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안(西安) 및 중국의 유명한 비석과 돌 문화재를 모아 놓은 비림 박물관(碑林 博物馆)은
한(汉) 나라부터 청(淸) 나라까지의 유물 2,500여 점이 7개의 전시실과 복도,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름 그대로 각 전시실마다 비석의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인데, 본래는 북송(北宋) 때 세워진 것으로
시안에서 가장 큰 공자사당(孔子文庙)이었다고 합니다.
비문은 제작시기에 따라 분류되어 있으며 비석에 새겨져 있는 글자와 글자체가 유명한 것이 많은데
한문에 조예가 깊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비림 옆이 성곽 남문 근처입니다.
입장료 45위안.
비림 입구에 있는 ‘석대효경정(石臺孝經亭)으로 당 현종(唐 玄宗)의 친필로 쓰여진
‘석대효경(石臺孝經)’비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현판을 가만히 보면 ‘비(碑)’자에 머리 부분에 획이 하나 없을 겁니다.
이는 임칙서(林则徐)의 글씨인데, 1840년 아편전쟁 당시 서안에 왔다가
광동성(广东省)으로 가는 중에 비림에 현판을 쓰면서,
전쟁에서 이기면 서안에 돌아와서 마저 찍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패하고 남경 조약(南京 条约)이 체결되고 나서 신장으로 가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획이 하나 없는 현판으로 남아 있습니다.
석대효경으로 비석 사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효경(孝經)은 공자와 그의 제자 증자가 효에 대한 문답을 나눈 것입니다.
큰 글자는 당 현종이 예서체로 쓴 것이고, 작은 글자는 현종이 해서체로 쓴 것입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로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Nestorius) 선교 단이
중국에 온 후 150년에 걸친 선교활동을 기록한 것입니다.(2실)
흥복사잔비(興福寺殘碑)로 당(唐 公元 9年 721年)나라 때 비(碑)입니다.(2실)
미성송비(迷聖頌碑)로 당(唐 公元 12年 724年)나라 때 비입니다.(3실)
도덕사비(道德寺碑) 로 당(唐 顯慶 3年 658年)나라 때 비입니다.(3실)
우효현비(于孝顯碑)로 당 나라 때 비입니다.(3실)
당 나라 때 흥경궁도(興慶宮圖)가 새겨진 비입니다.(4실)
달마면벽도(达磨面壁图)입니다.(4실)
달마동도도(达磨东渡图)입니다.(4실)
그 유명한 ‘관제시죽(关帝诗竹)’을 탁본으로 뜨고 있는 것입니다.
관제시죽은 관우가 조조에게 잡혀 있을 때 관우가 조조에게 보낸 시로서,
비록 적이지만 평소 관우를 존경하던 조조가 관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 환대하게 대해주면서
수많은 보물들을 보내곤 했었는데,
결국 관우가 보낸 시를 보고는 관우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는 놓아 주었다고 합니다.
시는 대나무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해서 보낸 것인데 실제로는 대나무 잎을 이용하여
글씨를 형상화해서 시를 적어 보낸 것입니다.

불사동군의(不謝東君意) : 동군(조조)의 후의에 감사하고픈 마음은 없네
단청독립명(丹靑獨立名) : 홀로 붉은 마음으로 청청한 이름 세우려 하네
막혐고엽담(莫嫌孤葉淡) : 다른 잎이 다 떨어지고 난 뒤 외로이 남은 나뭇잎을 싫다고 하지 말게
종구불조령(終久不凋零) : 끝끝내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리니….
원숭이 같은 동물이 춤추는 것과 글씨를 합성한 듯한 것이었는데, 막상 사진으로 찍으니 못 알아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탁본을 떠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탁본을 뜨기 위해 비석에 먹을 바르고 종이를 대고 두들기는 소리와 먹물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이렇게 탁본을 뜨는 것은 화학물이 비석을 마모시키는 등 비석에 안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탁본을 뜨고 있습니다.
탁본도 이곳에서 사는 것은 비싸고 비림 밖에 상점에서 사는 것이 훨씬 싸다고 합니다.
영정치원(寧静致遠)이라는 글씨인데 청(淸) 나라 강희(康熙)황제의 글씨입니다.(5실)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에서 나온 말로 촉한(蜀汉)의 제갈공명(诸葛孔明)이 아들 첨에게 이른 말로,
‘욕심이 없고 마음이 밝아야 뜻을 밝힐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함을 이룰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