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봄나들이
지난 24일 모처럼 오랜만에 남해안 봄꽃나들이에 나섰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며 일행은 날씨가 어떨지 은근히 걱정했다.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행은 일기예보엔 틀림없이 흐렸다가 갤 것이라고 했다며 서로를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이날은 부활절인 전 날 부활 선물처럼 긴 봄 가뭄 끝에 목 타게 기다리던 단비가 내린 뒤라선지 눈에 들어오는 산야는 청소를 말끔히 해놓은 듯 깨끗했다. 산 능선에는 마치 시골 두엄더미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듯 안개꽃이 피어올라 눈길을 끌었다. 남녘으로 내려가는 사이 서서히 구름 사이로 햇살이 퍼지며 물안개도 피어올랐다.
출발한지 1시간 좀 넘어 경상남도 도계를 넘어서자 마늘 양파 보리밭이 싱그러운 녹색으로 눈앞에 죽 펼쳐졌다. 남강 경호강변 따라 이어진 산언덕에는 진달래가 붉게 피어 남쪽임을 확인시켜주는 듯 했다. 지리산과 동의보감의 고장 산청군에 들어서며 금서면 화계리 왕산 아래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우리나라 유일한 피라밋 형 7.15m 높이의 돌무덤을 찾았다.
오르는 길 왼쪽에 있는 허준의 스승 류의태가 한약제조에 사용했다는 약수터 약수도 한 모금 마셔보았다. 능에서 내려오는 길 왼쪽에 서 있는 김유신장군이 활을 쏘았다는 사대비와 잠시 마주 서 보고 나서 들어선 단성 나들목 입구 좌우에는 많은 목화가 마른 꽃을 단 채 그대로 화초처럼 남아 있어 목면 시배지가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다음 찾은 곳은 말로만 듣던 전통적인 남부지방 사대부의 한옥이 밀집해있는 남사 예담 촌 남사 고가마을. 마을은 화창한 봄 햇살 아래 높은 담장 안에 만개한 매화 살구꽃 개나리꽃에 묻혀 고가 향촌마을의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정서를 풍기며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안에서 찾아 본 곳은 전주 최 씨의 고가. 고가에 이르는 고샅길 양쪽에는 그 유명한 사람 키의 한 질 반이 넘는 높은 흙돌담이 핏줄처럼 달라붙은 담장이넝쿨과 어울려 예담촌의 맛을 더 해 주고 있었다. 겹 매화 향이 그윽한 고가 마당 안에는 100년이 넘는다는 백목련이 만개하여 봄을 하얗게 피우고 만개한 천리향 또한 그윽한데 마침 봄바람에 풍경도 청아하게 울어주었다.
예담 촌을 나와 속세와 인연을 끊기 위해 지었었다는 신라 시대 고찰 단속사(일설에는 금계사의 새 이름) 절터로 절 터 이웃에 있는 우리나라 매화나무로서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정당매를 찾아 첫 면회를 했다. 단속사에서 수학하던 풍정공과 풍계공 형제가 630여 년 전에 심었다는 정당매는 만개한 꽃이 낙화를 앞두고 마지막 짙은 향을 품고 있었다.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한 마을 지킴이 할아버지를 만나 뜻밖에 소상한 마을 역사를 듣는 행운을 얻은 것은 잊지 못 할 것만 같다.
단속사 터를 떠나‘톱 라이스 한 정식’을 자랑한다는 산청 군청 앞 한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하며 식전에 나온 특별 서비스 다슬기 몇 개를 빼먹으며 고향 맛을 조금 보았다. 무엇이나 부족한 것 말하라던 여 사장은‘다슬기는 안 된다’고 한 마디로 잘랐다.
다슬기 맛 아쉬움을 달래며 우리나라 불교와 민속에 커다란 영향을 준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 머물 때 사찰 경내 지력을 북돋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이 번져 7천 여 그루 동백 숲을 이루어 봄만 되면 동백꽃이 붉은 숲을 이룬다는 광양 옥룡사 터로 천연기념물-동백 숲을 찾았다. 동백 숲은 만개한 꽃이 윤기 자르르 흐르는 동백나무 잎과 조화를 이루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동 양봉 꾼들이 놓은 벌통을 윙윙거리며 드나드는 벌들은 봄 동백 꽃 숲을 노래하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석양을 알려 서둘러 섬진강변 광양 매화마을로 달렸다. 매화마을 앞에는 석양에 많은 관광버스들이 떠나는가 하면 관광객을 쏟아도 놓아 유명한 매화마을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일행은 마을 안에 들어가는 대신 섬진강변 따라 매화꽃으로 온통 하얗게 이어지는 강변길을 즐겼다. 섬진강 맞은 편 강변에 즐비한 벚나무는 금방이라도 터질듯 꽃몽오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섬진강 모래사장, 축축 늘어진 갯버들 가지의 시원한 춤 그리고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능수 벚나무 가지의 하늘거리는 춤 또한 꽃에 못잖은 봄 그 자체였다.
매화꽃 강변길은 구례군 경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노랗게 만개한 산수유와 개나리꽃으로 죽 이어져갔다. 산수유와 개나리 산수유 세 줄로 심어진 구례읍 진입로 가로수는 만개한 산수유와 개나리로 온통 노랗게 꽃불 가로등을 켜고 있었다. 지리산 구례산수유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찾은 온천지대 또한 주변 산야까지 온통 노랗게 만개한 산수유 꽃으로만 덮여 눈도 노랗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석양에 쫓겨 산촌생태마을 산동면 상위마을을 둘러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늘 봄꽃나들이 여정을 마무리했다.
서서히 깔리는 어둠에 산수유 노랑 꽃 색깔이 묻혀가기 시작하는 산동마을을 떠나 돌아오는 차 중에서 부활계란을 한 개씩 나눠 먹었다. 계란을 먹은 일행은 피곤을 말끔히 씻으며 추운 겨울을 견디어내고 소생한 만물이 벌이는 부활잔치의 고마움과 기쁨을 새삼스럽게 함께 나누었다. (2008. 3. 26. )
첫댓글 봄나드리 한번 눈으로 잘했네. 내가 본듯 마음이 풍요롭다.
글로 느끼는 재미와 눈으로 보는 감상을 합하면 작품이 될텐데...
글을 읽고 있으니 그 정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일쎄. 몇 장의 사진이라도 곁들였으면 금상첨화라...
맑고 시원한 공기와 소생하는 나무들이 뿜어 내는 생기가 폐속으로 들어 오는 듯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군. 아주머니도 동행했게지?
역사의 향기를 맡으면서 꽃향기와 함께 멋있고 뜻있는 봄나드리였네.