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파도가 빚은 조각품, 고성 기암트레일
고성이야말로 작은 지질 공화국. 해안선을 따라 아야진 거북바위-천학정 기암-능파대지질공원-서낭바위지질공원-수뭇개바위까지 그야말로 바다와 함께 절경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다. 거기다 내륙에는 삼각자처럼 생긴 운봉산이 서 있는데 현무암이 잘게 무서져 쏟아져 내려와 너덜 지대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고성의 기암트레일은 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아야진항 거북바위
구전에 의하면 마을이름이 구암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거북처럼 생긴바위가 파도를 해치며 유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복을 가져온다고해서 주민들이 신성시 여겼다고 한다. 아야진은 예쁜 카페 그윽한 커피향을 맡으며 하얀 포말을 감상하면 딱 좋겠다.
천학정 기암
천학정은 일출명소. 장엄한 해돋이는 2024년을 설계하는데 좋은 장소. 이곳이 더 신성하게 느껴지는 것은 천학정 아래 기암.
이곳에서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한다. 모자 쓴 불상얼굴, 부처 손모양 . 고개 내민 고래, 코끼리 얼굴까지..그 의미까지 생각하면 더 없이 즐겁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품, 능파대 타포니
강원도 고성군 죽암면 문암항에는 능파대라는 타포니 지형을 만날 수 있다. 원래 능파대는 문암 해안 앞에 있는 돌섬이었는데 섬의 뒷부분은 파도의 힘이 닿지 않아 모래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는데 이를 육계도라고 부른다.
하얀 파도와 움푹 팬 바위가 볼만한데 마치 영화 스타워즈의 등장하는 외계 행성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기묘한 바위는 타포니 현상으로 만들어졌는데 파도가 바위를 때리면서 화강암 틈 사이로 소금 성분이 침투해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 소금의 결정이 점점 자라면서 틈 사이가 벌어져 벌집 모양의 작은 구멍을 만들어낸다. 이 작은 구멍들이 또다시 합쳐져 욕조처럼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낸 것이 타포니 바위다. 멀리서 보면 구멍이 뻥뻥 뚫려 ‘곰보바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능파대에 가면 천태만상의 타포니 바위를 볼 수 있다. 짚신이 서 있는 바위, 갈매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바위, 비너스에 등장하는 조개 바위까지 있어 신화의 고향에 들어선 기분이다. 바위에 붙은 얼음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보인다. 이런 기묘한 것들이 한데 모여 바위공원이 되었다. 뻥 뚫린 타포니 구멍에 바다를 넣고 찍으면 재미있는 사진을 건질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품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데크길까지 만들어 놓았다.
여기가 BTS 뮤비 촬영지이기에 더욱 유명해졌다.
스누프를 닮은 서낭바위
서핑 인구가 많이 늘었다. 송지호해수욕장에도 한겨울에 하얀 포말 위로 서핑을 즐기는 모습에 감탄하며 ‘나이가 조금만 젊었어도’ 저질 체력과 세월을 탓하는 탄식만 내뱉는다. 송지호해수욕장 남쪽에 가면 오락실의 두더지 게임기처럼 해변 바위에 10여 개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조개껍질이 들어가 파도에 의해 소용돌이치면서 동그란 구멍을 만든 것이다. 벼랑 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근 바위가 있어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송지호 해변에서 오호항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서낭바위 산책로가 놓여 있다. 솔숲을 따라 타박타박 데크길을 거닐다가 해안가 계단으로 내려가면 스누피 인형을 빼닮은 ‘서낭바위’를 만나게 된다. 부채모양의 바위가 마치 와인 잔의 목처럼 가느다란 바위에 올라서 있는데 거센 파도가 때리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위태롭게 보인다. 원래 이 지역은 화강암 지대였다. 억겁의 세월을 통해 풍화작용을 받아 지하에 틈이 생겼는데 그 틈 사이로 마그마가 들어가 암맥을 형성한 것이다. 서낭바위 옆에 있는 암맥이 마치 햄버거 속의 패티 모양을 하고 있다. 서낭바위가 어떻게 조성되었었는지 그 해답을 말해주고 있는 열쇠다. 서로 다른 재질의 바위가 바람과 파도 그리고 세월이 더해지면서 깎여 나가게 되는데 아무래도 딱딱한 화강암보다 연한 재질의 마그마인 규장암이 더 먼저 깎여나가 이렇게 와인잔 형태로 완성 그러니까 머리는 화강암. 잘록한 허리는 규장암, 받침은 화강암이라는 삼겹살 형태를 하고 있다. 특히 머리 부분에는 흙 한 톨 없이 바위에 간신히 뿌리내린 소나무 한그루가 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버티고 있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뒷머리에는 속이 파여 있어 마치 고대기 속으로 머리를 넣은 듯한 느낌이다.
서낭바위 근처에도 독특한 바위가 널려 있다. 돌고래 바위, 소 머리바위, 사람 옆모습 바위 등 마치 동화책을 펼친 것처럼 흥미롭다. 서낭바위 옆 벼랑 아래에 해신당이 있는데 어부들이 풍어를 기원하는 장소다. 오호리 등대에 오르면 파란 바다와 오호항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수뭇개 바위
사진 찍는 사람들은 한 번씩은 찾았을 일출명소인 수뭇개 바위. 일명 옵바위로 부른다. 3개의 바위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는데 3번째와 3번째 사이로 해가 솟아오른다.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드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경외감이 든다.
무너진 그리스 신전 기둥, 운봉산 암괴류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너른 들판에 종을 엎어 놓은 듯한 운봉산(285m)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산 정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수백 개의 연필을 다발로 박아 놓은 듯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750만 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현무암이 빠른 속도로 식으면서 다각형 모양의 기둥을 만든 것이다. 마치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말이다. 군부대 옆 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고 산길로 15분쯤 오르면 주상절리가 풍화작용을 받아 쏟아진 육각 형태의 암괴류를 무더기로 만날 수 있다. 육각 바위가 강처럼 골짜기 아래로 흘러내린 모습이 압권이다.
이 암괴류에는 전설이 묻어 있다. 그 옛날 운봉산에 힘센 장사가 살았다고 한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들어가려고 힘깨나 쓰는 짐승을 불러 모아 산봉우리를 구름보다 높이 쌓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금강산 장사가 꾀를 내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거짓 소문을 낸 것이다. 이 말에 속은 운봉산 장사가 산꼭대기 구름 속에서 석 달 열흘을 땅을 치며 울었는데 이때 손으로 내리친 바위가 무너져 흘러내린 것이 이 육각바위 너덜지대다. 그래서인가 바위는 눈물처럼 보이고 쓸쓸함이 묻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