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뭐라든 자신의 주관적 만족을 위해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 소비의 몇 가지 유형들을 살펴보고 기업의 대응 방안을 점검해 본다.
한국 시장이 어지럽다. 언제부터인가 시장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시각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트렌드’로, 때로는 ‘~族’이라는 용어로 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 정의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웰빙 트렌드, 양극화 트렌드, 딩크족, 명품족, 보보스족, 싱글족 등이 그렇다. 사회학적으로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세대’의 개념 정의가 소비 시장에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이 가운데 최근의 우리 시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가치 소비자(Value Consumer)를 빼 놓을 수 없다.
중저가 명품인 매스티지 제품의 인기, 억대 모델을 기용한 저가 화장품의 세몰이, 내수불황을 무색하게 하는 고가 승용차, 디지털 가전 등의 호황은 시장에서 드러나는 가치 소비의 일면이다.
한 마디로 가치 소비를 정의하면 ‘자신의 주관적 가치 만족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는 소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상황에 따라 변덕스럽던 나를 만족시키는 물건을 사겠다는 것이다. 가치 소비가 점차 두드러지는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시장 환경의 영향이다. 인터넷, 모바일 기기 등 정보화의 진보로 소비자들은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해박한 정보를 보유하게 되었다.
둘째는 소비자 자신이 솔직해지고 전에 없이 신중하게 소비 결정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자신의 주관적 가치 만족을 위해 전체 시장을 대상으로 최적의 제품을 찾아 나선다.
가치 소비의 3가지 모순들
가치 소비는 하나의 모습으로 정형화하기 어렵다.
시장에서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모순된 가치 소비 행위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가치 소비 추구과정에서 볼 수 있는 모순 현상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그림> 참조).
첫 번째가 하나의 제품 내에서의 높은 감성 가치와 저렴한 가격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다. 두 번째로 대중화된 보편 소비를 지향하면서 개인화 소비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전체 제품군 가운데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소비 기준 등을 들 수 있다.
● 높은 감성과 저렴한 가격의 모순
모순적 가치 소비의 첫 번째 유형은 ‘하나의 제품 內’에서 상이한 가치를 추구하는 경우이다.
구체적으로는 높은 감성 가치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저렴한 가격을 포기하지 않는 소비행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제품 선택 단계에서는 철저하게 감성 중심이다.
현재의 소비자들은 제품을 고를 때 제 아무리 재질이 좋고, 기능이 뛰어나도 명품 브랜드가 아니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2류 브랜드 제품과 가격 차이가 아무리 커도 상관 없다. 내로라 하는 브랜드 제품으로, 내 주변의 시선 그리고 나 스스로의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반면, 대상 제품을 선택한 이후에는 지극히 이성적, 합리적으로 접근한다.
내가 선택한 명품 브랜드를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인터넷과 이곳 저곳 상점들을 찾아 헤맨다. 꼭 정가 판매를 고집하는 정상 매장에서 구매하지 않아도 좋다.
대폭의 할인가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때로는 좀 낡긴 했어도 중고 명품샵에 나온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제품에서 만족을 얻는 경우도 있다.
시장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매스티지(Masstage) 즉, 중저가 명품이 히트 상품의 큰 조류를 차지하기도 한다.
중저가 명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소비자들의 고급 감성 니즈를 맞추어주면서 포스트 명품족 시장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 대중적 가치와 개인별 가치 추구
가치 소비의 두 번째 모순은 다수 대중의 가치와 개인화 가치에 대한 것이다. 나 혼자 외톨이 소비자가 되기 싫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서는 안 된다는 심리가 혼재한다.
구체적인 현상을 들여다 보자. 지난 해 대표적인 히트 상품의 하나는 디지털 카메라이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지난 해를 정점으로 폭발적인 시장 수요를 기록했다.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 시절에는 장롱에 고이 간직한 카메라가 세상 빛을 보는 경우는 졸업식, 결혼식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경우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제 디지털 카메라는 일상의 사진 찍기를 대중화 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가 반드시 필요해서 구매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얘도 있고 쟤도 있는데 나만 없으니 왠지 왕따되는 기분이다.
진작 카메라가 필요한 막내 아들 졸업식장에 들고 간 아날로그 카메라는 왜 이리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지.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사실 사진 찍을 일도 얼마되지 않는데.
에이, 아무래도 디지털 카메라를 사야겠다. 이런 식이다.
3천 6백만대에 달하는 휴대폰 보급대수나 천 만명이 넘는 관객들을 끌어들인 지난 해 두 편의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 동기가 숨어있다. 물론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보니 왠지 찜찜한 기분을 가실 길 없던 관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시장에는 대중 가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가득하다.
다수 대중의 공유 가치를 추구하는 이면에는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개인화 가치 욕구도 상당하다.
개인화 가치 지향의 대표적인 예는 대량 맞춤 생산(Mass Customization)이다.
대량 맞춤 생산은 과거 맞춤 양복점이나 수제화의 생산 방식을 다수 소비자를 대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미 오프라인에서는 나이키, 리바이스 등의 기업들이 상당 부분 사업을 진전시키고 있다. 온라인, 모바일 영역에서도 개인화 가치 추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카페의 아바타 꾸미기나 싸이월드 홈페이지의 방 꾸미기가 대표적이다.
모바일 영역에서는 ‘남들과 똑 같은 소리는 싫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컬러링 서비스 성업 등을 들 수 있다. 덕분에 온라인 상의 디지털 이미지에 불과한 아바타는 연간 수 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나 홀로 소비자’이길 거부하는 대중 가치 지향도 상당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건 싫다는 개인화 가치 지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역시 소비자의 주관적 가치 기준에 다른 소비의 결과로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다.
● 프리미엄 가치와 자린고비 가치 추구의 모순
가치 소비의 세 번째 스펙트럼은 한 명의 소비자가 자신의 구매 포트폴리오 내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적용하는 경우이다.
주변 신혼 부부들의 혼수 준비 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TV, 자동차는 최고급 프리미엄 제품을 사고 신혼 여행은 헐리우드 연예인들이 드나드는 피지섬을 선택한다.
하지만 기타의 영역에서는 철저히 자린고비의 모습을 드러낸다. 결혼 전 사용하던 가구를 신혼방에 들여놓고, 야외 사진 촬영은 생략하기 일쑤이며 결혼식 비디오 촬영은 가까운 친구에게 캠코더로 부탁을 한다.
디지털 미디어에 열광하는 신세대 소비자들도 예가 될 수 있다.
한 달 용돈을 지독히 아껴가면서 70~80만원 대 최신형 휴대폰을 구입한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영역에 대해서는 한국의 어느 갑부 못지않은 프리미엄 제품이어야 한다.
따라서 프리미엄 제품의 구매가 가능한 대상 소비층은 일정 소득 수준 이상에만 한정하면 곤란하다.
중국의 경우도 이 부분은 마찬가지인 듯 싶다. 1인당 GDP가 개도국 수준인 중국에서 공장 근로자들은 자신의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휴대폰 지출에 서슴없다고 한다.
개인 소비자가 어느 제품에 프리미엄 가치 기준을 두고, 어느 제품에 자린고비 기준을 적용하는지는 주관적인 가치 성향에 달려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역에는 거리낌 없는 투자를 하는 반면 기타의 제품에서는 철저한 짠돌이로 변모한다.
자신의 소득 범위 내에서 최대의 프리미엄 소비를 지향하는 ‘작은 사치’를 뛰어넘는 ‘부분 사치’의 개념일 수 있다.
가치 소비 트렌드에의 대응 방안
소비자들이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모순적 소비 행태는 시장 참여자에게 새로운 사고 전환을 요구하기도 한다. 때로는 기존의 마케팅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가치 소비자들이 시장 참여자에게 제기하는 기존 사고틀의 재조정 과제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 전략은 무용지물인가
제품 단위에서 가치 소비가 그 영역을 넓히면서 기존의 명품 브랜드들은 고민에 빠졌다. 매스티지 제품들이 시장의 주력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고가 프리미엄 제품 전략을 고수하는 귀족 마케팅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천원 대 저가 명품 브랜드 화장품인 미샤, 더페이스샵 등이 시장 판도를 뒤바꾸는 상황에서 샤넬, 크리스챤 디올 등의 명품 브랜드가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비자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명품 선호 심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명품 선호 심리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쉽게 구매하지 못하는, 나만이 향유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것이다.
물론 매스티지 제품이 저렴한 가격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품질, 브랜드 가치 등 고감성 가치를 제공한 기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격 대비 감성 가치가 높다 하더라도 대중적이라면 나만의 독특함을 드러내주는 희소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미샤 등 저가 매스티지 브랜드를 애용하던 젊은 여성들이 결혼 선물로 받는 혼수용 화장품에서도 유사한 저가 브랜드를 구매할까. 그렇지 않다. 특별한 때 나의 가치를 드러내 주는 명품 화장품 브랜드를 저가 매스티지가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제품 단위 가치 소비 트렌드의 최종 결과는 제품 가치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시장에서는 일정 수준의 감성 가치를 갖추지 못하면 가격이 아무리 저렴해도 소비자들의 선택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따라서 프리미엄 마켓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매스티지 제품은 대중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한 희소 가치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대중 가치와 개인화 가치 추구의 접점은 없는가
대중 가치가 중요하다는 의미는 다수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일수록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독 소비자들 성향 차이가 크지 않은 우리 나라 소비자의 경우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이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소비의 대세가 아닌 나만의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은 더 이상 설 곳이 없을까.
대중적이지 않은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는 경우 성공하기 어려운 것일까. 현상적으로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미 대중화된 제품 카테고리에서 차별된 가치를 추가한 제품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과거 흑백 휴대폰이 컬러폰으로 세대 전환을 하는 일이나 최근 카메라 폰, MP3 폰 등의 히트가 그렇다.
이들은 휴대폰의 보편화라는 대중성을 바탕으로 차별된 가치를 추가하여 소비자들에게 빠른 속도로 파고 들어갔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폰이라 나도 동참은 하였지만 이제는 다시 남들과는 다른,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어얼리 어답터(Early Adapter) 성향이 유독 강한 신세대 소비자들의 경우 이런 면이 두드러진다.
개인 홈페이지에서 아바타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너도 나도 싸이질을 하는 마당에 나도 동참은 하였다.
큰 흐름에 합류한 이후에 이제는 뭔가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다.
바로 보편 가치 속의 개인화 가치 추구 성향이다. 내 분신을 부지런히 꾸미기 시작한다.
다양한 의상의 옵션이 있으니 신중하게 고려하여 남들과 절대로 같을 수 없는 조합을 만들기 위해 궁리한다.
최근의 시장의 흐름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동질화 소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결국 보편적인 대중화 소비 트렌드를 공유하면서 한 발 앞서 새로운 가치 제언을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소득, 연령 기준의 고객 세분화는 타당한가
20만원을 호가하는 대형 야외 오페라 티켓을 구입하는 바로 그 소비자가 주말이면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의 조조할인 영화를 보기위해 긴 줄을 선다.
대형 LCD 패널 TV를 혼수품으로 사는 20대 후반의 신혼 부부가 결혼 전 사용하던 구닥다리 가구로 신혼방을 채워넣는다. 자신의 선호에 따라 제품 별로 상이한 가치를 적용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은 때로는 기업들의 마케팅에 일관성을 갖기 어렵게 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이러한 가치 소비자들에게 기존의 고객 시장 세분화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통상 고객 세분화는 대개 소비자 인구 통계 특성에 기초한다.
연령, 소득, 가족 수 등이 주요한 고려 변수가 된다. 하지만 어떤 제품에서는 최상위층 소득자나 가능한 소비 행태를 보이는 반면, 한편에서는 저소득층이 혀를 내두를 절약정신을 발휘하는 소비자들을 고정된 기준으로 구분하기는 한계가 있다.
가치 소비자에게 가치 기준으로 새 판짜기가 필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치 기준 시장 세분화에서 우선 생각할 부분은 소비자 群에 따라 주관적 중요 가치로 타겟 시장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급품이 반드시 고소득 층만이 구매하는 것은 아니며 휴대폰, PC 등과 같은 영역의 고급품은 오히려 신세대가 열광한다. 소득, 연령만으로 정확한 조준이 어렵다.
소비자들의 주관적 가치를 기준에 따른 시장 세분화 작업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 제품이 배제하던 새로운 시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가치 소비자에게 상당한 의미를 주고 있는 제품의 상징성, 내구성 등 제품의 이면(異面) 속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신세대 젊은 소비자들이 어른들도 주저할 100만원 대 휴대폰을 사는 이유는 그네들 세계에서의 상징성 때문이다.
승용차를 탈 수도, 자신의 집을 소유할 수도 없는 또래 집단에서 번득이는 휴대폰은 당사자에게 최고의 가치 만족을 제공한다. 20평 대 좁은 신혼방 한 벽면을 독차지한 55인치 PDP TV이 그네들에게 주는 상징성은 상당한 비용 지출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소비자들이 똑똑해지고 있다. 더불어 전에 없이 솔직한 표현이 늘어간다.
자신의 주관적 가치 만족을 주는 제품에 대해서는 주변의 눈총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근거한 더 없이 합리적인 소비 행태들이 때로는 시장 관찰자들에게 모순이고, 혼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의 목표가 ‘최소의 비용으로 얻는 최대의 주관적 효용 만족’이라는 기초 경제학의 명제를 떠올릴 때, 우리 소비자들은 나무랄 데 없이 현명한 경제 주체임에 틀림이 없다. 소비자 전반의 소비 행태 변화에 따른 적절한 시장 대응이 긴요한 시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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