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샴쌍둥이는 지명에서 비롯됐다.
19세기 초 창 엥과 분커라는 중국계 형제가 태어난 곳이 태국의 옛지명인 샴이다.
버넌이라는 사람은 이들을 '샴쌍둥이'라고 이름을 짓고 광대를 시키며 돈을 벌게 했다.
이들은 흉골에서 배꼽까지 살이 붙어 있었고 성직자의 두 딸과 결혼해 가정을 이뤄 엥이 9명, 창이 10명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창은 63세 때 폐렴으로 사망하고 곧이어 엥도 허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일란성 쌍둥이의 수정란은 13~15일째 성장판(inner cell mass)이 똑같이 양분돼 각각 하나의 개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샴쌍둥이는 수정란이 포배기(배란 후 4~6일째 상태) 이후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 성장한다.
왜 이렇게 수정란이 완전히 분열되지 않는지 이유는 아직 모른다." (중앙일보)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나 신화에 머리가 둘 달린 혹은 팔이 넷 달린 괴물이 등장하곤 했었다.
그렇게 생긴 생물을 주위에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상상의 산물이려니 여겼었는데, 어쩌면 그 '괴물'들은 엥과 창처럼 샴쌍둥이였는지도 모른다.
정상인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샴쌍둥이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공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버넌이라는 미국인이 엥과 창을 광대라는 '특이한' 도구로 이용하기 전에는 샴 쌍둥이들도 밭을 갈고 땔감을 모으며 우리와 한 동네에 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동네 사람들이 이들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비가 오면 중얼거리고 다니는 저 뒷집의 미친 여자 정도로 여겼을 지는 몰라도, 식칼을 들고 뒤쫓으며 '넌 왜 우리와 같지 않은 거지?'라며 생살을 갈라 놓으려고 들지는 않았을 거다.
현대 사회, 특히 도시 사회는 '비정상'을 견디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가 지금 거리에서 머리가 둘 달린 사람을 보게 된다거나 머리가 살짝 돈 듯한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분명 어딘가에서 경찰이 달려오고 그들은 즉시 구석진 곳에 격리될 것이다.
우리는 머리 둘 달린 사람이 공존하는 걸 참기보다는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우리와 똑같이 즉, '정상'으로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어떤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성공한다면 첨단 의학과 인간 의지의 승리요, 실패한다면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는 하나의 티끌만한 오점이 되는 거고.
하지만 그건 두 개의 생명이 달린 문제다.
쌍둥이들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그 부모들에겐 수술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만인 평등, 인간 존엄이라는 도취에 빠져 잠시 잊을 지 몰라도, 여긴 엄연히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지금에 와서 모든 것이 뒤집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린 이런 시간에, 이런 공간에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비정상'의 기준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음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동성애자는 정신 병원으로 보내고 트랜스 젠더는 이도 저도 아닌 성으로 여긴다는 사람들이 허다하니까.
한 캐나다 친구는 서울 도심에서 장애인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우리 나라에 장애인이 특히 적을 리는 없다.
단지 정상인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지레 두려워 오아시스의 공주처럼 어딘가에 숨어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 얼마 전에 tv에 나온 비만인 캠프. 이제 조금만 있으면 비만은 '전염병'의 낙인이 찍혀 배가 나온 사람은 비정상인 취급을 받아 격리될 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그건 10만년 후의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생명체들은 즐겁게 보아도,
손가락이 여섯 달린 손에는 도끼를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는 이미
비정상적일 정도의 정상인일 지도 모른다.
첫댓글 드문님께서 쓰신건가요.. 이 글.. 퍼가도 될까요? ^^
네. 물론이죠.
고맙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