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동문회보는 노성주 선생님 특집판인 듯하다. 표지에 선생님 내외분 사진, 중간에 편집자가 쓴 선생님 관련 글, 마지막 면에 선생님이 쓰신 글까지 온통 선생님 관계 기사이니 말이다. 표지 사진을 보니 살도 좀 찌시고, 배까지 나오고, 얼굴을 자세히 보면 옛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도 싶지만, 40여년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강원도 시골 출신 촌놈이 서울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고 만난 선생님들 중에서도 음악 선생님은 다른 분들과 좀 달랐다. 기름을 발라서 뒤로 넘긴(올백) 머리에 늘 가슴을 앞으로 내민 늘 자신만만해 보이는 모습,
그리고 카랑카랑하게 울리던 바리톤 목소리.
입학하고 제일 먼저 배운 노래가 바로 “오 솔레 미오 (o sole mio)”였다. 정작 교가는 입학하고 두어 달 후에 배웠다. “Che bella cosa na jurnata 'e sole, 케 벨라 코자 나 요르나따에 솔레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n'aria serena doppo na tempesta! 나리아 세레나 도뽀 나 뗌 페스타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입학하고 두어 달 동안 이 노래만 지겹도록 반복해서 배웠기에 40여년이 흘렀어도 원어 그대로 부를 수 있다. 지독하게 음치인 나도 이 노래 만큼은 그래도 막히지 않고 그럭저럭 부를 수 있는 것은 반복 연습의 효과인 듯 싶다.
지난 해 11월에 서울에서 동창생들을 42년만에 만났을 때에도 “케벨라”선생님 얘기가 나왔다. 점잖은 모임에서 오 솔레 미오를 원어로 멋지게 불러서 모임의 품격을 올려준 친구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우리가 학교 다닐 때가 선생님으로서는 인생에 물이 오를 때였나보다. 결혼도 하시고, 라디오에도 자주 출연하시고… 그래서 늘 걸음걸이가 힘차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 같다. 여름 방학 중에 선생님이 KBS에 출연하신다고 해서 난청지역인 강원도 시골에서 잡음 투성이인 음악에 귀를 기울였던 생각도 난다. 그날 부르신 노래 제목은 생각이 나진 않지만, 떠나 보낸 자식을 그리는 그런 내용의 노래였었다. 물론, 원어로 부르셔서 들어도 전혀 이해는 되지 않았다.
“오 솔레 미오”말고도 선생님께 배운 노래로 기억에 남는 것은, Caro mio ben, credimi almen, senza di te languisce il cor. Il tuo fedel sospira ognor. Cessa, crudel, tanto rigor! ... (오 내사랑 오 내 기쁨 이내 말씀 믿어 주오 네귀한 그 몸 이별할 때 참 쓸쓸해 한숨짓는 참된 나를 네 너무 멸시 마오.). 그리고
로마여 안녕, Arrivederci Roma!... Good bye ... au revoir! Si ritrova a pranzo a Squarciarelli, Fettuccine e vino dei Castelli...등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김형기 노래 실력이 수준급으로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원어를 줄줄 읊어대니 말이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 음치는 불치의 병이 아니라고 누가 그러던데, 그 말은 나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어느 자리에서든 노래만 부르라고 하면 요실금 증세가 도져서 화장실을 들락거리곤 하는 나는 어디서든 만나기 어려운 지독한 음치라서 음악 시간이 매우 괴로왔다. 음악 점수는 늘 최하점인 55점만 받아서 내 석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날 음악 시험을 보는데, Caro mio ben, credimi almen, 딱 여기까지 부르자 선생님의 노기에 찬 목소리가 내 대갈통을 때렸다. “앉아, 이놈아, 니가 작곡을 하는 거니 뭐니.” 내 짝꿍이던 함용식이도 노래는 엔간히도 못불러서 가끔 나와 함께 최하점인 55점을 받아서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아, 친구의 우정은 바다같이 깊더라.! 고마울손 용식이의 의리여. 친구따라 강남 간다더니. 노래는 김홍보, 박장희가 잘 불렀는데, 그때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음치에게는 별로 즐겁지 않은 음악 시간도 가끔 즐거울 때가 있었으니, 바로 선생님이 야구 얘기를 꺼낼 때였다. 학교 야구 선수들의 특징 하나하나를 거론하고, 해박한 야구 이론을 펼치시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난,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야구부터 가르칠꺼야. ABC를 몰라도 야구만 잘하면 상관 않겠어.”하고 말씀하실 정도로 야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시더니 우리가 졸업한 후에 일을 저지르셨나보다. 음악 선생님께서 야구부 지도 교사를 하셨다니, 야구에 미쳐도 보통 미치지 않으셨던 같다.
선생님.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이 못난 제자의 노래 실력은 전혀 진전이 없으니 뵐 낯이 없습니다. 몇 년전에는 교통 사고로 성대마저 망가져서 그 잘난 노래조차 못하고 지내니 저는 노래가 팔자에 없는 듯합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다니 다행입니다.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제자들 앞에서 오 솔레 미오를 기운차게 불러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형기는 기억력이 대단한 친구군... 그 오랜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생생하고도 재미있게 표현해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