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허난설헌묘와 해공 신익희 생가와 영은미술관을 돌아본다.
지월리 쌈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바로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허난설헌묘를 지나 신익희 생가를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영은미술관 관람을 하고 왔는데 약 2시간정도 걸렸다. 생각했던 천진암성지는 찬바람이 많은 날씨라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허난설헌 친정 생가는 지난 8월에 다녀왔는데 묘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찾아본다.
이곳은 안동김씨 서운관정공파 하당공계파 시조비를 포함한 종중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시조 김담(1542~1584) 부부와 그의 부친 김홍도(1524~1557) 부부 묘가 맨 위에 있고
그 아래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1562~1591)과 후처 묘, 그 옆에 김정립(1579~1648) 부부묘가 있고
맨 아래 허난설헌(1563~ 1589)의 묘와 어려서 여윈 두 자녀의 묘가 있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 대표적인 문인으로 300여 수의 시와 산문 수필 등 을 남겼고 그 중 213수가 현재 전해지고 있다.
1570년 불과 8세때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어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허초희가 신선세계에 있다는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초대받았다고 상상하면서 지은 산문]
사후에 동생 허균에 의해 중국과 일본에 작품을 전하여 허난설헌의 문집이 출간되어 당대에 국제적인 여성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남편 김성립이 임진왜란에 참전, 전사를 하게되고 증 이조참판에 추증되면서 허난설헌도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
허난설헌의 부친 초당 허엽은 화담 서경덕과 퇴계 이황의 문하로 조선 명종 ~ 선조 시대 대사헌과 경상도관찰사를 지냈고
당시 사색당쟁시 동인의 영수 역할을 할 정도로 명망이 높은 대학자였고 초당두부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다.
동생은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 허균이다.
강릉 양천허씨 명문가에서 아버지 초당 허엽과 자녀들(악록 허성, 하곡 허봉, 난설헌 허초희, 교산 허균)을 합쳐 "허씨5문장"으로 불려졌다.
동의보감을 저술한 어의 의학자 허준은 난설헌의 11촌 숙부다.
허난설헌의 묘비
우측에서 본 허난설헌 묘
위에서 본 허난설헌 묘
좌측에서 본 허난설헌 묘,
詩碑 : 아들 딸 여의고서
후면
시조 김 담
김홍도
김정립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종중묘
종중묘지에 있는 조상들을 모신 사당 "모선제"
도로에서 종중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정자와 비석과 안내문들
지월리에서 경안천을 건너 서하리로 넘어오면 해공 신익희 선생의 생가가 있다.
해공 신익희(1891~1956)선생은 임시정부 참립멤버로 독립유공자이며 국회의장(초대 ~ 2대), 민주당 초대 당수(민주당의 시조로 불림),
국민대학교 설립자, 이사장, 제3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선거 유세 도중 서거)
대문
사랑채(사설 강습소 광동강숙 운영)
안채
안채 후면
안채 측면 (장독대와 우물이 있고 뒤뜰로 통하는 일각문을 들어서면 어록과 유훈 및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영은미술관은 대유문화재단에서 2000년 11월 4일 개관하였다.
문화재단 설립자 이준영의 "영"과 아버지 보다 먼저 유명을 달리한 장남 이상은의 "은"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영은미술관은 동시대 현대미술 작품을 연구, 소장, 전시하는 현대미술관과 창작 스튜디오를 겸비한 복합문화시설이다.
2000년에 시작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영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창작지원 사업으로 국내외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3층 건물인 미술관동은 3개 전시장과 세미나실, 자료실, 강의실 및 평면 스튜디오를 두루 갖추고 있다.
기획전과 개인전을 통해 국내외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일반 대중들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전시기획을 통해
현대미술을 보다 친숙하고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청소년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은창작스튜디오 투어 프로그램, 미술관 피크닉 등과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야외 조각작품 전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