념이 아니라, 이름을 소유한 대상의 특성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의 존함은 그저 호칭의 개념이 아니라 그 분의 속성을 계시하는 통로라는 의미입니다.
바빙크는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모든 통로는 그 분의 많은 존함들을 통하여서다 [1] 라는 말을 통하여 그의 주장을 피력했고, 루이스 벌코프도 여기에 하나를 더해 이름은 그 이름을 소유한 대상의 고유한 속성과 특성을 계시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존함들을 계시함으로써 당신의 고유한 속성과 특성을 우리에게 알리셨다 [2] 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70개가 넘는 하나님의 다른 존함들이 성경에 나타난다는 사실에 크게 지지를 받습니다. 이 많은 존함들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존함들에 담겨있는 의미대로 사역하십니다. 그 분의 존함이 그 분의 사역을 제한하는게 아니라, 그 분의 속성이 그 분의 존함을 발출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많고 다양한 존함들로 당신을 계시하심으로 당신의 속성과 특성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는 엘로힘이라는 존함에는 특별한 뜻과 의미가 계시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천명합니다.
엘로힘의 특성: 엘로힘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당신의 첫 번째 존함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존함입니다. 거들스톤의 연구에 따르면 엘로힘은 성경에 2,555번 사용되고, 살아계시고 진실하신 유일한 하나님을 의미하기 위해 2,310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3] 헌데 이 단어는 많은 사용량 만큼 연구의 복잡함도 동반됩니다. 엘로힘의 독특한 사용법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명사형 엘로힘은 복수형이지만 단수 동사와 형용사등의 술부를 받습니다.365번 나타나는 접두 관사형 하엘힘도 단수 동사와 형용사등의 술부를 받습니다.엘로힘과 하엘로힘은 때때로 복수적 신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는 문법 파격의 대표적인 예임과 동시에 일관성이 없는 사용법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했던 아더 그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수형 명사인 엘로힘은 문법적으로 복수형 동사와 형용사를 받는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단수형 술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4]
이렇듯 엘로힘은 복잡한 쓰임새를 갖고 있는지라 신학자들로 하여금 다신 복수, 장엄 복수, 삼위 복수등의 제안을 내놓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제안중에 무엇이 적합한 접근일까요?
세 가지 제안 검토: 이제 세 가지 제안을 검토해 봅시다.
(1) 다신 복수: 다신 복수란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여러분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신 6:4를 비롯한 많은 성경의 구절들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계시하는지라 다신 복수를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를 다신 복수로 취할 경우 성경은 모순이 있는 책이 되는 것이지요. 이 견해는 자유신학자들이 취하는 견해로써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2) 장엄 복수: 장엄 복수란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너무나 크고 위대하신지라 감히 단수로 부를 수 없고 복수로 불러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의도는 좋지만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장엄 복수란 개념은 모세의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타빗사이넨과 주커는 브라운과 길만의 글을 인용하여 장엄 복수의 개념은 창세기가 쓰여진지 2,000년 후인 4 AD경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5] 그러므로 엘로힘을 장엄 복수로 취하는 행동은 나중에 생긴 개념을 그 개념이 없던 모세 시대의 글에 대입하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역사 신학자들은 이러한 시도를 “휘그적 해석 방법”이라고 부르며 비판합니다. 과거는 과거로 해석해야 합니다. 현재로 과거를 해석하면 안됩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과거에 있었던 개념과 현상으로만 해석을 해야지 그 때 없던 현재의 개념과 현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히브리어 학자 윌리암 파울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히브리어와 갈대아 언어의 기초를 아는 사람들은 성경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종종 당신을 복수형으로 말하시면서 술부의 수는 단수로 쓰시는 것을 알것이다. 이는 큰 어려움을 주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최근의 문법 학자들은 히브리어의 쓰임새를 면밀히 연구하지않고 오히려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장엄 복수”와 같은 표현을 만들어 냈다. 이 표현의 등장은 많은 신학적 어려움을 단번에 사라지게 한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장엄 복수”라는 개념은 모세나 선지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존함이 복수형이라는 의미를 장엄 복수로 풀어서는 안된다. [6]
엘로힘을 장엄 복수로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한 가지의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사마리아인들이 그들의 오경에 등장하는 복수형 엘로힘 몇 개를 단수형 엘로아로 변개한 사실입니다(창 20:13; 31:53; 35:7, 출 22:8). 그 이유는 복수형인 엘로힘이 단수형 술부로 받아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장엄 복수의 개념이 있었다면 이런 시도는 하지 않았겠지요. 하버드 대학에서 사마리아 오경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쓴 부르스 왈트케는 사마리아 오경이 맛소라 사본과 다른 여덟가지 이유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은 맛소라 사본에 있는 난해한 문법 부분을 지우고 이해하기 쉬운 문법으로 고쳐 넣음으로써 그들의 오경을 언어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7]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들에게 장엄 복수의 개념이 있었다면 이런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로 장엄 복수의 개념을 취하는 것은 재고(再考)되야만 합니다.
(3) 삼위 복수: 마지막으로 삼위 복수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엘로힘(אֱלֹהִ֑ים) 이라는 해석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이 점진적 계시를 통하여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점진적 계시란 하나님의 계시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쓰여지면서 구체화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구약에는 거시적으로 두리뭉실하게 언급된 내용이 신약에서는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설명되었다는 것이죠. 가장 좋은 예는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늘 개념일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늘들의 하늘(הַשָּׁמַ֜יִם וּשְׁמֵ֤י הַשָּׁמַ֙יִם)” 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늘이 하나 이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몇개의 하늘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하늘을 지칭하는 헬라어가 3개 등장합니다: 아에르 (ἀὴρ), 코스모스 (κόσμος), 우라노스 (οὐρανός). 이 세가지의 단어들은 각각 풍부한 뜻을 담고 있어 때때로는 이음동의어로도 쓰일 때가 있지만, 단어들의 쓰임새를 잘 분석하면 각각의 단어들이 담고있는 특이한 의미가 발견됩니다.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에르 (ἀὴρ)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이라는 뜻이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코스모스 (κόσμος)는 별들이 떠 있는 우주를 말합니다.우라노스 (οὐρανός)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을 말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기’를 뜻하는 영어의 air가 헬라어의 아에르 (ἀὴρ)에 뿌리를 두고 있고, ‘우주’를 뜻하는 영어의 cosmos가 헬라어의 코스모스 (κόσμος)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구약에는 두리뭉실하게 언급된 표현이 신약에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점진적 계시입니다. 삼위일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시라는 명확한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신약에는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일체라는 사실이 명확히 계시됩니다. 예수님의 침례시에 성부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지요?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독립적 대명사들이 등장합니다. 즉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삼위일체를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한지라 엘로힘이라는 추상명사를 복수형으로 쓰고, 그 복수가 수(數)의 복수가 아니라 위(位)의 복수라는 것을 신약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계시한 것이지요. 아더 그린의 말을 생략없이 인용합니다.
복수형 명사인 엘로힘은 문법적으로 복수형 동사와 형용사를 받는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이 복수형 단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미할 때에는 단수처럼 사용되어 단수형 술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도적 문법 파격이다. [8]
끝으로: 그렇다면 엘로힘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1]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God and Creation, 97.
[2]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47.
[3] Robert Girdlestone, Synonyms of the Old Testament: Their bearing on Christian doctrine, 19.
[4] Arthur Green, These are the Words: A vocabulary of Jewish Spiritual Life, 11.
[5] Irma Taavitsainen & Andreas H. Jucker (Editors), Diachronic Perspectives on Address Term Systems, 5.
[6] William Pauli, The Great Mystery: Or, How Can Three Be One, 7~8.
[7] Bruce Waltke, Prolegomena to the Samaritan Pentateuch, 463-464.
[8] Green, These are the Words, 11.
출처: Pen of Truth
첫댓글 의도적 문법 파격 맞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창세기 1장 1절을 수천년 동안 서기관들이 베끼고 읽었으면서도 그 반문법적인 구절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을리가 없습니다.
주어(엘로힘)를 단수로 바꾸던지, 동사(바라)를 복수로 바꾸었을 것입니다.
고작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인식수준으로 고차원의 세계인 삼위일체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믿음을 요구한다고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yoyo 전형적인 양태론.
세분이 계십니다. 한분이 아니고.. 세분..
그런데 두분만 있으면 하나님이 이라 할수 없어요.
꼭 세분이 있어야 한 하나님..
물체는 가로 세로 높이가 있어야 한 물체.
두개만 있으면 물체가 아니고 면..
하나만 있으면 점..
이 세개 함깨 존재하면 한 물체..
즉 성부 성자 성령이 세분이 함께 존재해야 한 하나님..
@나그네1004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봅니다
존재와 힘의 관계로 말입니다
구심력 원심력 결속력
구심력만 있으면 수렴하여 존재가 없고
원심력만 있으면 확산되어
존재가 없고
결속력이 구심력과 원심력에 일정한 텐션관계를 유지하기에 존재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임금님 세분은 서로 반대가 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떨어져 설명할수 없는 관계.
물체를 높이만 가지고. 이것은 물체다 할수 없고.
물체를 가로만 놓고 물체이다 할수 없어요..
이 세가지가 꼭이 존재해야만 한 물체입니다.
서로 함께.
그래서 예수님을 늘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의 안에 있다고 하는 겁니다.
즉 서로 분리될 수 없은 관계..
@나그네1004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 샬롬
세분의 하나님이 계서야 한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우리. 단수이지만 복수..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 우리의 ~~ , 우리의~~ . 우리가 ~~~
그러면 창세기 1장 1절에서 왜 "창조하시니라"(3인칭 단수인 "바라")가 쓰였는지 설명좀 해주시겠습니까?
님의 말처럼 하나님이 세분이면 복수인 바레우가 쓰여졌어야 합니다.
@yoyo (눅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눅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저위에 미희님 글 보이시지요.엘로힘은 엘로아흐 복수형.그럼 당연히 이유가 있겠습니다. 한분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 세분의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 그분들의 맡은 사역이 다른 것이다. 그 분들이 모습 전체가 하나님의 실체를 이루시는 것이다..말씀이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님 성령님께서 따로 존재하시는 것임을 증명하고 계심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그럼 전 이만...
@갈렙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우리는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된 존재..
당신 몸이 죄를 짓는다고 혼이 죄를 않짖나요..
이 셋을 늘 함께 있어요. 그래서 살아 있은 사람이거든요..
몸에서 영혼이 빠지면 죽은 사람..
살아있을려면. 이 셋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셋은 분리도 되기도 하죠..
죽을때 영혼이 몸에 빠지니까.. 그쵸..
나는 영과 혼과 몸이 세개로 구성되었지만. 난 한 사람...
하나님도 세 분..
성부 성자 성령.
형상으로 따지면.
영 - 성령
몸 - 예수님
혼 - 성부..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
우리는 영과 혼과 몸 이 세개로 구성이 된 한 사람..
@yoyo 이해력이 참
가로 세로 높이. 이 세개가 있어야 물체..
냉장고도 가로 세로 높이가 있으니까 한 물체가 되서 한 냉장고이죠.
당신은 영과 혼과 몸 이 세개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한 사람..
여기서 영혼이 떠나면 당신을 죽어..
당신이 살아 있으려면. 이 세개가 늘 함께 있어야 살아있은 사람..
엘로힘!
하나님은 모든 일체를 초월하시기 때문에 이름을 붙힐 수 없습니다.
이름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 복수로 칭함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 일체의 피조물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천사등 일체는 자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지으신 창조물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엘로힘 복수는 그런 성격과 의미입니다.
엘로힘 장엄복수의 의미가 후대에 개념되었다고?
해석은 설령 후대이겠더라도 개념은 객관적으로 누가 논하기전에도 처음부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