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님(강목사 간증)
삶은 가끔 원치 않는 불운을 당할 때 세상을 비관하거나 포기한다. 푸쉬퀸은 생활
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두려워 말라고 했다.
1.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
나에게는 고교 졸업후(21세) 너무나 아픈 병이 찾아 들었고, 결국 불치병으로 치
유할 수 없는 병고에 시달리면서 합병증으로 젊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학
병원에서, 부산 초량 김상룡 안과에서, 모두 치유 할 수 없는 결과로 진단되고, 결
국 부산 대청동 모 피부과에서 병명과 불치의 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사 한대 맞
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바이러스병, 3차 신경 침투, 세포마름,마비).
여러가지 민간요법을 동원했고, 그때 부곡 온천을 개발하던 시기라 유황물을 마시
면 좋을 것이라는 소문으로 찾아 가(부곡) 한 주간 유하면서 물도 마시고 바르기도
했지만 별 다른 차도가 없었다.
그런 중 어느 날, 전도를 받고 고향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만
약 내가 고교 졸업 후 이 불행한 병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사회인으로 타락해서 병
자로 버림받아 죽었을 지 모른다.워낙에 악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세상 친구들과 재
미나게 놀기를 좋아했다. 때문에 아마 고교 졸업 후 세속에 푹 빠져 버려졌을 가능
성이 많았다. 그런 나를 하나님이 특별히 소명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불행이 영원한 영생의 행복으로 가게 되는 기초가 된 것이다. 삶이 때로는 불공평
한 것처럼 아프게 찾아 올지라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 은혜를 입는다면 그것이
도리어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2. 주를 영접한 날
나는 21세이던 1974.10.16 수요일 밤에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물론 어릴 때
교회를 나간 기억은 있으나 성인이 되어서 교회를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처
음 듣게 된 설교가, 이 세상은 마귀가 주는 지식으로 살기에 거짓되다는 것이었으
며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메시지였는데,나에겐 빛이요 길이 되는 뜻이었다(요한복음
8장).
참으로 놀라운 이해의 눈이 열리면서 그 시간 이후 한번도 그리스도를 떠난 적이
없으며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없다. 불신 가정이요 불교 집안이라 많은 핍박이 있
었지만 특별히 성경을 사모하며 읽는 것과 주일성수가 성도의 생활 기본으로 알고
열심을 다해 노력했다.
교회 다닌지 얼마 안 되어, 동네가 복을 얻겠다고 산 고갯 마루 당집(동네 지키
는 수호신같은 할머니집?)을 수리하고 동네 한 복판에서 굿을 하는데, 이를 저지하
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현장에서 반대 운동을 하다가 큰 형님이 찾아 오셔
서 죽인다고 나를 잡게 되었다. 나는 큰 형님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마구 도망
가야만 했다. 따라 오던 형님을 따 돌리고 결국 친구네 소 마굿간에 피신하여 한밤
을 보내다가 새벽녘에 친구네 방으로 들어가 잘 수 있었다.
3. 불치의 병이 낫다
장로회 고신측 교단이었으므로 병이 낫기 위한 기도보다 성경을 열심히 읽을 것
을 권유하였으므로 열심을 다해 성경을 읽게되었다. 눈이 따갑고 목이 타도록 간절
했다. 지도자 되신 전도사님은 충청도 출신으로 워낙 경건하시고 젊잖은 분이셨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금요일 돌아오시면 질문을 하고 답을 얻고, 또 전도사님이 책을
많이 소유하고 계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읽도록 하셔서 신학교입학 전까지 약 400여
권 정도 읽고 필요한 것은 노트 정리를 하였다. 그 중 가장 보람된 것은 번역된 주
석 종류를 거의 다 읽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주석 몇 질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였다. 그래서 후일에 주석을 평하며 읽는 눈을
열게 되었고, 특히 설교 작성에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나는 교회당을 오가며 은혜 받은 감정을 어쩔 수 없이 즐겁게 찬송하니 동네분들
이 미친 자라 했으며 결국 모친께서는 점장이를 불러 굿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수의 은혜는 그칠 줄 모르고 날마다 감격 속에 찬송하며 열심을 다하니 약 2년여
만에 병이 낫게 되었다. 놀라우신 주의 은혜였다.
이제 병이 많이 낫게 되어 건강 회복을 보게 될 때, 어머니는 이제 교회는 그만
열심히 다니고 직장을 찾아서 살 궁리를 하라신다.고교 졸업한 청년들은 당시 공무
원을 선호하였다. 시험 준비를 했으나 성경 읽기에 몰두한 관계로(?) 공무원 시험
이 주일에 시행되는 줄 몰랐다. 당일 시험 장소인 부산을 오긴 했지만 시험장을 가
지 않고, 영도에 있는 제일영도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당시에 성경 말씀
위주로 설교하시고 유명하시던 천국 가신 박정덕 목사님의 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 은혜를 받고 해질 무렵 고향으로 돌아갔다. 물론 시험 치루지 않았다는
사실이 고해지고 핍박 받는 것은 당연했다.
4. 25세 부모형제와 고향을 떠나다
군 필을 하고 가족으로부터 그때 돈 3만원을 얻었다. 그것으로 주를 위한 일생을
시작하기 위해 마산 무학산기도원에서 3일 금식을 하며 갈길을 하나님께 묻기로 했
다. 결정은 전번에 마산에서 부흥회 때 뵈었던 귀한 강사 목사님이 계신 대구를 출
발하게 되었다. 본래 나를 전도하시고 키우신 마산에 계신 목사님과 동역하기로 했
지만 주님의 뜻은 달랐다.
특별한 것은 부흥회 때 받은 은혜가 아주 특별했는데,그것은 한국교회 이단이 많
다는 놀라운 사실과 계시록 강해가 아주 특이했다.고신 교단의 특색을 살려서 순교
적 신앙을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설교는 꼭 목사님께 가서 계시록을 배우고 싶도록
했다. 결국 요한계시록 내용을 그 목사님으로부터 배우게 되었고,상당한 내용이 고
오종덕 목사님의 해석인 것을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대구에 도착하여 마산에서 집회 중에 은혜를 주셨던 강사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를 찾아서 짐을 풀고...짐이라야 가방 하나였다. 대구는 너무 더웠고.. 가진
돈이 얼마 되지 않아서 만원짜리 월세방을 구할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할만한 방
을 얻으러 사흘 길을 다녔다.밤에는 구하라 하셨으니 기도했으며 낮에는 찾으라 하
셨으니 찾아 다녔고,문을 두드리라 하셨으니 대문마다 두드렸지만 좀처럼 1만원 짜
리 월세방은 없었다.
사흘이 되었을 때는 이미 기직맥진하였고, 성경이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과연 이
런식으로 구하면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 길 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그런
데... 사흘길을 다니다 너무나 지쳐 커다란 어느집 대문 앞에 주저 앉게 되었다.마
침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시니..왈,"누구요!" 하신다."아,..예, 전 1만원 짜리 월세
방 얻으러 다니는 중입니다..."
당시 나는 치유의 은혜는 입어 정상적인 걸음을 걸을 수는 있어도 그 후유증으로
아주 약한 몸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자식같이 여기시고 1만원으로 그 큰 빈 집(새
로 지은 집)을 맡기셨다. 이래서 그 곳에서 생활이 시작되었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신학교 등록금도 마련하였다.
5. 긴긴 겨울 밤을 창고에서 보내다
어느듯 추운 겨울이 오자 갈 곳이 없어서 어느 2층집 계단 아래 조금한 창고에서
대구의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참으로 추웠다. 너무 추우니까 눈물이 절로 났다.밤
이면 온 몸이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판자 조각을 모아 깔고 그 위에 지난 여름
에 어느 목사님이 사 주셨던 여름 홑이불을 깔고 몸을 돌돌 말아 감싸 덮었으나 온
기가 없었다.
밤을 괴로워 하다 그저 새벽기도에 일어나 교회당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 안에는
따슨 난방이 있었기에 참 좋았다.그리고 나는 거기서 전도사 고시를 준비하여 합격
했고,곧장 그 추운 창고 생활을 벗어나 영천에 소재한 금호중앙교회라는 곳에 전도
사로 첫 부임을 할 수 있었다.그것은 묘한 만남이 있어서 가능했는데,고향 교회 출
신인 여 성도가 그 교회 출석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경북노회 전도
사 고시 시취 합격에 감사하여 헌금을 했는데, 내 이름을 기억하고 그 고향 누님이
예배가 필한 후 나를 찾아 주었고, 사역지를 소개해 준 것이다. 참 감사하고 있다.
6. 목사가 된 후...
나는 아내를 만난 후, 아이(남) 둘을 키우면서 이들을 키워 주의 나라를 위해 쓰
임 받게 해야 한다고 소원했다. 아이들은 무럭 무럭 잘 자라줘서 참으로 감사한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작명할 때 주께 서원하기를, 큰 아이는 잘 가르치는 목사요
교수가 되기를 바라면서 진실(眞實)라 하였고, 작은 아이는 거룩한 교회를 위해 은
혜스런 목회자로 성공하라고 거룩한 백성(이스라엘)이라는 뜻으로 성민(聖民)이라
명했다.
7.어머님이 예수님을 영접하시다!
어머님이 주를 영접한지도 이제 2년이 지나고 있다. 어머님이 고향 교회에서 예수
님을 영접하게 된 놀라운 사실과 함께 첫 해에 가장 전도를 많이 하셔서 전도왕이
되셨다. 퐁퐁 한 박스의 선물도 받으셨다. 얼마나 놀랍고도 크신 은총인지 말로 형
용할 길이 없다. 목사가 되어도 어머님이 교회로 나오시지 않아 줄곧 괴로웠했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79세에 영을 부르시고 감동하게 하신 것이다!
한 번은 부산에 오셔서 문병을 나와 함께 하시게 되었는데, 아직 점심 시간이지만
저녁에 구역 예배가 있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예배를 기다리시고 초조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해 봄철에 한 번 외가
의 모임이 있었는데, 딱 한 번이지만 주일에 모임을 가진다고 끊어버리고,... 비록
원숙한 성도의 처세가 아니라도 구별된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것이 참으로 보
기 좋은 것이다. 특히 어머님은 지식도 없으시고 촌락에서 일평생을 보내신 분으로
어떤 철학적 방향을 표현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이 아닐 수 없다.주님을 영접하신
후 대화가 된다. 참으로 놀라운 교감이요 언어요,기쁨이요, 지혜이다.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더욱 답답할 수 밖에 없었던 내 어머님,예수 믿으니 뜻이 통하여 소위 대
화가 된다는 이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가! 세상에 나만큼 복된 자가 있을까 싶다.
어머니, 어머니, 전도왕 내 어머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받으신 어머님은 꽃피는 4월(3일) 아침 일찍 하늘나라 가셔서 안식 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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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부족한 사람의 간단한 간증을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하며 주님의 은혜
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늘새롬교회 강종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