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정령치~바래봉 >
* 일시 : 2013년 5월 12일 일요방
* 인원 : 28인승 버스2대 (리딩 클래식부지기)
* 위치 : 전북 남원시 운봉읍
* 코스 : 정령치 -> 고리봉 -> 세걸산 -> 세동치 -> 부운치 -> 철쭉군락지
-> 팔랑치 -> 바래봉 삼거리 -> 운지암 -> 용산마을 주차장
오랜만에 무박으로 밤차를 타고 지리산에 간다니 소풍가는냥 설레인다.
한동안은 꽤 원정산행을 즐겨라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첨인 까닥이다.
토욜밤 자정 즈음해서 서울을 떠난 버스는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꼭두 새벽녁에 지리산 중턱 1100고지까지 단숨에 올려다놓았다.
여기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정령치 휴게소다.
덕분에 산밑동에서부터 뻘뻘거리며 땀흘려 오르는 수고로움을 덜어내었으나,
한켠으로는 괜시리 산에 미안스런 맘이 교차한다.
버스에서 하차하니 오전 4시반.
지금이 5월 중순으로 접어들건만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이 살갖을 파고든다.
다들 윈드쟈켓과 목장갑을 꺼내입고 머리에는 헤드랜턴으로 무장을 갖추었다.
요맘때쯤에 워낙 소문난 코스인지라 벌써 여러 산악회팀들로 주차장이 시끌벅적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오래된 습관으로 맨먼저 뒷간엘 들러 끙끙대며 대사를 치르고나오니,
어느새 모두 출발해버리고 나홀로 남았다.
잠시 몰려오는 불안감을 뒤로하고 한적한 나만의 여유를 가지려 애써본다.
다행히도 오늘 산행일정이 외길 코스라 이탈할 염려는 없어보인다.
10여분을 걸어 조그만한 둔덕에 올라서니,
저멀리 여명사이로 아스라히 운무에 둘러싸인 반야봉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이곳이 바로 지리산임을 증명해보인다.
도중 이름모를 돌무덤을 만나 오늘하루 무사안녕을 합장으로 기도올리고는,
보폭은 늘려 부지런히 속도를 내어달리니 금세 우리 후미일행들과 조우했다.
두런두런 살아가는 소식을 주고받으며 모퉁이를 돌아서니,
코앞 동녁편 산자락 귀퉁이 사이로 검붉은 해가 살포시 우리를 반겨준다.
올들어 처음 산속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일출이건만,
깊은 산중에서 느끼는 감상은 항시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시나브로 사위가 훤해지더니 이제사 주변경관이 시야로 들어온다.
허지만 저멀리 가득찬 연무가 막아서며 장쾌한 지리산 조망을 감춰버리니 아쉬움 가득이다.
고리봉을 지나고 몇구비 고개를 넘어 둔덕을 돌아서니 앞팀은 벌써 이른 아침식사중이다.
우리일행도 한구석에 돗자리를 깔고는 도식락을 펼쳐놓으니 푸짐한 부페가 되었다.
상추쌈 편육과 노릿한 오리고기, 맛깔스런 과일야채 샐러드에 삶은감자와 식빵까지.
후식으로 와인과 따끈한 커피를 곁들이고나니 포만감으로 아랫배가 든든허다.
다시금 힘을내고는 행군이다.
애초 해발 천고지가 넘는지점에서 출발했던터라,
오르막지점에서 한번쯤 만나곤하는 깔딱고개도 없었고, 땀내나는 높다란 봉우리도 없다.
반면 산행거리가 길고 그에따른 도보시간도 오래 소요되어 자못 지구력을 요하는 코스다.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고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해 잘 조성된 나무계단을 넘어갈즈음해서는,
다리가 풀려 절뚝거리는 식구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아직은 참을만한지 다들 꿋꿋이 걸어간다.
세걸산을 지나 너른 헬기장 분지에서 막걸리와 소주로 컬컬한 목을 축이고는,
세동치와 부운치를 넘어서니 코앞에 사진풍경으로보던 철쭉 군락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고지가 높고 온도가 낮은탓에 꽂봉우리가 덜피어 만개시기는 아직 이르지만,
눈으로 구경하며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는 천상의 화원을 연출해내었다.
남비추 여희춘 男悲秋 女喜春
남자인들 봄을 싫어할리요마는 철쭉 꽃속에 파묻힌 봄처녀의 가슴이 울렁거림은
어찌할수없는 여자의 본능인가보다.
다들 삼삼오오 연분홍 철쭉꽃무리속으로 파고들어 갖은 자태와 교태를 뽐내며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한껏 눈호강으로 몸과 맘을 달래고는 다음 목적지인 바래봉을 향해 출발이다.
몇고비를 돌아 얼마가 지났을즈음 여기저기서 환자가 속출한다.
누군가는 돌부리에걸려 넘어져서 무릅이 까이고,
혹은 장시간 보행으로 인해 다리가 풀린나머지 그대로 주저앉는이가 여렷이다.
시간을 대충 가늠해보니 출발한지 벌써 6시간째 산행이다.
초보자이거나 몸 상태가 안좋은이들에게는 무리가 갈만한 시간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는 깊은산중인지라 달리 방법이 없다.
옆에서 부축이면서 밀어주고 당기거니 하며 느린속도로 천천히 나아갔다.
다행히도 시간은 다소 지체되었지만 무사히 바래봉 갈림길까지 당도했고,
상황이 이런지라 별다른 고민없이 바래봉을 포기하고는 곧장 하산길을 선택했다.
헌데 잠시 내려오다보니 하산길도 여건이 만만치 않다.
지금이 철쭉축제기간인지라 수많은 단체등산객들이 죄다 이코스로 몰려들었으며,
게다가 등산객을 배려한다고 산길을 시멘트블럭과 돌담으로 깔끔하게 포장 해놓은지라,
무릅이 받는 충격은 곱배기로 더해진다.
아니나다를까 애초 귀염을 독차지하던 우리 20대 막내 아가씨 둘은,
무릅상태가 자못 심각해서 걸음을 옮길때마다 불안스레 기우뚱거린다.
가까히 바짝붙어서는 넘어지지않게끔 손을 잡아주는일외에는 별다른 도리가없다.
어찌어찌 어르고 달래고 쉬엄 쉬엄 내려오다보니 최종 목적지인 산밑동에 다다랐다.
시계를 보니 낮 12:30분, 꼬박 8시간을 걸어온셈이다.
여기입구 주차장주변은 철쭉축제로인해 아예 시끌벅적한 장터를 펼쳐놓았다.
한껏 볼륨높여 쿵짝거리는 트롯트와 구경온 관광객들로인해 북적거리는 시장으로 변모해있었다.
잠시나마 호젓한 산속을 거닐다가 살내음나는 속세로 내려오니 다시금 어깨가 무거워지지만,
그래도 효험좋기로 소문난 지리산 정기를 받은터라 한동안은 버텨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가 산을 찾는 이유다.
* 저 앞에 능선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반야봉이다.
첫댓글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
기승전결의 짜임새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
훌륭한 능변입니다^~
와우~~ 아침 식사를 같이 했던 케이님????
긴 글임에도 읽다보니 어느새...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솜씨가 있으셨군요. 담 산행에서 반가운 모습으로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