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법전 종정예하, 동안거 해제일 맞아 법어 내려...
불기
2550년 冬安居 해제일을 맞아 조계종 도림법전 종정예하께서 해제법어를 내렸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가 전국 선원의 정진대중 현황을 집계한 <乙酉年 冬安居 禪社芳啣錄>에 의하면 전국 97개 선원<총림 5곳, 비구선원
58곳, 비구니선원 34곳>에서 정진대중 총2,246명(비구 1,119명, 비구니 939, 총림 188명)이 용맹정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승려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출가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한데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정진한다.
산스크리트어
바르사바사의 역어로 인도의 雨期는 대략 4개월 가량인 데, 그 중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정사(精舍)나 동굴에서만 수행하였으며, 우기에는 비
때문에 도보여행이 곤란하고, 또 초목과 벌레 등이 번성해지는 시기이므로 외출 중에 이들을 밟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석가모니가 우기
중에는 지거수행(止居修行)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안거의 기원이다.
* 종정
도림법전 대종사 동안거 해제 법어 전문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 대종사 동안거 해제법어
풍혈연소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말을
하면 용用이 되고 말을 하지 않으면 체體가 됩니다. 어떻게 해야 체와 용으로부터 모두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하였습니다.
“항상
강남의 3월 풍경을 생각하니 새가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로우리라”
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동안거를 마치는 이때 쯤 주고받았을 선문답입니다. 안거는 무언無言입니다. 해제는 유언有言입니다. 침묵인 무언은 체體요 법을
전하는 유언은 용用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체와 용이라는 차별경계마저 떠날 수 있겠습니까? 즉 유언 무언의 차별을 벗어나 불법의 대의를
제시해달라는 말입니다. 결제와 해제의 양변을 동시에 밟고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참으로 결제가 무엇인지 해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이
공안을 통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공부를 챙겨야 할 것입니다.
언어를
떠나서 종지를 보여 달라는 질문에 풍혈선사는 ‘강남의 3월 풍경을 생각하니 새가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로우리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근본자리를 언어문자로 표현하면 현상계에 떨어지게 되고 침묵으로 표현한다면 실재계에 떨어지게 됩니다.
침묵한다면
평등의 세계만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며, 언어문자로 표현한다면 차별의 세계만을 나타내게 됩니다. 말해도 걸리고 침묵해도 걸립니다. 침묵만 알면
밖의 티끌이 의지할 곳이 없고 언설만 알면 안의 마음이 할 일이 없습니다. 안의 마음이 하는 바가 없으면 모든 경계를 요동시키지 못하고 밖의
티끌이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만법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육조혜능 선사는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하라’고 하였고 유마거사는 ‘침묵너머
침묵’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도리를 만약 알아들었다면 석가노인이 49년 동안 많은 설법을 했으나 한 글자도 말한 것이
없다고 한 말이나,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 동안 앉았으나 소리가 시방세계에 진동했다는 말을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강남이니
강북이니 꾀꼬리니 종달새니 매화니 복숭아꽃이니 하는 차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만행 중에 만난 봄 길을 무심히 다닐 뿐입니다.
강남가경성합여지
江南佳景誠合如之나
천재관광첨인성조
千載觀光添人性躁로다
당성불이래년신조
儻成不爾來年新條에도
뇌란춘풍졸미휴혜
惱亂春風卒未休兮라
강남의
아름다운 경치가 진실로 그러해도
천년의
구경거리에 조급함만 보탠 것이니라.
만약
그렇치 않다면 내년에 새 가지가 돋더라도
봄바람에
어지럽기는 끝이 없으리라.
2006.
2. 12 동안거 해제일
첫댓글 ()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