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안장헌 출판기념전-
일시: 2022.9.1.~9.9
1960년대 후반기는 산업화가 시작된 시기로서 정치적으로는 1인이 장기집권을 도모하던 시기였다. 도시화와 공업화로 농촌 인구는 나날이 감소하였다. 이농민들은 서울로 모여들어 산동네를 이루고 막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한 공장 노동자나 날품팔이로 연명해갔다. 청년 사진가 안장헌은 기록자로서 혹은 관찰자로서 역사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을 사진에 담았다. 그가 이 사진들 이후 문화재 사진으로 전향한 것은 당대의 생활상(삶)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일이다. 마치 한 번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가 촬영한 1960년대 사진은 당시의 시대와 사회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그의 앵글은 다른 사진가들이 비참한 현실을 빗겨 가려고 했던 한계를 말끔히 극복하고
있다. 청년 사진가 안장헌은 걸으며 현실을 직면했다. 일부 사진가들은 사진을 기록이라
고 한다. 이러한 사진가들의 발언은 기록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는 어떻게 찍은 것만이 예술이고 무엇을 찍었는가는 보지 않아 온 한국사진에 대한 자괴
감 또한 읽을 수 있다. 안장헌은 기록에서 시작해 표현의 영역으로 넘어간 사진가이지만
그는 사진의 요체를 여전히 기록으로 보고 있다. 모든 사진이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기록자로서 무엇을 찍을까 하는 고민은 어떻게 찍을까 하는 문제에 앞선다.
안장헌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에 주목하고 있다. 어두운 과거는 모두 지워 버리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은 모두 기만이다. 사진이 찍힌 있는 그대로의 과거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우리는 가난과 고통 그리고 슬픔만을 사진 속에서 보는 것이 아니다. 안장헌의 사진은 당시에는 생계유지 활동이나 가사활동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조차도 대부분 길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전쟁을 겪은 부모세대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특유의 생명력이 살아 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아동노동이 그땐 자연스러웠다. 궁핍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한다. 매캐한 연탄가스가 연일 서울의 상공을 덮었고,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도 몇 명씩 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나오던 시절이었지만 사람들은 자전거가 비틀거려도 달려가 도왔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매일 아침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쫓아 집을 나서곤 했던 것이다.
안장헌의 사진은 한 청년의 눈에 비친 1960년대 후반의 미시사다. 소소하지만 아름
답고 소중한 일상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을 기억하기보다는 행간에 남길 뿐이다. 소외
자와 낙오자의 절망과 희망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진은 소멸을 기록하
는 듯해도 결국 소생을 말한다. 『샛강』의 소설가 이정환이 식솔을 이끌고 상경해 지금은
디지털 미디어 시티가 되어 버린 상암동(그때까지도 수색 언저리는 도시에 채소를 제공
하는 배후농촌이었다)에서 살면서 묘사한 “떳떳한 이웃 사람들이라기에는 아직도 먼 사
람들, 그러나 버려두고 가서는 결코 안 될 사람들, 그들의 뜨겁고 숨가쁜 얘기”를 나는 안
장헌의 사진을 통해 듣고 있는 것이다.
이규상 (출판인, 눈빛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